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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09 00:39
믿음의 어머니(요 2:1-11)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478  
일본인 이케하라 마모루가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썼다면서 한국을 비판한 것 중의 하나가 한국 부모들이 자식들을 망나니로 키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식 교육을 엄하게 하는 일본 사람들이나 서양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생각이 결코 무리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에서 직접보고 느낀 일이지만, 실제로 교포들의 자녀들은 교회에서나 집에서 통제가 어려울 만큼 가정교육이 되어 있지 못한 반면, 미국인 자녀들은 교회에서나 집에서 공중도덕을 착실하게 지킬 만큼 엄한 교육을 받고 자랍니다. 서양인들은 자녀들을 엄하게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독립심을 가진 아이들로 키웁니다. 따라서 아이들은 법적 성인이 되면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자녀들을 과잉보호하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나이를 먹고도 좀처럼 독립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그러나 부모에 대한 효심, 특히 어머니에 대한 공경심에서 보면, 서양사람이 한국사람을 따라오지 못합니다. 또 청소년 문제도 한국이 서양보다 훨씬 적은 편입니다. 서구화가 되면서 청소년 문제가 부쩍 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서양의 청소년 문제보다는 적은 편에 속합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케하라 마모루의 비판이 다 옳다고만 보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최근에 {어머니의 사랑은 동그라미처럼 시작도 끝도 없다}(잭 캔필드와 마크 빅터 한센)는 제목의 번역서가 출간되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박영배 목사의 사모, 김효숙 선생은 우리 나라 청동조각의 중견작가이신 데, 늘 동그라미를 주제로 한국의 여인상을 조각하고 계십니다. 얼마 전 대전에 내려오신 박영배 목사님과 찻집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박목사님께서 "나는 내 어머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 하시면서 눈물을 글썽이셨습니다. 대구에서 자란 박목사님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배타고 홍콩에 가기로 작정하고 인천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자기가 가출하면 어머니가 죽을 것 같아서 도저히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배신자가 되었고, 친구들은 인천에서 모두 붙잡혀 집으로 돌아왔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으면. . . ."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부럽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정말 위대한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혹자는 이브가 선악과를 먼저 먹고 아담을 꾀었기 때문에 여자는 하나님의 실패작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로부터 힘세고 비겁한 아담은 여리고 호기심 많은 이브가 없이는 살아 갈 수 없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리스 신화에도 이 세상에 온갖 악이 찾아든 것은 판도라의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그나마 인간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게된 것은 판도라의 재빠른 판단과 행동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대의 많은 신전들에서는 풍요의 상징으로 여신들을 섬겼습니다. 여성들의 잠재력을 인정한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여성들의 위대함에 대해서 말하자면, 아마 한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어머니의 끝 모르는 사랑, 이 사랑의 위대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서 몇 가지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첫째, 성경을 보면, 마리아는 자신의 아들의 잠재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식에 대한 믿음이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 믿음을 저버리지 못한 예수는 자기 때가 이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큰 일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께서 열두 살 때에 부모 속을 썩힌 기록이 나옵니다. 명절에 부모를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갔는데, 부모를 잘 따라다니지 않고 개인 행동을 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루살렘에서의 제사를 마치고 고향인 갈릴리를 향해 길을 떠났는데 도중에 예수가 따라 오지 않은 것을 알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러기를 3일이 걸렸습니다. 예수는 부모가 자신을 찾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예루살렘에서 학자들 사이에 앉아 그들의 가르침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였습니다. 부모들의 입장에서 얼마나 화나고 복장 터질 일이었겠습니까? 3일씩이나 찾아 헤매게 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예수의 남다름을 마음에 새겼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들의 이런 세밀한 관찰이 자녀들에 대한 믿음을 키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관찰해온 자기 자식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세계적인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어린 시절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던 소년이었다고 합니다. 그를 가르쳤던 교사들 중의 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의 성적표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이 아이는 어떤 일을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어머니만큼은 아들의 잠재력을 믿고 인정했던 훌륭한 후원자였습니다. 어머니는 늘 아인슈타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인슈타인, 넌 할 수 있어. 암 할 수 있고 말고."

발명왕 에디슨은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한 학기도 채우지 못하고 퇴학을 당했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1+1=2란 것을 인정하면서도 때로는 1+1=1이 된다고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견디다 못한 선생님이 에디슨에게 어머니를 모시고 오게 하고는 흥분한 어조로 "당신 아들은 석두입니다. 더 이상 가르칠 수가 없으니 데려 가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아니, 우리 애가 왜 석두란 말입니까?"라고 반문하자, 선생님은 에디슨을 불러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1+1은 얼마지?"라고 물었고, 에디슨은 "예, 둘이지만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보세요. 언제나 이런 식입니다. 에디슨의 이런 태도는 다른 아이들 교육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데리고 가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의 어머니 역시 아들의 잠재력을 믿고 인정했던 훌륭한 후원자였습니다. 그녀는 늘 에디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디슨, 넌 할 수 있어. 암 할 수 있고 말고."

오래 전 이탈리아의 한 공장에 위대한 성악가를 꿈꾸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렵사리 첫 레슨을 받았는데 교사는 그에게 "너는 성악가로서의 자질이 없어. 네 목소리는 덧문에서 나는 바람소리와 같아."라고 혹평했습니다. 그때 소년의 어머니는 실망하는 아들을 꼭 껴안으며 말했습니다. "아들아, 넌 할 수 있단다. 실망하지 말아라. 네가 성악공부를 할 수 있도록 엄마는 어떤 희생도 아끼지 않겠다." 소년은 어머니의 격려를 받으며 열심히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성악가 중의 한 사람인 앙리코 카루소였습니다.

둘째, 성경을 보면, 어머니로써 마리아는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누가복음 1장을 보면, 마리아는 성령충만한 여성이었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의 창설멤버였습니다. 마리아는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잔치집의 파장 분위기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고, 예수를 통해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기독교 믿음은 자녀에게 유산으로 물릴 만큼 높은 부가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은 흑암을 빛으로 바꾸고, 혼돈을 질서로 바꾸며, 죽음을 생명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믿음을 유산으로 남기는 일은 우리 어머니들이 해야할 대단히 중요한 일인 셈입니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많은 재산이 아니라 단지 한 권의 성경책뿐이었습니다.

링컨은 대통령 취임 때에 낡아빠진 조그만 성경책을 들고 나와 "어머니가 주신 이 성경책으로 말미암아 오늘 내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링컨은 이 때뿐 아니라, 곧잘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이미 세상을 떠나신 천사 같은 어머니의 덕분입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링컨이 오랫동안 마음에 간직하고 살았던 것은 일찍이 통나무집에서 어머니가 가르쳐준 십계명이었습니다. 변호사시절 뇌물의 유혹들을 물리치고 끝내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가 가르쳐준 십계명 때문이었습니다. 링컨은 어머니가 가르쳐준 성경말씀을 보배처럼 여기며 살았습니다. 링컨은 영국의 문학자 벤슨으로부터 "미국 중서부에서 가장 정직한 법률가"라는 칭찬을 들었는데, 그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는 어머니의 유언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훌륭한 링컨의 어머니는 친모가 아닌 계모였습니다. 그녀는 링컨이 14세 되던 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런 믿음의 어머니가 있었기에 링컨은 학교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으면서도 수많은 실패를 이기고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링컨의 연속적인 실패는 이름 난 것이었습니다. 22세에 사업실패, 24세에 주 의회낙선, 24세에 다시 사업실패, 25세에 주 의회 의원당선, 26세에 사랑하는 여인사망, 27세에 신경쇠약과 정신분열증으로 고생, 29세에 의회 의장직낙선, 31세에 대통령 선거위원낙선, 34세에 국회의원낙선, 37세에 국회의원당선, 39세에 국회의원낙선, 46세에 상원의원낙선, 47세에 부통령낙선, 49세에 상원의원낙선, 59세에 드디어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미국 보스턴에는 조각가 사이러스 달린(Cyrus Dallin)이 만든 '개척자의 어머니'(pioneer mother)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한 손에 성경을 낀 어머니가 다른 손으로는 어린 아들의 손을 꽉 잡고 희망 가득한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며 힘차게 걷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제막식 때 조각가 사이러스 달린은 자기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이 작품은 제가 어렸을 때의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며 제작한 것입니다." 그 때 어머니는 만족한 미소를 띠며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이 조각에는 내가 평생토록 살아온 정신과 아들에 대한 나의 기도가 충분히 배어 있구나."

미국의 제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많은 재산이 아니라 한 권의 성경책뿐이었습니다.

1850년대 말 남북 전쟁이 터지기 몇 해전이었습니다. 미국 오하이오 주에 대농(大農)인 테일러(Worthy Taylor)의 농장에 한 거지 소년이 찾아왔습니다. 17세의 나이에 이름은 짐이었습니다. 짐은 일손이 얼마든지 필요한 이 집에 머슴으로 고용되었습니다. 그러나 3년 뒤 자기의 외동딸과 짐이 사랑에 빠진 것을 알게 된 테일러는 몹시 노하여 짐을 때려서 빈손으로 내 쫓았습니다. 그후 35년이 지나 낡은 창고를 헐다가 짐의 보따리가 발견되었는데 책 속에서 짐의 본명이 발견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James A. Garfield (1831-81), 현직 대통령이었습니다. 농장을 떠난 짐은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운 현 히람 대학의 전신인 Western Reserve Eclectic Institute에 입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한 후 설교가로 교수로 제2대 학장으로 젊은 시절을 히람 대학에서 봉직했습니다. 그 후 군에 입대하여 육군 소장까지 진급하였고, 33세에 하원의원에 당선된 후 연속해서 여덟 번 피선되었습니다. 그리고 50세에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가필드는 미국에서 목사가 대통령에 당선된 최초이자 최후의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바로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 출신의 목사였던 것입니다.

가필드의 어머니도 아주 훌륭한 여성이었습니다. 가필드도 링컨처럼 대통령 선서식 때에 어려서 어머니로부터 선물 받은 성경을 안주머니에서 꺼내어 그 위에 손을 얻고 취임선서를 했다고 합니다. 가필드는 어떤 경우에도 어머니의 추억이 담긴 성경을 몸에서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괴로운 때나 슬플 때나 어머니를 생각하며 성경을 꺼내어 읽었는데, 마침내는 대통령에 오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마리아는 아들의 실패, 아들의 십자가형에도 불구하고 곁에서 자리를 지킨 강한 여성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잘나갈 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매달리게 되었을 때에는 제자들조차도 스승을 버리고 도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마리아만큼은 골고다 언덕까지 예수를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린 아들의 고통에 동참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아들이 당하는 고통보다 더 큰 괴로움을 견뎌야했는지 모릅니다.

일본인 작가 엔도 슈사꾸는 {예수의 생애}에서 예수는 사람들이 자신의 슬픔이나 괴로움을 나눠 가지며 더불어 눈물을 흘려 줄 어머니와 같은 동반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를 배반한 사람들에게조차 자신의 목숨을 바쳐 사랑을 쏟았던 분으로 묘사하고 있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분노하는 아버지 신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인자한 어머니 신의 이미지로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게 한 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엔도 슈사꾸의 생각이 옳다면, 예수가 누구에게서 그런 큰 영향을 받았겠습니까? 그것은 분명 자신의 어머니일 것입니다.

베토벤은 열 일곱 살에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11년 후에는 청각도 잃었습니다. 음악하는 사람이 귀머거리가 되었으니 상실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유서를 써놓고 자살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어머니의 얼굴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 자리에 꿇어앉으면서 "어머니 죄송합니다."라며 말하고, 통곡하고 회개한 후 유서를 찢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작곡을 시작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이렇게 위대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걸작인 것입니다. 어머니들 가운데는 치맛바람 날리며 사회를 병들게 하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위대한 인물 배후에는 반드시 훌륭한 어머니가 계셨다는 점을 생각하시면서 귀하고 복된 믿음의 어머니가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