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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4-10 11:15
감사와 기쁨01: 바울의 빌립보 선교(1)(행 16:6-18)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402  

감사와 기쁨01: 바울의 빌립보 선교(1)(16:6-18)

마케도니아 빌립보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그리스에 세운 첫 번째 교회이다. 사도행전 16장에 따르면, 2차 선교여행 때 바울 일행은 오늘날의 터키 북서항인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알렉산더가 동방원정 때 건넜던 다르다넬스해협 남쪽 초입에 있는 해발 1,650M의 높은 산봉우리를 가진 사모드라게 섬으로 직행하여 이튿날 마케도니아의 남동항인 네압볼리(Neopolis)에 도착하였다. 복음으로 무장한 강력한 진군이었다.

터키 북서항인 드로아에서 사모드라게 섬까지 약 112KM 정도, 또 사모드라게 섬에서 마케도니아 남동항인 네압볼리까지 112KM 정도이다. ‘네압볼리는 네오폴리스(Neapolis) 즉 신도시라는 뜻이다. 빌립보에서 16KM 정도 떨어진 항구로써 오늘날의 이름은 카발라’(Kavala)이다. 네압볼리에서 빌립보를 거쳐 데살로니가까지는 주전 146-120년 사이에 건설된 에그나티아 대로’(Via Egnatia)가 통과하고 있었다. 에그나티아 대로는 알바니아의 아드리아해변에서 터키의 비잔티움까지 연결되는 총길이가 최소 784KM에서 최고 1,120KM나 되는 긴 군사도로였다. 바울의 전도팀 일행이 마케도니아 교회들을 방문할 때마다 이용한 도로였다.

빌립보는 주전 356년에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립포스2세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붙인 도시이며, 금광이 있었다. 주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되고, 그로 인해서 카이사르의 조카 옥타비아누스와 카이사르의 심복부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군대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한 마르쿠스 브루투스와 브루투스의 매제이자 주동자였던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의 군대를 추격하여 주전 42년 빌립보 평원에서 무찔렸다.

이 빌립보전투 직후에 로마시민권을 받았을 안토니우스의 퇴역군인들이 빌립보에 정착하였고, 주전 31년 악티움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군대를 무찌른 아우구스투스의 퇴역군인들도 이곳에 정착하였다. 주전 29년 황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에 즉위한 옥타비아누스는 빌립보에 이우스 이탈리쿰’(jus italicum) 이탈리아의 권리’(이탈리아에 적용되는 동등한 권리)라는 특권을 부여하였고, 자신의 딸을 기념하여 아우구스타 율리아의 정착지 빌립보’(Colonia Augusta Julia Philippensis)라는 이름을 수여하였다.

빌립보의 루디아

빌립보에는 회당이 없었던 것이 확실하다. 유대인들이 회당기도회를 가지려면 가장의 숫자가 열 명이 넘어야 했다. 주후 49년에 로마황제 클라우디우스가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한 사실이 있었다. 크레스투스(Chrestus)라는 사람이 일으킨 소동 때문이었는데,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에 사는 유대인사회에서 유대교인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큰 소요가 있었던 것이다. 황제의 칙령은 이탈리아의 권리를 가진 빌립보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바울 일행이 도착하기 1-2년 전에 이 도시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이 모두 추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 도착하여 며칠 머무는 동안 성내를 둘러보며 유대인교들의 회당이 있는지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들이 안식일에 유대교인들의 기도처가 혹시 성문 밖에 있을까하여 강가로 나간 것은 성내에는 회당건물이 없었다는 증거이다. 바울 일행은 성문 밖 강가에서 유대교기도처를 발견하였고, 기도처에는 하나님 경외자들인 헬라인 여자들이 모여 있었다. 바울 일행은 자리에 앉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들 가운데 루디아가 있었다. 루디아는 터키 두아디라 출신으로서 고관대작들이 착용했던 자색옷감을 무역하는 상인이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문의 개종자였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마음을 여시고 복음을 받아드리게 하셨다. 그녀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집안 식구와 함께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바울 일행을 강권해서 자기 집에 모셨다.

 

 

 

 

 

 

 

 

 

 




빌립보의 노예 소녀

바울 일행은 기도처로 가다가 귀신에 사로잡혀 점을 치는 노예 소녀를 만났는데, 그녀는 점을 쳐서 주인에게 큰 돈벌이를 해주는 여자였다. 이 여자가 바울 일행을 따라다니면서 큰 소리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인데,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다고 외쳤다. 이런 일이 여러 날 지속되자, 바울은 그 여자의 몸에 붙은 귀신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여 내쫓아버렸다. 이 사건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노예 소녀는 신체적으로도 노예였지만, 영적으로도 노예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몸에 붙은 귀신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쫓아낸 것은 3만여 명이 넘는 그리스로마의 신들과의 전투이자 승리였다.

둘째, 귀신이 소리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인데,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다는 말은 전혀 틀린 것이 아니었으나 바울 일행의 신분을 노출시킴으로써 전도를 훼방하는 동시에 위해(危害)를 가하려는 것이었다.

셋째, 귀신의 집요한 공격이 주효하여 유대인이었던 바울과 실라가 체포되어 태형을 맞고 쇠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혔다. 누가와 디모데는 헬라인이어서 태형과 투옥을 면했지만, 바울과 실라가 태장을 맞고 감옥에 갇힌 것은 전투에서의 아군의 손실에 비유될 수 있다. 이긴 싸움이든 진 싸움이든, 싸움에는 항상 피해가 따르기 마련이다. 싸움을 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싸움을 피할 수 없다면 피해도 피할 수 없다.

넷째, 바울 일행에게 위기를 몰고 온 귀신의 공격이 꺾이자 노예 소녀는 귀신에게서 놓임을 받았고, 빌립보교회의 창립멤버가 되었다. 위기가 변하여 기회가 된 것이다.

다섯째, 바울 일행이 빌립보에서 예언의 영에 사로잡힌 노예 소녀를 만난 것은 우상과 신화의 나라 그리스에 입성했다는 뜻이고, 3만이 넘는 신들과의 전투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바울일행의 빌립보 입성

빌립보하면 연상되는 단어가 전쟁,’ ‘자유,’ ‘시민권이다. 이것들은 독재, 억압, 귀신, 질병, , 우상에 불과한 거짓 신들로부터의 자유,’ ‘해방,’ ‘하늘나라의 시민권에 연관되어 있다. 이는 또 참 자유가 무엇인가를 말해준다.

바울일행은 주전 334년 알렉산더가 동방원정 때 건넜던 동일한 뱃길을 통해서 그리스 원정에 나섰다.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이 피와 살육의 전쟁이었다면, 바울의 그리스원정은 거짓 신, 거짓 가치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참 자유를 주기위한 해방 전쟁이자 영적 전쟁이었다.

빌립보의 노예소녀는 신체적으로도 노예였지만, 영적으로도 노예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몸에 붙은 귀신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쫓아낸 것은 3만여 명이 넘는 그리스 로마의 거짓 신들과의 전쟁이자 승리였다.

신앙생활이란 결국 거짓 신들과의 전쟁이다. 거짓 신들이란 것은 우상들로써 전혀 무가치한 것들에 가치를 부여한 것들이고, 사람들의 마음과 육체를 사로잡는 것들이다. 참 자유는 그 같은 거짓들로부터 해방될 때 주어진다.

둘째, 귀신이 소리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인데,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다는 말은 전혀 틀린 것이 아니었으나 바울 일행의 신분을 노출시킴으로써 전도를 훼방하는 동시에 위해(危害)를 가하려는 것이었다.

거짓 신들은 위장전술에 매우 능하다. 말과 행동이 그럴싸해서 많은 사람들이 속아 넘어간다. 그리스도인들은 거짓 메시아, 거짓 미륵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된다. 국민 메시아나 여론 메시아에 현혹되어서도 안 된다. 여론을 등에 업고 참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정치인들이 있었고, 또 역사는 늘 그 같은 사실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거짓 신들의 주장은 우리를 현혹시키는 것들이어서 옳게 보이고 좋아 보여서 추종하면, 추종자들을 노예 삼고 착취하고 괴롭히며 손해를 입히는 특징이 있다. 정치이념과 이단종교가 대표적이다. 반면에 참 신은 사람을 살리고 이롭게 한다. 참 신은 사람을 이용해서 정권이나 금권과 같은 이익을 도모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기까지 한다. 십자가 사건은 그 같은 사실을 입증한 대표적 사례이다.

셋째, 귀신의 집요한 공격이 주효하여 유대인이었던 바울과 실라가 체포되어 태형을 맞고 쇠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혔다. 누가와 디모데는 헬라인이어서 태형과 투옥을 면했지만, 바울과 실라가 태장을 맞고 감옥에 갇힌 것은 전투에서의 아군의 손실에 비유될 수 있다. 이긴 싸움이든 진 싸움이든, 싸움에는 항상 피해가 따르기 마련이다. 싸움을 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싸움을 피할 수 없다면 피해도 피할 수 없다.

육체적 싸움이든, 정신적 또는 영적 싸움이든 때로는 싸움을 피할 수 없는 경우들이 있다. 싸움이 없다면 희망이나 승리라는 말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든, 그리스도인이 아니든 인생살이는 그 자체가 매일의 전투이다. 매일의 삶이 매일의 전투일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싸움에 임하는 용사의 정신으로 매일을 시작해야 한다. 영웅적 믿음과 기도로 무장하면, 그날의 싸움이 그다지 무섭거나 기피하고 싶어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