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CCS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main_5.GIF main_6.GIF main_7.GIF main_8.GIF

 

 

 

 

 

 

 

 
작성일 : 05-03-20 08:49
창세기010: 하나님의 사랑의 특징(창 3:1-24)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816  
창세기010: 하나님의 사랑의 특징(창 3:1-24)

사랑의 조건으로 심리학자들은 세 가지를 말합니다. 친밀(intimacy)과 열정(passion) 그리고 책임(commitment)이 그것들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췄으면 완전한 사랑이고, 세 가지 요소가 전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관계입니다. 친밀만 있는 것은 호감 또는 우정이고요, 열정만 있는 것은 풋사랑입니다. 풋사랑은 남학생이 여선생님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짝사랑을 말합니다. 책임만 있는 것은 허울뿐인 사랑입니다. 부모님이 강제로 맺어준 결혼생활이나 별거중인 결혼생활과 같은 친밀과 열정은 없고 책임만 있는 사랑을 말합니다. 그러나 친밀과 열정만 있고 책임이 없으면 연애입니다. 연애는 책임이 빠져 있습니다. 또 열정과 책임만 있고 친밀이 없는 것은 얼빠진 사랑입니다. 친밀이 없이 여배우가 재벌2세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것이 얼빠진 사랑입니다. 그리고 중년의 부부들처럼 열정은 없고 친밀과 책임만 있는 것은 동반자적 사랑입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사랑에는 두 가지 욕망의 뜻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주고 싶다는 욕망이요, 둘째는 빼앗고 싶다는 욕망이라고 했습니다. 또 사랑에는 조건 없는 헌신적인 사랑이 있는가하면 조건적인 사랑이 있다고 했습니다. 희생적인 사랑이 있는가 하면 이기적인 사랑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토인비의 지적은 “사랑한다.”는 말이 듣기에는 달콤할는지는 몰라도 항상 좋거나 다 좋은 것이 아니란 것을 말해 줍니다. “사랑해”라는 말은 말하는 사람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대부분이 품앗이 사랑이요,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셨습니다. 희생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죄로 인하여 죽었어야 할 우리를 대신해서 죽게 하시기까지 우리 인간들을 조건 없이 사랑하셨습니다. 희생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베풀어야 할 사랑도 조건 없는 사랑이요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창세기 1-3장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에서 나타난 특징은 첫째가 자율권을 주신 사랑이고, 둘째가 내리사랑 또는 먼저사랑이고, 셋째가 책임적인 사랑입니다. 한번 사랑하시면 문제가 생기더라도 끝까지 책임지시고 해결책과 수습책을 준비하십니다.
창세기 1-3장까지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특징을 일곱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네 가지는 타락이전의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신 축복의 내용들이고, 세 가지는 타락이후의 인간에게 베푸신 것들입니다. 먼저 타락 이전의 인간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창세기 1장 27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하나님만의 특권인 자율권을 인간에게 나눠주셨다는 의미가 됩니다. 자율권의 특징은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과 자유의지에서 두드러집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만이 가진 특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특권을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나눠주셨습니다. 자기희생이 없이는 자기만의 권한을 남과 함께 나누지 못합니다. 남의 권한까지도 강제로 빼앗아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 누리려 하는 것이 인간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이성적 판단능력과 자유의지를 주시고 또 명령과 조종에 오직 순응만할 수 있는 기계로 취급하지 아니하시고 인간과 계약관계를 맺으신 것은 인간을 최대한 대우하신 것이지만, 하나님 자신은 자기포기 또는 자기희생을 감수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기희생과 자기포기에 대해서 철저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느 종교가 그들이 섬기는 신을 자기희생과 자기포기의 신으로 가르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기포기 또는 자기희생의 절정은 성육신에서 나타났습니다. 인간에게 이성적인 판단과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은 죄에 빠진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통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어느 종교가 그들이 섬기는 신을 그들을 위해서 대신 사형을 당하는 신으로 가르치고 있습니까? 기독교의 신은 이렇게 자기를 포기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하나님이시요, 당신께서 만드신 인간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사랑하는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창세기 1장 28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을 저주하시고 벌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성경에서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고백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하나님을 복주시고 창성케 하시는 분으로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어떤 악조건이나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복의 근원으로 알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상상을 초월한 기간동안 엄청나게 큰 시련들을 겪고서도 그들의 믿음대로 복을 받아 누리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셋째, 창세기 2장 8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지으신 사람을 위하여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곳에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으신 인간들을 위해서 꿈의 동산을 만들어 행복하게 살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투자는 끝이 없습니다. 최대한 배려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만한 부모가 없고, 하나님보다 우리를 위하는 자가 없다고 단언합니다.
넷째, 창세기 1장 20-23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지으신 아담을 위하여 돕는 배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가 끝 간 데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하시고 인간들의 행복을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을 위하고 계신데,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남에 대한 배려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신다는 점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이상의 네 가지는 타락 이전의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신 축복의 내용들입니다. 이제 타락이후의 인간에게 베푸신 축복의 내용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완벽한 인간을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부족한 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은 자들을 사랑하시어 찾아가셨습니다. 찾아가 그들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고 나서 두려움과 수치심에 떨었고, 따라서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서 나무 사이에 몸을 숨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숨는다고 숨어집니까? 시편기자가 139편 7-10절에서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고 노래한 것처럼, 하나님은 어디든지 우리들을 찾아오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약속을 어기고 하나님을 떠난 배반자들인 당신의 백성들을 언제나 먼저 찾아오셔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감싸 안으시고 새롭게 계약을 체결하시는 내리사랑 또는 먼저사랑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느 종교에 이와 같은 신이 또 있겠습니까?
둘째, 창세기 3장 21절에 따르면,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기 위해 나뭇잎으로 치마를 두른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셨습니다. 신학자들은 이 가죽옷을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와 연결시켜 설명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성경해석방법을 그리스도 중심의 구속사적 해석이라고 말합니다. 가죽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짐승의 희생이 따라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죄악과 저주 가운데 있는 인간이 수치를 온전히 가리고 구속의 은총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희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살인자 가인에게조차 표를 주어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음을 면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살인자라도 회개하는 자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십니다. 하물며 우리의 허물과 죄를 용서치 않겠습니까? 우리는 주저 말고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창세기 1-3장이 이토록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그 어느 종교의 신화를 보아도 자기들의 섬기는 신들을 이토록 놀랍게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의 신으로 묘사한 것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요한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시며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시고 우리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내어놓으시는 책임적이고 헌신적인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섬긴다는 사실에 감사하시고 전적으로 그분을 의지하시고 복 받으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친밀과 열정과 책임이 있는지?(완전한 사랑)
친밀만 있고 열정과 책임은 없지 아니한지?(우정만)
열정만 있고 친밀과 책임은 없지 아니한지?(풋사랑만)
책임만 있고 친밀과 열정은 없지 아니한지?(허울뿐인 사랑만)
친밀과 열정만 있고 책임은 없지 아니한지?(연애만)
열정과 책임만 있고 친밀이 없지 아니한지?(얼빠진 사랑만)
친밀과 책임만 있고 열정이 없지 아니한지?(동반자적 사랑만) 점검해 보고 친밀이 부족한지, 열정이 부족한지, 책임이 부족한지를 알아서 채움으로써 하나님과 더욱 완전한 사랑의 관계를 갖도록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