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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31 01:53
그리스도의 일군(고전 4:1-2)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564  
본문 말씀 고린도전서 4장 1-2절에서 사도 바울은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바울은 교회에서 직책을 맡아 봉사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요, 직책을 맡아 수고하는 자들은 자기 직무에 충실해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일군이란 말은 헬라어로 '섬긴다'는 뜻을 가진 '디아코노스'란 말에서 왔습니다. '디아코노스'는 '집사' 또는 '목사'란 의미로 번역이 되기도 하고, '일군', '종', '종업원', 또는 '섬기는 자'란 뜻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직책을 맡은 자는 집사이든지, 권사이든지, 장로이든지, 목사이든지, 모두가 다 그리스도의 일군들입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봉사자들을 임명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임명을 받아 주의 몸된 교회를 섬겨야 할 봉사자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교훈을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일군은 남으로부터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남을 섬기는 자입니다. 교회는 특성상 일군만 있는 곳이기 때문에 남을 섬기는 자만 있어야지, 남으로부터 섬김을 받는 자가 있을 수 없는 곳입니다. 성서는 교회의 일군들을 존경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성도들 위에 군림하는 것과 성도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는 줄 압니다. 높임을 받으려는 제자들에게 예수는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마 20:25-28)고 하셨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일군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란 하나님의 말씀인 구원의 계획을 풀어 가르치는 자란 뜻일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군 된 자는 말씀을 읽는 것과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군 된 디모데에게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고 하였고(딤전 4:13), 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4:2-5)고 권하셨습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일군은 모든 일에 충실한 자라야 합니다. 충성의 정도는 양의 크고 적음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예수는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작은 일에 충성된 자가 큰 일에도 충성한다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자기 아버지를 위해서 양을 칠 때, 충성된 목자였습니다. 그 후에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충성된 백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보디바의 집에 충성된 종이였습니다. 그 후에 그는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고, 충성된 백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예수의 달란트 비유에서 우리는 주인이 그 종들에게 재능의 크고 작음이나 일의 경중을 묻지 아니 하고, 맡은 일에 대한 충성여부를 묻고 칭찬도 하고 책망도 한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부자에게 세 명의 일군이 있었습니다. 이 부자가 외국에 갈 때에, 한 일군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170Kg에 해당)를, 또 한 일군에게는 금 두 달란트(68Kg에 해당)를, 또 한 일군에게는 금 한 달란트(34Kg에 해당)를 그 재능대로 맡기고 떠났습니다. 그러자 다섯 달란트의 금을 받은 일군은 그 돈으로 열심히 장사를 해서 이익을 배로 남겼습니다. 금 두 달란트를 받은 일군도 나가서 그 돈을 밑천으로 열심히 장사해서 순 이익으로 금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의 금을 맡은 일군은 게으르고 무익하여 그 돈으로 장사나 일하지 아니 하고, 땅속에 묻어 두고 말았습니다.

일년 후 부자가 고국으로 돌아와 세 일군과 함께 회계 계산을 하였습니다. 금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를 남긴 일군에게 주인은 똑같은 말로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며,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칭찬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의 금을 활용하지 아니 하고, 땅속에 묻어 두어 아무 이익도 남기지 아니한 일군에게 부자는 그의 불충성에 대한 책망과 저주로 말하기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며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고 하셨습니다. '충성'이란 헬라어 '피스토스'에서 번역된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충실한,' '믿을만한,' '의지할만한' 즉 맡은 바 일과 믿음생활에 책임감 있고, 변함없고, 성실하고, 충실하며, 믿을만 하다는 뜻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애딘바란 곳의 어떤 교회 묘지에는 개의 무덤이 있다고 합니다. 그 개의 무덤 앞에는 충성된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개를 키우다가 죽었습니다. 사람들이 죽은 개 주인을 묘지에 장사하고 다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 개는 주인의 무덤을 좀처럼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그 개를 주인의 묘지 곁에서 끌어오려고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는 수 없어 개밥을 무덤으로 날라다 주었습니다. 그러기를 14년, 이 개는 죽을 때까지 주인의 무덤을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1974년에 실린 신문기사에 의하면, 레오 포르티엘(Leo Fortier)이란 사람은 자기가 섬기는 교회에서 52년간 매 주일 종치기를 빼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90세 가까운 애버(Aber)란 성을 가진 할머니 한 분이 미국 오하오주(Ohio) 대이톤시(Dayton)에 살고 계십니다. 이 분은 목회자였던 남편이 죽자 대이톤에 거주하면서 베다니 교회를 섬기고 계신데 벌써 수 십년 째 선교위원회의 위원으로 봉사하면서 여러 나라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에게 편지를 써서 위로하고 또 보내온 편지를 게시판에 공고하는 일을 맡아 하고 계십니다. 작은 일이지만 죽는 날까지 이 일을 하리라고 다짐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치는 충성은 시종일관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충성은 환경을 초월한 것이어야 합니다. 어렵다고 뿌리치고, 시간 없다고 핑계하고, 부족하다고 빼고, 돈 없다고 사리고, 학벌 없다고 나서지 못해서도 안됩니다. 주를 위한 봉사는 어떠한 환경, 어떠한 역경에도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사랑도 하지 않는 한 남자와 결혼한 어느 여인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이 부인에게 자기가 정한 엄격한 집안규칙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새벽 5시 기상해서 6시 정각에 아침상을 차리도록 했습니다. 남편은 매사에 이런 식으로 부인을 억압하였기 때문에 이 여인의 삶은 그다지 행복한 것이 못됐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이 여인은 재혼을 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혼인을 치렀습니다. 이 여인은 어느 날 집안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옛 남편이 자신에게 엄격하게 적용시켰던 집안규칙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그것들은 매우 엄격한 규칙과 규율들 이였습니다. 그녀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녀는 습관에 따라 전 남편이 그녀에게 시켰던 대로 새 남편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전혀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새 남편에 대한 뜨거운 사랑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놀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요구가 결코 부담스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넷째, 그리스도의 일군은 일의 우선순위를 알아서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 봉사나 사회 봉사도 중요하지만 주의 일 한다고 해서 가정을 등한시한다든지, 자신의 일을 소홀히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성서는 집사에 대해서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남자만이 집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보다는 자기 책임에 성실한 자가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어야 할 것을 지적한 말씀이라고 믿어집니다.

그리스도의 일군들이 일의 우선순위를 정함에 있어서 유의해야 할 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헌신과 봉사를 요구하시기에 앞서서 우리의 마음을 요구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떠난 헌신봉사는 즉 사랑과 감사로 하지 아니하는 봉사는 원망과 불평과 불화를 낳습니다.

둘째, 소속 공동체의 구성원들과의 관계가 정상이어야 합니다. 자신의 열매를 모든 사람이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 일 때문에 가정 일에 소홀해서도 안됩니다. 가정 일 때문에 교회 일을 소홀히 해서도 안됩니다. 교회 일 때문에 학생이 공부를 소홀히 해서도 안됩니다. 공부 때문에 교회 일에 소홀히 해서도 안됩니다. 가정을 소홀히 한 채, 교회 일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자신은 구원할 수 있을지 몰라도 배우자나 자녀들을 지옥에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반대로 자기 일에만 바빠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람들 가운데 교회 일을 등한시하거나 하나님을 저버리고 구원을 상실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또 성공을 위해서 일에만 집착한 사람들 가운데 성공하고 나서 모든 것을 상실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아내나 남편을 돌보지 않음으로써 이혼이나 간통사고가 생기고 자녀들은 상처를 입게 되며, 심지어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아 얻게 되는 질병이나 과로 등으로 쓰러지는 경우를 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거둔 열매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거둔 열매를 남과 함께 나누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 성도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이 거둔 열매를 자신과 자신이 소속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나눌 수 있고, 함께 누릴 수 있는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일군은 일의 우선순위를 가릴 줄 알아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하나님의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살아가는 일군들이 됩시다. 봉사나 헌신에 앞서서 내 마음이 하나님께 드려졌는지를 살펴봅시다. 가족을 포함하여 모든 믿음의 식구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일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이러한 일군들에게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의 큰 담력을 주신다고(딤전 3:13) 약속하셨습니다. 금년 일년간 일군으로 임명되는 봉사자들은 물론이요, 모든 성도들이 다 함께 섬기는 일군, 하나님의 비밀을 전하는 일군, 충실한 일군, 일의 우선 순위를 아는 일군이 되시길 바랍니다. 죽도록 충성합시다.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