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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7-20 09:45
외교와 신앙(왕상 22:39, 왕하 10:16-17)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8  

외교와 신앙(왕상 22:39, 왕하 10:16-17)

두 나라의 시민인 그리스도인들은 지상나라도 잘되고, 하늘나라도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한결같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세속국가들에 많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신정국가들이라고해서 크게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많은 나라들과 국경을 마주했거나 인근에 강한 나라들을 이웃하고 있었습니다. 신정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주전 930년에 남북으로 갈라진 직후부터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사이에 전쟁이 자주 있었고, 군사쿠데타도 심심찮게 있었습니다. 특히나 이스라엘은 유일하신 하나님 야훼신앙을 기반으로 한 신정국가였기 때문에 이웃나라들에서처럼 왕을 신성시하여 신의 아들, 신의 현현(계시), 수호신 등으로 여기지 않았고 야훼의 종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훼신앙의 위기를 초래한 왕들이 많았습니다. 왕들에게는 두 가지 임무가 있었습니다. 한 가지는 정치국방외교를 잘해서 나라에 평화와 안녕을 유지하는 것이고, 다른 것은 “바다에 물이 가득하듯이, 주(야훼)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땅 위에 가득하게”(합 2:14)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킨 왕은 다윗을 빼고는 달리 기억되는 인물이 없을 정도입니다. 국방외교를 잘하면 야훼신앙에 위기를 초래했고, 야훼신앙을 굳건히 하면 국방외교에 문제를 초래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왕이 북왕국 이스라엘의 7대 왕 아합과 10대 왕 예후였습니다. 이 두 왕에 대해서 살펴보기 전에 먼저 기억해야할 점은 주전 722년에 망한 북왕국 이스라엘과 주전 586년에 망한 남왕국 유다가 모두 국방외교에 실패했기 때문이란 점입니다. 게다가 권력 중심부에 있던 자들이 거짓 선지자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야훼신앙과 국방외교는 국가라는 기차를 잘 달리게 하는 두 철로와 같은 것인데 나란히 가기가 어려웠으니 국가가 탈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열왕기를 쓴 신명기 역사가의 평가기준은 ‘왕이 국방외교를 얼마나 잘했느냐’가 아니고, ‘왕이 야훼신앙에 얼마나 충실했느냐’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왕들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야훼신앙의 관점에서 평가한 해석의 역사입니다.

군사쿠데타로 왕권을 잡은 오므리와 그의 아들 아합의 통치기간 동안 북왕국 이스라엘은 100년여 전 통일왕국시대의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버금갔었습니다. 열왕기상 22장 39절은 아합이 솔로몬 못지않은 건축가였음을 말해줍니다. 여기서 “그가 건축한 상아궁”은 궁전을 상아로 장식했다는 뜻이고, “그가 건축한 모든 성읍”은 많은 성읍들을 요새화시켰다는 뜻입니다. 오므리와 아합은 북왕국 이스라엘을 국제사회에 알린 국방외교면에서 뛰어난 왕들이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서쪽으로 페니키아, 북동쪽으로 시리아, 동쪽으로 암몬, 남쪽으로 유다, 모압, 블레셋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아합은 페니키아와 유다와는 결혼동맹을 맺고 있었고, 모압과 에돔으로부터는 조공을 받고 있었습니다. 앗시리아의 살만에셀 3세의 비문에 의하면, 아합은 주전 853년에 시리아를 포함한 인근 나라의 12명의 왕들과 연합하여 카르카르(Qarqar)에서 살만에셀 3세의 남서진을 막기 위해서 싸웠습니다. 그때 아합은 2천승의 병거와 1만 명의 보병을 이끌고 참가했을 정도로 강한 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국방외교에 공을 들였던 아합은 솔로몬처럼 외교차원에서 결혼동맹을 맺었고, 아합과 결혼한 페니키아의 공주 이세벨은 아합을 조종하여 야훼신앙을 몰아내고 바알신앙을 굳건히 세우려 했습니다. 이 일을 저지하려고 목숨 걸고 나선 선지자들이 엘리야와 엘리사였습니다. 가뜩이나 북왕국 이스라엘은 단과 벧엘에 (남왕국 유다의 관점에서 볼 때 불법적인) 성소를 만들고 법궤(야훼의 보좌 혹은 발등상)를 대신하여 황금송아지를 세웠으며, 레위인이 아닌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또 북왕국 이스라엘은 시조 여로보암 때부터 멸망 때까지(930-722 BC) ‘엘-야훼’ 곧 가나안의 신 엘과 야훼를 같다고 믿는 혼합신앙을 유지하였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국가의 운명(생사)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준행하느냐 준행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다고 굳게 믿었던 신명기 역사가로서는 아합뿐 아니라 불법적인 성소들과 제사장들을 세우고 제거하지 아니한 북왕국의 모든 왕들에게 후한 점수를 줄 수가 없었습니다. 또 신명기 역사가는 인물평가기준을 정치력 군사력 외교력에 두지 않고 야훼신앙의 충실도에 두었기 때문에 오므리와 아합의 태산만한 업적을 동산만큼만 기술하였습니다. 왕들이 국방외교를 아무리 잘해도 야훼신앙을 무너뜨리면 왕가가 진멸되는 응보를 받는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열왕기를 통해서 오므리와 아합이 야훼신앙에 충실했던 다윗을 추종하지 않고, 국방외교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국력을 키웠지만, 주변국들과 결혼동맹을 맺어 예루살렘 영내에 이방신들을 끌어들인 솔로몬의 전철을 밟았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구약성경의 역사가들은 솔로몬이 야훼의 성전을 건축하였기 때문에 그가 많은 이방여자들과 이방신들을 예루살렘 영내에 끌어들인 잘못을 크게 부각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과도하게 토목공사를 벌림으로써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고, 젊은 부인들이 초청한 이방신 축제에까지 참가하곤 했습니다. 그 결과가 왕국의 분열을 가져왔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야훼신앙을 위태롭게 만들고 회개하지 아니한 오므리-아합의 왕가는 엘리사와 예후가 일으킨 쿠데타로 진멸되고 맙니다.

예후도 오므리처럼 군사쿠데타를 통해서 왕권을 쟁취한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10대 왕이었습니다. 그는 제9대 왕인 아합의 아들 여호람(요람) 밑에서 시리아와 전쟁을 치를 당시 병거부대를 지휘한 장군이었습니다. 주전 841년경 시리아와의 전쟁 때 아합과 이세벨의 아들 여호람(요람) 왕이 부상을 입고 치료 차 이스르엘 성으로 돌아갔고, 유다의 왕 아하시야도 사돈의 문병을 위해서 이스르엘에 내려와 있었습니다. 아하시야는 아합과 이세벨의 딸의 아들로서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은 여호람과 결혼동맹을 맺고 있었습니다. 이틈을 타 엘리사는 예후를 왕으로 세웠고, 예후는 병거부대를 이끌고 이스르엘로 가서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요람)뿐 아니라, 유다의 왕 아하시야까지 죽였습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예후는 이세벨도 죽이고, 아합의 자손 70명과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자손 42명도 죽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예후는 열왕기하 10장 16-17절,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 이에 자기 병거에 태우고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에 남아 있는 바 아합에게 속한 자들을 죽여 진멸하였으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고 한 말씀 그대로 이스라엘에 단 한명의 바알숭배자도 남아 있지 않게 모조리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후는 단과 벨엘의 황금송아지 성소들은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남왕국 사람인 신명기 역사가의 관점에서 볼 때, 예후는 황금송아지 성소들을 그대로 남겨둔 행위로 인해서, 북왕국 이스라엘에 야훼신앙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애쓴 공로가 아무리 컸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여전히 악한 왕이었습니다.

아무튼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예후는 엘리야와 엘리사가 하고자 했던 야훼신앙을 회복시킨, 이를테면 이스라엘에서 적폐세력을 진멸시킨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국방외교의 측면에서 볼 때 예후는 그가 단행한 숙청으로 인해서 국경을 마주하고 있던 동맹국들과 외교단절을 가져왔습니다. 예후가 아하시야와 그의 가족들을 죽이면서 유다왕국과는 원수가 되었고, 페니키아 사람이거나 친페니키아 성향의 바알숭배자들을 모두 죽임으로써 페니키아와의 외교관계도 단절되었습니다. 그 틈새를 이용하여 시리아가 북왕국 이스라엘의 영토였던 요단강 동부지역을 공략하였습니다. 예후는 이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드렸습니다. 그래서 예후는 시리아를 견제해줄 앗시리아의 살만에셀 3세에게 찾아가 이마가 땅에 닿도록 엎드려 절하고 조공을 바치는 굴욕외교를 펼쳤습니다. 그 길만이 살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 사건이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대영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살만에셀 3세의 블랙 오벨리스크에 그 같은 장면이 적나라하게 부조되어있습니다.

오늘날의 유대인들은 4천년 역사 가운데 3천년을 나라 없이 떠돌이로 또는 노예로 살아온 민족의 후예들입니다. 그들은 주후 70년부터 1948년까지 1878년간 지상에서 나라가 완전히 사라진 상황에서조차 살아남았고, 1948년에 나라를 재건한 이후로 손에서 총을 내려놓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으면서도 나라를 발전시켜 현재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더 잘 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이 원동력이 야훼신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들은 국방외교에 있어서도 우리보다 월등히 우위에 있습니다. 작은 나라인 이스라엘이 강한 나라가 된 것은 야훼신앙과 국방외교를 모두 다 잘해서입니다. 야훼신앙과 국방외교는 기차를 잘 달리게 하는 두 철로와 같아서 이스라엘을 발전된 나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가 잘 되고 발전하는 길은 국가권력이 그리스도교를 어떤 형식으로든 탄압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고 국방외교를 탄탄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해야합니다. 역사에 무지해서도 안 되고, 역사의 교훈을 망각해서도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