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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31 01:52
수장절을 지키라(신 16: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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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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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절은 초막절이라고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일년에 두 번 추수감사제를 갖는데 봄에는 맥추절,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킵니다. 맥추절을 오순절, 초실절, 또는 칠칠절이라고도 합니다. 수장절이 있는 달인 티쉬리 즉 시월에는 온갖 축제로 한달 내내 이어집니다. 이 달에 새해가 시작되기도 하고, '구원의 날'이라 하여 연중 가장 큰 행사를 갖는 축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있던 때에는 올림픽기간 중에 '구원의 날'이 닿아서 일부 이스라엘 나라 선수들은 이 날 경기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하루 종일 금식으로 이 날을 보낸 선수들은 다음 날 출전 경기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였습니다.
수장절은 초막절이라고도 하는 데 칠일 동안 이스라엘 남자들은 산에 올라가 나뭇가지로 초막을 짓고 그 속에서 생활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간 천막생활과 만나와 메추라기만을 먹으며 고생한 일들을 그 후손들이 경험하면서 민족에게 해방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함 이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살필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과거의 역경과 수고 그리고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으로 인한 현재의 축복을 비교하면서 어려웠던 시절을 극복하게 하시고 오늘이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장래에도 동일하게 축복하실 것을 믿고 감사제를 바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점에서 감사절이 갖는 의의는 지나온 삶을 신앙적으로 반성하고, 현재의 삶을 점검하며, 미래의 삶을 예측해 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옛적부터 한가위라 하여 음력 8월 15일이면 추석명절을 통해서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고 하늘임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민속명절인 추수감사제입니다. 신앙의 토착화라는 측면에서 한국 교회는 추석 명절에 가장 가까운 주일날에 추수감사제를 드리는 문제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추수감사제는 성서적인 모형으로 구약의 수장절에서 그 유래와 교훈을 찾을 수 있겠고, 타민족의 추수감사절 모형으로 11월 넷째 주에 드리는 미국의 추수감사절에서 그 유래와 감사절의 교훈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민족의 감사절을 소중히 여겨 기독교 예배로 정착시키는 일일 것입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제의 유래를 알자면, 영국의 종교 개혁사를 조금 언급치 않을 수 없습니다. 헨리 8세 이후 천주교회가 시련을 겪고, 개신교회가 등단하면서 피비린내 나는 뺏고 빼앗기는 교권투쟁이 천주교회와 개신교회 사이에 벌어졌습니다. 천주교인이었던 메리 튜더가 여왕이 되었을 때는 개신교 지도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결혼까지도 포기하면서 영국의 종교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섰습니다. 그녀는 비록 개신교 출신이 였지만, 개신교도들의 완강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중립 교회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영국의 성공회입니다. 영국의 성공회는 교리적으로는 개신교회 특히 장로교적 입장을 취하고, 예식이나 조직면에서는 천주교의 제도를 혼합함으로서 중립교회를 만들었습니다. 영국이 중앙집권체제인 천주교의 교권제도를 택한 이유는 영국의 왕정정치하에서 교회를 국왕의 통치아래 두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 때부터 성공회는 바티칸의 로마교황의 지배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영국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개신교 지도자들은 국가가 주도해서 만들어낸 성공회가 충분히 성서적으로 개혁되지 못했다해서 크게 반발하였습니다. 국가는 기강을 바로 잡을 목적으로 국교에 불복하는 분리교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국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국교에서 분리하였는데, 이들을 분리교회라고 부릅니다. 이들 분리교회 가운데 하나가 청교도들입니다. 개신교도들의 주장을 완강하게 물리친 국왕들은 개신교도들 이였던 엘리자베스 여왕과 그 뒤를 계승한 제임스 1세였습니다. 이들은 개신교 신자들 이였지만 영국의 장래를 위해서 분리교회들을 탄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제임스 1세 때에 최초의 공인 영어 성경인 우리가 잘 아는 흠정역이 발간되었고,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작성되기도 하였습니다.
분리파의 일부였던 청교도들은 종교의 박해를 피해서 화란의 암스테르담으로 피신하였습니다. 그들 가운데 41명의 장정과 그들의 가족을 포함한 총 102명이 무게 180톤, 길이 27미터의 배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항해에 걸린 시간은 66일, 미국 동북부 지역에 도착한 날짜는 1620년 11월 21일 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입국수속이 늦어져 배 안에서 머물러야 했습니다. 첫 겨울을 좁고 추운 배 안에서 보낸 이들은 매사추세츠의 북방추위와 전염병으로 인해서 47명이 사망하였습니다. 혹한의 겨울을 배에서 보낸 이들은 다음 해에 비로소 토지를 얻어 개간할 수 있었고, 씨를 뿌려 약간의 곡식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첫 추수가 시작되자 청교도들은 제일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바쳤습니다. 그들은 지난날의 어려웠던 일들을 돌이켜 보고, 고난 중에서도 오늘의 결실이 있기까지 지켜 주시고 도와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또 한 해의 축복을 기원하는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감사절 유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벗고나서 모세의 영도아래 광야에서 40년 동안 지내는 동안 숫한 고생과 역경을 겪었고, 가나안 복지에 들어간 후에도 원주민으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을 받았으며, 풀과 물을 찾아 떠돌던 유목생활에서 가나안에 정착하여 농경문화를 배우는 과정에서 어렵고 힘든 싸움을 오랜 세월 계속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청교도들도 종교의 박해를 피해서 윌리엄 브라드포드의 영도아래 좁은 배속에서 66일을 바다 가운데서 고생했으며, 첫 겨울에는 47명의 사망자를 묻어야 했습니다. 신대륙을 밟은 후에도 인디언들의 잦은 공격과 질병과 추위와 배고픔과 싸워야 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뱃삯으로 진 빚이 이자가 늘어 눈덩이같이 불어났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이스라엘 민족은 약속의 땅 가나안 복지에서 첫 소산으로 맥추절과 수장절 즉 초막절을 하나님 앞에서 지켰으며, 청교도들은 신천신지에서의 첫 소산으로 추수감사제를 드렸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들 두 민족이 하나님께 추수감사를 바친 것은 그 해의 수확이 대풍작이었거나 다가오는 미래가 무지갯빛이었기 때문은 아니 였습니다. 오히려 눈물과 탄식과 원망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는 정황이었습니다. 그들의 현실은 힘겨웠던 항해와 수많은 역경과 가족을 잃은 슬픔과 닥쳐올 원주민들의 습격과 혹한과 폭설에 대한 걱정과 그 나마 힘겹게 거둔 초라한 수확을 앞에 놓고 드린 뜨거운 눈물의 감사예배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말씀에서 우리는 추수감사절 예배에 대한 세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지난 일년간을 돌이켜 보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 하셨는지, 어떻게 축복하셨는지를 따져보는 시간이 추수감사절 예배가 갖는 의의입니다. 과거의 역경과 수고 그리고 하나님의 돌보심과 섭리적 역사로 인한 현재의 축복을 비교하면서 어려웠던 시절을 극복케 하시고 오늘이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신앙시 가운데 'Footprints in the Sand' 즉 '모래 위에 새겨진 발자국'이란 시가 있습니다. 이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나는 한 꿈을 꾸었다. 지평선 너머로 나의 삶이 섬광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주님과 함께 해변을 걷고 있었다. 백사장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하나는 나의 것이었고, 또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다. 나의 삶의 마지막 장면들이 내 앞에 전개되었을 때, 나는 모래 위에 새겨진 지나온 발자국들을 뒤돌아보았다. 놀랍게도 내가 지나온 그 길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만이 새겨진 곳들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그 시기들이 내게 있어 가장 지치고 슬펐던 때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주님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주님, 당신께서는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언제나 저와 함께 걷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저의 삶에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들 동안에 단지 한 사람의 발자국이 새겨진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한 그 때마다 주님은 왜 저의 곁을 떠나셨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사랑하는 자녀야, 네가 당한 시련의 때에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 않았단다. 한 사람의 발자국만이 새겨진 것은 그 때마다 네가 너를 안아 지나갔기 때문이란다."
이와 같이 오늘 우리는 이 추수감사절 예배를 통해서 지나온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고 오늘 나의 있음과 나의 가진 것이 내가 의식했던지 의식하지 못했던 지간에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의 보살핌에 의해서 이루진 것임을 깨닫게되는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과거에도 함께 하신 은총의 하나님께서 장래에도 크신 은총과 축복으로 함께 하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리는 시간이 추수감사절 예배가 갖는 의의입니다. 15절의 말씀에 의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일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온전히 즐거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감사절 예배에는 지나온 삶을 신앙적으로 반성하고, 현재의 삶을 점검하며, 미래의 삶을 예측해 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에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서 모든 일을 좋은 결과로 이끌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에도 복주신 하나님께서 장래에도 크게 복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는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각자 힘닿는 대로 하나님께 예물을 바쳐 감사를 표시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추수감사절 예배가 갖는 의의입니다. 16-17절 말씀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빈손으로 하나님께 나오지 말고 동전 한 닢이라도 정성을 담아 하나님 앞에 바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린 헌물에 30배 60배 혹은 100배의 축복을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뜻 깊은 감사절 예배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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