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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6-22 00:49
끝없는 참사,과연 누구 죄 때문인가?(눅 13:1-5)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865  
최근 몇 년 동안 대형사고들이 여러 건 있었습니다. 93년 3월 28일 구포 열차 전복 사고(사망 78, 부상 105), 93년 7월 26일 아시아나기 추락사고(사망 66), 93년 10월 10일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사망 292), 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사고(사망 32, 부상 17), 94년 10월 24일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고(사망 25, 실종 4, 부상 33), 94년 12월 7일 아현동 가스 폭발 사고(사망 12, 실종 1, 부상 65, 이재민 6백여명), 95년 4월 28일 대구 가스 폭발 사고(사망 98, 실종 3, 부상 125), 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사망 458명, 실종 100여명, 부상 천여명) 등 여러 건의 사고들이 발생했습니다. 이들 사고들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고 엄청난 재산 피해를 냈습니다.

이들 대형참사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서는 교통사고, 질병, 전쟁, 기근, 지진, 홍수, 산불, 익사 등 많은 이유들로 인해서 병들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일들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 사람들은 곧잘 남에게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를 찾고자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경우도 있고, 지도자를 원망하는 경우도 있으며, 남을 원망하거나 심지어 가족과 친지를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환난이 닥칠 때면 언제나 분열이 찾아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995년 7월 10일자 뉴스위크지는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고들을 일컬어 '끝없는 참사' 또는 'The Kingdom of Accidents' 즉 '사고의 왕국'이라는 타이틀의 기사에서 일련의 참사들이 김영삼 대통령의 과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를 책망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성서를 통해서 우리는 이집트로부터 비인간적인 노예생활에서 해방시켜준 하나님과 모세를 끝없이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볼 수가 있습니다. 광야에서의 현재의 배고픔과 목마름과 더위를 미래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값진 고난으로 이해하고 인내하기보다는 불평과 원망을 일삼았던 것을 봅니다. 희망을 버렸던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 묻히고 말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유태인들은 질병이나 재앙의 원인을 부모의 죄탓이나 당사자의 죄탓으로 이해했습니다. 재앙을 당한 자를 위로하고 돕기보다는 숨겨진 죄를 밝히기에 바빴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병자를 돌보시고 고치실 때에 유태인들은 예수를 비방하고 손가락질했습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처음 300여년 동안 로마제국으로부터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았던 그리스도인들은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함으로써 신앙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 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은 급속히 늘어서 온 국민이 교회를 출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유태인들을 예수를 죽인 살인자로 단정하여 박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예수의 죽음을 만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은총의 사건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예수의 죽음의 탓을 유태인들에게 돌렸던 것입니다.

히틀러는 자신과 어머니의 불행을 유태인들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 결과 600백만 유태인들이 학살을 당하고 가스실에서 죽어갔습니다.

일본은 관동대지진의 피해의 원인을 일본에 사는 한국인의 탓으로 돌려 많은 한국인들을 살해했습니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에 엄청난 지진이 도쿄와 요코하마 일대를 강타하였습니다. 이 지진이 발생한 직후 한국인에 대한 아주 나쁜 소문들이 도쿄와 요코하마에서 경찰들에 의해서 유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내용은 "조선인들이 방화를 일삼고 우물에 독약을 넣었다. 조선인들이 집단으로 습격해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당국은 이 루머를 기정 사실화하기 위해서 일본 청년들을 동원해서 건물에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약을 풀어 넣는 등의 테러를 저질렀고, 이를 한국인들의 행위로 뒤집어 씌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6일 동안 일본인들의 죽창과 흉기에 맞아 살해된 우리 동포의 수가 일본의 공식집계만으로도 6,433명이나 되었습니다.

흑사병이 고대도시 아테네를 강타했습니다. 유럽인들이 한번도 겪어보진 못한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이 병으로 인해서 아테네는 죽음과 공포의 도시로 변해 버렸습니다. 아테네 시민들은 그 원인을 아테네 시민들에게 민주주의와 위대한 시대를 열어준 페리클레스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 결과 아테네의 전성시대는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문제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으려 하면 엄청난 비극이 초래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어려운 일이 전개될 때마다 우리는 그 탓을 남에게서 찾지 말고 자신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도 본문 말씀에서 경고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삼풍백화점 붕괴로 죽은 458명의 사람이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 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라고 예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회개를 촉구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고난을 당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인간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인간의 무책임과 죄(방종) 때문에 인과응보로 발생됩니다. 소위 인재(人災)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고난을 주신 것도 아니고, 나쁜 것을 만드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정말 좋은 것들만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이 책임을 다하지 아니하고, 방종과 이기심에 빠져서 살기 때문에 엄청난 재앙이 인간들에게 찾아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재앙들은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낸 무서운 결과입니다. 심지어 자연재해까지도 상당수는 인간이 자연을 훼손함으로써 만들어낸 인재(人災)들입니다.

둘째, 고난은 연단을 목적으로 찾아오기도 합니다. 큰 축복을 얻게 할 목적으로 시련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구약의 욥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욥은 환난으로 모든 가족과 재산을 다 잃었지만, 끝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전 보다 더 많은 가족과 재산을 얻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18절 말씀은 ". . .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또 고린도후서 4장17절은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또 로마서 5장 3절에서는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라고 말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고난이 오기도 합니다. 예수 때에 고침을 받은 병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들 이였습니다. 요한복음 9장 1-3절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11장에서 마르다는 나사로가 죽은 이유를 예수께서 베다니에 계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 탓을 예수께 돌렸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나사로가 죽은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이라고 말씁하셨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뜻을 알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사람들이 있는지? 고난을 이기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넷째, 하나님만이 아시는 이유 때문에 고난이 오기도 합니다. 저는 이 점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할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인간에게 비밀로 붙여진 하나님만이 아시는 이유 때문에 고난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할 따름입니다.

다섯째, 자신을 위해서 훈련이나 수련을 목적으로 스스로 고난을 겪기도 합니다. 종교적인 목적이나 심신의 건강을 위해서 수도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는 학생들,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 뼈를 깎는 훈련을 마다하지 않는 운동선수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여섯째, 고난은 반드시 수동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고난을 자청하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수난을 당하신 것이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자원 봉사자들, 독립운동가들, 민주투사들, 선교사들, 기타 많은 무리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값진 희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풍백화점 붕괴를 통해서 보여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은 스스로 택한 값진 고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이 택한 이방인 선교와 그에 따른 고난은 역사에 길이 기억될 가장 위대한 업적 이였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수난은 만 인류를 죄에서 또는 빈곤에서 또는 각종 억압에서 구원해낸 가장 위대한 희생 이였습니다.

무슨 이유로든 우리 인간은 고난을 당하기도 하고 자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우리 인간들은 실수를 통해서 배우고 성숙해갑니다. 옛말에도 실수는 兵家之常事라 했습니다. 고난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기도 하고, 협력의 중요성을 배우기도 하고, 이웃 사랑을 배우기도 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배우기도 합니다. 고난의 때에 하나님을 찾기도 하고, 이웃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합니다. 고난 때문에 고마움을 알고, 고난 때문에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사고를 당해 보고서 책임성과 법의 준수와 약속의 준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습니다. 어린아이가 불에 손을 데고서야 불을 조심하게 되고, 교통사고를 당하고서야 안전운행의 필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병을 앓아 본 사람이 건강의 중요성을 압니다. 배 고파본 사람이 음식 귀한 것을 압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깨닫고 인생이란 것을 논하게 됩니다. 어려움을 많이 겪은 사람일 수록 강인하고 익어 있습니다.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그렇다고 고통이나 죽음이나 사건이나 사고가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인간은 고난을 겪음으로써 그 고난극복의 노력을 통해서 진보하고 발전한다는 뜻입니다. 생각의 발전, 과학의 발전, 학문의 발전이 모두 고난을 통해서 얻어진 결과입니다. 사람에게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지혜가 주어져 있습니다. 고난을 승리로 바꾸어 갈 수 있는 믿음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한 인간에게는 언제나 희망이 있습니다.

참으로 신앙인은 고난의 때에, 그 고난이 어떤 모양을 띠었든지 간에,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며,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품으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면 해결의 방법이 있습니다. 순리와 상식으로 돌아서면 해결의 방법이 있습니다.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내 탓이요'라고 말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은 고난극복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고, 무질서에서 질서를 회복하고, 흑암에서 빛을 보며,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이 닥칠 때마다 모세를 탓하고 하나님을 탓했습니다. 이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지도자들을 원망합니다. 부모를 원망합니다. 남편을 원망합니다. 부인을 원망합니다. 자녀를 원망합니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합니다. 이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을 반성해야 합니다. 이 못난 나 한 사람 때문에 내 남편이, 내 부인이, 내 자녀가, 내 부모가, 내 이웃이, 내 친구가, 혹은 선생님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았는지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 때문 이였습니다. 제가 나빴습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제가 무책임한 때문이었습니다.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일어서야 합니다. 고난극복의 신앙으로, 무에서 유를 만들고, 무질서에서 질서를 회복하고, 흑암에서 빛을 있게 하시며,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어 놓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고난은 보다 큰 축복과 영광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우리 인간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고난을 승리로 바꿀 줄 알아야 하겠고, 믿음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줄 알아야겠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성도 여러분, 고난극복의 믿음으로 모든 일에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