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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0 15:13
창조적 언어[창세기 1장 1-5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6,533  
인구 5백 30만 명, 국민 일인당 소득 15,000불, 인터넷에서 뽑아본 최근 이스라엘 민족의 경제 상황이다. 1948년 5월 14일 건국이래 아랍연맹국들의 생존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갈릴리 호수의 물과 지하수를 퍼 올려 스프링쿨러를 이용해서 사막 같은 불모지에 농사 짓고 산업발전에 힘쓴 결과 48년만에 일궈낸 요단강의 기적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창조적 언어'라는 제목으로 이스라엘 민족과 그들의 신앙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불우한 민족이었다. 이집트에서 최소 250년에서 최장 430년간 노예 상태로 있다가 탈출하여 불모지나 다름없는 팔레스틴 중부 산악지역에 정착했다. 팔레스틴 정착이후에도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은 끊이지 않았다. 기원전 10세기경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번영을 누렸으나 솔로몬 왕이 죽은 후에 남과 북으로 갈리었고, 북쪽 이스라엘 왕국은 기원전 722년에 앗수리아 제국에 의해서 패망했다. 남쪽 유다 왕국도 기원전 605년에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처음 침략을 받은 후 짧게는 70년, 길게는 173년간의 유배 생활을 했다. 그 이후로는 페르시아 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의 침략을 차례로 받아 주권을 빼앗겼다. 기원 후 135년에 자기 영토에서 쫓겨난 이스라엘 민족은 1948년 5월 14일 새로 국가를 건국할 때까지 1,813년간 나라 없이 남의 나라에서 흩어져 살았다.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은 무려 1,200만 명 이상 학살당하는 큰 시련을 겪기도 했다. 지금도 그들은 아랍연맹국들의 위협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아니하고, 역사의 위대한 민족으로 남아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고, 세계 도처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큰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유대인들이 믿었던 신은 다른 문화권의 종교들이 갖고 있었던 신화도 없고, 여신도 없고, 우상이나 형상이 없어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고, 엎드려 절할 수가 없었다. 유대인들이 그들의 신을 볼 수 없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신을 보게되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전국에는 단 하나의 성전만이 예루살렘에 있었다. 성전이 지어지기 전에는 두 세 개의 제단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 이전 야영시절에는 텐트로 만든 성전에 법궤라는 나무상자가 모셔져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성전에는 뻣뻣한 남성들만이 제사장이란 이름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다. 그들이 하는 일의 대부분은 짐승을 잡는 일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까 종교적인 매력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한편,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이 믿었던 바알의 종교는 매우 매혹적이었다. 바알의 종교에는 금송아지로 만든 우상이 있었고, 곳곳에 신전이 있었다. 신전에는 아리따운 여사제들이 많이 있었고, 예배는 이들 여사제들과의 성적인 접촉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일부 유대인들이 유혹에 넘어 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주변 국가들의 강한 종교적 유혹에도 불구하고, 강대한 제국들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제국들의 찬란한 문화와 문명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노예와 포로와 피압박민의 비애와 통한에도 불구하고, 고문과 투옥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창조주 야훼 신앙을 유지해 왔다.
이스라엘 민족들을 탄압했던 강대국들은 그들의 신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지극히 작은 약소국인 이스라엘과 하나님 야훼는 그 엄청난 시련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아니하고, 오히려 세계 인구의 상당수가 믿고 있는 하나님, 즉 유대교의 하나님, 기독교의 하나님, 천주교의 하나님, 또 이슬람교의 하나님으로 섬김을 받고 있다. 이 엄청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창세기 1장 1-5절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은 흑암을 빛으로, 혼돈을 질서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기 전에는 이 우주가 흑암과 무질서와 죽음의 상태였다. 그런데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신 후에는 빛과 질서와 생명의 상태로 바뀌었다. 흑암과 혼돈과 무생명의 상태는 창조적인 언어와 삶의 태도를 갖기 이전의 상태였다. 그런데 창조적인 언어와 삶의 태도가 있고 난 후에는 흑암이 빛으로, 무질서가 질서로, 생명 없음이 생명 있음에로 바뀌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언어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이었다. "어둠을 몰아낼 수 있을까? 무질서를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생명 없음을 생명 있음으로 바꿀 수 있을까?"라고 머뭇거리거나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주저 없이 말씀하셨다. "빛이 있으라.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그러자 모든 것이 말씀대로 이루어졌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흑암과 혼돈과 죽음이 가득한 곳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둡고 무질서한 죽음의 상태를 종종 경험하게 된다. 때로는 어둠과 빛 사이에서, 혼돈과 질서 사이에서, 죽음과 생명 사이에서 방황도 한다. 그 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가? 어둠의 현실을 빛으로, 무질서의 현실을 질서로, 생명 없음의 현실을 생명 있음의 현실로 바꿀 능력은 갖고 있는가? 부정과 피동적 언어의 습관을 긍정과 능동적 언어로 바꾸어 줄 정신적 지주는 있는가?
인간이 이룩한 과학 문명은 어둠과 혼돈과 죽음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와이 호놀룰루 섬에 가면 와이키키를 비롯한 여러 해변에서 파도타기를 하는 젊은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들 중에는 아무도 파도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적당한 파도가 밀려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파도가 좋을수록 보드를 이용해서 멋진 폼의 파도타기를 해 보이곤 한다. 파도는 보드를 이용할 줄 아는 사람에게 무서움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시카고를 끼고 있는 미시간 호수에 떠있는 백색의 요트들은 한마디로 장관이다. 요트놀이를 하는 사람들 역시 적당한 바람을 기다린다. 불어오는 바람을 이용하면 멋진 요트 타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바람과 파도를 무서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창조적으로 이용하려 하는 사람들 또는 창조적 언어능력을 소유했던 사람들에 의해서 흑암을 밝히는 전등이 발명되고, 정치, 경제, 사회적 혼돈을 바로 잡을 학문이 나오고, 질병을 극복하는 의학이 발달되었다. 이제 선배들의 배턴을 받아 힘차게 달려가야 할 사람들은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이다. 우리가 바로 문제를 딛고 발전을 향해 일어서야 할 미래의 창조자들이다. 미래가 우리들의 손안에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짊어진 사람들에게는 창조적 언어능력의 정신적 지주가 필요하다. 흑암과 혼돈과 죽음의 현실을 극복하고 빛과 질서와 생명의 현실로 바꾸어 갈 창조적 언어 능력을 키워줄 정신적 지주가 필요하다. 유대인들은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그 문제를 딛고 일어설 원천을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찾았다. 그들의 하나님은 문제를 발전으로, 시련을 성장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어둠을 빛으로, 혼돈을 질서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창조주였다. 그들의 하나님은 시련 후에 영광이 있게 하시는 분이었다. 그들의 하나님은 죽음 후에 부활이 있게 하시는 분이었다. 이 하나님을 정신적인 지주로 삼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 엄청난 시련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모든 고난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었다. 당신의 창조적 언어능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당신의 창조적 언어능력의 정신적 지주는 누구인가? 이 지주가 있고 없음에 따라 삶의 태도는 달라진다.
먼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했다. 그들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 땅이었다. 이집트 탈출에 성공하여 안전지대인 바란 광야란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모세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에 앞서 먼저 첩보원을 보내어 그 곳을 정탐케 하였다. 첩보원으로 선발 된 사람들은 열두 부족을 대표하는 족장들이었다. 그들이 해야할 일은 목적지인 가나안 땅에 숨어 들어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크고 강한지, 인구는 얼마나 되는지, 군대와 무기는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진지는 얼마나 강한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열두 명의 첩보원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낱낱이 살피고 조사하여 정보를 수집했다. 그 곳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이었다. 성읍은 견고하였고, 군인들은 훈련이 잘되어 있었으며, 체구가 큰 거인들이었다. 첩보원들이 보기에 자신들은 그들에 비교하면 메뚜기 같아 보였다.
이것이 가나안 땅의 현실이었다. 살기에는 분명 좋은 땅이었고, 욕심부려 볼만한 땅이었고, 차지하고 싶은 땅이었지만, 넘어야 할 장벽이 너무 컸다. 땅의 현실로만 보아서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도저히 게임이 불가능한, 흑암과 혼돈과 죽음의 상황이었다.
오래 전 두 사람의 회사원이 아프리카로 출장을 갔다. 신발 수출이 가능한지 시장 조사를 위해서 간 것이다. 가서 보니, 기가 막혔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모두가 신발 없이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이곳 저곳을 얼마간 조사해 본 후에 각각 본사로 텔렉스를 보냈다. 한 사람은 이렇게 보고했다. "신발 수출 불가능. 가능성 0%. 전원 맨발임." 또 한 사람은 이렇게 보고했다. "황금시장. 가능성 100%. 전원 맨발임."
가나안을 정탐했던 열두 명의 첩보원들의 언어도 이와 같이 둘로 나뉘었다. 열 명은 가나안 땅의 현실을 보고 나서 그만 간이 콩알만해졌다. 메뚜기 콤플렉스에 걸렸다. 그 결과 그들의 보고에는 창조적 언어가 빠져 있었고, 온통 부정적인 말뿐이었다. 그들의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기가 질리고 온 몸에서 기운이 빠졌다. 그들은 크게 좌절하고 낙심했다. 그래서 그들은 소리 높여 부르짖고 밤새도록 통곡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 그들에게서 창조적 언어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창조적 언어 능력의 소유자들을 돌로 치려고 했다. 가나안 땅의 현실을 바라보고 또 그들과 자신들을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이스라엘 진영은 부정적 언어의 정치마당으로 변하고 말았다.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다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민 14:2-4)라고 했다. 이 부정적 언어가 씨가 되어 그들은 현실의 장벽에 압사되고 말았고, 미래를 소유하지 못했다. 약 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소유하지 못한 채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다 모두 죽어서 그곳에 묻히고 말았다.
그러나 다른 두 사람, 갈렙과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의 현실과 부정적인 장벽에도 불구하고 창조적 언어를 잃지 않았다. 그들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가나안 땅을 관찰하고 판단했다. 그 결과 그들의 보고에는 자신에 찬 말로 가득 찼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 14:7-9)고 힘차게 말했다.
이 두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따라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이란 두 사람은 그들의 창조적 언어와 믿음 때문에 미래를 소유했다. 가나안 땅을 차지했다. 미래의 주역이 되었다. 그들이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창조적 언어 능력의 정신적 지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흑암을 빛으로, 혼돈을 질서로, 없음을 있음으로 바꿀 수 있는 창조적 언어 능력의 정신적 지주가 강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정복해야 할 드넓은 이 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당신의 뇌리에 각인 되어 있는가? 밥인가? 아니면, 반대로 당신이 이 세계의 밥인가? 용기 있는 태도와 창조적 언어가 필요하다. 만일 당신의 용기 있는 태도에 창조적 언어의 소유자이신 하나님께서 뒤를 받쳐 주신다면, 당신은 능히 흑암을 빛으로, 혼돈을 질서로, 없음을 있음으로 창조해 내게 될 것이다. 용기 있는 태도와 창조적 언어를 가지고 세계에 도전해 보라. 당신 앞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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