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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8-18 08:22
갈대상자의 꿈: 비전이 이끄는 삶(출 2:1-10)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167  
갈대상자의 꿈: 비전이 이끄는 삶(출 2:1-10)

본문 말씀에 갈대상자가 나옵니다. 여러분 대다수가 잘 아는 난지 세 달된 어린 모세를 담아 나일 강에 띄웠던 상자입니다. 갈대로 엮고 역청과 나무진을 발라 방수를 했다고는 하나 부서지기 쉬운 상자였습니다. 이 부서지기 쉬운 상자는 피압박민족으로써 온갖 서러움과 강제노역에 시달려야했던 이스라엘의 백성이요, 그 속에 담긴 어린 모세는 그들의 꿈이요 비전이었습니다. 비록 험한 물살에 정처 없이 떠내려가야 할 상자일지라도, 그 부서지기 쉬운 상자엔 굳건한 믿음이 담겨있었고, 이스라엘의 미래가 실려 있었으며, 비전이 실려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갈대상자처럼 빈약하기 짝이 없는 본 대학의 졸업이란 상자에 석 달된 아이와 같은 여러분들을 실어 세상이란 험난한 강에 떠나보내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4장 7절에서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는데, 질그릇이 본 대학이요, 보배가 여러분이요, 여러분의 비전입니다.
부서지기 쉬운 갈대상자든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이든 그릇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는가 입니다. 어떤 믿음이 담겼는가, 어떤 비전을 품었는가가 중요합니다. 믿음과 비전에 따라서 10년 후가 달라지고, 20년 후가 달라지고, 30년 후가 달라질 것입니다.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가 설교 중에 “두려움은 미래를 닫는 셔터”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부모가 바로를 두려워했더라면 모세를 양육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를 두려워했더라면 모세를 나일 강에 떠나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구원하실 거란 믿음이 있었습니다. 졸업하여 생존싸움에 뛰어들어야할 여러분에게 두려움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불가능이 없다는 믿음으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해마다 춘분이 지난 보름날 저녁이면 유대인의 각 가정에서는 그들이 ‘쎄데르’라 부르는 유월절 예식을 갖습니다. 모두들 자리에 앉으면 그 집 어른은 포도주 잔을 채워들고, “주 우리 하나님, 우주의 왕, 포도주를 내신 창조주를 찬양하세.”라는 내용의 사례를 하여 그날 저녁에 마실 포도주를 거룩하게 구별합니다. 다음에는 흰 보자기로 덮여 있는 누룩 없는 밀가루 과자 하나를 들고 둘로 쪼개면서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먹던 고난의 빵이다. 배고픈 사람들아, 다 이 식탁에 둘러않아 유월절 만찬을 들자. 우리가 지금은 비록 여기 타향에 살아도 내년에는 이스라엘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지금은 노예이지만 내년에는 자유인이 될 것이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아무리 현실이 어둡고 절망적이어도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 함께 하신다는 확고한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매년 지키는 유월절 때에 이렇게 되풀이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비록 여기 타향에 살아도 내년에는 이스라엘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지금은 노예이지만 내년에는 자유인이 될 것이다.”고 말입니다. 지금은 비록 여러분의 출발이 미약하여도 나중은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가 어린 모세를 실어 나일 강에 띄운 것은 희망이란 갈대상자였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에 머문 이스라엘 회중도 희망이란 갈대상자였습니다. 비록 부서지기 쉬운 튼튼하지 못한 여린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타민족이 경험하지 못했던 구원의 경험들을 갖게 될 희망의 상자였습니다. 본 대학을 졸업하고 떠나는 여러분도 희망의 갈대상자입니다. 비록 보좔 것 없고 초라한 출발이지만, 그 어떤 사람도 경험하지 못했던 특별한 축복을 경험하게 될 희망의 상자입니다. 그러므로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비전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희망을 버리면 안 됩니다. 꿈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삶이 얼마가 되든지 간에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비전을 버리면 안 됩니다. 모세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120세의 노구를 이끌고 느보산 정상에 올라 요단강 건너편에 펼쳐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모세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그가 붙들었던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지중해의 섬나라 크레타에 미노스란 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은 손재주 좋은 아테나이 출신 다이달로스에게 미궁(labyrinth) 을 만들도록 하였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미궁이란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도록 복잡하게 만들어놓은 감옥입니다. 어떤 사건이 잘 해결되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사건이 미궁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미노스 왕은 이 미궁에 자기의 친 자식인 미노타우로스를 가둬두었습니다. 미노타우로스는 황소머리를 한 사람으로써 사람을 먹이로 삼는 괴물이었습니다. 미노스는 약소국이었던 아테나이 왕을 협박해서 해마다 12명의 젊은 남녀를 바치게 하여 미궁에 갇혀 사는 미노타우로스에게 먹이로 주었습니다.
아테나이에는 테세우스란 왕자가 있었는데 영웅이었습니다. 그는 자국의 젊은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12명의 제물의 한 사람으로 끼어들어 크레타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미궁 속에 들어가 그 괴물을 죽일 셈이었습니다.
한편 크레타에는 아리아드네란 공주가 있었는데, 영웅 테세우스를 보는 순간 한눈에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리아드네는 아무리 뛰어난 영웅이라도 한번 미궁에 들어가면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사모하는 영웅을 위해서 실타래를 하나 건네주었습니다. 테세우스는 실 끝을 미궁의 문설주에 묶은 뒤 그 실을 슬슬 풀면서 미궁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후에 그 복잡한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덕분이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끈을 놓지 말아야하는 이유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하는 이유도 마찬가집니다. 믿음의 끈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처럼 미궁에서 우리를 구원해 낼 것입니다. 희망의 끈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처럼 절망에서 우리를 구원해 낼 것입니다.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할지라도, 우리가 믿음의 끈을 놓지 않는 한, 우리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한, 해결의 실마리는 반드시 주어질 것입니다.
이사야와 에스겔과 같은 선지자들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이사야는 잘린 후에 죽어버린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돋는 비전을 보았고, 에스겔은 죽음의 골짜기에서 해골과 뼈들이 살아나는 비전을 보았습니다. 계시록의 저자는 대로마제국의 탄압과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을 대항하여 이길 자가 없다'는 것과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구원의 유일한 근원이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계시록의 저자 요한은 박해라는 무서운 폭풍 속에서 그 폭풍을 잔잔케 할 능력의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지진, 전쟁, 기근, 순교, 천재지변과 같은 악순환이 거듭되는 비극적인 역사의 중심 속에서도 굴절된 역사를 바로 잡아줄 능력의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칠흑처럼 어두운 현실에서 빛을 보았고, 혼돈 속에서 질서를 보았으며, 죽음에서 생명을 보았습니다. 이런 믿음의 비전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뜻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를 물에서 건지시고, 모세를 바로의 공주의 품에서 양육 받게 하시고, 그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낼 지도자로 삼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말이 있듯이,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착실하게 다한 후에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행위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꿈을 실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 또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은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끈을 놓지만 않는다면, 희망의 끈을 놓지만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의 소원을 이루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본 대학을 졸업하고 떠나는 여러분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우리는 지금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상자에 여러분을 실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앞날에 상상을 초월한 축복으로 복 주실 것이란 충만한 믿음으로 세상이란 험난한 강물에 여러분을 떠나보냅니다. 언젠가 그 상자는 능력 있는 분에게 발견이 되고 그분이 그 상자를 열게 될 것입니다. 그 때 그분이 그 상자 속에서 미래의 지도자를 발견하고 조국과 교회의 희망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희망으로 인해서 국가가 살고 교회가 재건되는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