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CCS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main_5.GIF main_6.GIF main_7.GIF main_8.GIF

 

 

 

 

 

 

 

 
작성일 : 02-09-15 23:18
기독 청년의 바른 가치관(2)[롬12장]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305  
현대사회의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파괴, 해체, 또는 퇴출 현상이다. 가정파괴, 가족해체, 환경파괴, 기업퇴출, 기업해체는 물론이고,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던 가치들이 파괴되거나 퇴출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청소년들의 전통적인 가치관에 대한 파괴 또는 해체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21세기를 살아갈 청소년들은 20세기를 힘겹게 지탱해온 전통적인 가치관을 좋은 방향에서든 혹은 나쁜 방향에서든 여지없이 뭉개놓고 말 것이다. 도대체 신세대의 가치관들이 어떤 것들이기에 이런 망발을 하지 않으면 안될까? 이해를 돕기 위해서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신세대의 가치관이 어떻게 다른지 또는 앞으로 어떻게 달라지게 될 것인지를 잠시 살펴보겠다.
기성세대는 인격을 갖춘 사람, 의지가 강한 사람, 이성적인 사람, 신중하고 점잖은 사람을 멋진 사람으로 보았다. 그러나 신세대는 개성과 멋이 있는 사람, 창의성이 있는 사람, 감성적이고 정열적인 사람, 자신을 스스럼없이 표현하는 사람을 멋진 사람으로 본다. 실제로 연세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70년대와 90년대에 각각 행한 같은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20년 전 학생들은 마음의 평안이나 양심에 부끄럼 없는 생활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했지만, 신세대 학생들은 여유 있고 편안한 생활에 더 가치를 두고 있고, 20년 전 학생들은 인격수양이나 자제력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신세대 학생들은 독립심이나 개인의 능력에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또 20년 전 학생들은 가치실현을 위한 도구로 성실과 책임과 인격수양을 최고로 꼽았지만 신세대는 성실과 개인의 능력과 창조력을 꼽았다.
기성세대는 옳은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하고 싶은 행동도 상대가 싫어하면 참고, 고통과 인내는 인간을 성장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세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남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며,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사고가 인간을 성장시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옷을 입을 때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했지만, 신세대는 남의 시선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는다. 또 기성세대는 사회생활에서 타인의 평가를 중요시했지만, 신세대는 타인보다는 자기 자신의 기호와 선호를 중요시한다.
기성세대는 덕 있고, 말을 조리 있게 잘하고, 색깔 없고, 평범하고, 다방면에 재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했다. 그러나 신세대는 개성 있고, 컴퓨터 잘 다루고, 색깔 있고, 비범하고,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기성세대는 음식점을 가거나, 쇼핑을 할 때에 단골집이나 싼 곳을 선호했지만, 신세대는 음식점을 가거나, 쇼핑을 할 때에 편리한 곳을 찾는다.
기성세대는 자기 자신보다는 집단이나 사회를 우선했지만, 신세대는 집단이나 사회보다는 자기 자신을 우선한다.
기성세대는 어른은 어른이기 때문에 존경했지만, 신세대는 어른이라는 이유로 존경하지 않는다.
기성세대는 괴짜들을 싫어했지만, 신세대는 괴짜라고 싫어하지 않는다.
기성세대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고, 군대와 같은 집단생활이 인격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지만, 신세대는 고생자체는 안 할수록 좋고, 집단생활이 개인의 능력을 위축시킨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는 윗사람이나 외국인 앞에서 주눅이 들었지만, 신세대는 윗사람이나 외국인 앞에서도 주눅들지 아니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기성세대는 무난하고 안정된 생활을 추구했지만, 신세대는 항상 새로운 것을 찾는다.
기성세대는 무겁고 심각한 대화나 철학적인 사고를 가치 있게 보았지만, 신세대는 가볍고 재미있는 대화나 감성적인 생활을 가치 있게 본다.
기성세대는 외식을 낭비로 생각하면서 절약을 미덕으로 알고 살았지만, 신세대는 외식을 삶의 윤활유로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일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기성세대는 돈은 차근차근 모으는 것이며, 돈은 고생한 만큼 버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신세대는 돈은 기회만 만들면 벌 수 있으며, 돈은 아이디어가 있어야 번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는 역사와 과거는 우리에게 교훈적이라고 생각했고, 미래도 예측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신세대는 현재와 미래의 생활은 역사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며, 세상은 변화무쌍하므로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는 친구를 의리로 사귀었으며, 비록 도움은 안되더라도 친구의 걱정을 함께 고민하며, 친구의 잘못을 충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세대는 친구를 취미와 취향으로 사귀게 되며, 도움이 되지 않는 친구걱정은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로 알게 되며, 친구의 잘못은 스스로가 알아서 처리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기성세대는 친한 사람과 만나야 재미가 있고, 우정은 지속되어야 하며, 많은 친구보다는 깊게 사귀는 소수의 친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며,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을 가려서 사귀었다. 그러나 신세대는 모르는 사람과도 재미있게 보낼 수 있고, 우정은 반드시 지속될 필요가 없으며, 친구는 폭 넓게 사귀되, 필요한 사람을 사귀면 된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는 자기와 유사한 사람을 좋아하고, 사귈 때 믿을 수 있는가를 보았다. 그러나 신세대는 자기와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사귈 때 능력 있는 사람인가를 본다.
기성세대는 남에게 존경받는 직업, 품위 있는 직장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옮겨 다니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신세대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존경이나 품위 따위는 그리 중요치 않게 생각하고, 옮겨 다니는 일 자체를 문제삼지 않는다.
기성세대는 미래의 성공을 위하여 오늘의 행복을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세대는 미래의 성공보다는 오늘의 행복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기성세대는 듬직한 남편과 현모양처가 좋고, 자식을 나서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신세대는 재미있는 남편과 톡톡 튀는 부인이 좋고, 자식 키우는 것을 귀찮게 여길지도 모른다.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신세대의 가치관을 여러 가지로 비교해보았다. 맞는 것도 있을 것이고, 틀린 것도 있을 것이다. 또 기성세대의 가치관이라고 해서 다 옳은 것도 아니고, 신세대의 가치관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도 아니다. 구세대든 신세대든 양쪽 모두에 옳은 가치관도 있을 것이고 또 나쁜 가치관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의 기술과학정보사회 또는 도시문명사회가 기존의 가치들을 신속하게 파괴 또는 해체시키고 있고, 여기에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이 옳고 그름에 대한 바른 판단이나 걸러볼 생각조차 없이 빨려들어 가고 있다는 데 있다.
세대간의 격차와 갈등은 어느 시대 어느 때나 있었다. 그러나 과거에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신세대들에게도 중요한 가치로 받아드려졌었고 대를 물리면서 오랫동안 지속되었지만, 도시화와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부터는 기존의 가치관이 급격히 파괴 또는 해체되고 있다. 이런 가치파괴나 해체가 그간의 왜곡된 가치들과 전통들로부터 인간을 해방했거나 해방하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마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옛 전통과 구습의 도시 갈대아 우르는 벗어났지만, 우르보다 더 무서운 돈과 쾌락의 성 소돔에 빠져든 것과 같다. 여우굴에서 빠져 나와 사자굴에 들어간 것과 같다. 다행히 롯과 그의 두 딸은 천사들의 경고를 받고 소돔 성이 불과 유황과 연기로 멸망당하기 직전에 그곳을 탈출하였다. 그들이 살 수 있었던 방법은 오직 소돔 성을 떠나는 길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바를 잘 듣고 성서가 옳다고 말한 만고불변의 가치들을 붙잡고 살아야 한다.
로마서 12장 2절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권하고 있다. 또 1절에서는 너희의 몸을 세속적인 가치관에 내맡기지 말고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하였다. 이 시대를 분별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사는 것, 이것이 참으로 가치 있는 삶이다.
현대사회의 특징은 기존의 권위나 전통이나 가치관이 여지없이 파괴되거나 해체되는데 있다. 철학적 진리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과학적 진리까지도 해체되고 있다. 파괴의 주범들은 현대인들이다. 현대인들은 마치 모든 것이 각자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판단에 지배되고 있고 또 그것들만이 가치 있는 것이다라는 착각에 빠져들고 있다. 상업주의를 앞세운 대중매체가 이런 착각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대중매체들이 현대인들에게 선악과를 먹게 하여 만가지 악의 뿌리인 돈에 눈을 뜨게 만들고는 다른 모든 선한 가치들에는 소경이 되게 하고 있다. 대중매체들이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워 옛 전통과 구습의 도시 갈대아 우르를 떠나게 만든 후에 멸망의 도시 소돔 성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대중매체들이 믿음과 사랑과 같은 불변의 가치들조차도 해체시켜버린 후에 그 자리에다 주관적인 가치들로 멸망의 바벨탑을 쌓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현대인의 비극이 숨어있다. 소돔성이든 바벨탑이든 결국 멸망당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계시록 18장 4절을 보면, 이런 타락한 소돔성을 향하여 하나님을 배반한 창부라고 일컫고 있다. 그러면서 큰 음성으로 경고하시는 말씀이 "내 백성아 그 여자에게서 떠나거라. 너희는 그 여자의 죄에 가담하지 말고, 그 여자가 당하는 재난을 당하지 않도록 하여라."고 하였다.
구약성경을 보면, 우리 인간들은 각각 다른 가치를 가진 세 개의 나라에서 살고 있고, 바다와 강을 건넌다. 이집트와 광야 그리고 가나안 땅이 각각 다른 가치를 가진 세 개의 나라이고, 홍해와 요단강이 우리 인간이 건너야 할 바다와 강이다. 이집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돈과 쾌락의 신을 최고의 가치로 섬기는 사람들이고, 광야에 임시로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홍해를 건넌 사람들로써 일찍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인 시내산에 모여 돈과 쾌락의 신을 우상으로 알고 섬기지 않기로 굳게 서약한 사람들이다.
출애굽기 20장 3-5절을 보면,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홍해를 건넌 후 광야에 임시로 거주하는 사람들이 하나님만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하나님께 행한 약속이다. 돈과 쾌락의 우상을 섬기지 않겠다고 하나님께 행한 약속이다.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약속의 땅만을 바라보며 언제라도 떠날 채비를 갖추고 이생을 살겠다고 하나님께 행한 약속이다.
이 광야의 사람들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섬기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살아야 한다. 돈과 쾌락의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아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하느냐 보다는 무엇이 되느냐에 더 큰 가치를 둬야한다. Doing보다는 Being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한다. 좋은 나무가 되고 나면 좋은 열매는 자연히 따라오는 법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소유했느냐 보다는 어떻게 쓰느냐에 더 큰 가치를 둬야한다. 마태복음 25장 14-30절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를 보면, 하나님은 얼마나 소유했느냐를 놓고 판단하지 않으시고 어떻게 썼느냐를 놓고 판단하셨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섬김을 받는 것보다는 섬기는 생활에 더 큰 가치를 둬야한다. 예수는 섬기려 왔고 생명까지 주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하셨다(막 10:45).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육신보다는 영혼이 잘 되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둬야한다. 육신은 잠깐이요 영혼은 영원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