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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4 21:14
인간을 구원하는 능력과 지혜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153  
인간을 구원하는 능력과 지혜는?(고전 1:18-25)

오늘은 성서가 말하는 인간을 구원하는 능력과 지혜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인간을 구원하는 능력과 지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최근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연구와 개복제 성공으로 가까운 장래에 난치병이 치료되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생명공학의 혜택으로 무병장수하게 되고, 인간이 구원에 이르는 때가 곧 찾아올 것이란 기대로 들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생명공학이 인간을 구원하는 능력과 지혜라는 것입니다.
또 최근 KBS 1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생로병사의 비밀」은 무병장수와 삶의 질을 높이는 비결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전하고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큰 기대 속에서 하라는 대로 하고 있고, 먹으라는 대로 먹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생로병사의 비밀을 아는 것이 인간을 구원하는 능력과 지혜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인기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은 지도자의 탁월한 리더십, 치밀한 전략과 전술 그리고 피나는 대비훈련만이 미궁에 갇힌 국가를 구원하는 능력과 지혜라는 교훈을 줍니다.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무능한 임금 선조, 국가와 백성을 전유물로 생각하는 선조와 불철주야 나라의 안위와 백성만을 생각하는 이순신과 대조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무엇이라 말할까요? 고린도전서 1장 18절은 그 해답을 “십자가의 도”라고 말합니다. “십자가의 도”란 무엇일까요? 고린도전서 1장 23절은 그 해답을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도”(道)란 영어로 메시지(message) 또는 가르침을 뜻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죄인을 처형하는 가장 무서운 형틀로써 죽음과 수치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서기 30년에 이 십자가형을 언도받고 처형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도”는 십자가형을 언도받고 처형당한 이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가르침을 말합니다.
“십자가의 도”는 죄인의 신분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이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사람들에게 이러한 주장은 미련한 짓처럼 어리석은 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서시대에 지혜를 자랑하던 헬라인들의 보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과학기술문명을 자랑하는 현대인들의 상당수가 예수님 믿는 것을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지혜를 자랑하는 세상 사람들이 ‘미련하다,’ ‘어리석다’ 생각하는 이 십자가의 도가 바로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선포하면서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1:21)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왜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십자가의 도”를 알 수 없을까요? 바울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9-20절에서 바울은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이 세상에는 지혜 있는 자도 없고, 총명한 자도 없고, 학자도 없고, 철학자도 없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말씀의 뜻은 그 다음 절인 21절에서 밝힌 대로, 이 세상의 지혜나 총명으로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바로 알 수 없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이 무엇인가를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지지한 신학자가 칼 바르트입니다. 바르트는 계시신학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자연계시의 한계점을 밝힌 사람입니다. 자연계시란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 속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드러나 있다는 뜻입니다. 로마서 1장 18-23절의 말씀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이 구절들의 말씀은 자연계시를 밝히는 구절들입니다. 그러나 바르트는 이 자연계시로써는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자연만물을 통해서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의 존재여부를 밝힐 수는 있지만,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하나님은 알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전도의 미련한 것,” 즉 십자가의 도에 관한 사도들의 설교뿐이라고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1장 22-23절에서 밝힌 대로, 인간들이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십자가의 도를 알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는 고린도전서 1장 21절 하반절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전도”란 십자가의 도에 대한 사도들의 설교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도가 구원받을 자로 예정된 자들만이 믿어지는 신비한 비밀이라는 것이 종교개혁가 장 칼뱅의 설명입니다.
칼뱅은 성령의 조명론으로 유명한 신학자입니다. 칼뱅은 인간이 완전히 타락하여 무능하기 때문에 스스로는 구원에 도달할 재간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에 의한 선택과 깨우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서 먼저 믿고 구원받을 자들을 예정하셨고, 또 성령을 보내어 그들을 가르쳐 깨우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의 그 미련함, 곧 “십자가의 도”를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로 깨닫고 믿을 수 있는 그 미련함, 이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은총이요, 하나님의 선택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지혜나 총명으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고 미련한 그 어떤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8절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미련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결과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멸망입니다. 영원한 죽음입니다. 로마서 1장 22절은 인간들이 스스로 현명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바보들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 인간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얼마나 부정확하고 불확실한 것인가를 플라톤은 그의 동굴의 비유에서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글라우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형태로 등장하는 동굴의 비유에서 플라톤이 말하는 인간은 동굴에 갇혀 있는 죄수와 같습니다. 폐쇄된 공간에 갇혀 정면의 벽만 바라보도록 족쇄에 묶인 인간은 배후에서 타오르는 불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참된 실재라고 착각합니다. 벽에 비친 그림자를 보면서 그것이 다른 어떤 실체가 만들어내는 그림자인 줄을 모르고 오히려 그 그림자야 말로 참된 진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동굴에 갇힌 죄수가 이런 큰 실수를 범하는 이유는 그가 그림자의 원천, 즉 불의 존재를 볼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하나 우준하여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의 도를 ‘미련하다,’ ‘어리석다’ 하는 것은 그가 보이는 세계 배후에 있는 신령한 세계를 보지 못하게 하는 족쇄 때문입니다.
동굴의 비유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서면, 죄수를 얽어매고 있던 족쇄가 풀립니다. 족쇄가 풀린 인간은 비로소 이리 저리 돌아다닐 수 있게 되고, 이것저것을 볼 수 있게 되면서 그가 이제까지 보고 알고 있었던 것이 참된 것이 아니라 그림자였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동굴의 비유 세 번째 단계에 들어서면, 족쇄에서 풀린 죄수는 이제 동굴 밖으로 나와 태양빛이 내리쬐는 대자연을 통해서 진정한 의미의 해방감을 맛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한때 사단에 얽매어 죄의 소굴에 갇혀 살았던 우리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죄의 사슬을 풀어주셨습니다. 죄의 사슬이 풀리고 참 자유를 얻게 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어둔 동굴에서 나와 밝은 빛의 세계로 옮기었습니다. 이 해방, 이 빛의 세계를 얻기 위해서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표적을 구하고 지혜를 찾았던 자들은 오히려 진정한 해방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이 해방은 표적이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22-25절에서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 담대하게 선포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표적을 구했다는 뜻은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 바벨론 제국에 나라를 빼앗긴 이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했던 1세기까지 무려 700년 동안 주권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들을 배불리 먹이고, 제국들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줄 그리스도, 즉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한 후 광야에서 40년을 지낼 동안에 모세가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먹게 하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였듯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행할 수 있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신 18:15)를 찾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또 이스라엘에 기근이 들어 3년 6개월 동안 큰 고통을 겪고 있을 때에 사렙다 과부의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한”(왕상 17:16)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행하였던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말 4:5)를 찾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선지자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3절의 말씀대로, 사도들이 전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거리낌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헬라인들이 지혜를 찾았다는 뜻은 지금으로부터 2,400년 전 살았던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아 그들을 이데아의 참 세계로 인도해줄 지혜를 찾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플라톤은 보이는 이 자연세계를 보이지 않은 참 세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데아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이 영적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신비한 지식(gnosis)이 필요하였는데, 헬라인들은 이 지식을 가져다 줄 지혜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이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영혼을 악한 육체의 감옥에 갇힌 영의 불꽃으로 생각했습니다. 육체나 보이는 세계를 만든 것은 물론 악한 신 또는 구약의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혼이 육체의 감옥에서 벗어나 이데아의 참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과거에 악한 신으로부터 유출된 모든 과정들을 거슬러 올라가게 할 지식 또는 암호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지혜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3절의 말씀대로, 사도들이 전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그들의 눈에는 미련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이 구하던 바로 그 하나님의 능력이요, 헬라인들이 찾았던 바로 그 하나님의 지혜였던 것입니다. 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24절의 말씀 그대로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영생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지혜가 됩니다. 이 신비한 축복을 간직한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님들은 인간을 구원하는 능력과 지혜가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에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이를 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생명공학이나 의학의 발달은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고 무병장수의 길을 열어 줄지는 몰라도, 궁극적으로 인간을 죽음에서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에게 영생을 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을 죽음에서 살리고 영생의 축복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에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들이 꺼려하고 어리석게 생각하는 바로 그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믿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가치를 소중히 간직하시기를 바라고 또 이웃들과도 함께 나누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