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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9-10 15:02
사람은 무엇이 필요한가?[베드로전서 4장 8절]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197  
톨스토이가 쓴 민화 가운데 [대자(代子)]라는 제목의 단편이 있다. 이 글은 가난한 집안의 어떤 소년이 대부(代父)를 통해서 인생을 배워 가는 교훈적인 내용이다. 여기서 대부란 천주교회나 동방정교회 등에서 세례식 때나 입교식 때에 세우는 믿음의 아버지를 말한다. {대자}에는 여러 가지 중요한 교훈적인 내용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 사랑을 베푸는 사람에게 필요한 세 가지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대자는 나이 들어 숲 속에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었다. 불에 타다 남은 세 개의 사과나무 막대기를 땅에 심고 싹이 나기를 기다리며 날마다 냇가에 내려가 입에 물을 머금어다가 이미 죽어버린 막대기에 물을 뿜어주며 신도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고살았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그를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사람 죽이는 재미로 사는 잔인무도한 강도였다. 이 강도는 대자에게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을 하곤 했다.
대자가 이 강도를 변화시키는데 걸린 시간은 30년이었다. 대자가 강도를 처음 만나 마음 고생한지 9년, 그리고 타다 남은 사과나무 막대기 세 개를 땅에 심고 물을 머금어 뿜어 준지 10년만에 타다 남은 막대기 한 개에 싹이 돋았다.
처음에 대자는 강도에 대한 두려움이 없지 않았다. 강도를 두려워한 나머지 신자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먹고 살아가야 하나 근심 걱정도 많이 했다. 그러나 대자는 깨달은 것이 있어서 암자를 버리고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깊은 숲 속으로 가서 수도를 했다.
대자는 10년 수도 끝에 자신에 대한 걱정을 그치고 자기의 마음을 맑게 할 수 있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하면 명예를 얻을 수 있을까? 이런 인생살이 문제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 때에 강도는 죄를 뉘우치고 회개해야 한다는 대자의 설교를 비로소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강도의 타버리고 말라버린 마음에 변화의 싹이 돋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십 년이 흘렀다. 또 하나의 타다 남은 사과나무 막대기에 싹이 나왔다. 대자는 20년 수도 끝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옳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무서운 강도라 할지라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강도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의 모든 삶을 하나님 안에 고정시켰을 때에 굽힐 줄 모르던 강도의 고집이 꺾이기 시작한 것이다. 강도의 타버리고 말라버린 마음에 변화의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마지막 남은 사과나무 막대기에 싹이 나왔다. 대자는 30년 수도 끝에 잔인무도한 강도를 가엾게 여겨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강도의 마음이 얼음 녹듯이 녹아 버렸다. 대자의 뜨거운 마음에 강도의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지게 된 것이다. 강도의 타버리고 말라버린 마음에 회개의 기적이 일어 난 것이다.
대자가 생사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를 위협하는 강도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을 때에 타다 남은 막대기 같은 강도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톨스토이는 {대자}를 통해서 피를 피로 갚고, 이를 이로 갚고, 눈을 눈으로 갚는 사람들은 피차 망한다는 교훈을 일깨워 주고 있고, 원수를 사랑으로 갚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사는 길임을 다음의 세 가지 교훈으로 일러주고 있다.
첫째, 순수하고 순결한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이다. 더러운 걸레로 거울을 닦게 되면, 거울이 어떻게 되겠는가? 아무리 닦아도 깨끗하게 닦을 수 없을 것이다. 닦으면 닦을 수록 거울은 더욱 더러워 질 것이다. 그러나 깨끗한 걸레로 거울을 닦는다면, 거울은 깨끗해 질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근심 걱정을 그치고 자신의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할 때에 타인의 마음도 맑게 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마음이 맑은 사람은 언제나 남을 맑은 마음으로 본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이 흐린 사람은 언제나 남을 흐리게 본다. 마음이 맑은 사람은 자신의 맑은 마음의 거울을 통해서 자신을 바로 볼 뿐 아니라, 상대방에게 자기 자신의 거울을 통해서 상대방의 더러움을 볼 수 있게 한다. 이와 같이 '자신의 마음이 맑으면 타인의 마음을 맑게 할 수 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체포된 안이숙 씨가 평양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의 일이다. 안이숙은 사형이 결정된 만주 여자의 괴성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만주 여자는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남편을 토막 내어 죽이고, 그 시체를 압록강에 버린 죄로 사형이 확정된 여자였다. 그 여자는 취조를 받던 중에 아기를 빼앗기고는 미쳐서 괴성을 지르곤 했다. 안이숙은 간수에게 만주 여자를 자기 방으로 옮겨 줄 것을 부탁하여 허락이 되자 그녀를 지성으로 보살폈다. 안이숙은 만주어를 배워 만주 여자에게 "나는 당신을 좋아한다. 나는 당신을 참 사랑한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만주 여자는 점차 발작이 줄어들면서 제정신으로 돌아왔고 안이숙에게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였다. 그리고서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자신에게 정해진 사형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하였다. 사형 집행 일이 되자 그녀는 평화로운 자세로 형장에 끌러 나갔다.
둘째, 곧고 강직한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이다. 철골을 다루는 일군이 버팀목을 탄탄하게 고정하지 않으면, 철근을 휠 수 없는 것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멈추고 자신의 생활을 하나님 안에 고정시킬 때에 완고하고 악한 고집도 꺾이고 만다. '버팀목이 튼튼하면 강철도 버팀목에 걸려 휘어진다.' 마찬가지로, 신념과 믿음이 강한 사람 앞에서는 꺾이지 아니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준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교수로 계신 유재신 목사의 {조건 없는 사랑}이란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의 체험담이 실려 있다.
6.25동란 당시 유재신 박사는 경기 중학에 다니고 있었다. 기숙사 벽장 속에 숨어 지내다가 배고픔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기숙사에서 나와 서울에 있는 병원식당에서 노동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는  9.28수복 전에 퇴각하는 인민군 장교에게 발각되어 무진 매를 맞고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 인민군 포로가 되어 비참하게 북으로 끌러가고 있었다. 시월 초순이 되면서 날씨는 차가워지기 시작하였고, 북으로 갈수록 전투는 심해졌다. UN군의 폭격으로 인민군 부상자들이 늘어났다. 어느 마을을 지나고 있을 때에 한 인민군 부상자가 쓰러질 듯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띠었으나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으므로 모두들 지나쳐 갔다. 그 역시 지나치려는 순간,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얼마전 자기를 죽이려했던 인민군 장교였다. 살기 등등하게 고문하던 그 힘과 눈빛은 사라지고 한쪽 다리는 심하게 부상을 당하여 피로 범벅이 된 채 죽어 가고 있었다. 유재신 박사는 잠시 주저했다. "그냥 지나칠까?" "치료받으면 살 수 있을 텐데. . ."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저놈은 나를 죽이려 했던 놈인데. . .  내버려둔다면 죽을 것이 뻔한데. . ." 망설이던 유재신 박사는 결국 부상당한 원수를 등에 업고 걷기 시작했다. 자기 한 몸 가누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이미 천 리 길을 걸었던 터라 신발은 닳아 떨어져 나갔고 맨발에서는 피가 흐르고 더러는 딱지가 앉아 무척 아팠다. 등에 업혀 가던 인민군 장교가 말했다. "동무, 내가 동무를 죽이려 한 것을 잊었소."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짐스럽게 나를 감당하려고 하오. 동료들도 버린 나를 원수를 삼아도 마땅할 나를 말이오." "나는 사랑이 미움보다 강하다는 것을 믿습니다. 같은 동포인 당신이 죽어 가는 것을 버리고 갈 수는 없었습니다. 나 또한 인간이기에 처음 당신이 미웠으나 지금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은 미움보다 강합니다." 그 때 인민군 장교의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눈물이 빗줄기 되어 빰을 적셨다. 그는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동무, 나는 남한 사람들을 수없이 죽였소. 공산주의가 아닌 사람을 증오했소. 그러나 당신을 만난 다음 사랑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깨달았소."라고 인민군 장교는 고백했다. 그는 결국 앰뷸런스를 만나 병원으로 실려 갈 수 있었다. 인민군 장교는 말했다. "동무, 이대로 동무 품에서 죽겠소. 차라리, 차라리, 병원에 가지 않겠소."
셋째, 정열에 불타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이다. '밑 불이 강해야 생나무를 태운다.' 밑 불은 자신의 불이다. 자신의 불이 약하면, 남에게 불을 주지 못한다. 밑 불이 약한 사람이 섣불리 남에게 불을 주려 하다가는 자신의 불마저 꺼뜨리고 만다. 자신의 밑불은 믿음의 불이요, 성령의 불이요, 남을 사랑하는 정열의 불이다. 이 불이 강하지 못하면, 미움과 증오와 유혹과 시험과 공격과 비방과 험담과 소외와 갈등과 같은 생나무를 태울 수가 없다. 그것들에 오히려 먹히고 만다. 그러나 자기의 마음이 사랑의 불로 뜨겁게 달아올랐을 때에는 타인의 마음에 불을 던질 수 있다. 미움보다 사랑이 강할 때 미움을 태울 수 있다. 유혹보다 믿음이 강할 때 그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
이와 같이 마음이 맑으면 타인의 마음을 맑게 할 수 있다. 신념과 믿음이 강하면 타인의 강퍅한 마음도 휠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의 불이 강하면 타인의 마음에 불을 던질 수 있다. 걸레가 깨끗해야 깨끗하게 닦을 수 있다. 버팀목이 튼튼해야 철근을 휠 수 있다. 밑 불이 강해야 생나무를 태울 수 있다.
예수가 바로 이런 분이었다. 예수는 뜨거운 사랑의 불을 세상에 던지셨다. 이 불이 세상에 옮겨 붙었을 때에 이 불길을 진압할 자가 아무도 없었다.
아랍사람들의 복수에 대한 집념은 가공할 정도라고 한다. 누군가가 살해당하면 그 피살자의 친인척에 속한 남자들은 복수의 의무를 지니게 되며, 이 복수의무가 주어지는 혈연집단을 '카므사'라고 한다. 만약 복수하지 못하거나 복수에 소홀하면 그 카므사의 명예는 형편없이 타락하여 그 카므사와는 교역도 결혼도 기피하기 때문에 카므사간의 싸움이 종족간의 전쟁으로 비화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같은 혈연집단끼리 이동하며 사는 사막의 유목생활이기에 종족 안전에의 연대책임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으며, 그 피해에 대한 보복은 이미 구약성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구약성경에 '고엘 하담'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 말은 '피의 복수자'라는 뜻이다. 피의 복수자란 복수의 의무를 지닌 가장 가까운 근친을 말한다. 이 사람의 복수는 하나님께서 죄로 인정하지 않는다. 당시의 법은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는 동해상해법이다. 가해자에게 동일한 해를 입히는 처벌법을 말한다. 따라서 성경은 과실 치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도피성을 마련토록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혁명적인 교훈은 피를 피로 갚으라는 사막의 계율을 바꾸어 피를 용서로 갚으라는 사랑의 교훈을 십자가의 희생으로서 가르치셨다. 우리는 예수의 사랑의 불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 불을 강한 밑 불로 키워야 한다. 그리고 이 불을 세상에 나누어주어야 한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