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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8-09 00:19
변화의 원리속에 변치않는 성령[롬8:18-28]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606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기도 하면서 변화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나래 소속의 허재는 전 소속팀인 기아에서 남아달랐고 애걸하다시피 했는데도 기어코 기아를 뿌리치고 떠나 나래로 옮겼고, 삼성소속의 양준혁은 해태로 트레이드가 되었는데도 가지 않겠다고 버틴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기성세대는 청소년들의 변화를 거부합니다. 그들의 의식이나 문화를 어른들은 거부해버리거나 받아드리기 힘겨워합니다. 청소년들은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성장의 변화 때문에 이런 저런 시련을 상당하게 겪습니다. 청소년들의 문제가 다 성장의 변화 때문에 겪는 고통이 아니겠습니까?
올해(99) 27세가 되는 인기가수 박진영은 작년에 자기성장을 위한 변화를 꾀하다가 큰 시련을 겪었던 것으로 압니다. 경기대 행정대학원 4학기를 마친 상태에서 작년 5월 29일 연세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편입학 시험에 합격한 사실을 놓고 주변에서는 말이 많았습니다. 박진영 자신은 국제정치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욕망에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주변에서는 그의 변화를 달갑지 않게 여긴 것 같습니다. 가수인 주제에 무슨 정치학이냐? 입시에 부정이 있었던 것 아니냐? 설사 부정입학이 아니라 해도 인기가수가 무슨 시간이 있어서 학업을 따라 갈 수 있겠느냐? 이런 식으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생들은 박진영에게 따가운 의혹의 눈총을 주면서 따돌렸습니다. 일이 이렇게되자, 대학당국에서는 대학신문인 {연세춘추}에 박진영의 편입학 시험결과까지 공개하는 해프닝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나라가 요즘 정치경제현실의 변화에 따른 상당한 아픔과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정치와 경제의 발전과정에서 겪는 변화의 고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한 때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야당이 되면서 겪는 시련도 민주정치의 발달과정에서 얻어진 고통일 것이고, 여당을 해본 경험이 전무한 국민회의가 시련을 겪는 것도 다 성장의 변화 때문에 얻어지는 고통일 것입니다.
초고속성장을 지속하던 우리 나라가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빌려쓴 이후, 사상 최악의 연쇄부도와 대량 실직, 구조조정과 명예퇴직, 기업인수합병, 빅딜, 국영기업체 민영화 등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기근속자들을 수당까지 주면서 우대하던 회사가 이제는 장기근속자들을 봉급은 두 사람 몫을 받지만, 일은 반 사람 몫밖에 못하는 퇴물이라면서 명퇴를 시키고 있고, 그들이 떠난 빈자리를 연봉계약직으로 채우고 있어서 평생직장개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호봉제에 따른 각종 수당제도나 보너스제도가 사라지는 대신에 능력별연봉제로 바뀌고 있고, 퇴직금도 줄고 있습니다. 최근 발표된 국영기업체 퇴직금 제도에 따르면, 국영기업체 근무자들의 퇴직금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변화는 아픔이자 고통입니다. 그렇다고 변화를 거부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변화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변화는 진실로 아픔이자 고통입니다. 경제위기로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변화는 엄청난 아픔을 주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노숙자와 결식아동의 증가입니다. 전국적으로 노숙자가 6천 여명에 달하고 있고, 결식하는 아동이 어린이와 학생을 포함하여 13만 여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노숙자 실태파악을 위해서 한 달이 넘도록 노숙을 직접 체험한 대전의 남재영(42) 목사에 따르면, "노숙이 장기화되면 가정붕괴, 각종 질병, 정신적 황폐, 범죄, 사회불안으로 이어진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 [홈리스]라는 가족영화가 비디오로 출시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IMF로 인한 사업장의 부도로 풍지박산이 난 한 가정을 통해 실제로 집 없는 사람들의 생활상과 아픔을 담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던 민규는 뜻하지 않은 부도로 철창신세를 지게 되고, 아내 연경과 딸 혜수는 달동네 단칸방으로 이사를 합니다. 출옥 후 딸 혜수의 가출과 몰락한 가장으로서 자책감에 시달리던 민규는 장기이식 매매광고를 보고 1천500만원에 신장을 팝니다. 그러나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던 딸이 신장병에 걸렸고, 유일하게 이식이 가능한 아버지 민규는 이미 돈을 얻기 위해 신장을 팔아버린 상태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경제위기라는 엄청난 변화가 가져다준 아픔의 한 단면입니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성북나눔의 집] 정진기 총무는 지난봄에 식당에 남은 당근 몇 개를 싸들고 희승(11·가명)이네 집을 찾아갔는데, 희승이와 두 동생은 당근을 냄비에 쪄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정진기 총무는 "얼마나 배고팠으면···" 하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습니다.
결식아동과 결연을 맺고 도시락을 싸주고 있는 성민경(53·가명)씨가 동사무소의 소개로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형제에게 도시락을 싸주기로 하고 가정을 방문을 해보니, 학교에도 못간 어린 동생과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다섯 살배기 막내는 결식아동으로 분류되지 않아 그나마 끼니를 때우지 못했던 것입니다.
밥을 굶는 아이들의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황폐해 지고 있습니다. 작년에 아버지가 당뇨병으로 숨지고, 어머니마저 가출해버려서 언니와 단 둘이 사는 소녀가장 조정미(15·가명)양은 언니가 밖으로 나돌면서 끼니를 건너뛰기 일쑤입니다. 후원자가 매달 용돈을 보내주지만, 누가 알까봐 공연히 겁이나 친구를 멀리하고 있습니다. 정미는 요즘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며 사회복지사 상담도 기피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우리의 현실이 바로 변화가 가져다 준 엄청난 아픔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김남조 시인이 '생명'이란 제목의 시에서 "겨울나무들을 보라. 추위의 면돗날로 제 몸을 다듬는다. 잎은 떨어져 먼 날의 섭리에 불려가고, 줄기는 이렇듯이 충전 부싯돌임을 보라."고 노래했듯이, 변화가 주는 한 가지 의미는 '추위로 제 몸을 다듬는 면돗날'이란 점에서 아픔이고, 또 다른 의미는 '추위로 잎을 잃은 나무줄기가 새 봄을 기약하는 충전 부싯돌'이란 점에서 희망입니다. 이런 점에서 구조조정이나 빅딜 등의 대량실직은 분명 큰 아픔이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희망입니다.
변화는 위기이자 곧 기회입니다. 토인비는 변화라는 도전에 어떻게 응전하는가에 따라서 문명이 발생하고 성장하기도 하고, 쇠퇴하거나 해체된다고 했습니다. 변화에 따른 도전에 적절하게 응전을 잘하면 그곳에서 문명이 발생되고 성장하지만, 변화에 따른 도전에 응전을 잘못하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해체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는 위기이자 곧 기회인 것입니다. 사철의 변화는 봄의 노곤함과 여름의 무더위와 홍수피해와 가을햇살의 따가움과 겨울의 혹한을 동반하기 때문에 위기가 될 수 있지만, 만물이 생육하고 오곡백과가 결실하기 때문에 기회도 됩니다.
충무공 이순신은 1597년 2월 26일 '조정을 속인 죄', '적을 쫓지 아니한 죄', '남의 공을 빼앗고 또 남을 모함한 죄', '방자하고 거리낌없다'는 네 가지 죄목으로 삼도수군통제사직에서 파직되고, 서울로 압송되어 투옥된 지 28일만에 간신히 사형을 면하고, 도원수(조선군 총사령관) 권율 밑에서 백의종군을 하게 됩니다. 백의종군(白衣從軍)은 사면이 아닙니다. 백의종군은 곤장 100대나 유배 3년형에 준 하는 형벌로써 해군대장을 이등병으로 강등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엄청난 변화를 두 번이나 겪었던 이순신이지만, 또 다른 위기가 그를 복직되게 만들고, 끝내는 왜놈들의 공격으로부터 나라를 구하지 않습니까? 임진왜란이라는 큰 위기가 이순신에게는 나라를 구하고 국가의 영웅으로 기리 기억될 엄청난 성공의 기회였던 것입니다. 새로 시작하는 99년 새해에는 우리 모두 변화에 따른 도전에 좌절하지 말고, 용기 백배하여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가는 승리자가 되도록 합시다.
변화를 겪게되면 부끄러움과 두려움과 죄의식이 앞서고 좌절감이 생깁니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선악과를 먹었을 때에 전에 느끼지 못했던 큰 변화를 겪게됩니다. 선악과를 먹기 이전에는 수치심도 없었고, 두려움도 없었고, 죄의식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난 뒤부터는 수치심이 발동했고, 벌거벗은 것이 부끄럽고 두려워서 나무숲 속에 숨어 나뭇잎을 따서 하체를 가렸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깊은 좌절감에 빠졌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서로를 감싸안지 못하고 자기 탓으로 돌릴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게된 좌절감 때문이었습니다.
변화를 겪게 되면 부끄러움과 두려움과 죄의식과 좌절감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분노와 패배감도 생깁니다. 가인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가인은 땅에서 거둔 곡식을 하나님께 바치고, 동생 아벨은 양 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기를 바쳤는데,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셨으나,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습니다(창 4:3-5). 가인은 이 엄청난 변화에 몹시 화가 나서 얼굴색이 변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는 살인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IMF이후 부쩍 늘어난 가족붕괴가 다 변화의 도전을 이기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변화의 도전에 직면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힘주실 분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성령을 주시고, 성령으로 하여금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시기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실 것이다."(요 14:16)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보혜사'란 말은 '변호해 주시는 분' 또는 '도와주시는 분'을 뜻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26~28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압니다."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이렇게 도우실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18절에서 "나는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견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하고, 그 변화가 우리에게 아픔과 고통을 가져다 준다할지라도 성령은 우리 안에서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고치십니다. 변화의 원리 속에서 변치 않는 성령의 능력을 믿으시고 99년 한해도 꼭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책이나 신문지상을 통해서 보면, 앞으로 21세기는 더 크게 변화를 겪게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직면하게될 변화가 어떤 것들인지 그 몇 가지를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21세기에는 국제정치판도에 변화가 일 것이라고 합니다. 공산체제 붕괴이후 달러와 항공모함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힘에 '아시아적 가치'를 부르짖는 중국과, '제3의 길'을 걷는 통합유럽이 강력한 도전세력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둘째, 21세기에는 전자민주주의가 실현될 것이라고 합니다. 전자민주주의란 투표장에 갈 일도 없고 투표용지에 기표할 필요도 없이 안방에 앉아서 컴퓨터화면을 보면서 마우스 키를 클릭하는 순간에 공직선거의 당락이 결정되고 주요정책들에 대한 찬반이 가려지는 직접민주주의를 말합니다. 이런 변화가 21세기에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셋째,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 21세기는 산업혁명과 정보혁명의 뒤를 이어 지식혁명 또는 지식정보혁명시대라는 변화의 물결이 밀려온다는 것입니다.
넷째, 21세기는 달러와 유로화에 이어서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세계단일화폐시대를 겪게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다섯째, 21세기는 정보혁명으로 사이버국가의 출현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가상국가인 '사이버 재팬'이 만들어져 네티즌끼리 대통령까지 뽑고 있다고 합니다.
여섯째, 새로운 천년시대는 탈중심·다극화시대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다극화 현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이어서 별로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와 같은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변화의 물결이 집채처럼 크게 밀려오는 시대입니다. 물결이 빠르고 파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물결과 파도를 즐기고 이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물결과 파도에 익사하는 사람도 생길 것입니다. 가치관이나 세계관의 혼돈을 겪게 될 것이고, 외로움과 좌절감 또는 패배감이 더욱 심화될지도 모릅니다. 이제 변화는 피할 수 없는 물결입니다. 이 물결을 타고 가느냐, 아니면 그 물결에 휩싸여 익사하고 마느냐의 선택은 우리의 노력에 달렸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를 도울 수 있는 분이 누구겠습니까? 변화의 파도 속에 놓인 우리를 도울 분이 누구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분이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2천년 전 헬레니즘과 로마제국의 지배라는 변화의 파도를 타고 전 세계로 복음을 실어 나를 수 있었던 것도 성령의 도움 때문이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