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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09 00:37
하나님의 승리(롬 8:17-18, 37; 고후 4:17)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941  
성서는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승리, 그리스도의 승리, 그리고 모든 하나님의 자녀의 승리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서에 비친 하나님은 승리자이시오, 그리스도는 승리자이시며, 모든 그리스도인은 승리자 이상의 승리자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승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고난과 분리해서 생각될 수 없습니다. 승리라는 말이 시련과 관련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고, 고난이 없는 곳에 승리도 없기 때문입니다. 시련이 크면 승리의 기쁨도 크고, 고통이 크면 승리의 가치도 커집니다.

성서의 뼈대를 구성하는 세 가지 중요한 사건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430년간 노예의 삶을 살다가 탈출해서 팔레스틴에 국가를 형성한 이야기와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 제국에 망한 후 최소 70년에서 최고 173년의 오랜 포로생활에서 자기들 나라로 돌아온 이야기, 그리고 예수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 사건을 말합니다. 극한 시련 속에서 승리를 맛본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들 사건들을 역사 속에 개입하신 하나님의 구원사건이라고 신앙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430년간 이집트의 압제로부터의 해방과 70년에서 173년의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자유를 하나님의 구원사건으로 고백하고 있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서 하나님의 구원사건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난에서의 구원, 시련의 극복, 죄에서의 구원 등은 같은 맥락에서 엮어진 성서의 주제입니다. 이들 성서의 이야기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수치와 죽임을 당함과 같은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 뵙고 승리한 삶의 이야기들입니다. 우리는 이 성서의 주제에서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시련을 주십니다. 시련없이 사람이 큰다던가 역사가 이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무병을 심하게 앓고 난 사람이 큰무당이 된다고 하듯이 고난을 당하여 이긴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고난과 성공은 정비례한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 분은 아마 헬렌 켈라일 것입니다. 신체의 장애 가운데 가장 큰 장애가 눈먼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소경을 장님이라고 우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헬렌 켈러는 잘 아시다시피 소경에 귀머거리에 말 벙어리였습니다. 그녀는 듣고 보고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빼앗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 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피나는 노력 끝에 글을 깨우치게 되었고, 말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세상에 남긴 업적은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긴 것보다 더 크고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부모와 누나를 잃은 고아요 소경인 강영우는 시련을 극복하고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교수가 되었으며, 사회봉사를 통해서 어두운 사회를 비추는 촛불이 되고 있습니다.

음악가로서 베토벤은 듣지 못하는 시련을 극복함으로서 불후의 교향곡 9번 합창을 남겼고, 자폐증과 같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에디슨은 그 많은 발명품들을 만들어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시간의 역사}를 쓴 스티븐 호킹은 중증 장애자로서 뉴턴과 아인슈타인을 잇는 천재 물리학자로, 베토벤에 버금가는 위대한 인간 승리자로, 이 시대 최대의 물리학자로 칭호 되고 있습니다. 스티븐 호킹은 20살에 불치병인 루게릭병에 걸려 휠체어에서 움직이는 데다 43살에 폐렴에 걸려 말조차 음성 합성컴퓨터로 해야하며, 숨도 기도에 관을 뚫어 쉬고 있는 중증장애자입니다. 이런 그가 장애를 극복하고 박사학위를 얻어 케임브리지대학의 루카시안 석좌교수직에 올랐으며, 세계 최고의 과학자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전라남도 강진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보냈습니다. 이 곳에서 저 유명한 {목민심서}가 기록되었습니다. 이 {목민심서}를 갑오농민전쟁 때 동학군이 선운사 마애불의 배꼽에서 꺼냈다는 전설이 있고, 심지어는 월맹의 호지명이 부정과 비리의 척결을 위해서는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했다는 그 유명한 책입니다.

충남 예산과 당진 사이에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택이 있어서 몇 차례 답사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곳에 가면 유명한 [세한도]란 복사본이 걸려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김정희 선생은 추사체로 유명합니다. 추사체가 완성이 되고 [세한도]가 그려진 곳은 다름 아닌 제주도에서 7년 3개월, 햇수로 9년의 유배생활 중에서 완성된 것들입니다. 추사는 유배 중에 부인의 상을 당하고, 회갑을 맞았지만 축복해 주는 이 없는 외로움 속에서 변치 않고 찾아 주는 이상적에게 "날이 차가운 후에 소나무 잣나무 푸르름을 안다"고 [세한도]를 그려 주었고, 귀양살이를 하면서 그 외로움, 억울함, 쓸쓸함을 달래기 위하여 추사는 글씨를 쓰고 또 썼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된 글씨가 추사체였습니다.

이와 같이 시련은 보통 사람을 큰 사람으로 만들고, 미숙한 사람을 성숙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에게 시련으로 연단 하십니다.

둘째, 시련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시련은 하나님의 연단의 도구입니다. 이 도구는 축복과 풍요로운 삶을 약속합니다. 시련을 통해서 이웃의 사랑을 깨닫게 하며, 하나님을 더욱 열성으로 찾게 합니다. 때문에 시련은 이웃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 결속하고 연대하는 자리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입니다. 이 때문에 시카고 대학의 Daniel Day Williams는 말하기를 인간은 시련을 통해서 자기가 누구인가를 발견하게 되고, 겸손한 성격을 형성하게 되며, 진정한 사귐이 가능해 진다고 했습니다. 시련을 통해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고 그 분의 엄청난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또 사람들은 시련을 통해서 구원을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의 탕자비유는 이와 같은 사실을 잘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시련을 겪기 전의 탕자와 시련을 겪고 난 후의 탕자의 모습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현대 신학자들은 하나님을 고난 당하는 자들의 하나님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고난의 자리에 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 고난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당하는 고난의 현장에 하나님의 아들이 찾아 오셨고 하나님의 아들이 계신 곳에 십자가의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고난이 있는 곳에 부활이 있었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와 같이 고난의 자리는 바로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현장이요 하나님을 만나 볼 수 있는 장소입니다.

전라남도 신안에 문준경이라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한신대학원의 상담학 교수인 정태기 박사의 큰어머니되시는 분입니다. 이 분이 시집으로부터 소박을 당한 후 한강 물에 몸을 던져 죽기로 마음먹고 서울까지 올라갔습니다. 한강 근교를 지나다가  찬송과 기도 소리를 듣고 무심코 발을 내디딘 곳이 성결교회의 이성범 목사의 부흥집회였습니다. 여기서 문준경 여인은 은혜를 받고 새 사람이 되어 이성범 목사를 4년간이나 따라 다녔습니다. 비공식 신학교육을 마친 셈입니다. 신앙에 확신을 얻은 문준경 여인은 자기를 소박시킨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서 이 여인은 전도자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였고, 무려 38명의 목사를 배출시켰다고 합니다. 이 여인의 간증 제목은 언제나 "나를 소박시키신 하나님"이였다고 합니다.

셋째,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습니다. 2000년 기독교 역사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박해와 시련 속에서 거듭 성장해 왔음을 웅변적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성서 중에 등장하는 신앙인들은 극한 시련 속에서 언제나 믿음으로 승리하였습니다. 그들의 변함없는 신앙은 하나님은 '승리의 깃발'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롬 5:3-4)고 하였고,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5-37)고 하였습니다. 이는 고난을 통한 그리스도인들의 성숙과 승리를 다짐하는 격려의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승리는 우리의 약함과 극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발생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승리는 우리의 약함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일어날 뿐만 아니라(롬 8:18, 26-27), 우리의 약함과 고난 한 가운데서 그리고 우리의 약함과 고난 때문에 일어날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고난"이 하나님의 다가올 영광을 촉진시키는 구속의 능력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바울은 다가올 하나님의 승리를 바라보고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을 권면 합니다(롬 8:17). 이는 세상 안에서 또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받아야 할 구속적 고난입니다. 이 고난은 미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고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모든 고난과 환난 가운데서도 승리자들 이상의 승리자입니다. 죄와 세상을 이긴 정복자 이상의 정복자입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침례를 통해서 이미 기독교인은 악과의 전투를 시작하였고, 승리의 그 날을 소망합니다. 싸움이 있는 동안에는 시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승리의 그 날은 이미 예정되어 있고 반드시 옵니다. 이 싸움은 연약한 우리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능의 왕, 엘샤다이 이십니다.

넷째, 시련은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시련이 무한정 계속되는 것은 아니며, 반드시 감당하기 어려운 것만도 아닙니다. 막힘의 위기 속에는 반드시 트임의 진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더 크고 좋은 문을 열어 주시기 위해서 이미 열린 문을 닫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두 개의 문이 다 열리면 어떤 문으로 들어갈까 망설이다 길을 잘못 드는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 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케 하시느니라"(고전 10:13)고 하였고,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라고 하셨습니다. 욥이 시련 후에 전보다 두 배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고난은 축복에 대한 시샘과 같은 것이며, 햇살이 있기 위해서 한바탕의 비바람과 천둥이 치고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소나기를 맞은 식물은 더욱 푸르게 자랍니다. 우리는 고난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고난은 소나기처럼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소나기 몇 번 맞고 나면 모든 것이 싱싱해 집니다. 계시록이 고난의 기간을 매우 짧은 기간인 삼년 반으로 표시하고 있는 반면, 축복의 기간을 무려 천년으로 표시하고 있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서의 주제인 하나님의 승리, 그리스도의 승리, 그리고 모든 하나님의 자녀의 승리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고난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결코 실패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승리자이시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시련을 주시고 연단 하십니다. 그러므로 시련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시련은 있어도 결코 실패는 없습니다. 그리고 시련은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자기 앞에 놓인 시련을 피하지도 말고, 탓하지도 말고, 부딪쳐 극복함으로서 자기 성숙의 기회로 삼는 승리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