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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5 23:22
종려주일의 환호성[요12:12-16]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178  
매년 교회는 부활주일 전 주일을 종려주일로 지키고, 종려주일부터 부활주일까지의 한 주간을 고난주간으로 지킵니다. 그러므로 오늘이 바로 종려주일입니다.
교회가 이 날을 종려주일로 지키는 이유는 예수께서 이 날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고, 민중이 종려 가지를 꺾어들고 예수의 입성을 환호했기 때문입니다. 이 날의 예루살렘 입성을 위해서 예수는 오랫동안 번민하며 준비하셨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눅 9:51), 갈릴리로부터 350리 길을 걸어 오셨습니다.
갈릴리에서의 예수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남녀노소 구분없이 예수를 따랐고, 예수는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셨습니다. 갈릴리는 주변부 민중들의 삶의 터전으로써 중심부로부터 소외되고 버림당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는 이곳에서 왕처럼 민중에게 먹을 것을 주셨고, 제사장처럼 병을 고치셨으며, 예언자처럼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대중의 인기에 편승치 않고, 한적한 곳을 찾아 자주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큰 뜻을 아시고 자주 번민하셨으며,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여러 차례 털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의 번민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민중은 예수의 번민과는 상관없이 유대인의 왕이 되기만을 간절히 바랬고, 제자들은 왕이 되신 후에 차지하게될 자리다툼으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제자들은 누가 더 높으냐'(눅 22:24)고 서로 다투었고, 야고보와 요한은 개인적으로 예수를 찾아가 높은 자리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막 10:35-37).
죽음을 목전에 두고 번민하면서 땀이 피가 되도록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며 생의 애착을 끊고자 하셨던 예수의 모습과 명예와 권세에 눈이 어두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깊은 잠에 빠졌던 제자들의 모습은 실로 대조와 동상이몽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춘분이 지난 따뜻한 어느 봄날 금요일 늦은 오후에 예루살렘에 가까운 베다니 마을에 도착하셨습니다. 금요일 해질 때부터 안식일이 시작되므로 이 날은 예배와 안식으로 여독을 푸셨습니다.
일요일이 되자 예수는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셨고,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당도하자, 예수의 입성 소식은 일시에 소문으로 번져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일찍부터 나사렛 사람 예수에 관한 소문을 듣고 있었고,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민중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환호하기 시작했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그러나 예수를 향한 민중의 환호는 실로 대단히 상징적이며 역설적인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민중은 "메시아여, 우리 민족을 로마제국의 탄압에서 구원하소서!" 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정작 예수는 평화를 상징하는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고, 로마제국과 싸울만한 군사도 없었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란 말은 메시아를 호칭하는 용어들입니다. '호산나'는 '나를 구원하소서' 란 뜻의 히브리어입니다(시 118:25). 또 '다윗의 자손'이란 말은 메시아 또는 왕을 뜻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2장 13절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라고 풀어쓰고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일찍이 다윗의 자손 중에서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해 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사는 민중은 갈릴리 지방에서 권위 있는 말씀과 능력 있는 기적으로 민중에게 희망을 심어준 예수가 바로 다윗의 자손이란 사실을 벌써부터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바로 로마제국의 탄압에서 자신들을 구출해줄 메시아라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월요일에 예수께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막 11:11-17)는 소문이 전해지자 민중들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예루살렘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은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화요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몰려와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제자들은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해서 종말론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은 세금납부에 관해서 정치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에 관해서 교리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가장 큰 계명에 관해서 윤리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수께서도 많은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다윗의 자손 메시아에 관한 말씀, 종말에 관한 비유,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저주 및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예언도 남기셨습니다(마 21-25장; 막 11:27-13장; 눅 20-21장; 요 12:20-50).
수요일 쯤해서 예수를 잡아죽이려는 정치 종교 지도자들의 음모가 구체화되기 시작되었습니다(마 26:14-16; 막 14-10-11; 눅 22:3-6).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신성모독죄와 반란죄로 십자가에 처형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예수는 스스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 또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했고, 성전을 파괴하면, 삼일만에 다시 짓겠다고 주장했으므로 이는 명백한 신성모독이며, 민중을 선동한 반란죄에 해당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무교절이 시작되는 유월절 준비일인 목요일 오후에 제자들은 마가 요한의 어머니 집에다 유월절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목요일 저녁은 새 날인 금요일에 해당됩니다. 이 날 초저녁부터 예수와 제자들은 한 자리에 모여 종교적 의식을 띤 18가지 단계의 유월절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이 식사가 예수와 제자들이 함께 든 마지막 식사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예수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고, 유다의 배반을 지적하셨고, 베드로의 배신을 예고하셨습니다. 식사 때에는 많은 사람을 위해서 찢기고 흘릴 당신의 살과 피를 기념하도록 부탁하는 고별 설교를 하셨습니다.
식사 후 겟세마네 동산으로 자리를 옮겨 기도하시다가 종교지도자들의 하수인들에게 체포되셨습니다. 체포되신 후 밤새도록 여섯 차례에 걸친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가야바와 안나스에게 각각 한 번씩, 공회원들에게 한번, 헤롯 안디바에게 한번, 그리고 빌라도 총독에게 두 번 심문과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형에 처해지셨습니다.
빌라도가 예수에게 내린 최종 판결은 '유대인의 왕'이란 죄목이었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고, 예수는 "네 말이 옳다"고 답변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의 주장에 혐의가 있다고 믿지는 않았지만, 유대인들의 요구대로 사형을 언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쓴 패를 매달도록 지시했습니다. 이는 실로 역사의 아이러니(irony)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는 금요일 아침 9시경 유대인들의 기도 시간에 못 박히셨으며, 오후 3시경 유대인들이 희생제사 드리는 시간에 운명하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는 세상 죄를 지시고 인류를 대신해서 목숨을 바친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이 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의 죽음이 범상한 범부의 죽음이 아니라, 인류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고귀한 희생이었다는 것을 그가 무덤을 박차고 부활하신 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인 예수께서 호화로운 궁전에서 태어나지 아니하시고 천하고 냄새나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이나, 수도 예루살렘에 살지 아니하시고 농어촌 마을 나사렛에서 성장하신 것이나, 백마를 타고 입성하지 아니하시고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것이나, 유다왕국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의 환호를 받지 못하시고 억압과 착취 속에서 굶주리던 민중의 환호를 받으신 것이나, 장엄한 대관식을 거쳐 금관 쓰고 왕좌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조롱과 채찍질 당하시고 가시관 쓰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은 실로 대단한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종려주일의 환호성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은 그 후로 많은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 지방에서 행하셨던 권위 있는 말씀들과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으며, 폭풍을 잔잔케 하셨던 그 놀라운 일들, 그리고 예수를 따랐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극적인 예루살렘 입성의 환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아무 저항도 없이 붙잡혀 매맞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무덤에 장사지내지던 때의 충격은 일순간에 환희가 절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들이 깊은 충격에서 벗어나 종려주일의 환호성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은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이 강림하신 이후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깨닫고 우리에게 전한 사도들의 글을 통해서 종려주일에 있었던 민중의 환호성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의미를 제자들의 입장에서 본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사건에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첫째, 제자들이 경험했던 종려주일의 환호성은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사건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서 오랜 세월 노예로 살면서 중노동으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들이 탄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극적으로 홍해를 막 건넜을 때, 그들을 추격하던 이집트의 군사들과 군마들이 깊은 홍해 바다에 빠져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바라본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 해변에서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며, 억압하던 자들을 바다에 던지시고, 바다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을 환호하며 찬양했습니다. 홍해 해변의 환호성은 부활주일의 환호성의 예표입니다.
둘째, 제자들이 경험했던 종려주일의 환호성은 일주일만에 찾아온 부활주일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갑짝스런 죽음으로 희망이 절망이 되고, 기대했던 정치적 꿈이 산산이 부서지는 충격 속에 있던 제자들이 예수가 다시 사셨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크게 환호했습니다. 종려주일의 환호성은 부활주일의 기쁨과 환희를 위한 전주곡이었던 것입니다.
죄와 사망권세에 눌려 신음하던 자들을 뽑아 불러내시고 하나님의 나라의 선민으로 삼으신 분은 바로 죄와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만주의 주시오, 새 언약의 선민인 교회를 지도하시는 왕중의 왕이신 예수이십니다. 부활이후 오늘날까지 세계 도처에서 성도들이 그분을 환호하는 찬양소리는 실로 그분이 왕중의 왕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셋째, 제자들이 경험했던 종려주일의 환호성은 요한이 본 계시록의 환상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홍해 해변과 종려주일의 환호성은 제자들의 부활주일의 환호성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부활주일의 환호성은 결국 장차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외칠 구원의 찬양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계시록 15장 2-3절의 말씀을 보면,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라고 적고 있습니다.
또 계시록 7장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넌 후에 홍해 해변에서 구원의 하나님을 환호한 것처럼, 또 민중이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를 향하여 종려 가지를 흔들기도 하고 겉옷을 바닥에 깔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면서 환호했던 것처럼, 또 구원받은 성도들이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라고 큰 소리로 환호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큰 박해 중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들이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인데,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넷째, 종려주일의 환호성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재림주를 환영하는 성도들의 모습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메시아가 가난한 민중에게는 기쁨의 대상이었지만, 권세와 부를 가진 자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듯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재림주는 신자들에게는 구세주가 되시고, 불신자들에게는 심판주가 되실 것입니다. 신자들에게는 사랑의 주가 되시고, 불신자들에게는 공의의 주가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우리는 이미 영적으로 홍해 해변의 환호성과 부활주일의 환호성을 침례와 거듭남으로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다가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분을 마중 가는 일이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 구세주를 환호하며 찬양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환호성이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종려주일의 환호성이 삶 속에서 매일 매 시간 찬송으로 터져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