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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02 12:33
밝혀진 비밀03: 그리스도 안에서(3)(엡 2:1-10)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0  

밝혀진 비밀03: 그리스도 안에서(3)(엡 2:1-10)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들이었다.”

바울은 1장 19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이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인가”를 에베소서 2장에서 계속해서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큰 능력은 먼저 1절에서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것이라고 말한다. 1-3절에서는 이 살리신 행위가 있기 이전에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상기시킨다. 첫째,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이다. 둘째,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랐던” 사람들이다. 셋째,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랐던” 사람들이다. 넷째, “육신의 정욕대로...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았던” 사람들이다. 다섯째, 그러므로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다.”

세상풍조란 것이 무엇인가? 바울은 골로새서 2장 8절에서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다.”고 하였다. 또 디모데전서 4장 7절에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라.”고 하였다. 여기서 철학이나 신화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부정하는 것들을 말한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미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부정하는 것들을 일컬어, 바울은 자기시대의 것들, 그것들이 종교든 철학이든 신화든 무엇이든지간에 초등학문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빛으로 말하자면, 별빛이나 달빛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오늘날의 세상풍조로는 무신론사상과 배금사상을 손꼽을 수 있다. 과학과 기술발전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그늘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삶에서 하나님을 제거해버리고, 그 자리에 돈이란 우상을 세워 숭배토록 한 것이 오늘날의 세상풍조이다. 그런데 돈이란 우상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줄지언정 절대로 행복을 함께 주지는 않는다. 세상이 갈수록 불안하고 험악해지며 도덕과 윤리가 무너지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죽으면 그만이다’식, ‘돈 되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다’식, ‘재미있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다’식의 세상풍조는 가치관과 세계관을 왜곡시킬 뿐 아니라,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몰아내고 돈과 명예와 권세와 향락만을 좇게 만든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모든 범죄와 죄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

바울은 1장 19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이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두 번째 설명을 2장 4-7절에서 이어가고 있다. 그것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는” 것이라고 했다.

1-3절에서 우리를 살리시고 하늘보좌에 앉히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 이전에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를 상기시켰다면, 4-7절에서는 우리를 살리시고 하늘보좌에 앉히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상기시킨다.

먼저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시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셋째로 하나님은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넷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신다.” 다섯째로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신다.” 하나님은 풍성하신 긍휼과 그 큰 사랑으로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셨고, 하늘보좌에 앉히시며, 그 지극히 풍성한 은혜를 미래 세대의 사람들도 알게 되기를 원하고 계시는 분이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8-9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받은 구원은 우리 자신의 공덕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주 주신 선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오직 믿음만 보시고 은혜로 구원을 주시는 목적은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이 마치 자기 공로인 것처럼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는 것이다.

4절에서 “긍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엘레오스’(eleos)로써 히브리어 ‘헤세드’(chesed) 곧 ‘인애’에 해당되는 단어이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의 반복적인 적대와 반역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긍휼을 베푸신다. 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그것을 신뢰하고 믿는 자들의 죄와 허물을 사하시고 살리시는 근원이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우리 죄를 사하시려고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고 화목제물로 삼으신 것에서 이미 확증되었다. 그러므로 만일 믿음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고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자기 공로를 입에 담는다면, 그는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깨닫지 못한 자이다.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바울은 1장 19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이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세 번째 설명을 2장 10절에서 이어가고 있다. 바울은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다.”고 하였다.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8절의 말씀이 구원의 근원과 구원의 수단을 말한 것이었다면, 10절은 구원의 목적을 설명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인이 성삼위 하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믿음을 입으로 고백하고 침례를 받아 구원에 이르는 전 과정의 근원이다. 반면에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통로이자 출발선이다. 그리고 선한 일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시는 목적이며, 구원을 받은 자들이 믿는 자라는 것을 입증하는 열매이다.  

그리스도인에게 구원을 받았다는 열매가 있을 때, 곧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는 증거가 있을 때, 그는 비로소 하나님이 만드신 자 또는 하나님의 작품이 된다. 10절의 말씀대로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이라면, 우리는 분명 걸작일 것이 분명하다. 전에는 죄와 허물로 인하여 낡고 더럽고 허물어져갔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멋지고 아름답게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피조물은 영적인 것이어서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기 전까지는 육적으로 진노의 자식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것은 마치 죽은 나무에는 봄이 찾아오지 않는 것과 같다. 겨울이 되면 나무마다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어 모든 나무가 죽은 것같이 보인다. 그래서 겨울 동안에는 죽은 나무와 살아있는 나무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봄이 되면 살아 있는 나무와 죽어 있는 나무가 쉽게 구별된다. 살아있는 나무는 봄에 싹을 내고 꽃을 피운다. 여름에는 풍성한 가지와 잎으로 열매를 만든다. 가을에는 싱싱하고 풍성한 열매를 제공한다. 그러나 죽어 있는 나무는 계절에 관계없이 싹을 내지 않고 열매를 만들지 않는다. 이와 같이 우리는 나무의 상태를 보고 그 나무가 산 나무인지 죽은 나무인지를 판가름한다. 마찬가지로 죄와 허물로 죽은 자인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자인지는 그가 죽임의 일을 하는지, 살림의 일을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은혜로 죄와 허물로 인하여 죽었던 자들을 다시 살리시는 목적은 바로 이 빛과 생명의 일을 하라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