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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5 23:10
실명을 극복한 강영우 박사[요9:1-3, 요일5:4]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826  
연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하여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교육학 전공으로 석 박사학위를 받고 노스이스턴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는 사람이 있다. 인디애나 주지사 재활 정책 자문위원을 맡기도 했고, 국제로터리클럽 청년 봉사 위원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국제로터리클럽 봉사상을 수상했으며, 국제로터리클럽 75주년 기념 봉사 인물 75인 중의 한 사람으로 뽑히기도 했다. 이 사람과 부인의 이름은 미국 교육계 저명인사 인명 사전에 올라 있다.
이 분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그들은 미국 최고의 명문인 필립스 아카데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 진학하여 한국인의 우수함을 빛내고 있다. 이들 두 젊은이들은 기독교 신앙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에서 연극 동아리를 만들어 성극을 발표하기도 하고, 찬양 사역을 하기도 한다. 이들은 평신도이지만 설교도 하고 또 그들의 설교문이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성경과목을 일등으로 이수하는가 하면 매주 한 번씩 모이는 성경공부반도 만들어 인도를 한다.
이 엄청난 성공을 거둔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가? 그가 바로 한국 최초의 맹인 박사 강영우이다. 그는 열 다섯 살 때인 중학교 3학년 때에 친구들과 축구 시합을 하다가 공에 맞아 소경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소경이 되기 2년 전인 열 세 살 때에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 가셨고, 소경이 된지 일 년 만에 아들이 영구히 장님이 된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 어머니가 뇌일혈로 돌아 가셨다. 목사가 되겠다던 아들이 안마사나 길거리의 구걸 행인이 될 것을 생각한 나머지 충격을 받아 세상을 떠나셨던 것이다. 이제 맹인 소년 강영우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잃은 고아가 되었다.
어머니가 돌아 가신지 다시 일년 사 개월만에 가장이었던 누나 마저 세상을 떠났다. 학업을 중단하고 네 식구의 생계를 위해서 돈벌이에 나서야만 했던 누나는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삶의 의지를 잃고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을 중퇴한 18세의 꽃다운 나이였다.
16세의 맹인 소년 강영우는 아홉 살 짜리 여동생과 열 세살 짜리 남동생을 끌어안고 울고 또 울었다. 불과 4년이란 짧은 세월에 양친과 누나와 시력을 모두 잃고 어린 두 동생을 껴안고 절망에 몸부림을 치며 울어야 했던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은 강영우의 집안이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재앙이 닥쳤다고 말했다. 집안 대대로 섬기던 조상들의 신이 노해서 벌을 준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소경인 자신이 동생들을 돌 볼 수 없기 때문에 남동생은 철물점에서 먹고 자고 심부름을 해주면서 저녁에는 야간 학교에 다녔고, 여동생은 보육원으로 보내어졌다. 그리고 자신은 공병우 박사가 세운 맹인 재활원에 입소해서 타자와 점자를 익혔다. 그리고 서울맹학교에 입학했다. 낮에는 맹학교에서 안마술과 더불어 공부를 했고, 저녁에는 검정고시 학원을 다녔다. 그러다가 웅덩이에 빠져 다치기도 하고 맹인이라 재수 없다고 버스 차장까지도 밀쳐 버리는 바람에 도저히 학원을 계속 다닐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원 봉사자들과 재정적인 후원자들을 붙여 주셔서 대입준비를 할 수 있었고, 맹인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받았던 수많은 오해와 편견과 수모를 극복하고 연세대학교 교육과에 10등으로 입학을 했고, 사 년 후에는 2등으로 졸업을 했다. 한 체육교수의 편견만 없었다면 그는 수석졸업도 가능했었다. 연대를 졸업하자마자 훌륭한 부인을 만나 결혼을 했고, 장애인은 유학할 수 없다는 법적 불평등 조항과 국가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여권과 비자를 받아냈다. 그리고 그는 3년 8개월만에 두 개의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아 냈다.
어떠한 동기와 정신력이 고아요 맹인인 강영우로 하여금 절망과 좌절의 늪 속에서 승리의 길을 걷게 하였을까? 보지 못하는 맹인이 어떻게 별따기처럼 어려운 박사학위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그의 신앙고백의 내용은 '역경 속에 역사 하시는 하나님,' '더 좋은 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 '실명을 도구로 쓰시는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은 시련과 역경을 통해서도 역사 하신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난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의지가 강하고 두뇌가 명석해서가 아니다. 실명에 대한 확고한 자신의 태도에 있었던 것이다. 비록 실명 때문에 사물을 볼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이며,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면, 못할 것이 없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시력이 없을 뿐이지 정상인과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졌다. 정상인들보다 못하라는 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정상인 친구들의 도움을 받을 때에도 언제나 자신도 정상인들을 도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기에 그는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지 않았다. 강의실을 옮길 때마다 안내를 받고 책을 읽어 받는 도움을 받으면서도 정상인 친구들을 도울 길을 찾았다.
이 모든 이야기는 강영우 박사 부부가 쓴 {어둠을 비추는 한 쌍의 촛불}이란 책에 실려 있다. 맹인 강영우 박사는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보았고, 절망 속에서도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한 때는 원망스럽고 두려웠던 하나님이었지만, 자신의 고통 속에 동참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었다. 하나님이 고난을 딛고 일어 설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고 믿었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나의 실명은 장애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에 교량 역할을 하는 도구이다. 또한 장애인 재활을 통한 국제 이해와 우호 증진에 도구가 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의 도구로 인해서 나의 실명에 감사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다가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 기쁘게 가리라."
그는 한 때 실명의 절망과 무서운 고독 속에서 시력을 되찾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육신의 빛대신 실명을 하나님의 도구로 쓸 수 있는 능력과 정열을 주셨다. 실명으로 인한 성취가 자신이 갈고 닦은 학문이나 지적인 능력을 통한 성취보다 더욱 고귀하다는 것이다.
그는 한 때 배고픔을 참다못해 희미하게 남은 시력으로 한사코 별을 찾으며 부유함을 달라고 두 손 모아 기도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재물대신에 사랑과 행복이 넘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세상에 빛을 비추는 가정을 주셨다.
그는 한 때 멸시와 천대 속에서 권력을 가진 강자가 되어 남의 대접을 받으며 살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강자가 되는 권력대신에 약자가 되게 하시어 하나님의 존재와 필요성을 인정하고 오히려 자신의 약점을 자랑할 수 있는 용기와 신앙을 주셨다.
강영우 박사는 자신의 소경된 것이 자신의 죄 탓도 부모의 죄 탓도 아니란 사실에 확신을 얻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실명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이런 확신과 믿음에는 사도 바울의 영향이 컸다.
바울은 스스로 '육체의 가시'라고 말하는 신체의 장애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우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살았다. 바울은 자신에게 열등감을 주는 신체적인 조건에 대해서, 첫째, '내 은혜가 족하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신체적인 불리함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오히려 감사를 하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사역을 행함에 있어서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둘째,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진다'고 말했다. 뛰지 못함을 아는 거북이가 쉬지 않고 걸었을 때에 뛸 수 있는 토끼를 이겼다는 이솝의 우화처럼, 느린보 거북이가 '나는 달리는 토끼와 경주하여 이길 수 없다'고 말하지 아니하고 절망하지 아니하고 포기하지 아니하고 경주하여 이긴 것처럼, 나의 능력이 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그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온전하여진다고 믿었다. 사도 바울이 인류 역사에 뛰어난 업적을 남긴 것은 사도 바울이 완벽한 인물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능력이 약함에도 불구하고 그 부족함을 채우려고 부단히 노력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크게 기뻐하며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해서 자랑하였다. 그는 약점들을 부끄럽게 생각지 않았다. 굳이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 놓고 자랑은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자신의 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이 큰 일을 하신다고 믿었기 때문에 굳이 감추려고도 하지 않았다. 바울은 적대자들이 자신의 약점을 이용하여 공격을 가하며 견디기 어려운 인격적인 수모를 가하는 바로 그 점에서도 오히려 자신의 약점을 기뻐하며 자랑하였다.
넷째,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하다'고 말했다. 약점을 강점으로 생각한 것이다. 낙상매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약한 것이 강하고자 하는 의지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남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게 한다. 낙상매가 비록 다리는 병신이지만, 뛰어난 사냥매이기 때문에 사냥꾼의 사랑을 받는 것처럼,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쓰시는 것이다.
이런 바울의 신앙은 강영우 박사가 불행했던 과거와 실명으로 인한 고통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꾸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나의 약점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나의 약점을 통해서 봉사하고 기여한다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를 배운 것이다. 강영우 박사는 말한다. 하나님은 역경 속에서 역사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더 크고 좋은 문을 열어 주시기 위해서 이미 열린 문을 닫을 수도 있다. 만일 두 개의 문이 다 열리면 어떤 문으로 들어갈까 망설이다 길을 잘못 드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강영우 박사가 소경이 된 것은 이미 하나의 문이 닫힌 것일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신체적인 장애를 갖게 된 것도 이미 하나의 문이 닫힌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문이 닫힌 바로 그 때가 하나님께서 더 크고 좋은 문을 여시는 때임을 그들은 믿음의 눈으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