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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0-17 09:59
1세기 교회질서17: 믿음의 선한 싸움(17)(딤전 6:1-2)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7,067  

1세기 교회질서17: 믿음의 선한 싸움(17)(딤전 6:1-2)

“자기 상전들을”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 1-2절에서 두 종류의 상전 곧 비그리스도인 주인과 그리스도인 주인을 구분해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섬기는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그리스도인 노예들을 말한다.

먼저 그리스도인 노예들이 비그리스도인 상전을 어떻게 섬겨야하는가에 대해서 바울은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아야한다.”고 했다. 여기서 “마땅히 공경할 자”는 “아주 존경할 분”(새번역), “크게 존경해야할 사람”(가톨릭), “worthy of full respect”(NIV), “worthy of all respect”(HCSB)를 의미한다. 온 맘과 정성을 다해서 섬겨야한다는 뜻이다. 왜 그래야하는가에 대해서 바울은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비방을 받지 않게”를 <표준새번역>은 “하나님의 이름과 우리의 가르침에 욕이 돌아가지 않게”로, <가톨릭성경>은 “하느님의 이름과 우리의 가르침이 모욕을 당하지 않게”로 번역하였다.

이점에 있어서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직장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충분히 진실하고 성실한 태도를 보이지 못함으로써 직장의 상사나 동료들 및 주변사람들로부터 비방을 당하는 경우들이 흔히 있다. 반대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직장의 상사나 동료들 및 주변사람들로부터, 심지어 그리스도인 상사나 고용주로부터도 부당한 처우나 요구 및 부당한 희생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흔하다. 정반대로 그리스도인 상사나 고용주가 불의한 고용인들로부터 부당한 요구나 부당한 희생을 강요당하기도 하고 멸시를 당하는 일도 흔하다.

두 번째로 그리스도인 노예들이 그리스도인 상전을 어떻게 섬겨야하는가에 대해서 바울은 2절에서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소홀히 여기지 말라”(공동번역), “are not to show less respect”(NIV) 혹은 “should not be disrespectful”(HCSB)이란 뜻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 노예들이 그리스도인 상전을 더 잘 섬겨야 한다고 했다. 바울은 그 이유를 그리스도인이 정성껏 섬김으로써 얻는 유익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형제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섬김으로써 얻는 유익이 섬김을 받는 자뿐 아니라, 섬기는 자에게까지 돌아간다는 뜻이다.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1절의 “멍에 아래에 있는 종들은” 노예들을 말한다. 여기서 노예는 시장에서 사고 팔 수 있는 상품 또는 주인의 재산을 의미한다. 이 점에 대해서 로마의 웅변가 리바니우스(Libanius)는 “노예는 언제라도 다른 사람에게 팔려 다른 사람의 소유물이 될 사람이다. 노예에게 있어서 이전 주인이 새 주인에게 팔아넘기는 것보다 더 굴욕적인 것이 있겠는가? 몸이 망가지고 영혼이 철저히 파괴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노예는 시장에서 자신이 경매에 붙여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노예는 언제라도 다시 팔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었다. 아무 때라도 가족 중 누군가가 팔려나가 가족이 해체될 수 있었다. 노예는 주인이 죽으면 상속재산의 일부가 되었다. 노예는 주인이 파산하면 담보물의 일부가 되었다. 노예들은 미래의 주인들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휴식을 얻지 못했다.

로마의 노예법은 노예를 재산으로 규정하였다. 노예 신분은 사회적 지위였다. 모든 사람은 노예와 자유인으로 구분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노예 신분이었다. 이 악명 높은 구분이 노예를 주인의 지배아래 놓이게 했다. 이것은 로마재산법의 근본이념이었고, 소유자가 자기 것을 마음껏 부리고 팔수 있는 권한을 말한 것이었다.

로마의 노예법은 로마인들이 노예 제도를 전쟁과 깊게 관련지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로마인들은 노예들이 큰 틀에서 전쟁포로가 되어 노예 신분이 되었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들은 노예들이 전쟁 때 죽었어야할 운명이었는데 전쟁포로로 살아남은 것이기 때문에 노예가 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보았다. 노예들은 비록 지금 살아 있지만 이미 죽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전쟁에서 도륙당하는 대신에 노예 신분이라는 자비를 입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로마의 노예법은 여자 노예한테서 태어난(ex ancilla natus) 아이는 엄마를 따라 노예 신분이 된다고 규정하였다. 이 규정은 노예주들에게 전적으로 유리하도록 만들어졌다. 이 규정은 아버지가 누구인가를 전혀 물을 필요가 없도록 했고, 친자여부에 대한 모호성도 없애주었으며, 노예주들이 자기 노예들을 성적으로 착취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노예들은 법적으로 인간이 아닌 사고파는 물건이었고,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으며, 운명의 결정권도 일의 재량권도 없었다. 따라서 노예들은 주인에게 무조건 복종해야했다. 노예들은 주인이 때리면 맞고 겁탈하면 겁탈 당해야했다. 저항은 곧바로 병신이 되도록 맞거나 죽음에 처해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로마시대의 노예들에 대한 지난 20년의 연구에서  괄목할만한 진전은 로마사회에 거주한 대다수의 노예들이 모태 노예 곧 노예 신분으로 태어난 자들이었다는 이해이다. 노예들을 시장에 공급한 주공급원이 전쟁이나 해적이 아니라 출산에 따른 것이었다는 이해이다. 이런 이해의 전환은 남성노예들에 집중되었던 연구를 여성노예들에게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역사가들은 이제 노예들이, 비록 합법적 결혼은 아닐지라도, 가정을 꾸린 일이 흔했을 것으로 믿게 되었다. 비록 노예들의 가족은 모태 노예라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가족애는 노예들이 일상에서 노예 상태의 비인간화를 극복하거나 저항한 주된 힘이었다.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석비가 최근에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는 부지 내에 작은 가족단위로 거주했던 152명의 노예들의 이름과 나이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노예들은 다양한 직종에 종사했다. 노예들은 포도주, 밀, 기름 등과 같은 농산물 생산에 종사했고, 섬유업이나 가사노동에도 종사했다. 고등교육을 받은 노예들은 의사, 서기, 가정교사, 집사, 사업 대리인으로 활동했다. 로마사회에 고등교육을 받은 노예들이 적지 않았는데, 다수가 헬라인들이었다. 그들은 헬라문화와 고전에 해박했다. 이들 중 에픽테투스(Epictetus)는 주후 55년 로마에서 모태 노예로 태어났는데, 비록 다리를 절었지만, 좋은 주인 덕분에 교육도 받고, 나중에는 해방노예가 되어 심오하고 영향력 있는 스토아철학자가 되었다. 그는 참된 자유는 외적이거나 법적이지 않고 내적이고 도덕적이라고 했고, “모든 선한 사람은 자유하다”고 가르쳤다. “모든 선한 사람은 자유하다”는 이 스토아철학의 역설은 노예 신분과 자유인 신분을 육체적 법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내적 영적으로 구분한 말로써 에픽테투스뿐 아니라, 키케로(Cicero), 디오 크리소스톰(Dio Chrysostom), 유대인 필로(Philo of Alexandria)조차도 강조하였다.

“모든 선한 사람은 자유하고, 모든 나쁜 사람은 노예이다.”는 이 유명한 글귀는 역설적으로 고대 로마사회에서 노예폐지운동이 결코 없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에픽테투스처럼 교육을 받은 노예들조차도 노예 제도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예제도의 불합리성이 지적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스도교가 국교가 되면서부터였다. 그 초석을 놓은 인물이 바울이다. 비록 바울에게는 노예제도를 제거할만한 권력이 없었지만, 복음이란 강력한 영적 무기가 있어서 신분의 담을 비롯한 모든 차별의 담들을 무너뜨렸고, 인류를 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받는 자녀로 만들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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