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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7-26 01:04
새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영광[요 11:17-27, 27:39-44]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487  
그 동안 여섯 번에 걸쳐서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친 기적, 38년 된 병자를 고친 기적, 보리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오 천명 이상을 먹인 기적, 풍랑 만난 제자들을 구하신 기적, 소경의 눈을 뜨게 한 기적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죽어서 굴무덤에 묻혔던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을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나오는 나사로의 부활은 믿음과 새 생명에 관한 예수께서 행하신 설교의 총체적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을 믿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을 죽은 예수를 살린 분으로, 예수를 죽은 나사로를 살린 분으로 믿는 종교입니다. 예수를 우리 부활의 첫 열매로 믿는 종교입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부활은 죽임으로부터의 살림을 의미합니다. 육체적인 죽임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죽임과 영혼의 죽임까지도 포함하는 죽임으로부터의 살림을 의미합니다. 개인의 죽임뿐만 아니라, 작은 집단과 큰 사회를 망라한 타락과 병듦까지 다 포함하는 죽임으로부터의 살림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보면, 이 죽임은 아담의 범죄로 시작되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죽임의 법칙인 현재의 자연법칙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담의 범죄이전에는 지금과 같은 죽임의 법칙이 없었습니다. 이담의 범죄이전에 어떤 자연법칙이 있었다해도 현재의 자연법칙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자연법칙은 엔트로피 법칙으로써 생명에서 사망으로 가는 법칙입니다. 살림에서 죽임에로 가는 법칙입니다. 건강에서 병듦에로 가는 법칙입니다. 싱싱함에서 시듦에로 가는 법칙입니다. 새것에서 헌것에로 가는 법칙입니다. 사랑에서 미움에로 가는 법칙입니다. 평화에서 전쟁으로 가는 법칙입니다.
부활은 이런 자연법칙의 사슬을 끊고 새로운 생명법칙에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부활이 예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실 때에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성경이 예수재림의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그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성령의 능력 안에서 죽임으로 상징되는 옛 시대의 자연법칙의 사슬을 끊고 생명으로 상징되는 새 시대의 생명법칙에로 점진적으로 이루어가고 맛보고 경험하라고 말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으로 거듭난 새 삶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새 삶은 예수재림의 때에 완성될 새 생명의 삶에 대한 약속이자, 지금 오늘 여기에서 이루어지고 맛보아지고 경험되어지는 새로운 삶이요, 생명으로 가득한 삶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우리 인간의 구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대 자연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부활로 설명되는 생명회복은 우리 인간이 죄로 인해서 죽게 된 영혼의 부활과 우리 인간이 죄로 인해서 죽게 된 육체의 부활과 우리 인간이 죄로 병들게 한 인간 공동체의 회복과 우리 인간이 물질의 욕심으로 병들게 한 지구회복을 다 포함합니다.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들의 특징은 죄로 죽었던 자신의 영혼이 산 사람들이고, 미래에 예수께서 재림하시면 새로운 육체로 태어날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큰복을 주신 것은 이제 더 이상 죽임의 일을 하지 말고, 살림의 일을 하라고 한 것이요, 더 이상 죽음의 사슬에 얽매어 있지 말고, 생명을 살리는 자유인이 되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 큰 복음을 전해서 그들도 예수 믿고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요, 자기 주변의 공동체나 사회가 병들지 않도록 힘쓰는 일이요, 혹 병들었다고 하면 고치는 일에 힘쓰는 일이요, 하나님께서 만드신 지구와 자연을 보호하고 보존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죽임의 일은 마귀를 기쁘게 하는 일이요, 살림의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병들어 죽어가고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 사회가 도덕적으로 얼마나 중한 병에 걸려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 지구가 환경파괴로 얼마나 중한 병에 걸려 있습니까? 이 중한 병을 고치고 살리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요, 진정한 부활사건입니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행한 기적 가운데 열 번째가 장자를 죽이는 재앙이었습니다(출 11:1-12:30). 이 재앙은 아주 무서운 재앙이었습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가리지 않고 장자로 태어난 것은 다 죽는 무서운 재앙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집안에 3대 독자가 살았다고 칩시다. 할아버지도 죽고, 아버지도 죽고, 아들도 죽고,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딸들만 살아남게 되는 무서운 재앙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집트가 눈물바다로 변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이 무서운 재앙 때문에 앞서 행해진 아홉 가지 재앙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바로가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적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죽은 나사로를 살린 기적과 평행을 이룹니다. 모세의 재앙이 마지막 클라이맥스였듯이 예수의 기적도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경우 모두 '죽음'이 지배적인 사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생명이 있던 곳에 죽음을 가져왔고, 기쁨이 있던 곳에 통곡을 가져왔지만, 예수는 죽음이 있던 곳에 생명을 가져다주었고, 슬픔이 있던 곳에 기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것이 율법과 복음의 차이입니다. 이것이 타종교와 기독교의 차이입니다. 생명을 억압하고 생명을 죽이는 종교는 참된 종교가 아닙니다. 생명을 치유하고 생명을 살리는 종교가 참된 종교입니다. 예수는 생명을 억압하고 생명을 죽이는 옛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생명을 치유하고 살리는 새 시대를 시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으니, 그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의 안에서 생겨난 것은 생명이었으니, 그 생명은 모든 사람의 빛이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이 구체화된 것이 날 때부터 장님이었던 사람이 고침을 받은 것이고, 죽어서 무덤에 묻혔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예수께서 날 때부터 장님이었던 사람을 고친 것은 예수께서 빛을 주시는 분임을 입증하는 표적이었고, 죽은 나사로를 살린 것은 예수께서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입증하는 표적이었습니다.
율법은 죽이는 것이요, 복음은 살리는 것입니다. 율법은 자연법칙에 지배받지만, 복음은 생명법칙에 지배받습니다. 자연법칙은 죽이는 것이요, 생명법칙은 살리는 것입니다. 모세는 사람과 동물을 죽이는 재앙을 베풀었지만, 예수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민중을 억압하고 무거운 멍에를 메우고 죽이는 일을 했지만, 예수는 민중을 풀어주고 해방하고 살리는 일을 하셨습니다. 자연법칙만을 믿고 사는 세상 사람들은 죽임의 일을 하지만, 예수를 믿고 부활을 믿고,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는 분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살림의 일을 해야 합니다. 자기를 살리고, 친구를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사회를 살리고, 환경을 살리고, 자연을 살리는 '살림'의 일을 해야 합니다. 살림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제자로서 예수처럼 생명을 살리고, 살림의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어둠에 속하여 죽임의 일을 하고 있고, 죄 가운데 죽어 가는 사람들을 살려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도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제자로서 예수처럼 생명을 살리고, 살림의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둘째, 퇴폐와 타락으로 병들어 죽어 가는 사회를 정화해야 합니다.
생명을 죽이는 문제에 있어서 가장 심각하게 겪는 문제 가운데 한 가지가 매춘입니다. 우리 나라에는 매춘에 종사하는 여성이 1백만 명이 넘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유흥업소 주변에서 품을 팔다 적발된 미성년자 5,000여명 중 800여명이 몸을 팔았고, 이들 가운데 16세 이하인 중학생이 절반에 가까운 44%를 차지한다는 대검찰청의 발표가 최근에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대학생, 주부, 모델, 회사원 등 수천 여명의 여성들을 회원으로 모집 해놓고 생활정보지 광고를 통해서 윤락행위를 알선해 온 이벤트업체들이 검찰과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일본문화가 수입되고, 영화등급제를 실시한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온통 퇴폐의 온상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렇지 않아도 '정신'과 '이성'보다는 '몸'과 '느낌'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이 시대의 왜곡된 정신인데, 여성을 성의 노리개로 보는 왜곡된 가치관이 커질까 봐 무척 걱정입니다. 기 드보로는 {스펙터클 사회}에서 "소수의 지배계급이 부와 쾌락을 향유할 수 없는 다수의 대중에게 물질적 궁핍과 불만을 잠재우고 또 포르노그라피의 마력에 중독 되게 함으로써 엉뚱한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섹스산업을 육성한다"(98.11.12자 {뉴스플러스})고 했는데,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변해 가는지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생명을 죽이는 문제에 있어서 가장 심각하게 겪는 문제 가운데 다른 한 가지가 범죄입니다. 아버지가 돈 몇 푼 때문에 초등학생 아들의 손가락을 자르고, 딸자식을 겁탈하고, 남편이 부인을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자식이 병든 아버지를 돌보지 않아 굶어죽게 하고, 장례를 치르지 않아 썩어서 뼈만 남게 만들고, 늙은 부모를 폭행하고 살해하는 일이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학원폭력도 빼놓을 수 없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후배들에게 때마다 돈과 선물을 상납 받고, 몸종노릇을 시키는가하면, 군기 잡는다고 때려서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맹장이 터지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때릴 때는 바닥에 피가 떨어지는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신문지를 몇 장씩 깔아놓고 그 위에서 닥치는 대로 때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했다면 믿어집니까?
그리스도인들은 무너져 내리는 가정과 윤리와 도덕을 살려내어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 나게 해야 합니다. 로마서 1장 18절부터 3장 20절은 위와 같은 나쁜 행위들을 죽음에 해당된다고 이미 선포해놓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이 땅에 보내어 우리 죽을 목숨을 살려내어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낸 것처럼 또 예수께서 죽어서 냄새나는 무덤에 갇힌 나사로를 살려내어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낸 것처럼 살림의 정신과 생활방식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사회도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제자로서 예수처럼 생명을 살리고, 살림의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셋째, 환경파괴로 병들어 죽어 가는 지구를 살려내야 합니다.
전 세계 사망인구의 40%가 환경오염 또는 환경과 관련된 질병으로 죽는다고 합니다. 환경오염으로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고, 바닷물의 고온 또는 저온 현상으로 발생된 태풍과 허리케인들이 휩쓸고 간 자리는 폐허로 변해버리고 있습니다. 금년 한해만 하더라도 전세계 56개국이 극심한 홍수를, 45개국이 극심한 가뭄을 겪었고,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삼림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지난 주(1998. 11. 4-7)에도 허리케인 '미치'가 온두라스,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등 중남미를 강타해 엄청난 피해를 입혔습니다. 허리케인 '미치'로 인해서 최소한 3만5천명이 죽었고, 2백만 명 이상이 집을 잃었습니다.
중국의 경우, 공장이 많은 대도시에서는 연간 17만8천명이 공해로 인해 죽어가고 있고, 석탄과 동물배설물 등을 취사와 난방 원료로 사용하는 농촌 지역에서는 실내 대기오염으로 매년 11만1천명이 죽음을 맞고 있다고 합니다. 대기오염은 사람만 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산성비를 만들어 하천과 지하수를 죽이고 물고기들을 죽이고 나무를 죽이고 금속이나 인공 석조물을 부식시키고 각종 미생물을 죽여버립니다.
무분별한 바다매립은 바다오염을 부채질하고 있고, 산업폐기물 불법매립과 기름누수로 물과 토양이 오염되고 있습니다. 신도시인 안산시의 경우, 하수관이 12m마다 결함이 나 있고, 서울시의 경우, 평균 4.2m마다 한곳씩 구멍이 나있거나 하수관이 파손돼 있다고 합니다. 이런 불량 하수관을 통해 오폐수가 지하로 스며들어 지하수와 하천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환경파괴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재앙입니다. 욕심과 욕망으로 가득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는 자연을 착취하고 죽이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자연은 인간에게 엄청난 보복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죽어 가는 환경을 살려내어 다시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 나게 해야 합니다. 쓰레기 양을 줄이고, 물자를 아끼고, 분리수거를 하여 재활용도를 높이고, 합성세제의 사용을 줄이고, 샴푸도 가급적 쓰지 말아야 합니다. 휴지나 오물을 아무 데나 버리지 말고,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며, 미생물학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예수께서 무덤에서 나사로를 살리신 행위는 우리로 믿고 영생을 얻게 하려한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으며, 예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죽음의 길에서 돌아서 생명의 길로 들어서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또 죽임의 사슬을 끊고 살림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항상 복음적 생명이 약동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