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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5 23:24
가장 큰 인간의 문제[롬6:23]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782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요?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가장 큰 인간의 문제를 출산, 쇠퇴, 질병, 죽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서에서는 가장 큰 인간의 문제를 죄와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이렇듯 종교에서는 죽음의 문제를 가장 큰 인간의 문제로 여겨왔고, 실제로 죽음의 문제는 가장 큰 인간의 문제입니다.
인간에게 죽음의 문제보다 더 심각하고 큰 문제가 있을까요?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는 말하기를, "인간은 평생 동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심리적으로 안고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신학자인 어거스틴도 친구가 죽은 뒤에 참회록에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착잡한 생각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무겁게 나를 짓누르고 있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학자요 무신론자인 볼테르(Voltaire)는 임종이 가까워지자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소. 내 생명이 6개월만 연장될 수 있다면 나는 내게 있어서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의 절반을 내놓겠소. 나는 이제 그만 두렵고 떨리는 지옥으로 가게 되었소. 당신도 가게 될지 모르오." 그리고 임종 때에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그리스도여, 나를 도와주소서." 영국의 회의론자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도 그의 일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이렇게 탄식하고 있습니다. "아, 하루만이라도 더 살고 싶다. 나는 내 앞에 다가오는 저 세상이 무섭다. 저 세상을 조금이라도 들여다 볼 수 있는 구멍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나는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마지막 이 어둠 속으로 그냥 덥석 뛰어들어가는 것 같다."
이렇듯 죽음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두려움입니다. 인간이 병을 무서워하고 늙기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도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문화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인간이 본래부터 지닌 세 가지 실존적인 문제로써 불안, 죄책감, 회의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인간의 불안, 죄책감, 회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죽음의 문제가 발생된 원인이 무엇일까요? 불교에서는 인간의 욕심과 집착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유교에서는 인간의 일곱 가지 감정 즉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수치, 더러움, 그리고 욕심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문제가 발생된 원인을 인간의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죽음은 죄의 삯이라고 말합니다. 불신자들은 죽음을 자연의 법칙에 따른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하지만, 기독교인은 죽음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또 최후에 정복될 원수로 여깁니다.
죄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기인될까요? 먼저 죄는 '부족하다' 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성서에 쓰인 죄는 헬라어로 '하말티아'라고 합니다. 이 말의 뜻은 '과녁에서 벗어나다' 란 뜻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부족하다,' '미치지 못하다,'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다'란 뜻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죄가 발생되는 원인을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피조물됨 그 자체가 죄인 됨의 원인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일로 인해서 하나님께 꾸중을 듣자 이브를 감싸주기는커녕 오히려 이브를 탓했습니다. 이 일로 화가 난 이브가 아담을 무시했습니다. "남자가 그렇지 별 수 있나? 흙인 주재에." 아담은 창피스럽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자는 별수 있어? 마른 뼈다귀가 그렇지." 그렇습니다. 인간은 흙이오, 뼈다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은 피동적으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만들어진 존재는 어느 것 하나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부족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노력하여도 하나님처럼 완전함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죄인입니다.
톨스토이는 [이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라는 글에서 인간의 문제는 육체에서 비롯된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가 빈곤이나 사랑 또는 증오나 공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육체가 인간에게 근원적인 문제들을 야기시킨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피조물의 문제는 육체에 있습니다. 인간이 육체를 가진 짐승이 아니라면, 인간은 필요한 기본적인 욕구조차도 느끼지 않을 것이고 죽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는 인간의 구원을 불교와 같이 수련이나 수도에다 초점을 맞추지 아니하고 육체의 회복인 부활에다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성서가 말하는 가장 큰 인간의 문제는 죽음입니다. 죽음은 죄의 삯입니다. 죄는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부족합니다.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죄인입니다.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죽습니다.
죄가 발생되는 두 번째 이유는 단절 또는 분열이 죄의 원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 동료 인간으로부터의 단절, 자연으로부터의 단절에서 죄가 파생됩니다.
죄는 단절 또는 분열에서 비롯됩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구원의 개념은 단절에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구원의 반대말이 단절입니다.
단절은 약속의 파기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성서는 하나님의 피조물이 모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합니다. 그 중에 특히 인간이 가장 보기에 좋았습니다. 인간은 선악과를 증표로 하나님과 약속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호기심 많았던 인간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그만 금단의 열매를 먹고 말았습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 도한" 선악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인간은 저주를 받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이 때부터 인간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단절로 인해서 불안과 초조와 죄의식과 불신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온갖 시련과 죽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단절뿐만 아니라, 아담과 이브처럼 부부사이의 단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가인과 아벨처럼 형제사이의 단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자연과의 관계도 악화되고 맙니다.
이와 같이 단절은 악을 낳고 악은 죄를 낳습니다. 그리고 죄는 죽음을 낳습니다. 죄는 악에서 비롯됩니다. 악은 관계의 단절에서 비롯됩니다. 관계가 단절되면 단절된 틈새에서 불안과 초조와 죄의식과 불신과 회의와 방탕과 이단 종교와 원수 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노와 분열과 분파와 전쟁(갈 5:19-21)과 같은 악의 열매들이 열립니다. 그러나 구원은 회복된 관계 또는 통합된 관계에서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갈 5:22-23)와 용서와 같은 사랑의 열매가 열립니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과 행한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고 금단의 열매를 먹었을 때에 제일 먼저 느낀 것이 불안과 초조와 죄의식과 수치심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감정은 단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인간관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 사이가 단절되면 자연스럽게 불안과 초조와 의심과 미움이 생기지 않습니까? 이런 인간의 감정은 넓게 보면 죄의식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의식에서 불안, 초조, 수치심 등이 발생됩니다. 관계가 불편해지면서 불안해지고 외면하게 되고 대화가 끊기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의심하게 되고 미워하게 됩니다. 미움은 자신의 죄책감을 상대방에게 전가시킬 구실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담과 이브처럼 핑계를 일삼게 되고 비방하게 되고 결국에는 가인이 아벨을 살해하는 엄청난 살인극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자연이 인간에게 가시덤불과 엉컹퀴를 냅니다. 이렇듯 단절은 무서운 죄의 근원인 것입니다. 성서가 죄의 원인을 단절에서, 구원을 통합에서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단절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만이 단절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불편한 관계를 회개해야 합니다. 부부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회개해야 합니다. 형제 자매사이의 단절된 관계를 회개해야 합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단절된 관계를 회개해야 합니다. 이웃과 단절된 관계를 회개해야 합니다. 자연과의 불편한 관계도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인간이 불안과 죄의식과 불신을 극복하고 인간답게 실존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회복에서 비롯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동료 인간과의 관계도 회복될 수 있고, 자연과의 관계도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고 관계가 회복될 때,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고 관계가 회복될 때, 인간과 자연 사이에 올바른 관계가 정립될 때, 비로소 죄의식이 사라지고, 불안과 의심과 미움의 감정이 치유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관계의 회복은 회개를 통해서 이루어 집니다.
성서는 모든 인간을 죄인으로 단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인간은 그들의 죄 때문에 어떠한 행위로서도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에서 3장까지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첫째, 이방인들은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계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아니하고 죄악에 머물기 때문에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롬 1:18-32)고 말합니다. 둘째, 도덕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성에 나타난 하나님의 법의 계시 또는 양심의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아니하고 죄악에 머물기 때문에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롬 2:1-16)고 말합니다. 셋째, 유대인들은 성서를 통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아니하고 죄악에 머물기 때문에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롬 2:17-3:8)고 말합니다. 종합적으로 모든 인간은 그들의 죄악성 때문에, 그들이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롬 3:9-19)고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무서운 선언입니다. 우리 인간은 죄의 무서움, 죄악의 심각성, 단절과 분열의 무서움, 단절과 분열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류의 불행이 여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불안과 초조와 죄의식과 회의와 방탕과 이단 종교와 원수 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노와 분열과 분파와 전쟁이 단절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19세기 덴마크 출신의 실존철학자 키엘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책에서 중병에 걸린 사람이 자신이 병들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 자체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만일에 우리가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중병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최우선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죄문제를 해결 받지 않고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결코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없습니다. 가장 큰 인간의 문제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끼리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관계회복의 길, 즉 인간이 살길은 회개의 길뿐입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눅 10:27)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로 겸손하게 나가야 합니다.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하나님을 떠나 살아온 삶을 용서해 주십시오.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아온 삶을 용서해 주십시오. 남을 미워하고 남의 것을 탐내고 남에게 폐를 끼치며 살아온 삶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용서를 비는 삶의 자세로 인간관계도 유지해 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매일 매일의 새로운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듭 거듭 부르십니다.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강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이 부름심에 응답할 때에 우리 인간은 비로소 단절을 극복하고 죄의식을 극복하고 불안과 회의와 좌절을 극복하고 참 실존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게 됩니다.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모든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첫 발걸음입니다. 이제 그 첫 발걸음을 회개운동으로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