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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7-26 00:29
하나님의 사랑과 헌신[요 3:16]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244  
삶이 힘들어 지칠 때면 나는 얼른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면 새 힘이 생기고 삶의 짐이 가벼워집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2)'에서 소개했던 시(詩), '나를 사랑하는 이가 있기에'의 첫 소절이다.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곁에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산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쉽게 지치고 크게 좌절하고 자주 낙심한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는 한 때 자기를 사랑했던 사람들, 혹은 지금도 자기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로부터 크게 실망을 했거나 배신감을 느낀 경우들도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사랑이란 이기적이고 계산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의 사랑만으로 살 수 없다. 변치 않은 영원한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이타적이고 희생적이며 영원히 변치 않고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래서 이번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법에 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이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께 헌신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하나님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큰사랑과 희생 때문이다. 하나님을 보고 나서 살아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시기 때문에, 사물을 자연 연소시킬 수 있는 뜨거운 열과 같다. 그래서 하나님을 본 사람은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아남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신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는 불행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보고서 살아남을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곁에 계시면서도 투명인간처럼 보이지 않게 존재하신다.
또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다. 자식들은 부모 앞에서, 학생들은 선생님 앞에서, 고용인들은 고용주 앞에서 불편해하듯이 완전하지 못한 우리 피조물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서 두 다리 쭉 뻗고 지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숨어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처럼 때로는 남들 앞에 드러나지 않게 봉사하는 것이 헌신의 한 방법일 수 있다. 드러내 보여서 남들에게 상처 주고 불편하게 하는 것보다는 은밀하게 조용히 하는 헌신은 자기 희생의 한 방법일 수 있다.
둘째, 이 세상에 죄와 고통과 죽음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의 큰사랑과 희생 때문이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지으셨기 때문에 만물의 주인이시다. 인간도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기만 하면, 하나님 마음대로 인간을 노예나 기계처럼 부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을 노예나 기계처럼 만들지 아니하시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느끼고 결정할 수 있는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주셨다. 말하자면, 자율권을 인간에게 주신 것이다. 이로써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을 관리하고 돌볼 수 있는 만물의 으뜸이 되었다. 인간이 피조물의 으뜸이 되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게된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고, 당신의 권한을 희생시켜, 그 몫을 인간에게 주신 데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인간의 배반과 반역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권한을 인간에게 일부 양도하신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일이 뜻대로 안되고 문제가 발생될 소지가 있더라도 남에게 권한을 양도하는 것이 헌신의 한 방법일 수 있다. 권한을 쥐고 놓지 않음으로써 남에게 상처 주고 불편하게 하는 것보다는 남을 신뢰하고 믿어주는 헌신은 자기 희생의 한 방법일 수 있다.
셋째, 재림을 연기하시며 심판을 보류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희생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은 집나간 자식이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어 놓고, 대문 밖을 서성이며 애간장을 태우는 부모처럼, 돌아온 자녀들이 살게될 새 하늘과 새 땅을 마련하시고, 계획하신 구원받을 모든 사람의 수가 차기까지 천년이고 이천 년이고 끝까지 인내하시며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의 이 기다림이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할 수 있으며, 약속 받을 수 있겠는가? 만일에 예수의 재림이 우리 모두가 태어나기 이전에 있었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하였을 것이고,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의 나라에 들어갈 약속도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기다림, 예수의 더디 오심이 있었기에 자격도 없고, 그럴만한 가치도 없는 우리에게까지 영생의 나라가 주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때로는 심판을 미루고 기회를 주며 기다려 주는 것이 헌신의 한 방법일 수 있다.
재림을 뜻하는 헬라어 '파루시아'는 '임재' 혹은 '도착'을 뜻한다. 황제가 어떤 지방을 공식적으로 방문하여 도착하게 되면, 황제에게 씌울 왕관제조와 체류 비용을 주민들이 부담하게된다. 그런데 성경은 그 반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왕관을 씌워 주시기 위해서 재림하신다고 말한다. 마땅히 우리가 영광의 면류관을 만들어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에게 씌워 드려야 할 터인데,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 많은 인간들에게 승리의 면류관을 씌어 주기 위해서 오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가 취할 영광을 남에게 돌리는 것이 헌신의 한 방법일 수 있다.
넷째,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지극한 사랑과 희생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죽어야할 그 자리에 대신 죽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 우리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오셨다.
마태복음 20장 28절을 보면,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러 왔다."고 하였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오로지 우리 인간을 대신해서 죽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서 모든 권한과 특권을 버렸을 뿐 아니라, 인류가 하나님과 화목하고, 인간끼리 화목하며, 자연과도 하나되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만든 분이면서도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고, 심지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가 가장 아끼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지간에 하나님과 남을 위해서 포기하는 것이 헌신의 한 방법일 수 있다.
다섯째,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서 화목제물이 되신 것은 지극한 사랑과 희생에서 비롯된 것이다. 죄인인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용서를 받기 위해서 화목제물이 되어도 부족할 터인데, 하나님께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외아들을 통해서 친히 우리 부족한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화목제물이 되셨다.
로마서 3장 2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 예수를 사람에게 화목제물로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 피를 받으면 속죄함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지은 죄를 너그럽게 보아주심으로 자기의 의를 나타내시려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외아들 예수를 화목제물로 주셨다'는 말씀은,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사망에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또 인간과의 화친을 위해서 준비하신 선물을 뜻한다. 그러나 화목제물은 본래 허물 많은 인간이 인간들의 배반으로 진노한 신에게 바치는 선물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우리가 하나님께 화목제물을 바쳐야 할 터인데, 오히려 하나님은 당신의 외아들을 통해서 친히 화목제물이 되셨고, 죄 많고 허물 많은 우리 인간과 화친을 맺으셨으며, 또한 성령까지 선물로 주시고 이 화친을 더욱 견고케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맺은 화친은 우리 인간들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솔선해서 외아들을 통해서 희생하심으로 맺은 화친이기 때문에 이는 진실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이요, 희생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법은 있어도 신이 스스로 인간을 위해서 희생된다는 법은 없다. 또 신에게 바친 제물을 인간들이 나누어 먹는 일은 있어도, 신이 인간을 위해서 스스로 희생이 된 제물을 인간들이 나누어 먹는다는 법은 없다.
조선조의 의례절차를 적은 {춘관지}에 따르면, 경칩이 지나면 임금이 제주가 되어 서울 동대문 밖 선농단(先農檀)에서 소를 잡아 농사를 다스리는 신(神)인 선농에게 제사를 바쳤다. 이 때 바쳐진 소는 쇠머리며 내장이며 뼈까지도 버리지 않고 솥에 넣고 끓여서 임금부터 거지에 이르기까지 차별 없이 평등이 나누어 먹었는데, 이를 선농탕이라 했다. 설렁탕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이 있다.
출애굽기 24장 5-11절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홍해를 건넌 후에, 시내산에서 그들을 종살이에서 해방하신 하나님과 화친의 계약을 체결한 후에,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 나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서 성스런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는 말씀이 있다.
이렇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제사란 인간이 신에게 바치는 법이지, 신이 인간에게 자신을 바쳐서 희생한 후 그 살코기와 피를 인간들이 먹고 마시게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서 친히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을 뿐 아니라, 성만찬 제정을 통해서 우리의 음식이 되어 주셨다. 이렇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몫인 복과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 인간의 몫인 저주와 죽음을 취하셨다. 그래서 때로는 화평케 하는 일,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이든지, 사람과의 관계이든지 간에 화평케 하는 일이 헌신의 한 방법일 수 있다.
여섯째,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구원과 성령을 선물로 주신 것은 지극한 사랑과 희생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같은 죄인들에게 목숨까지 주신 하나님께서 아무런 조건이나 값없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귀한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주시고, 또한 이를 보증하시기 위해서 성령까지 주셨다.
고린도후서 1장 21-22절을 보면,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시고 보증하셨다'는 말씀은, 한편으로는 우리의 구원이 얼마나 확실하고 안전한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드러내 보여주는 말씀이다.
만일에 우리가 대지 100평에 건평 50평 짜리 집을 산다고 가정해보자. 먼저 우리는 주인을 만나 계약서를 작성해야 할 것이다. 계약서에는 대지와 건평, 그리고 위치와 양도조건 즉 매매가와 계약금 그리고 중도금 지불 방법 등이 기록될 것이다. 주인과 합의된 매매가는 사는 사람이 지불해야 할 돈이다. 매입자가 매도자에게 계약금을 지불하면 쌍방이 매매계약서에 인감을 찍어 계약성립을 확인한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체결되는 계약방법은 매우 다르다. 우리 죄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될 새로운 집과 땅을 사는 방법은 세상의 방법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매도자이신 하나님이 전혀 매입자로부터 돈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하나님은 매입자인 우리를 대신해서 계약금을 지불해 주시고, 계약서에 인감을 찍어 매매가 성립되었음을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확인해 주신다. 이 때 하나님이 지불하시는 계약금과 계약서에 찍힌 인감이 바로 성령이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고, 또한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성령을 값없이 은혜로 주신다. 이뿐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맛보게 하시고 체험하게 하신다. 이 성스런 매매계약도 우리가 원해서 성립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셔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값진 것을 조건 없이 주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든지, 인간에게든지 간에 값없이 주는 것이 헌신의 한 방법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아낌없이 주셨다. 우리를 위해서 목숨까지도 주셨다. 우리에게는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이 계신다. 그러므로 삶이 힘들어 지친 사람들에게, 슬픔과 아픔에 휩싸인 사람들에게, 좌절과 낙심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에게 그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이 계심을 일러주는 일도 헌신의 한 방법일 수 있다. 사랑이 필요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결론으로 남 앞에서 나팔불지 아니하고 남 모르게 하는 일,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지 아니하고 남을 믿어 주고 밀어 주는 일, 성급하게 판단하지 아니하고 남에게 기회를 주며 기다려 주는 일, 자기가 받아야 할 영광을 남에게 돌리는 일, 가장 아끼는 것까지도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버리는 일, 분란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평화를 만드는 일, 가장 값진 것이라도 조건 없이 주는 일,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랑의 하나님을 소개한 일 등은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에 비추어 볼 때, 가장 값진 헌신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