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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5 23:29
33세에 죽은 위인[마26:51-52]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101  
33세에 죽은 아르헨티나의 전 영부인 에비타의 삶이 영화로 만들어져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33세에 죽은 몇 분의 사람들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33세에 죽은 위인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아마 예수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와 비교해 볼 수 있는 인물 가운데 알렉산더 대왕이 있습니다. 이 분도 33세에 죽은 사람입니다. 알렉산더와 예수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교가 가능합니다. 우선 이 두 분이 다 일 국의 왕이란 사실입니다. 알렉산더는 칼로 지중해 중심의 유럽과 북 아프리카 그리고 동방세계를 정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는 사랑으로 온 세계를 정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는 실제로 왕관을 쓰고 유대왕국을 통치한 사실은 없지만, 당시의 메시아 칭호인 '다윗의 자손 호산나'란 칭송을 받으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였고, '유대인의 왕'인가를 묻는 재판을 받았으며, '유대인의 왕'이란 칭호로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물론 예수의 나라는 세상적인 나라가 아니 였습니다. 그 분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 였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사랑의 복음으로 세운 나라는 교회였습니다. 한 사람은 칼로 세계를 정복하였지만, 33세에 죽었고, 그의 나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또 한 분은 사랑의 복음을 이 땅에 심고 33세에 죽었지만, 그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33세에 죽은 훌륭한 분들이 있습니다. 한 분은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산에는 꽃이 피네, 꽃이 지네' 등의 시로 유명한 김소월입니다. 소월은 1902년에 출생해서 1934년에 죽었습니다. 그는 체질적으로 한과 애수에 젖어 있었고, 아름다운 서정과 곱고 애달픈 가락으로 나라 잃은 민족의 한을 달래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경영하던 동아일보 지국이 운영에 실패하자 실의의 나날을 보내었고 결국에는 음독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한국 최초의 천주교 전도자요, 신학자인 광암 이 벽 선생은 1754년에 태어나서 1786년 33세를 일기로 요절한 인물이었으나 {천주공경가}와 {성교요지}(聖敎要旨)를 저술하는 등 한국 기독교의 기초를 놓은 사람입니다. 참고로 한국 최초의 신자는 홍길전을 쓴 허균이라고 하고, 처음으로 주일을 지킨 사람은 홍유한이라고 합니다.
광암 이벽은 남인 시파에 속한 사람으로써 한국 최초의 세례 교인, 이 승훈을 북경에 보내 세례를 받게 한 사람이며, 실학의 대가인 다산 정 약용에게 자신의 해박한 유학과 기독교 진리를 전달한 사람입니다. 이 벽은 서구 기독교의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받아 드리지 아니하고, 그것을 한국의 유학적 문화 유산에 알맞게 표현함으로서 한국 최초의 신학자가 되는 동시에 토착화 신학의 발판을 놓은 인물입니다.
1583년 10월에 예수회 신부 마테오 리치(1552-1610)가 중국 광동지방에 거주허가를 받고 선교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배에서 내리기 전에 머리털을 밀고 승복을 입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매우 진취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중국에 선교를 시작한 이래 수많은 교회서적이 한문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이들 번역서적들은 {천주실의}와 같은 기독교 교리뿐만 아니라, 과학, 윤리, 천문, 지리, 종교, 철학 등 모든 분야를 포함하였습니다. 이러한 서적들이 북경을 왕래하였던 조선의 사신들을 통하여 입수되어 많은 유학자들 사이에 읽혀지게 되었고, 실학운동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실학자들 가운데 {성호사설}(星湖僿說)을 쓴 이익(1681-1763), 신후담(1702-1761), 안정복(1712-1791), 이헌경(1719-1791), 그리고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1737-1805) 같은 이들은 기독교의 교리를 맹렬히 비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인(南人) 시파(時派)에 속한 이 벽, 권일신과 권철신 형제, 이가환, 이기양, 이승훈, 정약종, 정약전, 정약용 형제와 같은 이들은 이를 받아드려 한국적 천주학으로 발전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와 복음을 전파하기 훨씬 이전의 일들입니다.
지금 우리는 한국 기독교의 자생의 역사를 살피고 있습니다. 이 때에 이미 이 벽은 {천주공경가}와 {성교요지}를 저술하였고, 황사영이 백서를, 정약전이 {십계명가}를, 한국 최초의 세례 신자인 이승훈이 {만천유고}(蔓川遺稿)를, 이가환이 {경세가}(警世歌)를, 정약종이 {주교요지}(主敎要旨)를, 그의 아들 정하상이 {상재상서}(上宰相書)를 저술하였습니다.
1784년 2월, 이 벽은 이승훈이 북경에서 가져온 많은 책을 집에서 연구한 후, 곧 이승훈과 함께 정약전과 정약용 두 형제를 설득하여 천주교에 입교시켰습니다. 그리고 계급을 초월하여 중인 계급인 최창현, 최인길, 김범우, 그리고 김종교 등에게도 전도하였습니다. 같은 해인 1784년 9월 권철신 권일신 형제도 전도하여 이들과 함께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평신도인 이승훈이 세례를 베풀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후 곧 이존창, 유항검, 윤지창 등 십여 명도 세례를 받고 이 벽의 집에서 정기적으로 집회를 가졌으나, 그 다음 해인 1785년 봄에는 장소 관계로 중인 계급인 김범우의 집에서 집회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이 해 3월에 역관인 김범우는 체포되어 고문당하게 되고, 단양으로 유배되어 2년 후에는 첫 순교자가 됩니다. 그리고 이 벽도 가족들의 박해를 견디지 못하여 1786년 봄에 흑사병에 걸려 요절하고 맙니다. 아버지가 대들보에 붙들어 맨 밧줄에 목을 걸고 "네 이놈, 네 놈이 계속해서 예수를 믿겠다면 나는 이 밧줄에 목을 매달아 죽고 말겠다."고 협박을 했습니다. 유교 가문의 뼈대있는 집안의 자제인 이 벽은 아버지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이 일로 인한 괴로움 때문에 몸이 허약해져 그만 흑사병에 걸려 죽고 만 것입니다. 이 때의 나이가 33세였습니다. 예수를 믿는 지 3년만이었습니다.
박해가 있을 때마다 힘겹게 위기를 넘겼던 한국 최초의 세례 교인 이승훈, 중국인 선교사 주문모 신부, 그리고 황사영이 1801년 이지연과 김대왕대비의 박해로 순교하였습니다. {주교요지}를 써서 출판한 정약종도 준비하고 있던 {성교전서}를 마치지 못하고 체포되어 순교하였습니다. 형제들인 정약전과 정약용은 유배를 당하였습니다. 순교자 정약종의 아들 정하상도 1839년 변증서인 {상재상서}(上宰相書)를 쓰고 같은 해에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외국인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오기 이전에 기독교가 어떻게 발전하고 있었는가를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예수쟁이 자생 전도자 광암 이벽 선생은 30세에 책을 통해서 예수를 안후 약 삼년 동안 복음 전파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 후 그는 가족들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았고, 그 후유증으로 인해서 흑사병에 걸려 33세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뿌린 복음의 씨앗은 한국 토양에서 큰 수확을 거두고 있습니다.
알렉산더와 예수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알렉산더가 아직 어렸을 때에 그의 아버지 필립포스가 땅을 많이 정복하자, 어린 알렉산더는 아버지가 세계를 몽땅 정복해 버리면 자신이 나중에 정복할 땅이 없어진다고 필립포스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부왕이 암살되자 약관 스무 살에 왕위에 오른 알렉산더는 아버지보다 훨씬 넓은 땅을 정복했습니다. 그는 이란을 정복한 후 멀리 인도까지 원정하였으며, 정복 지마다 자신의 이름을 붙힌 알렉산드리아 시를 70 곳이나 건설하였습니다.
평소 관대하고 인자하며 부하를 사랑하던 알렉산더는 전투마다 승리를 거두자 그만 교만에 도취되어 자신을 신격화시켰고 절제를 잃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술과 여색에 빠지게 되었고 성질도 난폭해졌습니다. 그 결과 그는 일등 공신인 노장 파비니오의 부자를 죽였고, 은인인 그라이다스도 죽였습니다.
인도 원정을 마치고 페르샤로 돌아오는 길에 바빌론에 들렸습니다. 신관은 그곳을 들려 가는 것이 불길하다고 예언하였으나 그것을 무시했습니다. 어느 날 밤 그는 오랜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니야카스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연회를 마친 다음 잠자리에 들려고 했을 때에 총애하는 신하 메디야스가 찾아왔습니다. 그와 함께 다시 술판을 벌렸습니다. 그 이튿날 석양 때까지 자다 마시다 자다 마시다를 거듭했습니다. 술로 인해서 몸이 쇠약해지면서 열병에 걸렸습니다.
알렉산더는 크토리아 왕녀 크로사나와 결혼하였고, 다시 다리우수 왕녀 스타티라와 결혼하였으나 아들이 없었습니다. 왕의 병이 깊어지자 한 신하가 물었습니다. "대왕께서 별세하신 후에는 누구에게 나라를 맡기려 하십니까?" "가장 강한 자에게" 왕이 대답하였습니다.
병이 심해진다는 소문이 군대 안에 퍼지자, 측근들은 다투어 그의 마지막을 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평소의 측근자들만 무장해제 한 채 왕의 병상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왕은 슬피 우는 부하들의 손에 입을 맞추어 석별의 뜻을 표시하였지만 후계자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날 밤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주전 323년 6월 28일 그가 왕위에 오른지 12년 8개월 만인 33세 때였습니다. 그가 죽자 나라는 그의 부하들에 의해서 네 개로 쪼개어 졌고, 로마제국의 폼페이 장군에 의해서 차례대로 멸망당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알렉산더의 나라는 그의 죽음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많은 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슬픔과 고통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많은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들의 죄 사함을 위하여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셨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셨으며, 눈먼 자를 보게 하셨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칼로써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는 죽었고 그의 나라도 망했습니다. 그는 다시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랑의 복음을 전파하셨고,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살았고, 그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예수는 칼보다 사랑이 위대하다는 사실을 죽음으로써 보여주셨습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사실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칼은 강하고 권세가 있어 보이지만, 강한 것은 꺾이듯이, 칼을 쓰는 자도 언제간은 망하고 맙니다. 사랑은 약하고 힘없어 보이지만, 약한 것은 부러지지 않듯이, 사랑은 용광로 보다 뜨겁고, 강철같은 굳은 마음도 녹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영원합니다.
예수의 생애는 생활의 냄새나는 보통의 인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나이보다 다소 늙어 보였으며, 뭐라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의 그림자가 서려 있었고, 눈에는 피로에 지친 괴로운 빛을 띄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은 동시대 사람들인 선지자 요한이나 바리새인이나 율법사나 사두개인들의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들이 선포한 하나님의 이미지는 아버지의 형상이 였습니다. 노여움과 심판과 형벌의 이미지 이였습니다. 그것은 구약에서 때때로 나타나는 준엄한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선포한 하나님의 이미지는 달랐습니다. 그 분이 선포한 하나님의 이미지는 인자한 어머니의 형상이 였습니다. 인간의 불쌍함을 알고 감싸 안아 주시는 사랑스런 어머니의 모습이였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였습니다. 온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죄 많은 인간을 불쌍히 보시는 하나님,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인류를 대신하여 죽게 하신 하나님,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이였습니다. 예수는 이 사랑의 하나님을 증명하고 소개하기 위해서 자신은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죽으셨습니다. 비록 짧은 생애였지만 가장 값지고 고귀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랑은 칼보다 강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은 목숨보다 값진 것입니다. 값진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알렉산더와 김소월은 술 때문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와 이 벽은 성령의 술에 취했습니다. 복음의 술에 취했습니다. 그들이 죽음으로써 전한 사랑과 기독교 복음은 세상의 것과 바꿀 수 없는 가장 값진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값진 삶을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