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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5 23:14
감사, 그 역설적인 표현[빌1:1-6, 살전5:16-18]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093  
서울연세의료원(세브란스) 심장병동 병실에 다음과 같은 기도문이 걸려 있어 입원 환자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줄 뿐만 아니라 내방객들에게도 신앙적인 도전을 주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주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로 인해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일이 제대로 안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이 반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 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부모와 동기가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로 인해 인간 된 보람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는데 힘겹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서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진실로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님!
이 모든 일로 감사할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모든 일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문은 기독교인의 감사가 얼마나 역설적인 표현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이다.
빌립보서는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사도 바울이 주후 60년에서 63년 사이에 로마의 옥중에서 기록한 서신이다.
먼저 빌립보 교회의 역사적인 배경에 관해서 간략하게 말씀드리겠다.
빌립보는 금과 은이 많은 지역으로써 알렉산더 대왕의 부친 빌립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도시였다. 또 빌립보는 주전 27년에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가 된 옥타비우스가 삼두통치 때인 주전 33년에 안토니우스와 힘을 합쳐 로마공화정의 마지막 옹호자이며, 시저를 살해한 브루투스와 케시우스를 물리치고 로마제국을 탄생시킨 전투지었으며, 전투이후 로마의 직할시로 책정된 도시였다. 따라서 빌립보에 사는 사람들은 로마시민권의 소유자였으며, 자치와 황제에게 바치는 세금면제와 이태리에 사는 사람들과 동등한 권리를 누렸다.
빌립보는 바울이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본 후에 건너가 유럽 최초의 교회를 세운 곳이며, 바울 일행이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으로부터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힌 최초의 장소이다. 마게도냐는 칼로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의 고향이었다.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본 바울은 복음으로 온 유럽을 정복할 비전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빌립보 교회는 자주색 옷감 장사 루디아와 점치는 노예소녀와 감옥의 간수 가족으로 시작된 교회로써 몹시 가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보 교회는 기쁨이 충만했으며, 매우 적극적으로 선교에 동참했다. 이런 사실은 고린도후서 8장 1절 이하에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빌립보 교회를 소개하는 다음과 같은 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빌립보 교회가 환난의 많은 시련과 극한 가난에도 불구하고 기쁨이 충만했고 풍성한 연보로 선교에 동참했다는 사실은 기독교인의 감사가 얼마나 역설적인 표현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이다.
빌립보서는 감옥에 갇힌 바울에게 선교헌금을 보낸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편지이며, 바울이 옥중에서 부른 감사의 노래이다.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서 빌립보 교인들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할뿐 아니라, 자신의 투옥이 결단코 복음의 퇴보가 아님을 알리고, 선교헌금을 가져다 준 에바브로디도를 되돌려 보내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 편지에서 바울은 '기쁨'에 관한 단어를 열 여섯 번이나 반복해서 사용했다. 이 편지가 감옥에서 기록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기독교인의 기쁨과 감사가 얼마나 역설적인 표현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이다.
빌립보서가 바울이 옥중에서 부른 감사의 노래라면, 빌립보 교회는 옥중에서 부른 감사의 노래로 세워진 교회이다. 바울이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고 실라와 누가와 함께 마게도냐로 건너가 빌립보에 도착했다.
바울 일행이 빌립보에 도착했으나 전도의 대상을 찾기가 만만치 않았다. 바울은 선교지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유대인들의 회당이었다. 회당에는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많은 수의 헬라인들이 안식일에 모여 예배하였기 때문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소개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실제로 많은 수의 헬라인들이 소수의 유대인들을 포함해서 바울의 설교를 듣고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그런데 빌립보에는 유대인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인지 회당이 없었다. 그래서 바울 일행은 안식일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성문밖에 흐르는 강가로 나가 보았다. 마침 강가에는 여러 명의 여자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해서 복음을 전했다. 그 가운데 지금의 터키 지방인 두아디라성에서 자주 색 옷감 장사를 하던 하나님을 경외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씀을 듣고 가족과 함께 침례를 받고 기독교에 개종했다. 그날로 루디아는 바울 일행을 집으로 영접하여 그들이 마음놓고 전도할 수 있도록 숙식을 제공했다.
바울 일행이 다시 기도처에 가다가 점치는 노예 소녀를 만났다. 이 노예 소녀는 점을 쳐서 그 주인들에게 많은 돈을 벌어 주고 있었다. 이 소녀가 바울 일행을 좇아 다니며 소리지르기를,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다."라고 하면서 여러 날을 심하게 괴롭혔다. 이 일로 바울이 너무 괴로워서 그 소녀의 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좇아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노예 소녀의 주인들은 돈줄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체포해서 공무원들에게 끌고 갔다. 공무원들은 바울과 실라를 빌립보성을 통치하는 최고 지도자들에게 끌고 가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고 고소했다. 재판석에 앉은 상관들은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곤장을 치게 한 후에 감옥에 가두게 하였다. 단단히 가두어 지키도록 명령을 받은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들의 발에 착고를 채워 도망할 수 없도록 단단히 묶었다. 캄캄한 밤중에 바울과 실라는 피투성이의 몸으로 옥중에서 감사의 기도와 찬양을 불렀다. 이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묶인 것이 풀렸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로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했다. 그 때 바울이 간수를 불러 죽지 말도록 말렸다. 간수가 등불을 들고 감옥에 들어가 죄수들 가운데 아무도 탈출한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 일 후에 간수는 자기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 때 바울이 대답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깨달은 간수와 그의 가족은 바울과 실라의 매맞은 곳을 치료해 주고 침례를 받고 빌립보 교회의 세 번째 식구가 되었다.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부른 감사의 찬양은 기독교인의 기쁨과 감사가 얼마나 역설적인 표현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이다. 옥중에서 부른 감사의 찬송은 그들 자신들을 옥중에서 구원했을 뿐 아니라, 간수와 그의 가족을 구원하는 놀라운 능력의 힘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벗고나서 모세의 영도아래 광야에서 40년 동안 지내는 동안 숫한 고생과 역경을 겪었고,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에도 원주민으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을 받았으며, 풀과 물을 찾아 떠돌던 유목생활에서 가나안에 정착하여 농경문화를 배우는 과정에서 어렵고 힘든 싸움을 오랜 세월 계속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이스라엘 민족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얻은 첫 소산으로 일년에 두 차례 맥추절과 수장절을 지켰다. 그들이 감사절을 지킨 것은 그들이 차지한 땅이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토지였고 또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차지한 토지의 대부분은 중부 산악지역에 위치한 황무지였고, 고인물이 없어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만 의존해야 하는 땅이었다. 수확이 풍성할 리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를 잊지 않았다. 이스라엘 민족이 역경 중에서 드린 수장절 예배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감사가 얼마나 역설적인 표현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이다.
청교도들도 종교의 박해를 피해서 윌리엄 브라드포드의 영도아래 좁은 배속에서 66일을 바다 가운데서 고생했으며, 첫 겨울에는 47명의 사망자를 묻어야 했다. 신대륙을 밟은 후에도 인디언들의 잦은 공격과 질병과 추위와 배고픔과 싸워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뱃삯으로 진 빚이 이자가 늘어 눈덩이같이 불어났다. 이런 와중에서도 청교도들은 미국에서 얻은 첫 소산으로 추수감사제를 드렸다. 이들이 하나님께 추수감사를 바친 것은 그 해의 수확이 대풍작이었거나 다가오는 미래가 무지갯빛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눈물과 탄식과 원망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는 정황이었다. 그들의 현실은 힘겨웠던 항해와 수많은 역경과 가족을 잃은 슬픔과 닥쳐올 원주민들의 습격과 혹한과 폭설에 대한 걱정과 그 나마 힘겹게 거둔 초라한 수확을 앞에 놓고 드린 뜨거운 눈물의 감사예배였다. 청교도들이 역경 중에서 드린 추수감사 예배는 기독교인의 감사가 얼마나 역설적인 표현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이다.
기독교인의 삶은 역설적이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고, 찬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찬양하고,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도하고,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뻐하고, 흑암에서 빛을 보고, 혼돈 중에서 질서를 추구하며, 죽음의 상태에서 생명을 확신하는 삶이다. 신앙의 선배들은 이렇게 살았고 또 성공했다. 감사해야 할 때에 감사하지 못하고, 찬양해야 할 때에 찬양하지 못하고, 기도해야 할 때에 기도하지 못하고, 기뻐해야 할 때에 기뻐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감사할 일에 감사하는 것, 찬양할 일에 찬양하는 것, 기도할 일에 기도하는 것, 기뻐할 일에 기뻐하는 것을 누군들 못하겠는가? 그러나 기독교인의 삶은 그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