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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09 00:21
변화의 원리속에 변치않는 생존의 법칙2[민9:15-23]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862  
사람들이 변화를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불확실한 미래 때문입니다. 청소년들이 위기심리를 갖게되는 것도 급격한 정신적 육체적 변화와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켄 블랑카드(Ken Blancard) 교수는 말하기를, "사람은 선천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변화에 대한 호기심이나 변화를 바라는 마음은 있으나 정작 변화 그 자체는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블랑카드 교수는 사람들은 지식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자세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행동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조직의 변화를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변화를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가는 우리 나라에서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된 것이 반세기만에 처음, 그것도 매우 힘겹게 이루어진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일 것입니다. 냉전시대에는 공산주의든 민주주의든 사람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예측 가능한 목표와 이념이 있었지만, 냉전이 세계적으로 와해된 지금은 전체가 다 불확실하다고 합니다.
정치나 경제만 불확실한 것이 아닙니다. 환경파괴로 빚어진 지구의 미래조차도 불확실합니다. 21세기는 3P 문제가 심각해 질 것으로 예견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오염(Pollution)문제입니다. 21세기에는 대기권의 오염으로 오존층이 파괴되어 지구의 종말이 오지 않을까 염려되고 있습니다. 작년(98)만 해도 세계 곳곳에서 홍수와 지진 태풍 등으로 많은 인명의 피해를 보았고, 올 겨울에도 북미주와 북유럽이 폭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또 지구는 유성과의 충돌로 파괴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합니다. 작년에 상영된 영화 딮 임팩트나 아마게돈 전쟁은 모두 이러한 지구의 종말을 묘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둘째는 인구폭발(pupulation)문제입니다. 재작년(97) 여름에 중국에서 망명한 한 여성이 미국 의회에서 자신이 중국에서 산아제한운동을 하면서 유산뿐 아니라, 심지어 유아를 독침으로 살해한 사실을 고백해서 큰 충격을 준 적이 있었습니다만, 이런 잔인한 인구억제책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중반기 또는 하반기에는 80-100억 인구가 되리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인구폭발로 인해서 자원고갈과 식량문제를 가져온다는 점입니다. 식량부족은 또한 가난(poverty)문제를 심화시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것들이 다 미래를 불확실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가치 있는 변화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21세기는 의미 있는 일과 가치 있는 일로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어려운 세기가 될 것입니다. 또 변화를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산 지식인이 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세기가 될 것입니다. 기존의 낡은 지식에 대한 혁명 없이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어려운 세기가 될 것입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권력의 이동}(Power Shift)이란 책에서 3M의 이동을 말했는데, 농경사회에서는 근육질(muscle)이 힘이었지만, 산업사회에서는 돈(money)이 힘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보화사회에서는 정신(mind) 혹은 지식이 힘이라고 말했습니다. 토플러 이외에도 최근에 학자들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지식혁명시대라고 말합니다. 또 그들은 우리 나라가 다른 선진국들보다 경쟁력과 생산성에서 뒤지는 이유를 지식격차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산업사회에서는 "아는 것이 힘이다"고 했는데, 정보화사회가 오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찾는 것이 힘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아는 것이 힘이다"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이론지식이 아니라, 경험지식을 말한다는 점에서 예전에 말하던 지식하고는 그 개념이 상당히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변화를 수용하되 그 변화가 자신의 부가가치를 높여줄 수 있도록 산지식을 습득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노력이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성경에 기초하며, 선교 지향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성도들의 미래가 밝게 전개될 수 있을 것입니다.
변화와 관련해서 우리가 쉽게 살펴볼 수 있는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성경에 자세히 설명된 이스라엘의 역사라고 생각됩니다. 이스라엘은 한 사람의 용기 있는 변화의 시도로 인해서 시작되었습니다. 만일에 아브라함이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한 나머지 갈대아 우르를 떠나 팔레스타인으로 이동하지 않았다면, 히브리민족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에 히브리 민족이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한 나머지 모세를 따라 이집트를 탈출하지 않았다면, 미국의 흑인노예들과 같은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불확실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영광의 탈출을 감행했기 때문에, 탈출 후에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었지만, 결국 국토를 얻고 나라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를 탈출했던 사람들 가운데 이스라엘 국가 창건의 주역이 된 사람들은 끝까지 변화를 포기하지 않고 새 땅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던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그 나머지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하였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의심하였기 때문에 광야에서 모두 죽고 그들의 후손만이 가나안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변화에는 고통이 따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예수를 믿으면 집안에 큰 시험이 든다는 말을 합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무서워서 예수 믿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조상신이나 귀신들이 훼방을 놓는다는 것입니다. 호사다마라고 좋은 방향으로 변화를 시도하게 되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뒤따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담배 피우던 사람이 담배를 끊으면 살이 찐다든지, 알코올중독자나 마약중독자가 술이나 마약을 끊으면 금단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일종의 변화에 대한 마귀의 시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30년 세월 살아온 자기 인생에 중대한 결단을 내리고,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아,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병든 자에게 고침을, 눌린 자에게 해방을 선포하고자 했을 때에 마귀의 시험이 있었던 것을 압니다. 새 출발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시련이 반드시 예수 믿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과 한울이 하나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깨닫고, 이름을 제선(濟宣)에서 '어리석은 민중을 구한다'는 뜻의 제우(濟愚)로 바꾸고,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가 1860년 나이 37세 되던 해에 입신의 경지에 들어가 한울님으로부터 세 가지 시험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최제우의 전기에서 볼 수 있는 상당부분이 신약성경 4복음서에 실린 이야기에서 끌어다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아무튼 호사다마라고 옳을 일을 결단하고 시작하고자 할 때에는 때로 큰 시험에 빠질 때가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인해서 변화는 쉽지 않습니다. 옛 모습이 좋아서 변화를 거부하기도 하고, 변하고 싶어도 알지 못해서 못하는 경우도 있고, 변해보려고 하면 어려움이 닥쳐서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튼 변화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변화해야 할 때 변화하지 아니하면 더 성숙한 발전을 이룩할 수 없게됩니다. 요한 맥스웰(John Maxwell)이 쓴 글에 보면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1940년대에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최고급 시계는 스위스제 시계였다고 합니다. 전세계 시계판매율의 80%를 차지할 만큼 그 위세는 대단했습니다. 그러던 중 1950년대에 새로운 형태의 시계가 소개되었습니다. 그것은 디지털방식으로 움직이는 전자시계였습니다. 그러나 전통을 고집하던 스위스 시계회사 간부들은 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새 아이디어는 세이코(Seiko)라는 일본회사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세계 시계시장의 판도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세계시장의 80%를 전자시계가 차지하게 되었고, 1940년대에 80%를 자랑하던 스위스 시계는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장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변해야 할 때 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식혁명시대의 산지식인 빌 게이츠는 {미래로 가는 길}에서 말하기를, 수억씩 하는 중대형 컴퓨터만 만들어지던 때에 저가의 소형 컴퓨터가 일반화 될 것을 예상했고, 컴퓨터 사용을 쉽게 해줄 수 있고, 어떤 컴퓨터 회사 제품에 사용해도 문제없이 돌아가는 호환성을 가진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면, 컴퓨터 보급을 확산시킬 뿐 아니라, 자사 제품의 소프트웨어 시장을 확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엄청난 이익을 갖게 될 것이라고 시장변화를 예측했는데, 운 좋게도 자기 생각이 맞아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소형 컴퓨터 산업에 초석을 마련하고도 소형 탁상용 컴퓨터가 한 때의 유행이라고 생각했던 디지털 이퀴프먼트사의 켄 올슨은 망했고, 우수한 문서편집용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하고도 컴퓨터와의 호환성을 갖춘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생각지 못한 왕 안은 일찍이 이 산업에 눈을 뜬 젊은 청년 빌 게이츠에게 성공의 기회를 빼앗기고 말았다고 합니다.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 주는 사례들입니다.
변화의 시대에 살면서 변화를 거부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과 지식의 혁명없이 무작정 변화를 시도해서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성경 중심적인 신앙, 그리고 선교 지향적인 실천입니다. 이 두 가지 것은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변치 말아야할 법칙이자 도리입니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 부가가치 높은 변화를 시도하되, 부단히 산지식의 습득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성경 중심적인 신앙과 선교 지향적인 실천에 삶의 바탕을 두고 변화를 시도하면 모든 일들이 다 선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점을 믿어 의심치 말고 노력을 경주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민수기 9장 15-23절을 보면,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구름과 불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그 변화에 따라 움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보름이면 도착할 가나안 땅을 무려 40년 넘게 걸려서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들이 늦게라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 국토를 얻고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나마 하나님이 지시한 명령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낮에는 구름의 변화를 관찰하고, 밤에는 불의 변화를 관찰하여 그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일에 구름이나 불이 성막에서 떠오르면 텐트를 거둬 말아 메고 이고 지고 낮이든 밤이든 가리지 않고 구름과 불이 머무는 곳까지 행군하였고, 구름이나 불이 머무는 곳에 텐트를 치고 하루도 좋고, 한 달도 좋고, 일년도 좋고, 이년도 좋고 구름이나 불이 성막에서 떠오를 때까지 광야에 머물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결국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구름이나 불의 변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지시하지 않기 때문에 훨씬 힘들기는 하지만, 대신 성경과 그 말씀의 해석을 통해서 지시하기 때문에 시대의 변화를 잘 관찰하면서 성경말씀을 읽고 해석함으로써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지시 받는 영성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만일에 우리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부족하다면, 설교를 통해서 깨닫는 지혜도 필요하리라 봅니다. 변화의 원리 속에서 변치 않는 생존의 법칙은 변화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죄를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는 노력이고, 육적으로는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관찰하고 자신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노력입니다. 이런 노력 속에서 우리 믿는 성도들이 반드시 기억해야할 가장 중요한 내용은 변화의 중심 속에 계시면서 변치 않으시고, 오히려 그 변화를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과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와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이 계시다는 점입니다. 이 삼위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신앙의 기초 위에서 99년 한 해를 복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