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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0 14:58
헌신과 신앙[출애굽기 19장 1-8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962  
'헌신과 예배'에 이어서 이번에는 '헌신과 신앙'이란 주제로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헌신과 신앙에 관련해서 가장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내용이 헌신과 약속과의 관련성이다. 헌신의 뜻을 '약속에 대한 의무를 이해득실과 상관없이 성실하게 이행하는 것' 또는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 몸을 바치는 것'이라고 종합해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 걷고 또 걸어서 시내 광야에 도착했다. 그들은 시내산 앞 광야에 가족 단위의 텐트를 치고 야영에 들어갔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산으로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는지를 너희가 보았다. 세계가 다 내 것이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백성의 대표들을 불러 놓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을 전달했다. 모세의 말을 전해들은 백성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이행하겠습니다." 이 약속으로 인해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선민이 되었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이 되셨다. 이 약속을 우리는 시내산 계약이라고 말한다.
구약시대에 활동한 예언자들은 언제나 이 시내산 계약을 근거로 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앙을 꾸짖기도 하고, 회개를 촉구하기도 하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닥친 불행의 원인을 찾기도 했다.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산 계약에 충실했을 때에 축복을 받았고, 시내산 계약에 불성실했을 때에 외침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불행을 겪어야 했다. 그만큼 시내산 계약은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선민으로 남게 하는 중요한 고리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우리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탈출하여 세례를 통해서 죽음의 바다를 건넜고, 이제는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신앙의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인들은 침례 또는 세례서약을 통해서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다. 하나님 한 분만을 우리의 구세주로 모시고 죽도록 충성하여 섬기기로 약속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택하신 족속으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한 나라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벧전 2:9) 삼으셨다. 그로부터 우리의 행복과 불행은 이 약속의 이행여부에 따라서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두 남녀가 결혼식 때에 혼인서약을 한다. 남편은 부인에게, 부인은 또한 남편에게 각자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 할 것을 맹세한다. 부부란 결국 이 약속으로 맺어진다. 그래서 부부관계는 피차에 사랑하며 혼인서약을 성실하게 지켜 갈 때에 행복이 있고, 어느 한 쪽에서 약속을 어기고 부정한 일을 했을 때에 불행하게 된다. 하나님과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과 아담은 선악과라는 나무를 사이에 두고 서로 약속을 한다. 계약을 맺는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에게 말했다.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마음대로 먹어도 좋다. 다만 선악을 알게 하는 이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라. 이 열매를 먹으면 죽는다(창 2:16-17)고 말씀하셨다. 아담과 이브도 그렇게 하마고 약속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선악과에 무슨 신비한 능력이 있어서 먹으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것이 아니고, 선악과에 무슨 독이 있어서 먹으면 죽는 것도 아니다. 이 나무는 혼인 때에 나누어 끼는 결혼식 반지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계약이 성립되었음을 상징하는 증표이다. 이 약속이 지켜지면 선이고, 깨지면 악이다. 선은 행복이고, 악은 불행이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는 이 약속을 깨고 만다. 깨고 싶은 충동도 있었을 것이다. 깨고 나서 찾아 올 결과가 궁금했는지도 모른다. 계약이 깨졌을 때에 인간에게 부과된 결과는 수치심과 불안과 초조함과 소외감과 죄의식이었다. 하나님과 인간은 아주 멀어지고 말았다. 인간은 하나님과 매우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 불편은 결국 인간관계의 불편으로 확대되었다. 아담과 이브의 사이가 나빠졌고, 가인과 아벨의 사이도 나빠지면서 가정 불화의 악순환으로 발전되었다. 아담은 이브에게 책임을 전가했고, 이브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더 나아가서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과 맺은 약속의 파기를 하나님의 책임으로 돌렸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먹지 말라고 명한 그 나무 실과를 왜 먹었느냐고 물었을 때에 아담은 대답하기를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했다. 또 하나님께서 이브에게 먹지 말라고 명한 그 나무 실과를 왜 먹었느냐고 물었을 때에 이브는 대답하기를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했다. "당신은 여자와 뱀을 만든 장본인이십니다. 여자 또는 뱀이 아니었던들 약속을 깨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이 깨진 것은 전적으로 이들을 만든 당신의 책임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과 인간관계는 깨지고 말았다. 인간관계도 깨지고 말았다. 심지어 가족관계도 깨지고 말았다. 그리고 인간 사회의 악순환은 결국 인간과 자연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래서 인간은 땀 흘려 일해야 입에 풀칠을 할 수 있게 됐고, 또한 자연을 착취하게 됨으로서 자연은 인간에게 엉겅퀴와 가시를 주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자연계의 악순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것은 인간 사회에 헌신이 없기 때문이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부부는 결혼서약을 저버리고, 자녀는 부모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신앙인은 교회의 의무를 저버리고, 시민은 국가와 사회의 법을 무시해 버리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는 계약 사회이다. 계약이 지켜지지 않으면 그 사회는 붕괴되고 만다. 우리는 약속에 충실해야 한다. 이것이 책임사회를 구현하는 우리 신앙인들의 헌신의 일부분이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헌신하지 못할 때에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 부부사이에 서로 헌신하지 못할 때에 부부는 멀어진다. 형제사이에 헌신하지 못할 때에 형제사이는 멀어진다. 인간이 마땅히 자연에게 베풀어야 할 일들을 하지 않고, 자연을 훼손 할 때에 자연은 우리에게 불이익을 되돌려 준다. 우리가 속한 국가, 사회, 학교, 직장, 교회 공동체, 가정 공동체 모두가 약속으로 합의된 공동체이다. 약속을 지키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헌신할 때에 그 공동체는 건실하게 발전된다. 헌신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둘째, 헌신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다. 여기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은 열심히 봉사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죽기까지 신앙을 지키라는 부탁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침례 때에 고백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 때에 우리는 이런 고백을 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제부터 당신만을 나의 구세주로 모시고,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며, 잘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이 약속을 몸을 던져 이행하는 것이 헌신이다. 하나님과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 몸을 바치는 헌신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 순교이다. 순교는 헌신의 꽃이다. 성서 66권 가운데 가장 심도 있게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점이다. 성서의 상당 부분이 박해 시대와 이단의 위협 속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초창기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이렇다 할 종교적인 지식이 없이도 십계명과 같은 기도문만 아침저녁으로 외우고서도 혹독한 고문을 이겨냈고 순교를 마다하지 않았다.
1904년 서울에 사는 어떤 교인의 집에서 첫 부분과 뒷부분이 떨어져 나간 책 한 권이 발견되었다. 이 책은 현석문이란 사람이 쓴 일기로써 1839년 기해년 박해 때에 순교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이 책 {기해일기}의 저자 현석문은 1801년 신유년 박해 때에 순교한 아버지 현계흠의 감화를 받고 신앙에 입문한 사람이다. 1839년 기해년 박해 때에 여동생 현경련이 체포되어 도끼에 찍혀 순교하였고, 현석문의 부인도 혹독한 고문을 받고 옥중생활 8개월만에 젖먹이 아들과 함께 생명을 잃었다. 현석문 자신도 1846년 체포되어 7월 29일 새남터에서 목을 베이고 베인 목이 장대에 매달림으로써 전도자의 일생을 마쳤다. 그는 평생을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았지만,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켰으며, 순교 자료를 수집하여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이것이 {기해일기}이다. {기해일기}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순교자는 양반 계급의 광암 이 벽 선생의 전도를 받고 교인이 된 중인 계급의 김범우이다. 광암 이 벽이 1784년 2월에 이승훈이 북경에서 가져온 많은 신앙 서적을 천계천 수표교 근처의 조용한 집에서 연구한 후, 유학자이며 양반인 이 벽이 행한 일 가운데 가장 주목받을만한 일은 반상 계급을 초월하여 중인 계급인 최창현, 최인길, 김범우, 그리고 김종교 등에게 전도한 일이다. 광암 이 벽은 이승훈과 함께 정약전과 정약용 두 형제를 설득하여 천주교에 입교시켰을 뿐 아니라, 같은 해인 1784년 9월에는 권철신 권일신 형제도 전도하여 이들과 함께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게 했다. 이 후 곧 이존창, 유항검, 윤지창 등 십여 명도 세례를 받고 수표교에 있는 이 벽의 집에서 정기적으로 집회를 가졌다. 그 다음 해인 1785년 봄에는 장소 관계로 중인 계급인 김범우의 집에서 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같은 해 3월에 우리 나라 최초의 교인들은 체포되어 포도청에 끌려갔다. 양반 계급이며 장래가 촉망되는 유학자들인 이 벽, 정약종, 이승훈과 같은 이들은 곧바로 훈방되었지만, 집회소를 제공한 역관인 김범우는 심하게 고문을 당하고, 2년 후에는 유배지에서 첫 순교자가 된다. 천주교 당국은 우리 나라 최초의 순교자 김범우의 집터와 그 일대를 매입하여 교회를 세웠다. 처음 이 교회를 세울 때에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다. 지붕 올릴 줄을 몰라 벽만 높이 쌓는다고 손가락질을 했다. 이 교회가 바로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898년에 완성된 우리 나라 최초의 대성당인 명동성당이다.
헌신은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충실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그렇지를 못했던 것 같다. 조상들이 하나님과 맺은 시내산 계약을 저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지곤 했다. 그들은 언제나 야훼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방황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야훼 하나님보다는 바알 쪽이 훨씬 매혹적이었던 같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볼 수도 없었고, 보이지도 않고, 우상도 없었다. 여신도 없었고, 그 흔해빠진 신화도 없었다. 예배 할 곳이라고는 단 한 곳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뿐이었다. 성전이 지어지기 전에는 두 세 개의 성소에서 예배를 드렸다. 광야시절에는 텐트로 된 회막에 법궤라는 나무상자가 모셔져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성전에는 뻣뻣한 남성들만이 제사장이란 이름으로 성전을 섬기고 있었다. 그들이 하는 일의 상당부분은 짐승을 잡는 일이었다. 그러나 바알의 종교에는 금송아지로 만든 우상이 있었고, 곳곳에 신전이 있었다. 신전에는 아리따운 여사제들이 많이 있었고, 예배는 이들 여사제들과의 성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런 정황에서 이스라엘의 일부 남성들이 바알에게 한눈을 팔았던 것 같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과 맺은 부부의 서약을 저버리는 행위였다. 그들은 실제로 음행을 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맺은 시내산 약속을 저버린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시내산 기슭에 머물 때에 자신들을 홍해에서 구원하신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약속을 했고, 오로지 야훼만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시내산에서 맺은 부부서약을 저버린 이스라엘 민족은 주전 722년에 나라의 절반이 망해버렸는가 하면, 나머지 절반도 700년간을 외세에 짓눌려 살아야 했고, 1,800년간 나라 없이 남의 나라에 얹혀 살아야 했다. 그나마 나라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끝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한 신앙인들의 정절 때문이었다.
신약시대에 초대교회 성도들도 황제와 그리스도 사이에서 많이 방황했다. 그 당시에 로마제국은 황제를 신으로 섬기도록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했다. 황제를 섬기면, 사회적인 신분과 경제생활이 보장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택하여 신앙을 갖게 되면, 십자가를 지듯이 수치와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된다. 맹수의 밥이 되기도 하고, 나무에 묶인 채로 불에 타죽기도 하고, 체육장에 끌려가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숨어서 살아야 했고, 신분이 보장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신자들이 믿음을 저버렸다.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맺은 약속을 저버렸고, 성만찬을 통해서 결속을 다졌던 교회 공동체의 신의를 저버렸다. 이런 이들이게 성경은 첫 사랑을 회복하도록 권면하고 있고, 죽기까지 충성 할 것을 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