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CCS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main_5.GIF main_6.GIF main_7.GIF main_8.GIF

 

 

 

 

 

 

 

 
작성일 : 02-08-22 22:26
십자가와 예수[마가복음 15장 1-47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893  
앞에서 '창조주와 신앙,' '구원과 신앙,' '교회와 신앙,' '고난과 신앙,' 그리고 '성령과 신앙'에 관한 주제로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십자가와 신앙'이란 주제로 '십자가와 예수,' '십자가와 하나님,' '십자가와 그리스도인,' 그리고 '십자가와 삶의 방식'에 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먼저 '십자가와 예수'에 관해서 살펴보겠다. 십자가는 중죄인을 처벌하는 사형 틀이다. 고대 페니키아인들이 처음 십자가를 형틀로 사용한 이래 이 방법은 여러 나라에 수출되어 예수 때에는 아주 보편적인 처벌방법이 되었다. 죄인의 몸을 십자가 틀에 묶고 손과 발에 큰못을 박아 매다는 이 처형법은 너무 잔인해서 로마인들은 노예나 흉악범인 경우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래 전 유대인들은 헬라제국이나 로마제국의 압제 하에 있었기 때문에 여러 차례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따라서 많은 유대인들이 반란죄 및 내란음모죄로 체포되어 십자가에 처형당하곤 했다. 예수께서도 부패한 성전의 지도자들에 대항해서 성전을 정화시켜 보려고 하셨지만, 결국에는 성전 모독죄 및 반란죄로 대제사장 가야바에 의해서 정죄되고 빌라도 총독에 의해서 십자가형을 언도 받게 되었다.
그러면 죄인들은 어떤 식으로 십자가에 처형되었을까? 1968년 예루살렘의 기밧트 하미브타르 발굴에서 1세기경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이 무덤의 유골함 속에는 요하난 벤하콜이라는 20대 남자의 유골이 들어있었다. 이 유골 중에는 매우 굵고 커다란 쇠못이 박혀있는 발뒤꿈치 뼈도 있었다. 발뒤꿈치 뼈에 대장장이가 불에 달궈서 망치로 두들겨 만든 굵고 기다란 쇠못이 박혀있었다. 이 못에 붙은 나뭇조각들을 살펴본 결과 못이 나무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못의 뒤끝이 안쪽으로 구부려져 있었고, 십자가 자체는 올리브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못은 죄수의 발등이 아니라, 발뒤꿈치 옆 복사뼈 밑에 박혀 있었으며, 아카시아 나뭇조각이 죄수의 발을 받치고 있었다. 유골함 속에는 부러진 정강이뼈도 있었다. 이 뼈는 죄수가 십자가에 처형된 후에 살아 있는 죄수를 절명시키기 위해서 큰 나무망치로 쳐서 부러뜨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발견된 손과 손목뼈에서는 손바닥이 아닌 손목 위 두 개의 팔뼈 사이에 큰못을 친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는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의 체중을 지탱시키기 위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참고로 2천년 전에 시행됐던 십자가 처형식을 재구성해보겠다. 우선 죄수가 십자가형의 언도를 받으면, 상의를 벗긴 채 나무 기둥의 허리부분에 양손이 묶인다. 그러면 죄수의 몸은 기역자 모양이 되고 죄수의 벗은 등이 하늘을 향하게 된다. 그 등을 향해서 로마군인이 날카로운 동물의 뼈나 철조각이 달린 채찍으로 기진 할 때까지 때린다. 죄수의 몸에 채찍이 닿을 때마다 피가 튀기고 살점이 도려내 진다. 이토록 체벌을 받은 후에 죄수는 십자가의 가름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형장을 향해 걷는다. 형장에 도착하면, 죄수가 짊어지고 온 가름대를 기둥에 맞춘다. 그리고 땅에 눕혀진 십자가 위에 죄수를 눕힌다. 죄수의 두발은 세로 기둥의 받침대에 올려지고 차렷자세 모양으로 두 발을 모은다. 이 때의 몸은 바로 눕힌 상태가 아니라 가로로 눕힌 상태가 된다. 죄수의 두 발이 세로 기둥에 나란히 모아진 상태에서 복사뼈 바로 밑에다 대못을 박는다. 굵고 울퉁불퉁한 대못은 두 발의 복사뼈를 관통한 다음 나무에 깊이 박히게 된다. 그리고 나서 죄수의 상체를 비틀어서 바로 눕힌다. 다음에는 끈으로 양팔 목을 가름대에 묶고 양손의 손목뼈 사이에 못을 박는다. 이렇게 한 다음 십자가를 세워 고정시킨다. 상체가 뒤틀린 상태로 십자가에 못 박힌 죄수들은 대단한 통증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쉽게 죽지는 않는다. 낮에는 뜨거운 땡볕과 밤에는 추위를 견뎌야 하고, 때로는 날짐승의 공격을 받으며, 고통 중에서 서서히 죽게 내버려둔다. 그러나 죄수를 급히 죽어야 할 경우에는 큰 나무망치로 정강이뼈를 쳐서 부러뜨린다.
그러면 왜 이와 같이 잔인하고 수치스러운 십자가에 예수께서 못 박히셨을까?
첫째,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타락한 종교인들과 정치인들의 질투 때문이었다. 유월절 식사 후에 체포된 예수에게는 신성모독죄, 성전모독죄,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한 국가 반란죄 등이 적용되었다. 그러나 예수를 재판한 빌라도 총독은 예수에게서 아무런 죄도 찾지 못했다. 만일 예수에게 죄가 있었다면, 그것은 당시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나 정치인들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죄인과 세리와 같은 주변부 민중의 친구가 되며, 병들고 가난한 자들을 돌본 죄뿐이었다. 또 예수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나 정치인들처럼 율법의 문자적 해석이나 구전법에 얽매이기보다는 율법의 정신에 따라 생활하셨다. 법 이전에 사랑을 실천하셨다. 안식일 법을 어길지라도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예수의 죽음은 억울한 죽음이었다.
둘째,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예수를 통해서 인류를 구원코자 하신 하나님의 뜻 때문이었다. 예수의 죽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죽음이었다. 그분의 죽음은 인류의 죄값으로 인해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인류를 대신해서 죽은 고귀한 죽음이었다. 이 사실이 그분의 부활로써 입증되었다.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인류 구원을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다. 이 사실이 성령의 오심으로 밝혀졌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서 인간의 죄짐을 감당케 하시고 인간을 구원과 생명에로 선택하신 은혜의 사건에 나타났다. 예수는 하나님에 의해서 죄인인 우리 인간이 못 박혀야 할 그 십자가에 대신 못 박힌 '사람의 아들'인 동시에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나님은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서 인간에게 구원과 축복과 생명을 예정하셨고, 자기 자신에게는 십자가의 저주와 죽음을 예정하셨다. 저주와 죽음을 당해야 할 인간에게 축복과 생명을 예정하셨고, 자기 자신에게는 인간이 당해야 할 저주와 죽음을 예정하셨다.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서 인간의 몫을 자기가 취하는 대신에 자기의 몫 곧 축복과 생명을 인간에게 주기로 결정하셨다. 이것이 복음이요 하나님의 은혜이다.
셋째,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예수를 통해서 인류를 구원코자 하신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려고 예수께서 스스로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9장 51절의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 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도중에 세 번씩이나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 당하실 것을 미리 아시고 예언하셨다.
제자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출세와 성공의 장소로 생각했던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서 예수는 죽음을 결심하셨다. 예수는 성공한 갈릴리 지역과 그를 환영하고 인정해준 민중을 떠나서 그를 죽이려하는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그것은 예수께서 인류의 구원을 희망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민중의 뜻은 예수께서 왕이 되어 이스라엘 민족을 로마제국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예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화목제물이 되는 것이었다. 제자들의 마음은 궁전에 있었고, 민중의 마음은 해방에 있었지만, 예수의 마음은 온전히 하나님의 뜻의 실현에 있었다. 제자들은 보이는 예루살렘에 삶의 목표를 세웠고, 개인의 출세와 성공 그리고 명예와 권력에다 목표를 세웠지만, 예수는 보이지 아니하는 참 예루살렘에 삶의 목표를 세웠고, 개인의 성공과 출세보다는 소외당하고 고통 당하는 민중들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며, 이들을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의 실현에다 목표를 두었다.
이렇게 예수께서 큰 뜻을 품고 온 몸으로 희생하셨을 때에 수치와 죽음의 십자가는 변하여 축복과 생명의 십자가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복된 삶을 찾고 구원의 은총을 누리게 된 것은 이 천년 전 예수께서 세상의 부귀와 명예와 권세를 추구하지 아니하시고, 온 인류를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랐기 때문이다. 진실로 예수는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아니 하시고, 섬기러 오셨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려고 오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