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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5 23:32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마셨다[출24:1-11]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224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계약의 하나님으로, 그들을 계약의 백성으로 믿었습니다. 출애굽 사건이 있은 후에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종살이에서 해방하신 야훼 한 분만을 그들의 신으로 섬기며, 그들은 야훼의 백성이 되기로 하나님과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그 제물을 나누어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습니다.
고대 근동지방에서는 공동식사를 통해서 평화 협정이나 협약 또는 계약체결을 인준하는 규정관습이 있었습니다. 이삭과 아비멜렉(창 26:30), 야곱과 라반이(창 31:54) 그러했고, 다윗과 아브넬이 그러했습니다(삼후 3:20). 쌍방간에 의견이 교환되고, 그것이 수용되고, 계약이 체결되면, 그것이 백성들에게 공포되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사건으로 인해서 죄의 종살이로부터 해방하시고, 침례식을 통해서 성령으로 사는 새로운 삶을 주신 하나님 한 분만을 구세주로 섬기며, 야훼는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성만찬은 바로 이 계약 체결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시는 행위인 것입니다.
우리말의 선물(膳物)은 제사상에 올린 음식을 뜻한다고 합니다. 제사 음식은 한 공동체를 강하게 결속시키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사 음식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고루 나누어주어 먹게 해야 한다는 필연성 때문에 선물이란 말로 전환된 것이라고 합니다. 요즈음 우리가 사용하는 복덕방(福德房)이란 바로 이 선물을 나누어주던 제물 분배소를 말한다고 합니다. 요즈음은 이 말이 토지나 가옥 중개업소란 뜻으로 변해 버렸지만, 옛날의 복덕방은 각종 부락제 때 제사상에 차린 음식이나 희생되었던 짐승의 살코기를 마을로 옮겨와 그 곳에 차려 놓고 나누어 먹던 장소가 바로 복덕방 이였습니다. 곧 먹고 마심으로 복을 받고(飮福), 먹고 마심으로 덕담을 나누는(飮德) 신성한 장소가 복덕방 이였던 것입니다. 선물이란 바로 신의 뜻(神意)을 나누는 분배행위요, 그 나눔의 행위는 한 집단의 결속과 연대와 공동체 의식을 신명(神命)으로 보장받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선물은 이와 같이 한 공동체를 강하게 결속시키고 공동 운명체임을 자각시키는 접착제 노릇을  대행했던 것입니다.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신성한 뜻을 받들어 주의 살과 피를 나누는 복덕방이요, 성만찬을 통해서 우리가 먹고 마시는 떡과 잔은 우리 모두가 한 운명체임을 신명으로 받는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입니다.
어느 집안에나 제사를 지내면 음복(飮福)이라 하여 제주(祭酒)와 제사음식을 나눠 먹는 습속이 기필 수반되는 데 각종 공동제사 때도 소나 돼지 등 신에게 바친 희생물을 제사 후에 반드시 한 점씩이라도 나눠먹는 습속이 있습니다. 음복과 희생음식을 나눠 먹는 것은 제사가 끝났으니 나눠 먹자는 뜻에서가 아니라, 그 제사음식에 신의(神意)가 깃들여 있으니 그 신의를 자기 속에 나눠 갖자는 상징적 주술(呪術)행위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사가 끝나면 분량의 크고 작음이나 질의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떡 한 조각, 밤 한 톨이라도 나눠 먹어야 했으며, 그것을 먹으면 병에 안 걸리고, 액(厄)도 사라진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마을의 당제(堂祭)는 공동체의 평안을 비는 것이기에 신(神)의 평안의 뜻이 담긴 제사음식은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나눠 먹을 의무와 권리가 주어졌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인류의 대속제물로 삼으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를 구원하셨음으로 그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잔을 먹고 마시는 것은 이제 우리 모두의 의무요 권리인 것입니다.
성만찬 예배에는 다섯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 특징들을 하나 하나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성만찬은 인류의 구속을 이루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의 예배입니다(Eucharistia). 세계 교회가 함께 제정한 {리마 문서}는 제 4 항에서 성만찬을 찬양의 제사로 정의합니다. 성만찬 예배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대한 찬양과 감사의 응답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배 공동체였으며, 예배를 통하여 조상들이 하나님과 맺은 계약관계를 새롭게 다짐하고 갱신하였던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전 생애를 통해서 드러난 참예배를 거듭 재현하는 예배 공동체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배의 신학적 기조를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역사에 두었던 것처럼, 교회도 예배의 신학적 근거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둡니다. 또한 구약시대의 예배는 이스라엘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대한 찬양과 감사의 응답이었던 것처럼, 기독교의 예배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대한 찬양과 감사의 응답입니다. 성만찬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을 회고하여, 사죄에 대한 확신을 가지며,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둘째,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화목제물 되심과 십자가의 정신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예식입니다(Anamnesis).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성만찬은 하나님과 인간사이 또 인간과 인간사이에 가로놓인 불편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구원의 계약 성립의 매개물로서 희생된 어린양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예전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바다에서 자기 민족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념하고 찬양한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를 통해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념하고 찬양합니다. 성만찬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의 몸에 동참하는 기념행위입니다. 기념행위를 통해서 과거의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을 오늘의 나의 삶 속에 현재화하며, 미래의 하나님의 구원을 나의 삶 속에 앞당겨 옵니다.
셋째, 성만찬은 성령의 임재를 비는 제사입니다(Epiklesis). {리마 문서}는 교회 전통과 칼뱅의 정신을 따라 다음과 같이 성령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성령은 성만찬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맛보게 하며, 교회는 새 창조의 생명을 얻고, 주님의 재림을 확신하기 때문이다"(18항). 우리는 성만찬 예배를 통해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재, 하나님의 침묵,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현실 속에서 성만찬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 임마누엘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성만찬의 성령의 임재 기원은 유대교의 유월절 식사에는 없는 기독교만의 독특한 내용입니다. 유월절 식사의 특징도 기념과 찬양과 교제와 희망으로 나타납니다만 성령의 임재 기원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유월절 식사와 성만찬을 근본적으로 차이 나게 하는 점입니다. 성령은 마지막 시대를 앞당겨 오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교회시대를 메시아 시대로 만드는 기독교만의 특징입니다.
넷째, 성만찬은 수직적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수평적으로 이웃과 연대하며, 모든 피조물을 관리하고 돌보는 교제의 시간입니다(Koinonia). 성만찬은 대신(對神), 대인(對人), 대물(對物)관계에서 예배와 친교와 관리를 통해서 서로 연대하고, 인간에게 필요한 신뢰를 쌓기 위해 마련된 화해와 나눔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성만찬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인 성도와의 친교에 참여합니다. 식음의 행위는 친교의 행위입니다. 신의(神意)가 긷든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고 마심으로써 신앙공동체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초기 기독교는 한 덩어리의 빵을 쪼개어 나누어 먹으며, 한 대접의 포도주를 나누어 먹으면서 그리스도가 한 몸이듯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구성원들도 하나라는 연대의식을 공고히 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만찬은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과 은총을 미리 맛보고 누리는 종말론적 식사입니다(Anticipation). 성만찬은 하나님의 나라의 잔치입니다. {리마문서}는 제 22 항에서 "성만찬은 창조물의 궁극적인 갱신으로서 약속된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보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앞당김은 막연히 앉아서 기다려 얻는 것이 아니라, "성만찬에 참석할 때 버림받은 이들과 연대하는 소명,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는 표징이 되는 소명을 받아"(24항) 하나님의 나라의 선교에 동참할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25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신 목적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현재 우리의 삶 속에서 누리고 맛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앞당겨 미리 맛보고 누리는 삶이란 하나님의 나라에서처럼 행복하게 즐겁게 착하게 진실하게 찬양하며 용서하며 사랑하며 서로를 아끼며 정의롭게 공평하게 사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 민족의 세시민속(歲時民俗) 가운데 대보름 민속으로 원을 푸는 떡(解怨餠)이라는 게 있습니다. 한 해를 살다보면 이해(利害)에 얽히건 오해에 얽히건 간에 누군가와의 사이에 원망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한 마을에 살면서 불편한 관계를 갖는다면 피차에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대보름 명절에 그 불편한 관계를 말끔히 씻기 위해서 해원떡을 만들어 산사(山寺)의 스님을 통해서 주고받음으로서 지난해의 불편했던 관계를 깨끗이 씻고 새로운 출발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떡을 통해서 원수된 관계를 풀고 서로 화목 하는 길을(解怨相生) 모색했던 것입니다. 최후의 만찬 때에 예수께서 떡을 들어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며, "받아먹어라. 이것은 내 몸입니다" 라고 하셨고, 또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이웃과 또 자연과 불편했던 관계를 바로 잡기 위해서 친히 해원떡이 되셨고, 이 떡으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 한다는 것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행위로서 끊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삶을 배우고 삶 속에서 실천에 옮기겠다는 다짐인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감독이었던 이그나티우스는 97년경 로마로 붙잡혀 가면서 일곱 편의 서신을 썼습니다. 그가 쓴 에베소 서신에서 이그나티우스는 주의 만찬을 "불사(不死)의 약(藥)이요, 죽음의 해독제"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또 말하기를, "만일 너희들이 주의 만찬에 자주 모이면 사탄의 세력은 무너지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의 떡과 잔은 우리 속에 있는 사탄의 세력을 무너뜨리며, 죽음의 독을 풀며, 영생을 주는 불사약이 됩니다. 주께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유언으로 부탁하셨습니다. 이 일을 충실히 이행하는 일은 예수의 제자들로서 마땅히 행할 복된 일인줄 압니다.
오늘 우리는 성만찬이 기독교 예배를 감사제, 기념제, 기원제, 화목제, 종말론적인 축제로 만든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성만찬이 없이는 이와 같은 의미를 예배에 담기가 어렵습니다. 피상적이고 말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만찬 예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과하지 아니하며, 성만찬 예배의 회복은 반드시 이루어 져야 합니다. 성만찬의 시행을 통해서 사랑의 교회가 한 차원 높은 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