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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3-09 17:58
사랑의 수고25: 사도전통대로(2)(살후 3:6-18)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858  

사랑의 수고25: 사도전통대로(2)(살후 3:6-18)

우리를 본받아야

데살로가후서 36-18절은 사도들이 친히 실천한 모범과 권면과 기원과 문안으로 구성되어 있다.

6절의 게으르게 행하고는 주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생각하여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짜임새 없는 생활을 말한다. 바울은 11절에서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11)는 소문을 언급하였다. 6절의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7절의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how you ought to follow our example)가 연관된 구절이다.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은 사도들이 말과 행실로써 성도들에게 보인 본과 연관된다. 따라서 사도전통이란 사도들이 예수님께 배워서 실천하고 전파한 복음과 실천을 뜻한다. 본문에 나타난 사도들의 실천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였다(7).
둘째,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았다(8).
셋째,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하였다(8).
넷째,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였다(8).
다섯째,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였다(9).
여섯째, 친히 본을 보여 본받게 하려하였다(9).
일곱째,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르치고 권하는 일에 힘썼다(10,12).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바울이 가르치고 권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10).
둘째,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12).
셋째,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13).
넷째, 사도들의 가르침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사람과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게 하라(14).
다섯째,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16).

16-18절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바울이 보낸 기원과 문안이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시로서 이렇게 쓰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바울은 고린도전서 1123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다고 하였고, 갈라디아서 111-12절에서 내가 전한 복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다고 하였다. 여기서 교회의 어떤 가르침과 실천이 정통(옳음)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신약성경 27권이 정경으로 확정지어질 당시 수집된 책들의 정경여부를 결정지은 잣대는 사도들의 전통(가르침과 실천)이었다. 바울은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다”(2:20)고 했다. 여기서 너희는 교회를 지칭한 것이고, “모퉁잇돌이란 건물 네 모퉁이에 놓는 주춧돌과 같은 것으로써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서 이뤄진 사실들이 교회의 근간이란 뜻이다. 그리고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란 예수님께 배운 자들이 전하고 실천한 내용들이 교회의 기초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순종하라고 권하였고(6:17), 고린도인들에게 전하여 준대로 그 전통을잘 지키고 있다고 칭찬(고전 11:2)하였으며,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according to the tradition which you received from us)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살후 3:6)고 충고하였으며, 갈라디아인들에게는 심지어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1:8-9)고 하였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전통에 있다. 사도행전 614절에서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고소할 때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함을 우리가 들었다고 분노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그들은 모세가 전하여 준 규례 즉 모세오경에 실린 613개의 계명들과 전통들을 주어진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언약을 지키는 것이었고, 땅을 지키는 수단이었으며, 거룩함이었고 의로움이었기 때문이다. 유대교의 전통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보호할 목적으로 만든 수없이 많은 울타리 법들로써 계명들에 겹겹이 방어막을 침으로써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명을 헛되이 지키게 할뿐 아니라, 외식하도록 만들어왔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전통교회들에 남아있다. 예수님의 신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신자들이 중보자이신 예수님께 직접 기도하지 못하고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에게 기도하게 한 것과 신자석보다 상당히 높고 먼 곳에 주의 만찬상인 제단을 배치하여 사제의 권위를 높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성막건축에 관한 출애굽기의 말씀에서 거듭 강조된 구절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이다. 출애굽기 39장에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는 이 구절이 무려 10번이나 쓰였다. 32-33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성막 곧 회막의 모든 역사를 마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고, 그들이 성막을 모세에게로 가져 왔다고 했고, 42-43절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마치매, 모세가 그 마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모세가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고 하였다.

성막제작의 핵심사상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just as the LORD had commanded) 행하고 이루는 것이 복을 받는 길이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장점은 하나님의 계명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6:5) 문자적으로 지키려하는데 있다. 토라의 613개의 계명들뿐 아니라, 계명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랍비들이 만든 수많은 울타리 법들까지 성심을 다해서 지키려한다. 그러나 단점은 하나님의 계명들의 근본취지와 뜻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는데 있다. 그래서 그들은 내적인 것, 영적인 것보다는 외적인 것, 문자적인 것, 형식적인 것에 치우쳤다. 이것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 신약성경 저자들이다. 그들이 새롭게 이해한 것은 지상 가나안땅이 하늘 가나안땅의 그림자라는 것, 지상 가나안땅은 옛 언약이요, 하늘 가나안땅은 새 언약이라는 것, 지상 성막은 하늘 성전의 그림자라는 것, 지상 성막은 일시적이요, 하늘 성전은 영원하다는 것, 또 구약성경성막은 신약성경교회의 예표요, 모형이며, 그림자란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이 실패한 길을 걷고 있다. 공리주의적 성공주의에 빠져서 신약성경의 가르침대로 하지 않고, 신약성경 저자들이 구약성경을 이해했던 방식대로 이해하지 않고, 신약성경 저자들이 구약성경을 해석했던 방식대로 해석하지 않고, 유대교의 랍비들이 유대교에 했던 것처럼 기독교에 하고 있다. 그 결과 많은 교회들이 구약성경교회로 또는 유대교적기독교에 치우쳐 있다. 공리주의적 성공주의와 유대교적 권위주의에 빠져서 신약성경교회의 사도전통을 멋대로 왜곡시키고 있다. 기독교가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선민(특권)의식과 교조주의에 매어 자만과 자기우상숭배로 인해서 응보를 받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러므로 사도전통인 신약성경의 가르침대로 믿고 실천하여 기독교의 본래성과 능력을 회복하는 일에 우리 모두가 힘써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