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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7-26 01:00
새 시대를 위한 생명의 떡[요 6:1-15]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103  
예수는 찾아오는 민중을 돌보시고, 그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느라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이 분주하셨습니다. 음식도 드시고 잠시 쉬기 위해서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을 찾아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서 산에 올라 제자들과 함께 앉았는데 사람들이 알고 몰려왔습니다. 그 때는 시기적으로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통을 겪다가 탈출한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이 다가오는 3월 말경이었습니다. 유대지방의 기후로 봐서 늦은 비가 뿌릴 수도 있는 조금은 서늘한 때어서 봄나들이에 알맞은 때였습니다.
예수께서 산에 오르셨다는 말은 갈릴리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의 평지를 말합니다. 갈릴리 바다는 지중해의 해면보다 약 210미터 정도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호수여서 배에서 내리면 계속 오르막입니다. 갈릴리 호수의 이름은 지역 이름을 따서 불렀기 때문에 여러 개의 이름을 갖고 있었습니다. 서부 갈릴리 지방 이름을 따서 갈릴리 호수, 수도인 디베랴의 이름을 따서 디베랴 호수, 북부 게네사렛 지방의 이름을 따서 게네사렛 호수라 불리었습니다.
예수는 피곤하셨지만, 민중이 목자 없는 양 같이 나라 잃고 지도자 없이 방황하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찾아오는 병자들을 고치셨고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말씀을 가르쳤다는 말이 없습니다만, 공관복음서에 보도된 내용들을 보면, 사람들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또 배고픈 줄도 모르고 해가 저물도록 예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권위 있고 은혜로운 또 시원한 생수 같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 영혼의 갈급함을 채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육신의 배고픔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장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음식이었습니다. 예수는 그 점을 간파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다 먹이려면 200데나리온어치 이상의 떡이 필요했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 하루 품삯에 해당됩니다. 하루 품삯을 3만원으로 계산했을 때, 적어도 600만 원어치 이상의 떡이 필요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액수면 6천명 정도에게 떡 두 덩어리씩은 돌릴 수 있는 돈입니다.
여기서 떡은 빵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이 나올 당시에만 해도 서양음식인 빵이 없었던 때라 떡으로 번역한 줄로 압니다. 아무튼 예수에게는 그 많은 돈이 없었습니다. 또 있다고 해도 그 많은 빵을 구해올 공장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께 가져왔습니다. 아마 이 아이는 어머니가 정성껏 싸주신 이 도시락을 먹지 않고 있다가 시장해 하실 예수께 드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이 도시락을 혼자 먹지 아니하시고, 떡을 가져 축사하시고 떼어 사람들에게 나눠주시도록 하셨고, 물고기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 때 신기한 것은, 열왕기상 17장에서 엘리야로 인해서 사르밧 과부의 집에 남은 한 움큼의 가루와 약간의 기름이 다하지 아니하고 없어지지 아니한 것처럼, 빵과 물고기가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많은 사람들이 먹고 남은 것을 거두었더니 열두 바구니에 찼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가 엘리야보다 훨씬 더 위대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기적 이야기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모두에 다 실린 유일한 기적입니다. 그만큼 잘 알려져 있었고, 그만큼 큰 의미를 담고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만큼 이 기적이야기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 기적에서도 물이 포도주가 된 기적이나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친 기적이나 38년 된 병자를 고친 기적에서와 마찬가지로 '믿음'과 '생명'이 주제어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하지 아니하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 이 기적에서 발견되는 가장 중요한 언어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함이라고 하셨는데,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는 것이며,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리는 것(요 6:40)이라고 하셨고,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요 6:47)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민중을 먹이신 것은 오로지 자신이 새 시대를 위한 생명의 떡임을 밝히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는 이 기적이 있고 난 직후에 행한 설교에서 분명하게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요 6:48-51).
또 예수는 이 말씀을 듣고 놀라 자기들끼리 다투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자기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그 속에 생명이 없다고까지 하셨습니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요 6:53-58).
요한복음 6장 14-15절에 보면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또 신명기 18장 15절에 보면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라는 모세의 말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일 것이고, 그 선지자는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먹게 했던 것처럼 민중을 먹이는 표적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또 여호수아서 5장 10-12절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요단강을 건너가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는데,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에서 지낸 지 만 40년이 되는 때였습니다. 그후로는 만나가 그쳤습니다. 이렇게 모세 때에 내렸던 만나가 유월절을 기하여 그쳤기 때문에 모세와 같은 선지가가 나타나면, 유월절에 만나의 표적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유월절이 가까웠을 때에 예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 이상을 먹이는 표적을 보였을 때에 유대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대인들은 특히 열심당원들은 예수를 붙잡아 유대인의 왕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를 왕으로 삼고자한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었습니다(요 6:26). 그래서 예수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요 6:27)고 하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는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그리스도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는 우리 자신이 기대하고 있는 그리스도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는 우리 모든 인간들이 기대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적어도 하나님이라면 자기를 섬기는 백성들의 먹고 입고 자는 의식주만큼은 해결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원하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기대 속에 사는 삶의 방식은 낡은 시대의 존재 방식입니다. 조상들이 먹고도 영원히 살지 못했던 것은 육신의 양식인 만나만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양식만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새 시대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영생의 떡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새 시대에는 새 시대에 적합한 사고와 생활방식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육신의 만나가 아니라 영생하는 떡입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모세나 엘리야와 같은 선지가가 아니라, 예수와 같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유대인들이 찾아와서 자기 조상들이 광야에서 지낼 때에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었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메시아인 증거를 보이라고 하였을 때에,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다."(요 6:32-33)고 말씀하셨습니다. 미처 다 깨닫지 못한 유대인들이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요 6:34)라고 했을 때에,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는 것은 그가 행한 기적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바로 앞에서 메뚜기 재앙을 베풀었는데(출 10:1-20), "메뚜기가 온 지면에 덮여 날으매 땅이 어둡게 되었고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었으므로 애굽 전경에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출 10:15)고 하였습니다. 인간에게 엄청난 기근의 재앙을 내린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떡으로 민중을 배불리 먹였습니다. 모세는 사람들에게 기근의 재앙을 가져왔으나 예수는 굶주린 자들에게 풍성한 음식을 제공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영생의 떡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육신의 양식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못 박히시고, 창 찔림을 받으시고, 물과 피를 쏟으신 자신의 육체의 살과 피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절인 유월절이 가까운 때에 빈들에서 많은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신 기적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께서 인류의 죄값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양으로 죽고 많은 사람에게 새 생명을 주실 분인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세시 민속(歲時民俗) 가운데 대보름 민속으로 원을 푸는 떡(解怨餠)이라는 게 있습니다. 한 해를 살다 보면 이해(利害)에 얽히건 오해에 얽히건 간에 누군가와의 사이에 원망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한 마을에 살면서 불편한 관계를 갖는다면 피차에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대보름 명절에 그 불편한 관계를 말끔히 씻기 위해서 해원떡을 만들었는데, 원한이 클수록 크게 만들고, 작으면 작게 만들어서 산사(山寺)의 스님을 통해서 전달함으로서 지난해의 불편했던 관계를 깨끗이 씻고 새로운 출발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떡을 통해서 원수된 관계를 풀고 서로 화목 하는 해원상생(解怨相生)의 길을 모색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11절에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셨다."고 하였는데, 이는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 때에 떡을 들어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며, "받아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하셨고, 또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이웃과 불편했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친히 해원떡이 되셨고, 이 떡을 나누어먹게 함으로서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하는 영생의 길을 열어놓으셨고, 사람과 사람이 화해하는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어느 집안에서나 제사를 지내면 음복(飮福)이라 하여 제주(祭酒)와 제사 음식을 나눠 먹고 마시며, 마을제사 때도 소나 돼지와 같은 희생물을 제사 후에 반드시 한 점씩이라도 나눠 먹습니다. 제사 후에 음식을 나눠먹고 마시는 것은 제사가 끝났으니 나눠먹자는 뜻이 아니라, 그 제사음식에 신의 축복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 복을 나눠 갖는다는 뜻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가 끝나면 분량의 크고 작음이나 질의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떡 한 조각, 밤 한 톨이라도 나눠 먹어야 했으며, 그것을 먹으면 병에 안 걸리고, 액(厄)도 사라진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신에게 바쳐진 음식은 구원의 복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이 신에게 바친 제물에도 구원의 복이 담겨 있다고 한다면,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외아들 예수로 준비하신 화목제물 속에 얼마나 큰 영생의 복이 담겨 있겠습니까?
우리말에 선물(膳物)은 제사상에 올린 음식을 뜻한다고 합니다. 인간이 신에게 바친 하찮은 제물에도 구원의 복이 담긴 신의 선물이라고 한다면,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십자가에 매달려 희생하신 대속의 제물이야말로 얼마나 큰 하나님의 선물이겠습니까? 이 선물이 바로 생명의 떡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새 시대를 위한 우리의 영생의 떡이십니다. 이 예수를 믿지 않고는 영생의 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영생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복을 받아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