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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5 23:12
감사의 기적(1) [요6:1]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627  
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여자와 아이들을 뺀 13세 이상의 남자만 무려 오 천명이 먹고도 남은 음식이 열두 바구니에 찼다는 이야기는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으로써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다 나오는 유일한 기적이다.
그런데 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가 변하여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된 데는 단지 두 종류의 감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첫째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은혜를 받았던 한 소년이 자신의 음식을 예수께 드린 정성이 담긴 감사이다. 둘째는 이 음식을 받아든 예수께서 하나님께 축사를 드린 감사이다. 우리말 성경에 쓰인 '축사'란 말은 헬라어 '유카리스테오'(          )를 번역한 말로써 '감사하다'란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께서 행하신 가장 유명한 기적이 한 소년의 정성어린 감사의 드림과 예수의 감사의 기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이 기적을 통해서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는가, 또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감사에 관해서 몇 가지로 생각해 보고자한다.
첫째,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늘 감사해야한다.
사람이 살면서 다른 사람의 은혜를 입지 않고 살수는 없다. 인간사회란 서로 도움을 주고 또 도움을 받는 사회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도움을 줄 때, 도움을 받는 사람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신중해야 하고, 도움을 받을 때, 도움을 준 사람이 실망하지 않도록 감사표시를 해야 한다.
감사는 기적을 낳는다. 감사의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는 돈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감사의 방법이고, 둘째는 돈이 조금 들어가는 감사의 방법이다. 가장 기본적인 감사의 방법은 말로써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그 다음 단계의 감사의 방법은 선물로써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다. 이 방법에는 약간의 돈이 들어간다. 그런데 감사는 말로써 하든지, 혹은 선물로써 하든지 간에 기적을 낳는다. 어린 소년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고마움의 표시로 자신의 도시락을 예수께 드렸을 때에, 또 예수께서 말로써 하나님께 고마움을 표시했을 때에 엄청난 기적이 일어난 것과 같다.
고마움을 말로 표현해서 소득을 본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다.
어느 해 독일 전역에 흉년이 들었다. 대다수 국민들이 기근으로 몹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비교적 넉넉한 삶을 살고 있는 노부부가 있었다. 이 노부부는 어느 날 동네 공터에서 놀고 있는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바싹 마른 아이들에게 빵을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곧 집에서 빵을 여러 개 구운 뒤 그것을 공터로 가지고 나와 배고픈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이 바구니에는 너희들 한 사람이 한 개씩 먹을 수 있는 빵이 있단다. 모두 한 개씩만 가져가거라. 내일 오면 또 빵을 주마."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서로 큰 빵을 차지하려고 달려들었고, 크다 생각되는 빵을 집어들고는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늘 모두가 빵을 다 가져간 뒤에야 마지막 남은 작은 빵을 집어드는 소녀가 있었다. 크레첸이라는 이름의 그 소녀는 언제나 가장 작은 빵이 자신의 차지가 되었지만,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노부부는 그런 크레첸을 매우 기특하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노부부가 나눠준 빵을 감사히 받아들고 돌아온 크레첸은 동생과 함께 먹기 위해 빵을 쪼개다가 그 안에서 반짝이는 은화 여섯 닢을 발견했다. 크레첸은 깜짝 놀라 얼른 은화를 가지고 노부부에게로 달려갔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크레첸을 향해 빙긋이 웃으시며 말했다. "이 은화는 감사할 줄 아는 착한 아이에게 주기 위해 제일 작은 빵을 만들 때 넣은 거란다. 크레첸, 네게 주는 선물이다." 할아버지는 크레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고마움을 선물을 표시해서 소득을 본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다.
옛날 어느 마을에 마음씨가 착하고 부지런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그 농부가 어느 해에 무를 밭에 심었더니, 농사가 잘 되어서 거의 사람 몸뚱이 만한 무를 수확했다. 농부는 이렇게 잘된 무를 혼자 먹기가 너무 아까웠다. 이 농부는, 농사가 잘된 것이 그 고을을 잘 다스려 준 원님 덕분이라 생각하고, 그 무를 잘 포장해서 원님께 갖고 갔다. 원님은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칭찬한 뒤에, 하인을 불러 요즘 관가에 들어 온 것 중에서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하인은, 최근 들어 큰 황소 한 마리가 들어 온 것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원님은, 그 황소를 끌어다가 이 농부에게 주라고 했다. 마음씨 착한 농부는 무 한 개를 바치고, 그 대신에 크고 좋은 황소 한 마리를 얻게 되었다. 이 소문이 온 동리에 퍼졌다. 그런데, 그 마을에 심보가 고약한 농부 한 사람이 생각하기를, "무 한 개를 바치고 황소 한 마리를 얻었으니, 내가 황소 한 마리를 바치면, 이번에는 땅이라도 몇 마지기 얻을 수 있겠지!"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집에서 키우고 있는 황소를 끌고 원님에게 갔다. "원님, 저는 오랫동안 집에서 황소를 길러 왔습니다만, 이렇게 크고 좋은 황소는 처음입니다. 이것이 다 원님께서 백성을 잘 다스려 주신 덕분인 줄 알고, 이 황소를 바치려고 가져왔습니다." 원님은 이 말을 듣고, 농부의 마음씨가 착하다고 칭찬한 다음에, 하인을 불러 요즈음 관가에 들어온 것 중에서 귀한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하인이 하는 말이, 며칠 전에 들어 온 크고 잘 생긴 무가 있다고 했다. 원님은 그 무를 이 농부에게 갖다 주라고 했다. 농부는 이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농부는 별 수 없이 무 한 개를 들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마음씨 착하고 부지런한 농부가 행한 것처럼 진실한 고마움의 표시는 소득을 낳고, 때로는 큰 기적을 낳기도 한다.
둘째,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선물들을 주셨다. 제1장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이란 주제로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게 존재하시는 것이나 자주 침묵하시는 것,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성과 자유의지를 주신 것, 또 그것 때문에 이 세상에 죄와 고통이 존재하는 것, 인간들의 끊임없는 배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으시고 재계약을 맺으시는 것, 재림을 미루시며 심판을 보류하시는 것,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신 것, 우리를 대신해서 화목제물이 대신 것, 구원과 성령을 선물로 주신 것' 등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희생에서 비롯된 것이다 라는 말씀을 드렸다. 이렇게 두 차례에 걸쳐서 장황하게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에 관해서 말씀드린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말씀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린도후서 9장 15절을 보면,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주셨다.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았다. 우리의 몫인 저주와 죽음을 취하시고, 그 대신 하나님의 몫인 축복과 영생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것은 다 주셨다. 숨겨놓고 주지 아니한 것이 없다. 더 이상 우리가 하나님께 바랄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을 다하셨다. 이제는 우리 차례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혹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야할 차례이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서 사는 자녀들이 부모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부모는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그들을 위해서 모든 일을 한다. 먹을 것, 입을 것, 학비, 책값, 교통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신다. 그런 부모에게 자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자녀가 부모에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단 한가지뿐이다. 부모에게 감사하는 일이다. 부모에게 감사할 줄 아는 자녀라면, 아마 효성을 다할 것이다. 부모의 뜻을 따라 살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해야할 일도 감사뿐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성도라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할 것이다.
학교나 교회의 선생님들께도 마찬가지이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다 잘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학생들의 발전과 목적달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도와준다. 그런데 학교 선생님들은 급료를 받아가면서 한다지만, 교회의 선생님들은 자기 돈과 시간까지 바쳐가면서 학생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학생들이 대체적으로 학교 선생님들의 말씀은 잘 듣는 편이다. 그런데 교회 선생님들의 말씀은 잘 듣지 않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교회 선생님들은 학교 선생님들보다 더 큰 희생을 하시는 분들이다. 교회의 선생님들은 대가를 바라고 일하지 않는다. 대가는 고사하고 오히려 많은 것을 희생하신다. 이런 선생님들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치 않는다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선생님의 수고를 덜어드리고 또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시면서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십분의 일뿐이다. 하나님께서 열 개를 주시면서 하나만 되돌려 달라고 말씀하신다. 부유하고 친절한 동네 할아버지가 어린아이에게 사탕 열 개를 주셨다고 가정해 보자. 할아버지가 주신 사탕 열 개는 모두가 그 아이의 것이 된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그 가운데서 하나만 자기가 먹게 달라고 했다고 하자. 독자 같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사탕을 열 개나 주신 분이니 하나쯤 얼른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많다. 어리석은 아이가 열 개를 받고도 그 중의 하나를 내놓지 않으려고 욕심을 부리는 것처럼 우리들의 생활도 마찬가지일 때가 얼마나 많은가? 부유한 할아버지가 열 개를 주고 하나를 되돌려 달라고 했을 때에, 그 하나가 아쉽거나 욕심이 나서 달라고 했겠는가? 그렇지 않다. 감사할 줄 아는 아이이기를 바래서였을 것이다. 나누어 줄줄 아는 아이이기를 바래서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십분의 일을 요구하시는 것은 감사할 줄 알고 또 나누어 줄줄 아는 사람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
감사는 마치 펌프에 붓는 한 바가지의 물과 같은 것이다. 수십 년 전에는 마을에 공동우물이 있어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러 먹었다. 그러다가 생긴 것이 펌프이다. 또 펌프를 대신한 것이 상수도이다. 공동펌프의 경우, 여러 사람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펌프의 고무파킹이 쉽게 닳아져 펌프에 물이 고여있지 못하고 밑으로 빠져버리는 일이 자주 생긴다. 그래서 대개는 다음 펌프질을 위해서 큰 플라스틱 물통을 놓아두고 물을 담아둔다. 그렇지 않으면, 물을 쓰려는 사람이 한 바가지 정도의 물을 담아와서 물 빠진 펌프에 물을 부어가며 펌프질을 해야한다. 그런데 만일에 펌프에 부어줄 물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무리 많은 물이 샘에 고여 있다할지라도 물을 길러 먹을 수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감사는 바로 한 바가지의 물과 같다. 한 바가지의 물을 되돌려 줄 때, 얼마든지 물을 길러 먹고 쓸 수 있듯이 하나님께 받은 것의 지극히 작은 일부를 감사함으로 되돌려 드림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 감사는 그것이 말을 통해서이든지, 혹은 선물을 통해서이든지, 언제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