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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6-22 01:34
진정한 예배(요 4:20-24)
 글쓴이 : 김종기
조회 : 2,429  
옛날 사마리아라고 하는 성안에 야곱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야곱은 그곳에 우물을 파서 그 물을 먹고 살았으며, 그의 후손들도 그 곳의 우물 물을 길어다 먹는 아주 귀중한 우물이 있었는데, 그 우물의 이름을 "야곱의 우물"이라고 합니다. 어느날 예수께서 제자들과 같이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시는 중에, 이 야곱의 우물 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본래 유대인과 같은 민족이었으나 중간에 서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사마리아에 사는 사람들이 어려운 때에 유대인들처럼 정절을 지키지 못하고, 이방인과 교제하며 통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들을 불결하다 하여 이방인이라고 불렀고,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땅에 발도 드려놓지 아니하는 풍습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유대인들이 유대지방에서 갈릴리 지방으로 가려면 불가불 사마리아를 통과해야 했지만, 불결한 사마리아 땅을 밟지 않으려고 요단강 동편으로 멀리 돌아가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아주 천하게 여기는 사마리아 땅에 처음으로 발을 드려 놓은 것입니다. 즉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풍습을 깨뜨리고 담대히 사마리아로 통과하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때 마침 사마리아의 어느 여인이 물을 길로 나와서 예수님과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본래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상대도 하지 아니하는데, 예수께서는 더욱이 남자도 아닌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청하니, 사마리아 여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그 여자의 본색을 잘 알고 있는 예수께서는 생명수에 대한 것을 전도함으로서 그의 심리를 뒤집어 놓으려 하였던 것입니다.

즉 예수께서 물을 달라고 청할 때 그 여자는 말하기를, 남녀가 유별한 데, 당신은 유대인으로 어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청하느냐고 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물은 먹어도 목이 마르지마는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하시니, 사람이란 누구나 수고를 아끼려는 심사가 있는 고로 이 여자도 역시 예수의 말에 혹하여 어찌해야 그러한 물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내가 이 물을 네게 줄 터인데, 먼저 너의 본색을 알아야 하겠으니, 네 남편을 데리고 오라"고했습니다. 여인이 말하기를,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기를, "너의 남편은 다섯이 있었는데, 지금 있는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맞는구나." 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이 사마리아 여인은 다섯 번이나 시집을 갔었고, 지금은 아내가 있는 유부남을 취하여 사는 즉 첩살이로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아무도 모르는 자기의 비밀을 예수께서 아시는 것을 보고 과연 선지자이심을 알아 차렸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예수님께 예배에 대하여 질문을 합니다. 예수께서는 여인에게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신다고 대답했습니다.

인간은 본시 종교적 동물입니다. 하나님께 지음을 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동물인데, 중간에 이것을 잊어 버리고 하나님 대신에 돌이나 물, 나무, 짐승 같은 우상에게 예배하는 어리석음에 빠져 버렸습니다.

인간은 무엇이든지 예배하기를 참으로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그러기에 오래된 고목나무나 웅장하게 생긴 바위 밑에서 또는 호랑이를 산신령이라고 숭배하고 돌부처나 달에게까지도 절을 하고 복을 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까닭은 사람은 본래 종교적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드리는 예배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면,

첫째, 헛된 예배가 있습니다(막 7:6-9). 입술로는 하나님께 예배를 하나 그 실상에 있어서는 전혀 딴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수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성경에 계시된대로 예배를 드리는 곳이 과연 몇 군데나 있을까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로마 카톨릭교의 예배도 이와 같습니다.

둘째, 무식한 예배입니다(행 17:23). 아테네는 온갖 잡신들을 섬기는 다신교의 고장입니다. 아테네에는 목신, 수신, 석신, 일신, 등 여러 가지 신들을 만들어 가지고 섬기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이 다니다가 한 곳에 이르러 "알지 못하는 신"이라고 쓴 제단을 본 것도 실상은 저들이 "알지 못하는 신"을 만들었든 것입니다. 알지 못하고 섬기는 것은 복음을 듣지 못한 연고인고로 바울은 그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도하였습니다.

셋째, 참된 예배가 있습니다(요 4:24). 옛날이나 현재에도 하나님을 우상시하는 예배자가 많습니다. 마치 그 옛날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하나님이다."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또는 금으로 십자가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니면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초상화 그림을 집안에 걸어 놓으면 잡귀가 물러가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이 얼마나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는 처사입니까?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참된 예배는 그 예배의 대상이 옳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까닭에 미신적으로 숭배하면 용납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영이신 하나님이 사람의 수공물에 있는 것처럼 착각해서는 큰 일입니다. 심지어는 교회 내에서도 우상숭배하는 예배가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 탐심을 곧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탐심은 무엇입니까? 땅에 있는 자기의 지체를 죽이지 못하고 욕심껏 요구만 하는 것이 곧 탐심입니다. 자기가 하나님께 받을 만한 일을 하고 구하는 것은 좋으나 주의 뜻을 이행치 아니하고 구하기만 하는 것, 이것이 곧 탐심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10절에 예수께서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예배의 대상을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9절에도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되,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예배는 어떤 예배입니까? 그것은 성경에 계시된 예배여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성경대로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대로 성경을 무시하고 드리는 예배는 결코 신령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일을 경솔히 여기는 자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정반대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배란 잘못하면 형식화되기 쉽습니다. 아무리 곤경한 때에라도 예배를 드리고 안드리는 것은 각자의 마음에 달려 있을 것이나 주님의 명령은 대통령의 그것보다도 무겁고 더욱 무섭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전시라고 해서 주일을 무시하는 나라는 결코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를 밝히 깨달아서 어떠한 난관에 처하더라도 성실하게 예배드리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1953년 3월 1일 주일 낮 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