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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7-26 00:31
예수께서 목표를 달성하신 방법[눅 9:51]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147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죽기 위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을 꿈꾸고 명예와 권세를 추구할 그 때에, 예수는 말구유에서 초라하게 태어나셨고, 나사렛이란 시골동네에서 목수의 아들로 성장했다. 그러나 예수는 소년기에 자기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힘써 알고자 했고, 청년기에 그 뜻을 힘써 간직하였으며, 30대에 이르러, 그것도 부와 명예와 권세욕이 가장 강한 그 때에, 죽기를 각오하고 자기에게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고자 힘써 노력했다. 그래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노력들을 하셨는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 예수는 자기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셨다. 앞부분에서 말했듯이, 예수는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고향사람들에게 밝혔고, 세례요한에게도 밝혔고, 제자들에게도 밝혔고, 자기를 붙잡아 왕을 삼으려는 사람들에게도 명백하게 밝히셨다.
예수께서 고향사람들에게 이사야 61장 1-3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자신의 일이 부서진 집이나 문틀을 고치는 목수의 일이 아니라,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파하며,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와 갇힌 자에게 자유를 주며, 슬픈 자를 위로하며,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 날을 전파하는' 메시아의 일이라고 밝히셨다. 그 때에 고향사람들은 예수를 비웃고 죽이려고 하였다(눅 4:16-30).
또 예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많은 사람들을 먹이신 후에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싸우는 열심당원들이 예수를 억지로 잡아 왕을 삼으려고 했다. 이 때 예수는 그들에게 자신이 할 일은 독립투쟁이나 유대인의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오, 하나님의 뜻은 자기를 믿는 자들을 마지막 날에 다시 살려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요 6:38-40)이라고 밝히셨다. 그 때에 열두 제자들을 제외한 다른 많은 추종자들이 예수를 비웃고(요 6:41-42), 예수를 버리고 떠나갔다(요 6:66).
예수와 같이 자기를 세상에 보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의 일을 남에게 알리는 데에 있다. "나는 미생물학자가 되어 오염된 물과 토지를 살려내겠다." "나는 값싸고 질 좋은 대체에너지를 개발하여 우리 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강한 에너지 부국으로 만들겠다." "나는 교사가 되어 참교육을 실현하겠다." "나는 훌륭한 군인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 "나는 의사나 간호사가 되어 가난한 자, 병든 자들을 돌보겠다." "나는 기업가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겠다." "나는 목사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겠다." 이렇게 자기를 세상에 보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과 목표를 남에게 알리는 사람들이다. 남에게 알릴 뿐 아니라, 책상 앞에 써 붙여 놓고, 자기가 이 세상에 살면서 반드시 성취해야 할 일을 결코 잊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비웃고 조롱한다는데 있다. "너 같은 놈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 네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라는 식으로 비웃고 괴롭히고 싫어한다. 그러나 자기를 이 세상에 보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은 결코 흔들림이 없다. 남이 뭐라고 하든지 말든지, 남이 무슨 말로 유혹을 하든지 말든지, "나는 내 목표를 이루고 말 거야. 나는 할 수 있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데, 반드시 이루고 말 거야."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채찍질하는 사람들이다.
예수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부여한 임무를 실행하기에 앞서 무려 40일간이나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기도로써 준비하신 분이시다. 이 때에 마귀가 예수를 찾아와 30대의 젊은이가 뿌리치기 어려운 세 가지 유혹을 던졌다. 이들 유혹은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집도 없이 떠도는 예언자가 되지 말고, 또 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지 말라. 하나님의 뜻을 버리기만 하면,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으로 평생 잘먹고 잘살 수 있는 부를 챙길 수 있고, 민중을 선동하여 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후에 큰 명예를 얻을 수 있고, 또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권세를 부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이들 유혹을 과감히 물리쳤고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셨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어떠했는가? 요셉도 소년기부터 하나님이 주신 큰 포부를 갖고 있었다. 자신은 비록 열두 형제들 중에 열 한번 째로 태어났지만, 형들보다 더 위대하게 된 후에, 형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기근으로부터 구원하게 될 거라는 큰 포부를 품고 있었다. 그래서 요셉은 자주 자신의 포부를 형들과 부모에게 밝혔다. "형님들, 나는 언젠가 높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 때 형님들은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까지도 내게 절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였고, 죽이려고 했으며, 나중에는 이집트 상인에게 종으로 팔아먹었다. 그러나 요셉은 이런 일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요셉은 자신의 포부가 하나님이 주신 꿈이라 믿고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결국 그는 그 꿈을 이루었다.
이렇게 자신의 포부는 남이 알도록 자꾸 입 밖으로 실토를 해야 한다.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에도 빠뜨리면 안 된다. 자주 읽어 볼 수 있도록 잘 보이는 곳에 적어 두어야 한다.
필자의 친구에게 98년 현재 고등학교 2학년생인 아들이 있다. 그 아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성취해야할 목표가 없다는 데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 생물이나 동물학자가 되겠다고 했는데, 상급학년이 되면서 그 꿈을 버렸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기타를 치기 시작했는데 찬양에 빠져서는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를 갖지 않았다. 그때로부터 4년간 친구가 그의 아들과 벌린 실랑이가 바로 '너의 목표가 무엇이냐?'였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아들에게 말했다. "넌, 하나님의 아들이야. 무슨 일이 되었든 간에 하나님과 인간에게 봉사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 그 일이 무엇인지 말해봐라. 넌 무엇이 될래? 또 공부하는 학생으로써 금년의 목표는 무엇이며, 내년의 목표는 무엇이며, 또 내 후년의 목표는 무엇이냐? 그리고 최종적으로 네 인생의 목표는 무엇이냐? 그런 것이 있거든, 네 책상 앞 책장이나 벽에 써서 붙어 봐라." 그런데 이게 무려 4년이나 걸렸다. 작년부터 비로소 무엇이 될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처음 6개월간은 별다른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년 12월 학기말고사 때 공부하는 태도가 조금 나아졌다. 그리고 성적도 조금 올라갔다. 그래서 메모판을 사서 책상 앞에 달아주면서 자기 목표를 쓰도록 했고, 목표달성을 위한 장·단기 계획을 쓰도록 했더니, 결국 자기 손으로 자기 목표를 세워 메모판에 기록했다. 그는 그것을 보고 무척 기뻐했다. 목표를 세웠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절반의 성공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는 것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 목표가 있는 사람은 방황하지 않는다. 목표가 있는 사람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목표가 있는 사람은 돈을 낭비하지 않는다. 달려가야 할 꼴인 지점을 아는 사람은 절대로 엉뚱한 곳으로 달려가지 않는다.
둘째, 예수는 자기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힘써 노력했다. 예수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이루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예수가 이 세상을 산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만 산 것이 아니다. 그분은 또한 완전한 인간으로 살았다. 예수에게도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비웃고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있었고, 결국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신 동안 그분은 결코 도깨비 방망이 휘두르듯 쉽게 사신 게 아니다. 그분도 우리처럼 웃고 울고 많은 시간 고뇌와 번민 속에서 보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이에 굴하지 아니하고, 모든 장애를 극복하셨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 예수께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 누가는 우리에게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누가는 복음서 9장 51절에서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 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다."고 전하고 있다. 이때로부터 누가는 누가복음 전체 중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많은 분량(42%)을 예수의 이 여행길에 할애하고 있다. 예수의 이 여행길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죽으러 가는 길이었다. 누군들 30대의 젊은 나이에 그것도 극형인 십자가에 매달려 죽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예수도 마찬가지였다. 참으로 이 길은 고통의 길이었다. 괴로움의 길이었다. 가고싶지 않은 길이었다. 다른 한편 제자들과 민중은 예수의 이 여행이 왕이 되기 위한 것으로 잘못 알고 마음이 들떠 있었다. 그런 잘못된 판단 때문에, 그들은 예수께서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것"(막 8:31)을 가르쳤지만, 깨닫지 못하고,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하나님의 뜻을 만류하는 제자도 있었고(막 8:33), 서로 누가 높은가를 놓고 다투었으며(막 9:33-34), 다른 제자들 몰래 예수께 찾아가서 높은 자리를 부탁하는 제자들까지도 있었다(막 10:42-45). 또 다른 한편에서는 권력층에 속한 사람들이 혹시나 예수가 정말 왕이 되지 않을까 해서, 예수를 경계하며 시기하고 질투할 뿐 아니라, 모함하였고, 결국 잡아죽이려고 하였다. 이 때마다 예수는 민중의 유혹을 뿌리치고, 죽음의 공포를 물리치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셨다. 예수는 체포되기 직전에도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힘겹게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얼마나 애쓰고 간절히 기도하셨던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하였고, 천사가 내려와 돕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눅 22:43-44).
이런 과정을 거쳐서 예수는 결국 자기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내셨다. 요한복음 19장 17-18절을 보면, "예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이라 하는 곳"으로 올라가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또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보면, 예수는 십자가상에서 죽기 직전에 "다 이루었다."고 큰 소리로 외치셨다. 이를 두고 바울은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롬 10:4)고 하였고,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심이다."(롬 8:4)고 하였다. 이렇게 예수는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상에 보낸 목적을 달성하셨다.
앞글에서 사람이 어떤 집안에서 출생했는가보다는 어떻게 살았는가가 더 중요하고, 어떻게 살았는가보다는 어떻게 죽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하였다. 또 테레사 수녀의 삶도 살펴보았다. 그녀의 위대한 삶은 진실로 예수의 삶에 못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예수보다 위대하지 못했던 것은 가난한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병든 자를 치료하고, 버림받은 자를 돌본 일에서 예수보다 열등했기 때문이 아니라, 죽음에서 차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테레사의 삶은 버림당한 사람들을 섬기는 훌륭한 것이었지만, 그녀의 죽음은 결코 모든 인간을 죽음에서 살릴 수 있는 것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예수는 죽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죽음에서 그 진가를 나타내신 분이시다. 그분의 죽음은 나이 많아 늙거나 병들어서가 아니오, 자신의 죄 때문도 아니었다. 그분의 죽음은 오로지 우리 모두가 지은 죄 때문이었다. 그분의 죽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죽음이었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된 죽음이었다. 한 마디로 예수는 가장 값지게 죽기 위해서 태어났고, 인간들을 대신해서 죽기 위해 살았던 분이시다. 그분의 값진 죽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내가 구원을 받았고 큰 은총을 입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죽음에서 살리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분은 이 하나님의 뜻을 잊지 않고 남에게 알렸다. 달려가야 할 꼴인 지점을 알고 힘차게 달리셨다. 자기를 세상에 보낸 하나님의 뜻을 힘써 이루려고 노력하셨다. 기도하셨다. 유혹을 물리치셨다. 그리고 그것을 다 이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