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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7-21 07:19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403  
사도신경
찬송가 93장
성경 : 이사야 14:12-19
제목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일자 : 2004년 12월 28일

12월은 내려옴의 소중함 또는 낮아짐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는 대강절 절기가 있는 달입니다. 올라가는 것 또는 오르는 일은 가치 있고, 소중한 일이며, 즐거운 일이지만, 이 보다 더 소중하고, 더 가치 있는 일이 내려오는 것 또는 낮아지는 것이란 사실을 우리 주님의 강림을 통해서 배웠으면 합니다.
오르는 일보다는 내려오는 일이 항상 더 위험하다는 것을 평소 많이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높은 나무에 올라갔을 때, 지붕에 올라갔을 때, 내려갈 일이 걱정스러웠던 경험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무작정 오르기보다는 내려올 일을 미리 걱정해 두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미궁속이라도, 실타래를 풀면서 들어갔다가 나올 때 실을 따라 나오면 미궁을 탈출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무작정 들어가거나 무작정 오르기보다는 나올 때나 내려올 때의 일을 걱정해 두는 사람이 자기실타래를 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높아지기만을 바라고 낮아질 줄 모르는 사람을 향해서 예수님은 누가복음 14장 11절에서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일에서 가장 큰 의미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다는데 있습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는 것, 이것이 순리이고 자연의 법칙입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분수의 물도 오를 수 있는 곳까지 오르면 반드시 추락하고 맙니다. 물체는 받쳐놓거나 붙들어 매놓지 않으면 반드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추락합니다. 물체를 치솟게 할 수는 있지만, 높이 오른 물체일수록 내려올 때에는 가속도가 붙게 되어 점점 빨라지고 중량도 커져서 추락의 정도가 심해집니다. 땅바닥에 발을 붙이고 사는 것이 자연스럽고 순리적인 것인데, 인위적으로 높이 오르려고 하면, 반드시 추락하여 상처를 입습니다.
‘오만’은 인간을 파멸의 구덩이로 몰아갈 가공할 내면의 적이란 사실을 눈치 채는 사람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역사가 토인비는 지구상에서 한 때 찬란한 꽃을 피웠지만, 시들고 멸망해 버린 21개의 문명들을 연구한 끝에 결론내리기를, 21개의 문명들 가운데 19개 문명이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적, 곧 내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멸망했다고 하였습니다. 이 ‘내부의 적’이 바로 ‘오만’입니다. 토인비는 ‘오만’을 ‘자기우상’이란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인간의 문명이 쇠퇴되고 해체되는 것을 토인비는 ‘네메시스’ 곧 ‘응보’라고 불렀습니다.
사도행전 27장 5절에 보면, 지금의 터키 땅 남쪽 해안에 루기아 도가 나옵니다. 옛날, 이곳 왕국에서는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키마이’라는 괴물이 있었는데, 왕은 그 괴물을 퇴치할 용사를 찾고 있었습니다. 키마이는 머리가 사자와 산양을 합친 듯했고, 꼬리는 용과 비슷했는데, 입으로는 불을 뿜어내기 때문에 이 괴물을 물리치고 살아 돌아온 용사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난공불락의 요새가 있으면 그것을 무너뜨리는 영웅이 나타나듯이, 이 키마이를 물리친 용사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이 벨레로폰입니다. 벨레로폰이 괴물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가 몇 가지 있었는데요, 첫째는, 그가 괴물을 퇴치하러 가기 전에 제일 먼저 예언자(폴뤼이도스)를 찾아가 자문을 구한 일입니다. 예언자는 키마이를 죽이려면 하늘을 나는 말인 페가소스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벨레로폰이 말했습니다. “페가소스는 하늘을 나는 천마가 아닙니까? 천마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황금고삐에만 복종한다는데, 내가 무슨 수로 그 고삐를 구하겠습니까?” 예언자는 신에게 간절하게 간구하면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벨레로폰의 경건한 신앙심 때문이었습니다. 길을 떠난 벨레로폰이 한 도시에 이르러서보니, 동쪽에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신전이 있고, 서쪽에는 애욕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두 신전 중 한 곳에서 하룻밤을 묵어가야하는데, 벨레로폰은 지혜의 신 아테나 신전을 선택했습니다. 애욕의 여신 아프로디테 신전의 여사제들은 나그네들에게 웃음을 파는 성창들이었기 때문에 벨레로폰으로써도 여간 마음이 쓰이고 끌리는 것이 아니었지만, 예언자의 충고를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밤에 아테나 여신이 꿈에 나타났습니다. “저 애욕의 신전에 들지 않고 이 지혜의 신전에 든 너의 선택이 기특하다. 너에게 황금고삐를 내릴 것인즉, 페가소스를 붙잡아 뜻하던 바를 이루라.”고 하였습니다. 벨레로폰이 꿈을 깨어보니, 과연 황금고삐가 옆자리에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벨레로폰은 예정대로 천마 페가소스를 붙잡아 탔고 키마이를 죽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한낱 인간에 불과한 벨레로폰이 그의 작은 믿음 때문에 날개 달린 천마 페가소스를 얻어 탈수가 있었고, 천마 페가소스의 날개 덕분에 괴물을 물리치고 영웅의 자리에 오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벨레로폰의 마음에 ‘오만’(Hybris)이란 이름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 도지고 말았습니다. 이 오만은 사람의 마음속에 만들어지기 쉬운 ‘자기우상’인데요, 자기우상숭배에 빠지게 되면 여기에 상응하는 네메시스, 곧 업보를 받게 되는데요, 벨레로폰도 이 업보로 인해서 추락하고 맙니다.
벨레로폰은 천마 페가소스를 타고 신들의 보좌에까지 오르고 싶어졌습니다. 신들의 보좌에까지 오르고자한 오만함이 주변 사람들에게는 또 어떻게 나타났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 남으실 것입니다.
벨레로폰은 페가소스를 타고 하늘궁전을 향해서 오르고 또 올랐습니다. 제우스가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려니까, 벨레로폰이 하는 짓이 우습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날벼락을 던져 태워버릴까 하다가 생각을 바꿔서 말의 몸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는 강력한 ‘등에’ 한 마리를 만들어 페가소스의 꼬리 밑에 붙어 피를 빨게 하였습니다. 페가소스가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벨레로폰은 천마의 등에서 튕겨 나와 지상으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날개 달린 페가소스가 몸을 날려 벨레로폰을 받아 줄만도 했지만, 그는 이미 신의 노여움을 받은 터라 페가소스로써도 그런 너그러운 자비를 벨레로폰에게 베풀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벨레로폰은 ‘방황의 들’이라고 불리는 알레이온 벌판에 떨어졌는데요, 갈대숲덕분에 목숨만은 잃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절름발이에 장님까지 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길만 골라 세상을 ‘방황‘하다가 쓸쓸하게 죽었다고 합니다.
날개가 있다고 하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요 축복일 수 있지만, 경건성을 잃고 자만하는 순간 추락하게 된다는 귀중한 교훈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천벌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날 평지에서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에게 언어에 혼잡이 오고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 땅으로 추락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때 그 영광이 새벽별처럼 빛났던 자가 하나님의 보좌를 넘보는 오만과 자기우상숭배로 인해서 무덤에조차 묻히지 못하고, 음부 곧 깊은 웅덩이에 빠져, 버려진 나뭇가지처럼, 칼에 찔려 돌구덩이에 버려진 시체들에 짓눌리고, 발에 짓밟힌 시체와 같은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반대로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이들로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또 모든 입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주로 시인하게 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고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 우리 자신을 낮출 뿐 아니라,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겸손한 자의 삶을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높이시고 영광을 받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런 영광과 축복이 00 공동체내에 있기를 주님으로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