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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31 01:41
고독한 싸움(창 32:23-32)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886  
야곱이 20여년의 타향살이를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중에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야기가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야곱이 어머니와 짜고 아버지를 속여 형의 받을 축복을 가로챈 이후 형 에서를 피하여 외삼촌 집에서 20여년의 타향살이를 하게 됩니다. 이 기간 동안 야곱은 아내를 넷이나 얻고 아들을 열한명이나 두었으며, 수많은 가축을 이끄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 없이"(창 31:40) 외삼촌을 위해 일을 했던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오욕과 야망의 세월에 종지부를 찍고 새출발을 위해서 과감하게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향해서 출발하게 됩니다. 이 여정에서 야곱은 형 에서의 커다란 장벽에 부딪치게 됩니다. 여기서 야곱은 인간적인 지혜를 동원합니다. 야곱은 우선 형에게 사람을 보내 신에게 사용하는 최대 경칭어인 '주'라는 칭호로 형을 부르고 자신은 '종'이라고 비하시켜 최대의 경의를 표하면서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창 32:5)라는 전갈을 띄웁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형이 400명을 이끌고 다가온다는 소식을 듣고 야곱은 전략을 바꿉니다. 이번에는 선물 공세를 펼치는 것입니다. 그것도 세 무리로 나누어 점차적으로 물량 공세를 펴는 것이었습니다. 성서 기자는 야곱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으리라"(창 32:20). 야곱은 또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는 전략도 짜 두었습니다. 그는 또 여종과 그 자녀들, 그 다음에 레아와 그 자녀들, 그리고 라헬과 요셉을 그 다음에 두어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을 가까이 두는 계략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야곱의 이름이 "간사한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듯이 그는 모든 안전 장치를 다 강구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는 강가에 혼자 남았습니다. 생사의 문제를 결단하는 잠 못 이루는 밤이었습니다. 20여년이나 피하던 형을 이제 외나무다리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어머니나 아내의 도움을 바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예전 아버지와의 대결에서는 어머니가 도와 주었고, 외삼촌과의 대결에서는 아내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한 야곱이었지만, 이제 얍복강에서 자신의 과거를 청산하는 양심의 문제에 있어서는 홀로 설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가 아끼는 재물이나 사랑하는 가족들도 그를 도와 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성서는 야곱이 밤새도록 하나님의 사람과 씨름을 했다고 말합니다. 야곱은 자기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존재와 밤새껏 겨룬 것입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6) 라는 야곱의 집념은 물에 빠진 이가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때때로 몇 몇 사람들이 세인을 놀라게 하는 초인간적인 투지력의 발휘인 것입니다.

그 결과로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간사한 자'라는 누명을 벗고 하나님과 더불어 겨루어 이긴 초인간적인 존재로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자연인 야곱의 이름이기 보다는 하나님의 백성의 이름인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기억할 것은 이 이야기에서 인간의 자긍을 막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은 야곱의 환도뼈를 꺾어 발을 절게 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무력감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에게는 자긍치 않도록 육체의 가시를 두십니다. 바울이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바울과 같이 역사적으로 알려진 인물 가운데에 많은 수의 사람들이 신체적, 물질적, 혹은 정신적 마이너스 요인들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나 이를 극복하고 이긴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약성서의 많은 이야기들은 무력한 인간들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인간은 맹수와 사워야 하는 원형 극장과 같은 삶의 현장 안에 던져진 존재와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맹수의 먹이로 끝나고 말지만, 그 중의 몇 사람은 맹수를 이기고 원형 극장 밖으로 나옵니다. 얍복강가의 야곱의 투쟁은 보다 큰 초인간적인 힘과 겨루어 이겨낸 인간 승리의 이야기입니다. 마치 어린 다윗이 거대한 골리앗을 무너뜨리듯이 말입니다.

나는 오늘 양지관이 여러분의 얍복강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을 싸워 이기는 신앙의 승리의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 당시 종교 재판정에 섰을 때에, "주여, 내가 여기 섰사오니 나를 도우소서" 라고 기도한 것처럼,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자신과 싸워 이기는 얍복강 나루터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 2차 대전 중 나치 치하에 있던 독일의 어느 성당 지하실에서 해방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무명의 어느 유대인은 벽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새겨 놓았습니다. "나는 밤이 아무리 캄캄해도 아침 동녘이 밝을 것을 믿노라. 나는 하나님이 아무리 잠잠해도 그가 살아 계심을 믿노라."

야곱이 하나님의 사람과의 고독한 싸움을 마친 후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창 32:31)고 성서는 적고 있습니다. 야곱이 그 곳의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그 뜻은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인간이 감히 신의 신의 얼굴을 보았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간이 신의 얼굴을 보고도 살아 남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다리를 절었다는 것은 신과 겨룬 것에 대한 댓가를 지불한 것입니다.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뀐 야곱은 이제 떠오르는 해를 가슴에 가득히 받으며 형 에서의 장벽을 두려움 없이 맞부딪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양지관이 여러분에게 이번 한 00 동안 자신과의 고독한 투쟁의 장소가 되기를 바라며, 브니엘의 떠오르는 아침 햇살처럼 000에 동녘의 아침 햇살이 여러분의 가슴에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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