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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6-22 00:45
지식혁명과 변화에의 응전(민 9:15-23)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140  
할렐루야! 먼저 신입생과 편입생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환영합니다. 또한 재학생 여러분의 건강한 모습을 다시 보게되니 대단히 반갑습니다. 이 만남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립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지식혁명과 변화에의 응전"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최근에 가장 많이 나돌고 있는 말이 '지식혁명'과 '지식경영'입니다. 예전부터 "아는 것이 힘이다"고 했는데, 정보화사회가 오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찾는 것이 힘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아는 것이 힘이다"로 되돌아갔습니다. 다만 최근에 거론되고 있는 지식은 이론지식이 아니라, 경험지식, 다시 말해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산지식을 말한다는 점에서 예전에 말하던 지식하고는 그 개념이 상당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농경사회에서는 토지와 자연자원, 산업사회에서는 원료와 에너지가 혁명의 원동력이었다면, 정보화사회에서는 정보가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습니다. 그러나 토지가 아무리 많고, 싼값에 쓸 수 있는 노동력과 자본을 아무리 많이 확보하고 있다하더라도, 또 그에 따른 정보를 아무리 많이 갖고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활용할 지식과 두뇌가 없으면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의 탄생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권력의 이동}(Power Shift)에서 오늘의 이 시대를 일컬어 "마인드(mind)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우리 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구제금융을 빌려 쓸 수밖에 없었고, 구조조정이란 큰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한 마디로 선진국과의 지식격차 때문이었다는 것이 매일경제가 97년 12월에 펴낸 {부즈·앨런 & 해밀턴 한국보고서}의 내용입니다. 뒤이어 발간된 {맥킨지보고서}와 {지식혁명보고서}는 그러한 지식의 격차가 구체적으로 한국산업의 생산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책들에 의하면, "한국은 세계 경제전쟁에서 패배했다. 한국경제의 생산성은 미국의 2분의 1에 불과하다. . . . 생산성을 기준으로 미국에 견줄 수 있는 한국의 기업은 포항제철 하나 뿐이다"고 했습니다. 또 똑같은 수의 근로자와 똑같은 자본과 똑같은 재료와 기계를 이용해 레이더장비를 생산하더라도 영국은 10만 달러짜리를 만드는데 비해서 한국은 겨우 1만 달러짜리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의 기업들은 지난 15년간 자본을 투입해서 올린 수익성이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 이자를 상환할 만큼의 이윤도 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현장경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산지식을 말합니다. 신학을 수년간 공부하고서도 설교나 목회를 제대로 못한다면 그건 살아있는 지식이 아닙니다. 건축공학을 전공했다고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음악을 전공했다고 훌륭한 연주자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고 뛰어난 복지사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맥락에서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이론지식보다는 현장경험을 통해서 얻는 경험지식과 일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개선하고 개발하고 혁신해서 자기 몸값을 높이는 지식을 말합니다.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을 쓴 일본인 이케하라 마모루는 "머리가 너무 좋아 탈이야"란 글에서, 하나의 소각장이 건설되어 제대로 가동하는 데에 1에서 10까지 기술이 필요하다고 할 때, 한국 사람들은 처음에는 열심히 기술을 배우다가도 대여섯 정도까지 알고 나면, 이 정도면 배울 만치 배웠으니 나머지는 우리끼리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런 오만을 일컬어서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창조성의 가장 큰 적인 "자기 우상화" 또는 "자기 도취"라고 했습니다. 어느 민족 어느 누구라도 이 "자기 우상화"에 빠지게 되면, 쇠퇴와 해체의 길을 걷게된다고 했습니다. 유일신 사상에 도달한 유대인들이 그랬고, 높은 철학사상에 도달한 그리스인들이 그랬고, 르네상스 문명을 이룬 이탈리아인들이 그랬다고 했습니다.

매일경제신문사가 펴낸 {지식혁명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대표적인 산 지식인으로 중국집 자장면 배달부 조태훈씨를 뽑고 있습니다.

올해 나이 30세인 조태훈은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친구를 따라 무작정 상경했다가 중국집 배달부로 취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번개반점의 사장이며, 고객서비스와 마케팅의 산 지식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어느 날 남녀 한 쌍이 자장면 하나와 짬뽕 하나를 시켜서 서로 조금씩 나누어 먹는 것을 본 조태훈은 그 때부터 자장면을 시키면 짬뽕 국물을 서비스로 제공했는데, 그것이 히트를 쳤다고 했습니다.

중국집에서는 판촉용으로 곽성냥을 나눠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곽성냥을 돌려도 주문이 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캐보니까, 음식주문은 주로 총무과 여직원들이 하는데, 여직원들은 대개가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에 성냥곽을 보관하지 않았습니다. 이점에 주목한 조태훈은 성냥대신에 여자스타킹을 사서 돌렸더니, 매상이 부쩍 늘었다고 했습니다.

조태훈이 근무했던 중국집 설성반점은 고려대 후문에서 불과 5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에 있었지만, 매상은 다른 집보다 못했습니다. 그 이유를 궁리한 끝에 두 가지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첫째, 학생들은 양 많은 자장면을 좋아했습니다. 큰그릇에 담으면 적게 보이고, 작은 그릇에 담으면 양이 많아 보입니다. 설성반점 자장면 그릇은 유난히 컸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장면 그릇크기를 줄였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둘째, 교수들은 속도가 문제였습니다. 수업시간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빨리 배달해 주는 곳을 선호했습니다. 조태훈은 이 점에 착안해 교수들의 주문은 우선적으로 만들어 달라고 주방에 요구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중국집 주방에서는 주문 받은 것부터 순서대로 조리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그런데 음식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이 자장면은 2분에 불과한데, 탕수육은 10분 이상 걸립니다. 자장면 주문을 받아도 탕수육 주문이 먼저 들어와 있으면 10분이 훨씬 지나야 자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조태훈은 탕수육 주문이 먼저 와도 급한 자장면 주문이 있으면 그걸 먼저 시켰습니다. 이것 역시 주방장 우선이 아니라 고객이 우선이라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조태훈은 이 덕분에 '번개'라는 상표를 얻게 되었습니다.

'번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배달부의 이미지입니다.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고려대 캠퍼스를 누빌 때는 '번개'라고 쓴 노란색 사각 깃발이 바람에 펄럭였다고 합니다. 번개수칙도 있었습니다. "설성반점에 자장면을 시키면 담배를 피우지 말라. 왜? 담배 피우기 전에 자장면이 도착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성공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보통의 자장면 배달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인생관입니다. 자장면 배달부 100이면 100명이 '언젠가는 이 일을 그만 두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는 최고 배달부가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1단계 목표로 중국집 사장이 되기로 했습니다."

그는 고객만족과 고객감동의 차이점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만족은 제품에서 나옵니다. 자장면이 맛있으면 고객은 만족합니다. 그러나 감동은 아닙니다. 감동은 서비스에서 나옵니다. 고객의 마음을 읽고 자장면을 시킨 손님에게 짬뽕 국물을 갖다주는 것이 감동입니다. 푸짐한 요리를 시킨 고객에게 군만두를 덤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소두 두 병 갖다주는 것이 감동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고객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탐구하고 알아내는 작업을 '고객과의 경쟁'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번개'라는 상표가 자신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일산에서 '번개반점' 체인1호점을 열어 마침내 자장면집 사장의 꿈을 이뤘습니다.

{3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의 저자 나카타니 아키히로는 "10년 뒤 자기를 위해 느긋하지만 쉬지 않고 준비하라"고 충고하였습니다. 조태훈씨가 자장면 배달부에서 일약 중국집 사장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비결은, 10년 뒤 사장이 되어 있는 자신을 그려보며, 현재의 자장면 배달부에 만족치 않고, 현재의 자장면 배달부의 입장에서 생각지 않고, 10년 뒤 사장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지식혁명에 힘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변화의 회오리 속에 갇혀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은 우리 스스로가 변화하는 것입니다. 변화의 원리 속에 변치 않는 법칙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BC 540?∼?)는 '로고스'라 했고, 헤겔(G. W. F. Hegel, 1770~1831)은 '절대정신'이라 했고, 마르크스(K. Marx, 1818~1883)는 '물질'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주장하는 변치 않는 법칙이란 끝없이 변하면서 진화한다는 변증법에 근거한 것입니다. 여기서 변증법은 발전을 향한 변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변화를 마르크스는 역사적 유물론에 근거해서 '계급투쟁'으로 보았고, 다윈(Charles R. Darwin 1809∼1882)은 생물들의 생존경쟁에 근거해서 '강자'가 이끌어 가는 '진화'라고 했고, 토인비(Arnold J. Toynbee, 1889~1975)는 '도전'에 대한 '응전'이라고 했고, 성경은 '회심'이라고 했습니다. 표현은 달라도 그 뜻은 한결같이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변화 무쌍한 세계 속에서 변치 않는 생존의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변화라는 아이러니입니다.

그러나 변화는 이런 저런 이유들로 인해서 누구에게나 쉽지 않습니다. 옛 모습이 좋아서 변화를 거부하기도 하고, 변하고 싶어도 알지 못해서 못하는 경우도 있고, 변해보려고 하면 반대에 부딪쳐서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튼 변화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변해야 할 때 변하지 아니하면 쇠퇴를 거처 해체되고 맙니다.

1940년대에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최고급 시계는 스위스제 시계였다고 합니다. 전세계 시계판매율의 80%를 차지할 만큼 그 위세는 대단했습니다. 그러던 중 1950년대에 새로운 형태의 시계가 소개되었습니다. 그것은 디지털방식으로 움직이는 전자시계였습니다. 그러나 전통을 고집하던 스위스 시계회사 간부들은 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새 아이디어는 세이코(Seiko)라는 일본회사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시계시장의 판도가 어떻게 변했는지 아십니까? 세계시장의 80%를 전자시계가 차지하게 되었고, 1940년대에 80%를 자랑하던 스위스 시계는 20%에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변해야 할 때 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는 {미래로 가는 길}에서 말하기를, 수억씩 하는 중대형 컴퓨터만 만들어지던 때에 저가의 소형 컴퓨터가 일반화 될 것을 예상했고, 컴퓨터 사용을 쉽게 해줄 수 있고, 어떤 컴퓨터 회사 제품에 사용해도 문제없이 돌아가는 호환성을 가진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면, 컴퓨터 보급을 확산시킬 뿐 아니라, 자사 제품의 소프트웨어 시장을 확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엄청난 이익을 갖게 될 것이라고 시장변화를 예측했는데, 운 좋게도 자기 생각이 맞아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소형 컴퓨터 산업에 초석을 마련하고도 소형 탁상용 컴퓨터가 한 때의 유행이라고 생각했던 디지털 이퀴프먼트사의 켄 올슨은 망했고, 우수한 문서편집용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하고도 컴퓨터와의 호환성을 갖춘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생각지 못한 왕 안은 일찍이 이 산업에 눈을 뜬 젊은 청년 빌 게이츠에게 성공의 기회를 빼앗기고 말았다고 합니다.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 주는 사례들입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변화라는 도전에 어떻게 응전을 하느냐에 따라서 문명이 발생하고 성장하기도 하고, 쇠퇴하거나 해체된다고 했습니다. 변화에 따른 도전에 적절하게 대응을 잘하면 그곳에서 문명이 발생되고 성장하지만, 변화에 따른 도전에 대응을 잘못하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해체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불확실한 미래 때문입니다. 켄 블랑카드(Ken Blancard)는 말하기를, "사람은 선천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변화에 대한 호기심이나 변화를 바라는 마음은 있으나 정작 변화 그 자체는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블랑카드는 사람들이 지식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자세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행동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조직의 변화를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불모지에서 40년을 텐트생활로 어렵게 지내게 된 이유도 변화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보름이면 도착할 가나안 땅을 무려 40년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늦게라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 국토를 얻고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나마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9장 15-23절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구름과 불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그 변화에 따라 움직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낮에는 구름의 변화를 관찰하고, 밤에는 불의 변화를 관찰하여 그 변화에 따랐습니다. 만일에 구름이나 불이 성막에서 떠오르면 텐트를 거둬 말아 등에 짊어지고 낮이든 밤이든 가리지 않고 구름과 불이 머무는 곳까지 행진하였고, 구름이나 불이 머무는 곳에 텐트를 치고 하루도 좋고, 한 달도 좋고, 일년도 좋고, 이년도 좋고 구름이나 불이 성막에서 떠오를 때까지 광야에 머물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결국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보고 누구의 지시로 광야와 같은 이곳 한성에 오셨습니까?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 곳에 보내셨다고 확신합니다. 그 사실을 깨달아 아는 영성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4년이면 될 일을 40년이 되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맙시다. 이곳에서 10년 후의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지식의 혁명을 꾀하는 산 지식인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