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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5 23:08
메뚜기 콤플렉스[민13:17-33]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004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서 오랜 기간 노예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집트를 탈출하게 되었다. 탈출이 성공하기까지에는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기적들이 발생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와 같은 기적들을 체험하면서 바란 광야란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모세는 목적지인 가나안 땅을 쳐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첩보원을 보내어 그 곳을 정탐케 하였다. 첩보원으로 선발 된 사람들은 열두 지파의 족장들이었다.
그들이 해야할 일은 가나안 땅에 숨어 들어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크고 강한지, 인구는 얼마나 되는지, 군대와 무기는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진지는 얼마나 강한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적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자 함이었다.
열두 족장의 첩보원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낱낱이 살피고 조사하여 정보를 수집했다. 그 곳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나라였다. 포도송이 하나만 하더라도 장정 두 사람이 들쳐 메야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 또한 거인들이었다. 첩보원들이 보기에 자신들은 그들에 비교하면 메뚜기 같아 보였다.
이것이 가나안 땅의 현실이었다. 살기에는 분명 좋은 곳이었다. 욕심나는 곳이었다. 차지하고 싶은 곳이었다. 그러나 장벽이 있었다. 그들의 요새는 튼튼하고 성민들은 거인들이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열 명의 족장들은 좌절과 낙심에 빠졌다. 메뚜기 컴플렉스에 사로 잡혔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비교를 멈추고 현실의 장벽에 짓눌리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땅의 현실을 보지 않았다. 그들은 당장의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과 가나안 족속들과 비교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그 결과 갈렙과 여호수아는 소망하던 가나안 복지를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나머지 족장들과 그들을 따랐던 자들은 모두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던 가운데 광야에서 죽어 광야에 묻히고 말았다.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가지 교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비교는 실패하는 길이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성공하는 길이다. 전북대학교의 남정길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비교는 정치마당이오, 비존재요, 자기가 없는 것이지만, 비교를 멈추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요, 진정한 자기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알다시피 정치마당은 썩은 곳이다. 남을 중상하고 비방하고 남을 죽이는 곳이다. 정치마당은 적자생존의 원리만이 적용되는 곳이다. 강한 자만이 살아 남는 사각의 링이다. 남을 죽어야 자기가 살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의 목을 조이거나 토끼 몰 듯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래야 만이 자기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마당의 가장 큰 특색이 무엇인고 하니 남과 자기를 비교하는 것이다. 남과 자기를 비교하는 순간부터 그 인간은 존재를 상실하게 된다. 비교하는 그 순간부터 그 인간은 메뚜기 콤플렉스에 빠지게 된다. 자기 존재를 잃게 된다. 자긍심을 잃게 된다.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다. 이 때부터 남을 원망하기 시작하고 구체적으로 목을 조이기 시작한다.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을 비교하는 순간부터 자기 자식의 장점과 독특함이 흐려지게 된다. 그래서 남의 자식은 거인처럼 자기 자식은 메뚜기처럼 보이게 된다.
남의 차와 내 차를 비교하는 순간부터 남의 차는 거인처럼 자기 차는 메뚜기처럼 보인다. 차가 작아 좁은 공간에 주차하기가 좋다든지, 기름이 적게 들어 경제적이라든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 실정에 비춰볼 때 애국하는 차라는 등의 자긍심은 사라지고, 차가 작아 열등감이 생긴다든지, 수위까지도 무시한다든지, 트럭만 지나가도 휘청거린다든지 하면서 불평을 늘어놓게 된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순간부터 나는 사라지기 시작한다. 저 녀석은 나보다 공부를 잘해, 나보다 키가 커, 나보다 힘이 세, 나보다 잘 생겼어, 나보다 좋은 옷을 입었어. 그래서 저 녀석은 크고 넓게 보이고 자기 자신은 메뚜기처럼 보이게 된다.
어떤 여자 가수는 서양아이처럼 꾸미기 위해서 머리를 칼라로 물들이고, 눈에는 블루 콘택트렌즈를 착용하고 다닌다. 그런 사람에게 있어서 서양은 거인처럼, 자기 자신은 메뚜기처럼 보이게 된다. 그게 또 좋다고 그것을 모방하는 사람, 창조적인 모방이면 몰라도 이런 사람은 자기 존재가 없는 사람이다. 전혀 신세대답지 못한 행동과 처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는 학생들 졸업여행 때문에 제주도에 갈 기회가 많다. 제주도에 찾아오는 신혼부부들의 풍속도를 보면, 전혀 신세대답지 못한 행동들을 볼 수 있다. 적어도 배웠다는 젊은이들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포즈로 택시기사 겸 사진사들이 요구하는 대로 원숭이처럼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게된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남을 의식하고 남과 비교하는 젊은 부부들이 남긴 결혼식 사진은 보아 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들의 사진은 전혀 새로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신혼부부들이 찍어온 사진과 거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갖춘 신혼살림 또한 특별한 것이 없다. 마치 우리 나라 대도시에 지어놓은 성냥곽 같은 똑같은 틀의 아파트를 보는 것처럼 집안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재도구들을 흔하게 보게된다. 집안 분위기에 상관없이 무조건 크고 값비싼 혼수를 준비했기 때문일 것이다. 살집을 보고 그 곳 분위기에 맞고 개성 있는 장식, 어울리는 가재도구를 살아가면서 준비한다는 자기 철학이 신세대들의 신혼가정에서 조차도 찾기가 쉽지 않다. 남과의 비교 때문에 자기의 것이 사라져 버리는 현상인 것이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순간부터 나는 사라진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데서부터 온갖 부정과 비리와 사회악이 싹트기 시작한다. 작은 것이라도 자기의 것을 찾고 자기의 것을 누릴 줄 알아야 한다.
둘째, 땅의 현실만을 보는 것은 실패하는 길이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성공하는 길이다. 족장들이 가나안 땅의 현실을 정탐한 후 그들의 세상 적인 땅의 현실을 보고 그만 그들은 간이 콩알만해 졌다. 메뚜기 콤플렉스에 걸려버린 다수 족장들의 부정적인 생각과 소극적인 판단에 그만 이스라엘 백성들도 메뚜기 체면에 빠져들고 말았다.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가나안 땅의 현실만을 바라 본 이스라엘 국민들은 크게 좌절하고 낙심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들은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통곡하였다. 그들은 또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갈렙과 여호수아를 돌로 치려고 했다. 가나안 땅의 현실을 바라보고 또 그들과 자신들을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이스라엘 진영은 정치마당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민14:2-4)라고 했다.
메뚜기 체면과 콤플렉스에 빠진 이스라엘 회중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많은 기적과 능력을 보고서도 깨닫지를 못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능력으로 인도하여 내셨고, 낮에는 구름기둥 가운데서 밤에는 불기둥 가운데서 그들을 인도하셨으며, 주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하나님의 이적을 보고도 열 차례나 하나님을 원망하고, 아론과 모세를 원망하며, 갈렙과 여호수아를 돌로 치려고 했다. 이런 불신적인 행동 때문에 그들은 약 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을 광야에서 방황하였으며 광야에서 죽어 광야에 묻히고 말았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다른 족장들과 마찬가지로 가나안 땅의 현실과 골리앗 같은 장벽을 보고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식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관찰하고 판단했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14:7-9) 고 하였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을 아름답게 보았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실 밥이라고 확신했다. 그들은 과연 하나님을 신뢰한 나머지 전혀 자신들과 가나안의 처지를 비교하지 않았다. 가나안의 거인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믿음대로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큰 축복과 영광을 누렸다.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민족이 여리고 성을 치려 하였을 때에 그 성은 과연 높고 튼튼했다. 비집고 쳐들어갈 틈새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여리고 성은 여호수아와 믿음의 군사들 앞에서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 성을 차지하였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것이 바로 여리고 성이다. 가나안 땅의 현실이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이 거대한 장벽들을 우리는 어찌 할 것인가? 메뚜기 콤플렉스에 빠져 신세를 한탄하며 주저앉고 말 것인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밀어붙일 것인가?
이스라엘의 온 진영이 블레셋 군대와 골리앗 장군을 두려워했다. 간이 콩알만해져서 떨고 있었다. 그러나 한 사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소년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강한 블레셋 군대나 골리앗과 비교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였다. 그가 바로 소년 다윗이었다. 다윗은 비록 양치는 어린 소년이었지만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현실적으로 다윗이 골리앗과 비교해 볼 때, 메뚜기 같은 존재였지만, 다윗은 오히려 골리앗을 메뚜기로 보는 믿음이 있었다. 이 믿음이 그로 하여금 골리앗을 상대하여 이기게 하는 힘이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족속과 그 땅을 자신들의 밥으로 알았다. 남들은 가나안 사람들을 보고 메뚜기 같이 졸아들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오히려 그들을 메뚜기로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