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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8-29 07:27
노년의 품위(눅 2:22-38)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0  

노년의 품위(눅 2:22-38)

오늘은 노년의 품위가 어디에서 오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다. 누가복음 2장에는 유대인들이 아이들에게 행하는 종교의식 네 가지가 소개되고 있다. 그것들은 작명, 할례, 장자의 대속의식과 성인의식이다.

작명의 경우, 갓난아기가 여자이면 첫 안식일 회당 기도회 때 이름을 부여하지만, 갓난아기가 남자이면 할례의식 때 이름을 부여한다. 21절의 말씀대로 예수님도 할례의식 때 이름을 부여받았다.

유대인 남성이 태어나서 제일 먼저 경험하는 것이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 언약이 있다는 흔적을 몸에 표시하는 할례이다. 태어난 지 8일 만에 하는 할례의식(brit milah)을 통해서 유대인 남성은 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요, 언약 공동체임을 나타내는 흔적을 몸에 지니게 된다. 13세 이상의 유대인 남성 열 명 이상이 모여서 이 의식을 진행하는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연대책임을 갖기 위한 것이다.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 간 것은 아기 예수님의 속전과 마리아의 정결예식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민수기 18장 15-16절에 따라 하나님의 소유인 ‘맏아들의 대속’(pidyon ha-ben)을 위해 속전의식을 출생한지 한 달이 지난 날 곧 31일이 되는 날에 행한다. 만일 이 날이 안식일이면 다음날에 행한다. 이 때 지불한 몸값은 은전 5세겔이었다. 그 가치는 대략 일용직 임금으로 20여일어치에 해당되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은전으로 5달러를 제사장이나 절차에 익숙한 경건한 자에게 주고 간략한 의식을 행한다. 22절의 “정결예식의 날이 찼다”는 예수님이 태어난 지 40일이 지났음을 의미한다. 레위기 12장에 따르면, 산모는 남자아이를 출산했을 때 40일이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여지고, 여자아이를 출산했을 때는 80일이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여진다. 이 기간이 차야 산모는 번제물로 어린양과 속죄물로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제사장에게 가져갈 수 있었다. 가난해서 어린양을 바칠 수 없으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다가 각각 번제물과 속죄물로 바치도록 하였다. 그렇게 하면, 산모가 정결하게 되었다. 24절에서 요셉과 마리아가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했던 것은 그들이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누가복음 2장 41-51절은 예수님이 열두 살 때 겪었던 일을 적고 있다. 유대인 소년에게 이 나이는 종교적인 성인이 되기 위한 준비기간이다. 유대인 소년은 만 13세에 성인식을 갖는다. 유대인들은 만 13세가 되면 하나님과 계약을 맺을 능력이 있으며 또 그 계약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할례가 하나님과 유대인 사이에 계약이 있다는 사실을 계약 당사자의 몸에 객관적으로 표시하는 행위이라면, 성인식은 그 사실을 주관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의식이다.

오늘 본문에서 누가는 예수님이 태어나서 41일쯤 되었을 때,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고, 거기서 뜻하지 않게 시므온과 안나라 불리는 연세가 높은 노인들을 만나서 그들로부터 축복을 받았던 일화를 전하고 있다.

갓난아기와 노인의 만남, 이 만남은 어쩌면 유유상종이라 볼 수 있다. 손자손녀와 할아버지할머니는 나이격차가 상당히 큰데도 서로 잘 지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이유가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는 가장 순수하고 꾸밈이 없는 관계 때문일 것이고 생각과 입맛과 행동 등이 얼추 비슷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갓난아기와 노인은 신생과 재생의 관계이다. 갓난아기는 말 그대로 신생상태를 뜻하고, 노인은 고난의 십자가를 다 짊어진 후 곧 부활을 앞둔 재생상태를 뜻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재생을 뜻한다. 하늘나라에서의 재생은 갓난아기만큼이나 말과 행동이 순수하고 꾸밈이 없는 순진하고 천진할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노인다운 노인에게는 권모술수나 정치적 계산이 더 이상 남아 있을 리 없다. 만일 아직도 정치적 계산 곧 이해득실을 따지는 습관이 남아 있어서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전혀 어린아이와 같지 않다고 한다면, 그분에게는 노인다움이 없거나 아직 노인이 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갓난아기와 노인은 릴레이 달리기에 출전한 선수들 관계이다. 노인은 힘차게 달려온 지난 세월 갈고 닦은 지혜와 지식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앞으로 달려 나갈 갓난아기에게 바통을 넘기는 선수이다. 오늘은 다음 세대에 이 바통을 잘 넘긴 시므온과 안나를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 시므온은 영성이 깊은 노인이었다. 영성이 깊다는 것은 품위가 있다와 비슷하다. 노년기의 최고의 복은 아마 이 영성일 것이다. 본문은 시므온을 향해서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고 했다.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한 사람들의 삶은 비록 그들의 삶이 가시밭길이었고, 험난한 십자가의 길이었을지라도, 영웅적이었고, 성공적이었다. 히브리서 11장에 열거된 수많은 영웅들은 하나님의 신과 늘 함께 하였고, 심지어 그리스-로마신화에서조차 헤라클레스, 제이슨, 벨레로폰과 같은 많은 영웅들의 곁에도 늘 지혜와 용기의 신이 함께 하고 있었다. 광야시대에 히브리인들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한 주체도 하나님의 ‘쉐키나’였다. 히브리인들이 구름기둥의 인도를 충실히 따랐을 때, 그들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땅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둘째,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하였다.” 시므온은 품위 있는 노인이었다. 그의 삶은 “의롭고 경건하였다.” 이는 그가 성령님과 동행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성령님은 인간의 삶을 품위 있게 만드신다. 성령님은 특히 노년의 삶에 기품과 위엄과 품격을 더해주신다.

셋째, 시므온은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는 고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끈을 결코 놓지 않았다. 희망의 끈을 결코 놓지 않았다. 본문이 시므온을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한 것은 시므온이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신뢰했다는 뜻이고, 죽음에 임박해서도 민족을 향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넷째, 시므온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성경에서 "기다린다"라는 말은 끈질긴 기도, 불굴의 기도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오랜 기다림은 끈질긴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랜 기다림의 바탕에는 끈질긴 희망이 깔려 있다. 오랜 기다림의 원동력은 끈질긴 기도이다.

그러므로 오랜 외로움, 오랜 배고픔, 오랜 목마름의 쇠사슬을 끊을 수 있는 힘은 끈질긴 믿음과 끈질긴 희망과 끈질긴 기도에 있다. 이 힘이 그리스도인 노인들에게 있다. 이 힘은 팔과 다리와 관절과 근육의 힘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 힘은 오직 영성에서만 나온다. 본문에서는 이 영성의 충만함이 팔과 다리와 관절과 근육이 튼튼한 젊은이들보다 오히려 팔과 다리에 힘이 풀리고, 관절이 삐꺽거리며, 기력이 쇠한 두 노인들에게서 발견되고 있다. 시므온은 “성령의 지시를 받았다”(26절).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27절). 시므온은 기도시간에 맞춰 성전을 출입하였다. 그 결과 시므온은 성전에서 오실 자 메시아를 만나 그분을 품에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축복과 영광을 누렸다(28절).

36절부터는 안나라 불리는 84세 된 할머니가 소개되고 있다. 이분은 20대 중반에 과부가 되어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혼자 살아온 선지자였다. 안나가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다.”(37절)는 말은 안나가 경건한 유대인들의 관례대로 하루 세 번, 아침기도회와 오후기도회 및 저녁기도회 때에 주로 성전의 여인의 뜰에 서서 쉐모네 에스레이를 낭송하였고, 매주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했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쉐모네 에스레이의 18개의 베라코트(기도문)에는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기도문과 메시아를 대망하는 기도문이 담겨있다.

안나가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였다.”(38절)는 뜻은 마침 기도시간에 여인의 뜰에서 안나가 그곳에 나타난 아기 예수가 장차 오실 자로 예언된 메시아가 될 아기란 것을 알아보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공포하였다는 뜻이다. 여인의 뜰에 모인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물론하고 모두 예루살렘의 속량과 메시아를 대망하는 기도문을 낭송하던 사람들이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여인의 뜰에서 아기 예수가 장성하여 메시아가 될 자란 것을 즉각 알아본 사람들은 서기관들과 율법사들 혹은 제사장들과 같이 학식이 많은 사람들이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아니라, 비록 육신은 쇠약하였지만 신앙심이 깊었던 시므온과 안나였다는데 있다. 여인의 뜰은 성전 영내에 있는 유대인 광장이었다. 안나 역시 시므온처럼 의롭고 경건한 품위 있는 노인이었다. 믿음의 끈과 희망의 끈을 결코 놓지 않았던 노인이었다. 믿음이 깊은 기도하는 노인이었다. 이처럼 노년의 품위는 나이가 들수록 믿음이 깊어지고 의롭고 경건해지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