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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03 07:16
밝혀진 비밀04: 그리스도 안에서(4)(엡 2:8-10)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5  

밝혀진 비밀04: 그리스도 안에서(4)(엡 2:8-10)

구원의 근원과 수단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8절의 말씀이 구원의 근원과 구원의 수단을 말한 것이었다면,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다.”는 10절은 구원의 목적을 말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인이 성삼위 하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믿음을 입으로 고백하고 침례를 받아 구원에 이르는 전 과정의 근원이다. 반면에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통로이자 출발선이다. 그리고 선한 일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시는 목적이며, 구원을 받은 자들이 믿는 자라는 것을 입증하는 열매이다.

구원에 대한 개념은 근본적으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다르다. 유대교인들이 생각하는 구원이란 하늘의 것이 아니고 땅의 것이다. 구원은 내 나라, 내 조국에서의 안식, 또는 이스라엘 나라와 그 영토인 가나안땅의 영원한 존속과 번영을 뜻한다. 그 나라와 땅에 대한 희망을 아브라함이 처음 가졌고, 하나님의 종 모세와 여호수아에 의해서 그 희망이 성취되었다. 그 나라와 땅의 존속은 하나님의 ‘헤세드’(인내)에 의하여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내용 곧 율법(토라)의 준수로 말미암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헤세드’는 이스라엘 나라와 그 땅의 근원이요, 율법준수는 이스라엘 나라와 그 땅의 존속과 번영을 위한 수단이다.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구원은 땅의 것이 아니고 하늘의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나라 곧 하늘 가나안땅을 상속받아 그곳에서 영원히 안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나라와 땅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 곧 하늘 가나안땅을 상속받는 근원이요, 믿음은 그 하늘 가나안땅을 상속받아 그 땅에서 영원히 누리는 안식의 수단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지 않고서는 문자적으로 이스라엘 나라와 그 땅에서 안식할 수 없듯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신뢰하는 믿음이 아니고서는 그리스도교가 제시하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게다가 그리스도교가 제시하는 구원은 자력이나 여타의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다.

구원의 과정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홍해를 건넌 후 광야에서 성막시대를 열었다. 광야시대는 히브리인들이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로서 가나안땅을 바라보고 행군하는 기간이었다. 히브리인들이 양의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죽음을 피한 첫 유월절 날 이집트를 탈출한 것은 그들이 희망한 구원의 시작이었지 마지막은 아니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너야했고, 광야에서 40년간 만나를 먹고 반석의 샘에서 물을 마셔야했다. 히브리인들은 첫 오순절 날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부여하신 계명들을 지키기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나 그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으며 여전히 가나안땅을 향하여 행군하는 자들이었다. 떠돌이와 노예로서 히브리인들이 그토록 희망했던 구원은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의 인도를 받아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땅을 정복한 후에 비로소 성취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나라와 그 땅은 늘 불안한 상태였다. 율법을 사랑하고 지키는 것이 그들의 나라와 땅을 존속시키는 열쇠였기 때문에 이미 광야시대 때부터 율법을 사랑하고 지키지 못했던 그들로서는 하나님의 징계를 피해가지 못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도교가 제시하는 구원은 하나의 과정이다. 바벨론과 땅의 음녀들(계 17:5)로 묘사된 죄악 세상을 탈출하여 침례라는 홍해를 건너 교회라는 광야에 이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나라 곧 하늘 가나안땅을 향해서 행군하는 순례자들이다. 만나와 반석의 샘물로 묘사된 주의 만찬을 매주일 예배 때마다 먹고 마신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자기 죄를 회개하며, 믿음을 고백한 후에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천성을 향하여 행군하는 자들이다. 천성을 향하여 행군하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끈질긴 인내와 신실한 믿음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1-5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구원의 목적

살아 있는 나무에는 봄이 찾아오지만, 죽어 있는 나무에는 봄이 찾아오지 않는다. 죽어 있는 나무는 계절에 관계없이 싹을 내지 않고 꽃을 피우지 않고 열매를 만들지 않는다. 우리는 나무의 상태를 보고 그 나무가 살아있는 나무인지 혹은 죽어 있는 나무인지를 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구원받고 거듭난 사람은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이다. 살아 있기 때문에 선행의 싹이 있고 꽃이 있고 열매가 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죄와 허물로 인하여 죽어 있는 사람이다. 죽어 있기 때문에 선행의 싹이 없고 꽃이 없고 열매가 없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사람의 신앙 상태를 보고 그 사람이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인지 혹은 죽어 있는 그리스도인인지를 판가름한다.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행함이 없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그리스도인이다. 활동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잠자는 사람이다.

불신자일 때에는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지만”(롬 10:9), 구원을 받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확신으로 믿음을 키워 가야한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가? 우리가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는가? 청산유수 같은 기도솜씨만으로 우리의 믿음을 뽐낼 수 있는가? 많은 액수의 헌금만으로 우리의 믿음을 뽐낼 수 있는가? 잦은 금식과 기도회의 참석만으로 우리의 믿음을 뽐낼 수 있는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 관한 비유에서 예수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치는 바리새인의 기도를 책망하고 있다(눅 18:10-14). 바리새인들은 예복을 즐겨 입고, 장터에서 인사 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즐기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앉기를 즐기며, 과부들의 가산을 삼키고, 남에게 보이려고 길게 기도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세리나 죄인보다 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눅 20:45-47, 참고: 사 58:1-7).

하나님은 행함이 없고 순종하지 않는 믿음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은 생활 속에서 행동을 보인 믿음을 통해서 드리는 산 예배를 기뻐하신다. 처음 믿을 때의 믿음이 아무리 좋았더라도 삶 속에서 묻어나는 믿음이 나쁘면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2장 17절은 “믿음도 행함이 없으면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