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일치08: 시련을 견디어낸 자(2)(약 1:17-18)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
계시록의 저자도 21장 22-23절에서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고 했는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 안에는 광야 성막시대에서 보았던, 동서남북으로 진영을
배치한 이스라엘 12부족 중앙에 설치되었던, 성막이나 성전이 필요 없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시기” 때문이다. 또 성막이나 성전의 성소를 밝혔던 메노라가 필요 없게 될 것도 말했는데,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영광과 어린 양의 등불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을”만큼 훨씬 더 좋은 빛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의 희망이 처음 성취된 것은 주전 15세기경의 모세 때였다. 당시 히브리인들은 희망의 나라 가나안에 이르기 위해서
홍해를 건너고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으며 광야사막을 지나 요단강을 건넜다. 이아손의 아르고 원정대와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은 바다와 강을 건너기
위해서 배를 띄우지 않고서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갈라진 바다와 갈라진 강을 육지를 걷듯이 건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바다 못지않게 거칠고
험난한 광야사막이란 가시밭길이 있었다. 그리고 먼 훗날 그들은 그들의 희망을 주전 6세기경에 바빌론제국에 빼앗겼고, 그리고 다시 먼 훗날 유난히
빛나는 별의 출현을 보고 페르시아의 유대인 박사들이 원정대를 꾸려서, 이아손의 아르고 원정대처럼, 희망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그 별이 바로
주전 5년경에 출현한 메시아별이었다. 그 같은 역사들은 모두가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인들의 그림자요 모형이었다.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1)
<오디세이아>(주전 8세기)는 트로이전쟁을 마치고 고향 땅을 찾아 고난의 길을 떠난
오디세우스의 항해이야기이다. 오디세우스는 숫한 죽음의 위기를 넘기면서 전쟁터에서 10년과 고향으로 향하던 바다에서 10년을 보낸다. 이 영웅이
20년 만에 고향땅을 밟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여신 아테나의 자비를 입었기 때문이다. 아테나는 ‘멘토르’로 변신하여 오디세우스에게 나타나 그가
위기를 만날 때마다 격려하였다. 아테나 역시 그리스로마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령님의 예표였다. 그리스도교 복음이 전파되기 이전시대에 신화를
만들고 신봉했던 그리스로마인들은 복음을 접한 후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아온 사람들이다.
아이네이스(주전 1세기)는 트로이패망 때 아이네아스가 신들의 계시를 따라 소수의 트로이인들을 이끌고 새로운 트로이건설을 위해서 미지의 땅을
찾아 험난한 길을 떠난 트로이인들의 항해이야기 또는 로마건국이야기이다. 그들은 조국 트로이가 멸망한 이후 7년이란 시간을 험난한 바다와
싸워야했지만,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신뢰한 수호신들의 자비를 입어 새 땅에 정착하여 로마를 건국하기에 이른다.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은 스토아철학의
영향으로 자신의 몫으로 태인 숙명의 십자가를 받아드리는 동시에 그 숙명을 수호신들에 의지하여 잘 감당하려고 했다.
그런 그들을 격려한 글이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영웅들의 이야기이다. 성경도 고난을 겪는 신앙인들에게 ‘믿음으로 이기는 자가 되라’는
격려와 응원과 권면의 글들이다.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2)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테나가 영웅들에게 능력을 덧입히기도 하였다. 헤라클레스에게는 스튐팔로스 숲의 새를
쫓을 수 있도록 청동으로 된 딱따기를 만들어주었고, 페르세우스에게는 메두사의 목을 벨 수 있도록 칼과 방패를 주었으며, 벨레로폰에게는 하늘을
나는 페가수스를 잡아타고 괴물 키마이라를 물리칠 수 있도록 황금고삐를 주었다. 이처럼 그리스 신화에서는 영웅들이 신의 은혜를 입음으로써 그 은혜
가운데서 영웅이 될 수 있었다. 조상대대로 수백 년 이어져온 노예의 사슬을 끊어내고 이스라엘 나라를 세울 가나안땅을 향해서 역경의 길을 떠난
히브리인들을 인도한 것은 구름기둥이었다. 여기서 여신 아테나로 의인화된 지혜나 하나님의 쉐키나였던 구름기둥은 모두 삼위일체의 성령 하나님의
그림자요 모형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또 성령님의 인도, 위로, 격려, 능력 덧입힘
속에서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 12절에서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한다고 했고,
디모데후서 1장 8절에서 디모데에게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다. 또 골로새서 1장 11절에서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셨다”고 하였고,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스 시인들은 창세기에 나오는 선악과나무를 휘감고 있던 뱀을 영생을 주는 선악과를 지키는 용으로 재해석한 듯하다. 그리스신화에 금양모피를
지키는 자나 헤라의 정원에 있는 황금사과를 지키는 자를 용으로 표현한 이유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르네상스 시대에는 선악과나무에 상주한
뱀을 여인으로 형상화시켰다. 위의 그림에서도 화가는 배를 파선시키고 뱃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암초(세이렌)들을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하는 인어들로 형상화하였다. 뱃사람들의 세이렌에 얽힌 이야기는 항구주변의 홍등가뿐 아니라 삼손과 들릴라(Delilah)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아무튼 오디세우스는 치명적인 유혹과 싸워 이겼고, 수호신의 은총으로 끝내 고향땅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