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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5 23:16
프로의식[살후3:6-12]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809  
어떤 한국 기업체의 런던 지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정년 퇴임한 한 영국 노인을 지점의 수위로 채용했었다고 한다. 수위란 문간에 앉아 안내나 하고 감시만 하면 된다. 그런데 이 수위 노인은 그 일 말고도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가급적 많이 만들어 함으로써 자기의 일을 즐겼다. 이를테면 그 앞길에 한 주부가 아이를 힘겹게 안고 지나가면 쫓아가 그 아이를 뺏어 안고는 달래주며 보도가 끝나는 데까지 안아다 준다든지, 눈이 오면 점포 앞만 쓰는 것이 아니라 그 보도 전체를 쓸어 미끄럽지 않게 하였다.
이 수위 노인 때문에 점포의 이미지가 좋아지자, 지점장은 그 대가로 일하는 시간이 전에 하던 일의 삼분의 일밖에 안되고, 그 대신에 급료는 삼분의 일이나 많은 좋은 자리로 옮겨주기로 하고 통고를 했다. 그런데 통고를 받은 그 노인은 좋아하기는커녕 사표를 써내고는 나가버렸다. 무슨 영문인지를 아무도 몰랐다. 당장 수위자리가 비어 지방신문에 수위 모집 광고를 냈더니 여덟 명이 응모해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여덟 명 가운데에 바로 그 노인이 끼여 있었다. 사표를 써놓고 그만 둔 이유를 물었더니, 그 노인은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편안하기보다는 자신이 했던 수위 일에서 보람을 찾고 더 풍요롭게 살고 싶었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충실하려는 자와(自我)와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를 의식하는 타아(他我)가 있다고 한다. 이 영국 노인 뿐 아니라 유럽사람들은 대체로 타아보다는 자아가 강한 반면, 우리 한국 사람들은 남을 의식하는 타아가 자아보다 강해서 남이 보는 나를 더 중요시한다고 한다. 그래서 분수에 맞지 않은 메이커 상품을 좋아하고, 노동직보다는 사무직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국가마다 나라병이 있다고 한다. 주후 445년 10월에 로마시민들은 제국이 다른 천체와 정면 충돌하여 멸망당한다는 한 예언자의 종말론 때문에 온 로마 사람들이 마음을 조렸다. 그런데 종말이 온다던 날에 죽음을 기다렸던 로마사람들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는지 31년(476년) 후에 로마는 진짜로 멸망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의 멸망은 천체에 부딪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로마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맹신과 타락과 사치로 속이 곪아터져 붕괴되고 만 것이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로마제국의 멸망을 '로마병' 때문이었다고 하였다. 그는 조직이 붕괴되고 나라가 망하는 이유를 그 조직이나 국가의 내부의 적인 사회적 병폐에서 찾고 있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힘센 사람에게 맞아 죽거나 차에 치어 죽기보다는 몸이 병들고 속이 썩어서 죽는 것이다.
공산국가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의 붕괴는 소련병 때문이었다. 감자를 가득 실은 트럭이 감자를 흘리면서 달리고 있었다. 이 장면을 보고있던 정치국원 후보 시절의 고르비가 이 트럭을 뒤쫓아갔다. 가서 "감자를 흘리고 다니면 어떻게 하느냐?"고 운전사에게 따져 물었다. 운전사가 말하기를, 자신의 임무는 실어 놓은 감자를 시간에 맞추어 지정된 창고에 옮겨 놓는 일이기 때문에 수송 도중에 벌어진 일은 자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며, 또 수습하려들면 도착 시간에 늦게되어 책임추궁을 받게된다고 하였다. 고르비는 이 같은 공산국가의 질병을 소련병이라고 하였다.
70년대 미국의 철강 도시 피츠버그에서는 US스틸 같은 대규모의 공장마저 견학을 거절했다고 한다. 시설이 노후에서 위험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강철의 나라라는 미국의 제철시설이 포항이나 광양제철의 시설보다 일 백년이나 뒤져있는 것으로 착각될 만큼 시설이 낡아있었다는 것이다. 막강한 힘을 가진 노동조합이 신기술 도입을 완강히 거부하는 데다 백인 텃세가 심해서 값싼 유색 인종의 노동력을 살 수 없었으며 생산 원가에 대한 인건비 비중이 높아서 경쟁력이 떨어져 사양길을 달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병이다.
북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돈을 벌면 버는 족족 세금으로 거둬간 후 모든 의식주와 교육, 질병, 노후를 나라에서 보장해 주기 때문에 차라리 아무 일도 않고 게으를수록 더욱 편하게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는 재미를 잃고 자살을 하게 된다. 이를 복지병(福祉病) 또는 스칸디나비아병이라 한다.
흥부가 박을 따서 첫 번째 박을 켰을 때 외제(外製)상자 하나가 나왔다. 그것을 열어보니, 모두가 중국의 선인(仙人)들이 먹었던 불로초(不老草)와 불사약(不死藥)같은 외제약품으로 가득하였다. 두 번째 박을 켜보니 비단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 모두가 유명한 외제옷감들이었다. 세 번째 박을 켜보니 갖가지 보석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 또한 모두가 외제들이었다. 네 번째 박을 켜보니 각가지 화장품들이 나오는데 이 또한 모두가 외제들이었다. 다섯 번째 박을 켜보니, 각가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 또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비롯한 외국서적들이었다. 심지어 박 속에서 걸어나온 비연(飛燕)이며 양귀비(楊貴妃)까지도 외제일색이었다. 이렇게 우리 나라 사람들은 외제라면 환장하고 못사는 병에 걸려있는데, 이것이 바로 한국병이라고 한다.
굳이 또 하나의 병이 있다면, 그것이 아마 노동직을 천시하고 사무직이나 관직을 선호하는 병일 것이다.
과거 상공업이 발달하지 못했던 우리 나라는 국민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하였다. 일자리라고 해봤자 농사 아니면 관직이었다. 더욱이 양반과 상놈의 반상체제가 확고했던 시절이었던 만큼 관직에 오르는 일만이 출세하는 길이었다. 한국역사연구회가 지은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제1권 '사회·경제생활 이야기' 편을 보면, 1708년(숙종 10년)에서 1904년(광무 8년)까지 약 200년에 걸친 울산지역 호적을 분석한 글이 나온다. 이 글에 의하면, 조선조 말기로 갈수록 양반 집안이 급격히 증가하고, 상민 집안이 감소하며, 노비 집안이 거의 소멸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25퍼센트 정도이던 양반 집안이 66퍼센트로 늘고 있고, 60퍼센트 정도이던 상민 집안이 33퍼센트로 줄고 있고, 14퍼센트 정도이던 노비 집안이 0.5퍼센트로 줄고 있다. 일하지 않는 양반이 늘면서 노동인력이 줄었고, 노동인력이 줄면서 국가경제가 어려워졌을 것은 뻔한 일이다.
소위 사대부 집안의 족보라는 것들도 그 내용들을 들쳐보면 가짜가 많다는 것이다. 신라나 고려시대에는 귀족보다도 농민이 훨씬 많았는데, 이들의 후손은 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왕족이나 귀족의 후손 아니면 중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후손들만 남게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족보라는 것도 양반이 되고자했던 상민이나 천민들이 양반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조작된 것들임에 틀림없다. 족보가 조선 후기에 와서 많이 만들어졌다는 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족보를 갖는다는 것은 곧 양반이 된다는 의미를 가졌다. 반상체제 사회에서 양반이 아니면 상놈이고, 상놈에게는 사회적인 천대와 경제적인 부담이 가중되기 마련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상민들이 군역을 면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버리거나 족보를 위조한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성을 바꾸고 조상을 바꾸어 다른 사람의 족보에 편입함으로써 양반이 되었다는 것이다.
가짜 족보를 필요로 했던 것은 상민이나 천민만이 아니었다. 더 훌륭한 가문으로 자신을 위장하고 싶었던 양반의 경우에도 가짜 족보를 만들어 더 높은 문벌의 가문으로 위장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교육은 서당교육, 향교교육, 서원교육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이 시대의 학생들은 서당을 통해서 예비교육을 받았고, 향교교육을 통해서 관리가 되는 꿈을 키웠다. 특히 정치 참여의 길을 모색하는 젊은이들은 서원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는데, 서원은 특정 정치집단의 후방기지 역할을 하면서 자기 집단세력을 키우는 교육장이었기 때문이다. 양반의 수는 늘어나는데 비해서 관직과 토지는 한정되어 있다보니까 결국 제한된 관직과 좁은 땅덩어리를 놓고 서로 차지하려고 패를 지어서 쟁투를 벌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기 당파나 가문 혹은 학파의 인물을 키워내기 위한 서원이 늘어났고, 당쟁이 격화되었으며, 문벌과 학벌이 더욱 강조되었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 국민은 노동을 천시하는 왜곡된 직업의식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김현구 교수가 쓴 {일본 이야기}란 책을 보면, 일본 사람들의 직업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고대 일본에서는 막대한 사유지와 사유민을 소유한 상태에서 조정의 직무를 분담하는 호족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직무와 직업은 대대로 세습되었다. 오늘날 일본에서 한가지 직업을 수 백년 또는 수 십대씩 세습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와 같이 직업이 세습되는 사회에서 가문을 빛내는 길은 출세가 아니라, 자기 직업에 성실하여 그 분야에서 일본 제일이 되는 것이며, 혈연에 관계없이 직업을 이어받는 사람이 자연히 재산도 물려받게 된다. 일본의 유명 럭비스타가 아버지가 하시던 조그만 유리가게를 이어받기 위해서 돈과 명예와 국민적 인기를 내팽개치는가 하면, 일류대학의 대학원까지 나온 재능 있는 청년이 주지승인 아버지의 대를 잇기 위해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기도 하고, 대학의 교수보다는 대학 앞에서 300년 넘게 대를 이어 메밀국수(소바) 파는 일을 더욱 보람있게 여기는 사람들이 바로 일본사람들이다.
삼국시대의 불상들은 기법에 있어서는 뛰어나지 못할망정, 거기에는 작가들의 혼이 배어있다고 한다. 삼국시대에 불상을 조각한 사람들은 불교신자였기 때문에 그들은 단순히 불상을 조각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의 대상을 조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의 조각품들은 조각가가 단순히 하나의 상품으로만 조각한 것이기 때문에 기법은 뛰어날지 모르지만 작가의 혼이 들어 있지 않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이 만드는 상품은 단순히 상품으로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직업의식을 가지고 만들기 때문에 거기에는 그들의 정신이 배어 있고, 그래서 일본 상품이 세계를 석권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또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장사를 하고 물건을 만들게 되니까 자기 상점을 찾아주거나 자기가 만든 물건을 사주는 고객을 왕으로 대우한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일본 사람들은 누가 보거나 보지 않거나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데, 1년에 과로로 쓰러지는 사람이 3만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스페인에는 200년째 짓고 있는 건물이 있다고 한다. 가우디라는 희대의 건축가가 공들여 설계한 이 성당건물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성하기 위해서 몇 세대에 걸쳐 아주 조금씩 만들어져 왔고, 완공까지는 앞으로도 수십 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하루아침에 높은 빌딩이 들어서는가 하면, 5년도 안된 건물이 예고도 없이 무너져 내린다. 우리 나라에서는 언제부턴가 '원칙주의'가 비웃음거리가 되고, '빨리빨리주의'가 통하는 병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손 하나 까딱 않고 잠만 자는 놈 꼴 보기 싫어서 누룽지를 허리춤에 채워주며 밖으로 내보냈다. 배가 고파 누룽지를 꺼내 먹고 싶은데 풀기 귀찮아 못 먹고 있는 참에, 저편에서 갓 쓰고 입을 떡 벌린 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배가 고파서 입을 벌리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허리춤에 있는 누룽지를 풀어주면 절반을 주겠다고 했다. 이에 입벌린 자가 말하기를, "갓끈이 늘어졌는데 그걸 고쳐 매기 싫어서 입을 벌리고 가는 길이오."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이솝 시대의 베짱이는 눈보라치는 날 개미집 앞에서 내쫓겨 처량한 신세였지만, 현대판 베짱이는 아들 개미 딸 개미에 환대를 받으며 단란주점에 가고, 디스코 추고, 호강하며 겨울을 난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근면하던 개미 일가는 몰락하고 만다. 현대판 개미들은 먹고 입고 살만큼 가지면 놀기를 소원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한국병이라고 한다.
자장면 '번개배달'로 일약 스타가 된 조태훈(30)에 대해서 들어보았을 것이다. 97년까지만 해도 고려대 후문 근처에 있는 중국음식점 배달원이었다. 십대후반에 광주에서 무작정 상경하여 11년 4개월 동안 자장면 배달을 했다. 그런 그가 유명해진 것은 요란하게 치장한 배달용 오토바이와 번개같은 배달 솜씨 때문이었다.
조태훈씨는 배달된 음식의 맛은 그 신선도가 생명이기 때문에 갓 만든 따끈따끈한 중국음식 맛을 고스란히 고객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첫 번째 사명으로 삼고 일했다. 고려대 학생들 사이에 "번개가 배달할 때는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지 말라"는 농담이 돌 정도로 배달이 신속했다고 한다. 그의 요란한 모습도 고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스스로 고안한 것으로 "돈을 내고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즐거울 권리가 있다."는 것이 그의 직업 철학이었다.
금년에 30세가 된 조태훈씨는 지금 '번개반점'이란 상표로 중화요리점 체인사업을 하고 있고, 하루 1백만원 하는 강연료를 받는 유명인사로 변해 있다. 그가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음식배달에 대한 자부심과 프로정신 때문이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6-12절에 보면, 바울이 두 가지를 교훈하고 있다. 첫째는 규모 있게 행동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근면하라는 것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무슨 일을 하든 지간에 한국 제일이 되겠다는 프로정신을 가지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규모를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