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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7-21 07:25
헌신과 신앙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768  
사도신경
찬송가 399장
성경 : 출애굽기 19:1-8, 24:3-11
제목 : 헌신과 신앙
일자 : 2004년 10월 28일

인간사회는 계약사회입니다. 국민은 국가와 사회계약을 맺고 있고, 우리 교직원들은 학교와 학생과 교직원상호관계에서 사회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계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계약 곧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헌신이나 충성이란 말은 다 이 ‘약속에 대한 의무를 이해득실과 상관없이 성실하게 이행하는 것’ 또는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 몸을 바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신실,’ ‘충실,’ 또는 ‘충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때에 “신실하시다” 또는 “미쁘시다”고 합니다. 이 말의 뜻은 ‘믿을만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과 맺은 계약 또는 약속을 실패 없이 반드시 지키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한번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역사관이고 신앙인에게 요구되는 믿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 걷고 또 걸어서 시내 광야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시내산 앞 광야에 가족 단위의 텐트를 치고 야영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산으로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는지를 너희가 보았다. 세계가 다 내 것이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백성의 대표들을 불러 놓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을 전달했습니다. 모세의 말을 전해들은 백성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이행하겠습니다.” 이 약속으로 인해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선민이 되었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이 약속을 우리는 시내산 계약이라고 말합니다.
구약시대에 활동한 예언자들은 언제나 이 시내산 계약을 근거로 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앙을 꾸짖기도 하고, 회개를 촉구하기도 하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닥친 불행의 원인을 찾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산 계약에 충실했을 때에 축복을 받았고, 시내산 계약에 불성실했을 때에 외침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불행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만큼 시내산 계약은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선민으로 남게 하는 중요한 고리의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탈출하여 세례를 통해서 죽음의 바다를 건넜고, 이제는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신앙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인들은 침례 또는 세례서약을 통해서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우리의 구세주로 모시고 죽도록 충성하여 섬기기로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택하신 족속으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한 나라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벧전 2:9) 삼으셨습니다. 그로부터 우리의 행복과 불행은 이 약속의 이행여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두 남녀가 결혼식 때에 혼인서약을 합니다. 남편은 부인에게, 부인은 또한 남편에게 각자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 할 것을 맹세합니다. 부부란 결국 이 약속으로 맺어집니다. 그래서 부부관계는 피차에 사랑하며 혼인서약을 성실하게 지켜 갈 때에 행복이 있고, 어느 한 쪽에서 약속을 어기고 부정한 일을 했을 때에 불행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과 아담은 선악과라는 나무를 사이에 두고 서로 약속을 합니다. 계약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에게 말했습니다.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마음대로 먹어도 좋다. 다만 선악을 알게 하는 이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라. 이 열매를 먹으면 죽는다(창 2: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담과 이브도 그렇게 하마고 약속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선악과에 무슨 신비한 능력이 있어서 먹으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것이 아니고, 선악과에 무슨 독이 있어서 먹으면 죽는 것도 아닙니다. 이 나무는 혼인 때에 나누어 끼는 결혼식 반지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계약이 성립되었음을 상징하는 증표입니다. 이 약속이 지켜지면 선이고, 깨지면 악입니다. 선은 행복이고, 악은 불행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는 이 약속을 깨고 맙니다. 깨고 싶은 충동도 있었을 것입니다. 깨고 나서 찾아 올 결과가 궁금했는지도 모릅니다. 계약이 깨졌을 때에 인간에게 부과된 결과는 수치심과 불안과 초조함과 소외감과 죄의식 이였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아주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매우 불편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 불편은 결국 인간관계의 불편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사이가 나빠졌고, 가인과 아벨의 사이도 나빠지면서 가정불화의 악순환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아담은 이브에게 책임을 전가했고, 이브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과 맺은 약속의 파기를 하나님의 책임으로 돌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먹지 말라고 명한 그 나무 실과를 왜 먹었느냐고 물었을 때에 아담은 대답하기를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이브에게 먹지 말라고 명한 그 나무 실과를 왜 먹었느냐고 물었을 때에 이브는 대답하기를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여자와 뱀을 만든 장본인이십니다. 여자 또는 뱀이 아니었던들 약속을 깨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이 깨진 것은 전적으로 이들을 만든 당신의 책임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과 인간관계는 깨지고 말았습니다. 인간관계도 깨지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가족관계도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인간 사회의 악순환은 결국 인간과 자연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땀 흘려 일해야 입에 풀칠을 할 수 있게 됐고, 또한 자연을 착취하게 됨으로서 자연은 인간에게 엉겅퀴와 가시를 주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자연계의 악순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것은 인간 사회에 헌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부부는 결혼서약을 저버리고, 자녀는 부모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신앙인은 교회의 의무를 저버리고, 시민은 국가와 사회의 법을 무시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인간 사회는 계약 사회입니다. 계약이 지켜지지 않으면 그 사회는 붕괴되고 맙니다. 우리는 약속에 충실해야 합니다. 이것이 책임사회를 구현하는 우리 신앙인들의 헌신의 일부분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헌신하지 못할 때에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부부사이에 서로 헌신하지 못할 때에 부부는 멀어집니다. 형제사이에 헌신하지 못할 때에 형제사이는 멀어집니다. 인간이 마땅히 자연에게 베풀어야 할 일들을 하지 않고, 자연을 훼손 할 때에 자연은 우리에게 불이익을 되돌려 줍니다. 우리가 속한 국가, 사회, 학교, 직장, 교회 공동체, 가정 공동체 모두가 약속으로 합의된 공동체입니다. 약속을 지키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헌신할 때에 그 공동체는 건실하게 발전됩니다. 헌신은 그래서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