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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6-23 17:15
레위기0012: 번제의 영적의미(레 1:1-17)
 글쓴이 : ccs
조회 : 6,277  
레위기0012: 번제의 영적의미(레 1:1-17)

레위기 1장의 내용은 번제에 관한 것입니다. 번제의 핵심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헌신과 감사에 있습니다. 번제는 제물을 모두 태워 향기로운 냄새가 하늘로 올라가게 하는 제사방식입니다. 
제물은 예배자의 생활형편에 따라 수소, 숫염소, 숫양, 산비둘기 또는 집비둘기 가운데서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흠이 없어야 했고, 1년 된 수컷이어야 했습니다.
제사방법은 예배자가 제물이 될 짐승을 끌고 성막문 하나님 앞으로 끌고 갑니다. 속죄를 위해서 예배자가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를 합니다. 예배자의 죄를 제물에게 전가시키는 것입니다. 죄를 뒤집어 쓴 제물이 예배자를 대신해서 죽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는 교훈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자가 제물을 잡아 그 피를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장은 그 피를 번제단 사면에 뿌립니다. 예배자는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뜹니다. 제사장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과 물로 씻은 내장과 정강이를 단 위에서 불로 태웁니다. 양과 염소도 동일한 방법으로 시행합니다. 단 비둘기의 경우에는 제사장이 직접 새의 머리를 비틀어 끊고 몸은 쪼개어 단 위에 불사르며 피는 단 곁에 흘리고 멱통과 창자 등은 재 버리는 곳에 버립니다.
번제는 가죽을 제외한 모든 것을 불로 태웁니다. 불로 태우기 때문에 번제를 화제라고 부릅니다. 번제는 가죽을 제외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몫이 되고, 제사장은 가죽을 취하지만, 예배자의 몫은 없습니다. 번제의 영적인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생명 전체를 바쳤다는 것이고, 성도들의 온전한 헌신을 의미합니다. 불로 태우는 화제의 경우, 번제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죄 모두에 해당이 됩니다.
이제 번제가 갖는 영적의미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번제에 쓰인 제물들은 제각각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먼저 어린 숫양은 순전함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마 10:16)고 하셨습니다. 또 온순한 양은 부드러운 마음씨를 상징하며, 형제사랑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은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굶주리고 헐벗은 자들, 병들고 옥에 갇힌 자들, 나그네 된 자들을 돌보고 구해준 선한 사람들을 양의 무리로 분류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고, 계시록에서도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묘사했습니다. 수소는 어질고 착한 마음씨를 상징합니다. 소는 밭을 갈거나 짐을 나르는 일에 쓰이지만, 불평이나 잔소리 없이 주인의 일을 묵묵히 수행합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이루기 위해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묵묵히 골고다 언덕에 오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염소는 험한 바위산이나 높은 곳을 좋아합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험한 곳도 마다않고 달려 나가는 참 신앙인을 상징합니다.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할 뿐 아니라, 오랫동안 메시지 전달자로 활동해 왔습니다. 평강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새입니다.
둘째, 번제는 온전한 헌신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는 산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어린 새끼들처럼 마음과 생각이 순전하고 깨끗하고 순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깨끗한 마음을 받으십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복을 주십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에서,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하기를,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하셨습니다.
셋째, 번제는 영적 예배의 그림자입니다. 번제의 핵심사상은 온전한 헌신입니다. 온전한 예배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참 예배의 그림자가 번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온전한 헌신, 곧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란 무엇을 말할까요? 출애굽기와 레위기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지시하시고 보여주신 그대로의 예배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종의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사도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예배는 예수님의 생애를 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정통신학으로 여겨왔습니다. 따라서 사도들의 가르침대로 하지 않는 예배는 온전한 예배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갈릴리에서의 말씀의 사역과 예루살렘에서의 다락방사역으로 나뉩니다. 기독교는 교회가 처음 세워진 때부터 제1부 말씀예배와 제2부 성만찬예배를 온전한 예배로 드려왔습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말씀과 기도와 찬양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로 생각하면서 예배에서 주의 만찬을 제외시켜왔습니다. 가톨릭 미사가 갖는 미신적인 요소들 때문이었습니다. 초기 개혁가들이었던 루터나 칼뱅 등은 가톨릭 미사의 미신적인 요소만을 제거한 채 매주일 예배 때마다 주의 만찬을 시행하고자 했으나 칼뱅의 선임자이자 군인이었던 츠빙글리가 주의 만찬을 일 년에 4차례로 제한시켜버린 것이 그만 굳어져서 바로 잡을 기회를 놓치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그 잘못된 전통이 그대로 시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만찬이 빠진 예배는 기도회이지 온전한 예배라 말할 수 없는 불완전한 예배인 것입니다. 1960년대부터 수많은 신학자들이 이 점을 지적하고 있고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너무 오랫동안 굳어져 있고 오해도 있는 터라 쉽게 고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예배는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예배란 사실이고, 하나님의 뜻은 성서에 기록되어 있으며, 기독교 예배는 신약성서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신약성서교회예배가 바르게 회복되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그 점을 깊이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