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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0-09 07:10
1세기 교회질서15: 믿음의 선한 싸움(15)(딤전 5:1-16)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2  

1세기 교회질서15: 믿음의 선한 싸움(15)(딤전 5:1-16)

“아버지에게 ... 형제에게 ... 어머니에게 하듯 하라”

디모데전서 4장에서 “좋은 일꾼”의 세 가지 조건들과 그 일꾼의 선한 싸움 곧 “수고하고 힘쓰는” 세 가지 이유들과 추가로 일곱 가지를 권면한 바울은 5장 1-16절에서 권면할 때의 태도와 교회가 미망인들을 어떻게 돌봐야할지를 조언하였다.

1절의 “늙은이”는 헬라어 ‘프레스뷔테로스’(presbyteros)의 번역으로써 흔히 장로(사제)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2절의 “늙은 여자”가 대조되고 있어서 남성 노인을 뜻한 것으로 보인다. “꾸짖지 말고”는 ‘주먹으로 치다’는 뜻이 담긴 말인데, 심하게 질책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리고 “권하라”는 헬라어 ‘파라칼레이’(parakalei)의 번역으로써 문자적인 뜻은 ‘곁으로(para) 부르다(kaleo)’이다. 곁으로 부르는 경우는 대개가 도움이 필요한 때이다. 119나 의사나 변호사를 부른다든지, 상담사나 교사나 교회지도자를 부르는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권하라”는 ‘격려하라’ 혹은 ‘조언하라’가 된다. 그러므로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라”는 말은 “아버지에게 하듯” 존경과 정중함으로 조언하라는 뜻이다.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2절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도 마찬가지 의미이다. 특히 젊은 여자에게는 성희롱이나 성적수치감을 느낄만한 말이나 신체접촉을 해서는 안 된다. 이전 세대들에서는 지도자들이 위임된 아버지의 권위를 가지고 꾸짖기도 하고 징계도 내릴 수 있었고, 또 그 같은 권위를 사회구성원들이 모두 수용했지만, 오늘날에는 부모조차도 자녀에게 회초리를 들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함부로 말하지 말고 조심스럽게 매사에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꼭 권면이나 격려해야 하는 경우에도 듣는 사람이 마음을 열고 기꺼이 받아드릴 만한 태도와 말로써 조언하거나 격려해야한다. 아무리 좋은 말도, 그것이 설사 천사의 말일지라도, 듣는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다 헛소리가 되고 만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라고 노래한 고린도전서 13장 전체를 우리는 늘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과부를 존대하라”

디모데전서 5장 3-8절에 언급된 과부 곧 미망인들에 대한 말씀은 오늘날처럼 큰 정부 곧 국가가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사회보장제도가 전무했던 때의 말씀이다. 우리나라에 6.25동란이후 수많은 과부들과 고아들이 생겼을 때, 성경말씀대로 선교사들과 그리스도인들이 발 벗고 나서서 긍휼사역을 감당하였다. 일제의 36년간의 착취와 태평양전쟁, 뒤이어 터진 6.25동란으로 인해서 국가는 피폐해졌고, 해외원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국가가 이만큼까지 재건되고 성장된 데에는 수많은 선교사들과 국내외의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와 희생이 매우 컸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해외원조가 필요치 않고, 오히려 우리보다 가난한 많은 나라들을 원조하는 나라가 되었다. 더불어 우리나라는 사회보장제도가 나날이 개선되고 있어서 1세기 교회시대 때처럼 교회나 친족이 짊어져야할 부양의 짐이 상당히 가벼워졌다. 성서시대에는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부양이라고 해봐야 겨우 입에 풀칠을 해주는 정도였다. 그 정도는 이제 국가가 나서서 하지 않나 쉽다.

1세기 그리스 로마에도 미망인들이 많았다. 특히 젊어서 과부가 된 여성들이 많았다. 전쟁이 많았기 때문이다. 많은 아이들이 열 살 이전에 죽었고, 인구의 절반은 20세 무렵에 죽었다. 기대수명은 50세에 못 미쳤다. 가난과 빚도 걱정거리였다. 가난 때문에 가정이 붕괴되고 가족은 노예로 팔리기 십상이었다.

1세기 그리스 도시국가들에서는 미망인들이 재산권을 가질 수 있었다. 반면에 크레타에서는 합법적 남성 상속자에게만 재산을 남길 수 있었다. 아내가 받을 수 있는 것은 선물뿐이었다. 아테네에서는 미망인의 재혼이 흔했고, 지참금도 되돌려 받았다. 자녀를 둔 미망인은 죽은 남편의 집에 머물 수 있었는데, 그녀에게 성장한 아들들이 있다면, 대개는 그들 중 한 아들이 그녀의 지참금을 관리하게 되고 새로운 ‘주인’(kyrios)과 ‘보호자’가 되었다. 또 아테네 법은 아들들이 미망인을 학대하지 못하도록 일정한 장치를 제공하였다. 또 다른 선택은 미망인이 자신의 지참금을 가지고 가족 곧 자신의 부모에게 돌아가 그들에게 보호를 받는 방법이었다. 이러한 법적 보호 장치아래 있는 미망인들은 교회로부터 도움이 필요치 않았다. 왜냐하면 미망인의 지참금을 관리하는 자가 그녀를 돌보아야 할 법적 책임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3-8절의 과부들은 “존대”하고 도움을 받아야 할 자들이고, 9-16절의 과부들은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들이다. 전자의 자격은 궁핍과 경건이고, 후자의 자격은 “나이가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이다. 이 자격은 동시에 이들이 교회에서 맡았던 봉사자의 임무와 같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3,5,16절에 “참 과부”란 말이 세 번 나온다. 이 어구의 뜻은 도움이 절실한 과부를 의미한다. 지참금이나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거나 자신을 돌봐줄 친척이 없는 미망인을 의미한다. 이것이 참 과부의 첫 번째 조건이다(4절). 두 번째 조건은 “외로운 자”이다. 세 번째 조건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는” 자이다(5절). 6절에서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지참금이나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거나 자신을 돌봐줄 친척이 없기 때문에 결국 몸을 팔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완곡하게 표현한 말일 수도 있다.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들은 교회에서 상기한 봉사, 특히 여성들을 위한 봉사를 맡았던 자들로 추정된다. 테르툴리아누스에 의하면, 2세기 후반부터 명부에 올라간 과부들은 기도에 힘썼고 병자를 간호했으며 고아를 돌보고 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하고 이교도 여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회심한 여인들이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을 했다(존 스토트, <디모데전서, 디도서 강해> 김현회 옮김, IVP). 이들의 조력은 여성들이 침례를 받을 때 반드시 필요했다. 고대 그리스도인 침례는 벌거벗은 몸으로 물속에 들어가 세 번 침수를 했기 때문이다. 이점에 있어서는 유대교 개종침례 때도 마찬가지이다.

반면에 바울이 젊은 과부를 명부에 올리지 말라고 한 것은 첫째, 재혼의 가능성과 정욕 때문이었다(11-12절). 둘째,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이기” 때문이었다(13절). 셋째,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기” 때문이었다(13절). 덧붙여 바울은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한다.”(14절)고 했고, 교인들은 과부 친척을 “자기가 도와주고 교회가 짐 지지 않게 하라”고 했는데, “이는 참 과부를 도와주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