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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4-05 16:20
승리자 그리스도23: 풍랑을 잔잔케 하실 그리스도(9)(계 3:19-22)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791  

승리자 그리스도23: 풍랑을 잔잔케 하실 그리스도(9)(계 3:19-22)

라오디게아 교회(3)

누가복음 1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의 생명이 재산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는 교훈을 비유로 말씀하신 적이 있다.

어떤 부자가 밭에서 거둔 소출이 많아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 비축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기 영혼에게 이렇게 말할 생각을 했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을 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라고 주님은 경고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한 사람”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경고한 말씀이다. 그러시면서 주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셨고, 깨어있어 주인이 돌아와서 문을 두드릴 때에 곧 열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라고 하셨다. 그러면 주인의 식탁에서 함께 먹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계시록의 본문에서 중요한 주제는 누가 부유한 사람인가, 누가 수치를 드러내지 않은 사람인가, 누가 눈이 밝아진 사람인가라는 것이다. 불에 정련한 금을 주님께 산 사람, 흰 옷을 사서 입은 사람, 안약을 사서 눈에 바른 사람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어휘는 ‘사다’는 말인데, 이 ‘사다’는 말은 “열심을 내어 노력하고 회개하라”는 말과 연결된다.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비참함을 면하기 위해서 “열심을 내어 노력하고 회개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불에 정련한 금’과 ‘흰 옷’과 ‘안약’을 어디서 살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본문은 이것들을 우리 주님께 사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열심을 내어 노력하고 회개”하는 수고가 바로 그것들을 살 수 있는 값이라고 말한다. 단순하고 값싼 믿음 그 이상의 ‘고가의 믿음,’ ‘열정을 품은 믿음,’ ‘헌신의 믿음,’ ‘수고의 믿음,’ ‘신실한 믿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고부가 가치의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신실하신 주님, 참되신 증인, 창조의 근본이신 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이기는 사람은 마치 내가 이긴 뒤에 내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것과 같이 나와 함께 내 보좌에 앉게 하여 주겠다."

라오디게아 교회(4)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식탁교제를 하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보좌에 앉게 하여 주겠다.”는 것이다. 첫 번 것은 천국혼인잔치의 참여권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권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구원 받은 자가 누릴 특권이다. 이 두 가지 구원의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주님께 ‘불에 정련한 금’과 ‘흰 옷’과 ‘안약’을 사야 한다. 여기서 ‘사다’는 의미는 주님께 우리의 ‘고가의 믿음,’ ‘열정을 품은 믿음,’ ‘헌신의 믿음,’ ‘수고의 믿음,’ ‘신실한 믿음’을 보이고 하나님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 받는 것을 말한다. 마태복음 22장을 보면, 혼인잔치에 초대된 사람들 가운데 혼인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손발이 묶여서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는 비유가 있다. 주님께 인정받지 못하는 믿음은 유명무실한 죽은 믿음이요 값싼 믿음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말씀에서 우리 성도들이 힘쓰고 노력해야할 일은 세 가지이다. 영적으로 부유한 자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손수 지어주신 가죽 옷으로 수치를 가린 아담과 이브처럼, 주님께서 보혈의 피로 빨아 희게 한 옷을 입어 죄로 인해 드러난 수치를 가리는 것이며, 주님의 손의 터치를 받아 닫힌 눈이 열려 만물을 밝히 보고 주님께 대한 분명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값싼 믿음이 판을 치고, 온갖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 쓴 눈먼 자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은 참혹한 세상이다. 이 점을 고발한 소설이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이다. 오늘날 사회는 다수의 눈먼 자들의 횡포와 폭력의 지배아래 있고, 또 그것에 빌붙어 살기를 즐겨한다. 그러나 천국혼인잔치와 같은 흥이 되살아나고, 진정한 의미의 주권이 행사되는 하나님의 나라는 눈뜬 소수자들에 의해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아니한 한사람, ‘안과의사의 아내’로 인해서 인간관계가 점차 회복되고, 인간애가 살아나고, 연대의식이 살아나고, 나눔의 정신이 살아나고, 타인에 대한 책임의식이 살아나고, 그런 이들의 희생과 헌신과 열정을 통해서 오랫동안 오물구덩이 속에서 헤매던 인간들이 벌거벗고 깨끗하게 물로 씻듯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한 사람의 열정과 헌신으로 많은 사람이 흰 옷으로 갈아입게 되고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3장 20절은 누구든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주님과 함께 먹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 있다. 에녹1서 62장 14절도 “그리고 인자와 함께 그들이 먹고 자고 영원히 일어날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음식을 먹는 행위는 천국혼인잔치를 말한다. 그리고 주의 만찬은 바로 이 천국혼인잔치를 이 지상의 교회에서 미리 맛보고 경험하는, 이미 우리 가운데 한 차례 오셨고, 지금은 영으로서 임재하시는 주님과의 친교식사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맞이한 자들에게 주어질 메시아 만찬(Messianic banquet)은 죽어서 참여할 미래의 잔치로 끝나지 않고, 동시에 지금 여기서 맛보고 경험하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인 것이다. 이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이 진정 복된 자들이다.

“이기는 자는”

1세기말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예수님을 믿는 행위는 죽음과 수치를 의미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큰 고난과 죽음을 각오해야했다. 조롱을 당하고, 채찍과 몽둥이로 맞고, 옥에 갇히고, 맹수에 찢기며,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버리고 눈에 보이는 로마황제를 섬겼다. 그것은 마치 바다에서 폭풍을 만난 사람이 바람과 바다가 무섭다고 배를 버리고 바다에 뛰어든 것과 같았다. 배 안에 능력의 주님이 계신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잠시 어렵다고 배를 버린 사람은 결코 살지를 못했다. 배 안에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에 배는 결코 좌초되지 않았고, 인내로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들은 살아남았고 포상까지 받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계시록을 통해서 오늘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처음행위를 가지라”(2:5). “죽도록 충성하라”(2:10). “회개하라”(2:16). “굳게 잡으라”(2:25).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3:3). “네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3:11). “네가 열심을 내라”(3:19). 그리고 끝까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줘서 먹게 하리라”(2:7).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2:1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주겠다”(2:17). “새벽별을 주리라”(2:28). “이기는 자는 ...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3:5).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라”(3:12).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3:21).

로마서 8장 17-18절도 마찬가지이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고린도후서 4장 16-18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세상과 타협하지 말며, 끝까지 예수님만 바라보고,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믿으면서 끝까지 참고 인내함으로 승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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