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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6-03-27 11:20
출애굽기02: 모세의 역전의 삶(출 2:1-25)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119  
2. 모세의 역전의 삶(출 2:1-25)

출애굽기 2장은 모세의 파란만장한 역전의 삶을 그리고 있다. 노예의 가정에서 출생했고, 난지 석 달 만에 갈대상자에 넣어져 나일 강에 버려졌으며, 애굽의 공주에게 발견되어 그녀에게 입양되고, 다시 생모에게 보내어져 양육을 받고, 취학연령이 되자 황실학교에 보내어져 귀족의 자녀들과 함께 어깨를 겨루며 당대 최고의 학문을 터득하게 되고, 장성하여서는 애굽 군대의 장수가 되어 참전하는 전쟁마다 승리를 꿰차는 장래가 총망한 인물이었다. 요세푸스가 쓴 <고대사>에 따르면, 모세는 애굽을 침략한 에티오피아 군대를 무찔렸다고 한다.

그렇게 잘나가던 그가 어느 날 사람을 죽이게 되고, 그것도 노예들의 편을 들어 애굽 사람을 죽이고, 편들었던 노예들의 고발로 살인자로 쫓기게 되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딸 부잣집에 데릴사위가 되어 당대 최고의 학문과 군사훈련을 받았던 모세가 애굽이 가장 천하게 여기던 양치기로 40년을 보내게 된다. 비록 이스라엘의 미래가 그의 어깨에 놓여있다고 해도, 그가 그렇게 광야에서 양이나 치며 한가롭게 지내는 동안, 이스라엘 민족의 신음과 고통의 소리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하나님의 침묵의 시간들은 그렇게 무정하게 흘러갔던 것이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말아야한다. 하나님이 침묵만 하고 계셨던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낼 구원자를 조련하고 계셨던 것이다. 훈련 장소는 화려한 궁전도 아니었고, 귀족들의 자녀들과 천재들이 모인 황실학교도 아니었고, 오히려 삭막하고 모래바람만이 드세게 부는 광야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했던 것들은 말 못하는 양떼와 지팡이뿐이었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이 때 그가 받았던 광야 40년 동안의 훈련은 일찍이 그가 황실에서 받았던 그 어떤 교육보다도 값지고 소중한 것이었고, 그를 성숙하고 겸손한 신앙인과 민족지도자로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말 못하는 양떼와 모래바람과 삭막한 광야가 그에게 가르친 교훈은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은 그 어떤 영웅호걸이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과 또 그가 쓰시는 자를 통해서만 이뤄진다는 것이었다.

모세가 사람을 죽인 사건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였다. 그에게 광야 40년이란 긴 수행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살인은 단순한 살인 사건만은 아니다. 유모이자 친모인 요게벳으로부터 히브리인의 역사와 신앙을 배운 모세였다. 학대당하는 동포에게 무한한 동정심을 느끼는 자가 학대하는 애굽인에게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감정이다. 그렇더라도 그가 동족을 위해서 위험을 무릅쓴 행동을 한 것은 순간적인 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일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고, 늘 보아오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의 그의 행동은 오랜 시간을 두고 고민하고 결정한 것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오랫동안 고민한 것들 가운데는 애굽 황실의 부귀와 명예를 버릴 것인가, 아니면 유지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다. 나이가 40세였으니까 처자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가족을 사랑했다면, 부귀나 명예를 버리기보다 더 어렵게 생각되는 것이 처자를 버리는 것이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버리고 힘없고 나약한 동족의 고통에 동참하는 일은 무언가 그의 속에 위대한 결단이 있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는 결정이었을 것이다. “애굽과 이스라엘,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할 것인가?” 이것이 모세의 고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택한 것은 약한 자들, 학대당하고, 노역에 찌든 불쌍한 자기 동족이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점에 대하여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11:24-25)라고 적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모세의 우발적인 살인을 동정심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을 수 없고, 그 자체가 그가 내린 위대한 신앙적 결단 때문이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은 지금도 세상을 끊어버리지 못하는 우리들을 향해서 책망하신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왕상 18:21). 광야에서의 40년의 생활은 모세에게 신앙적 인격적 연단과 자기성찰의 시간들이었다. 애굽을 도망한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르우엘의 딸들과 만난다. 그리고 그 만남을 계기로 르우엘(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목자로서의 삶을 영위한다. 비록 자신의 결정에 따른 결과이긴 했지만, 대제국 애굽의 왕자라는 영화로운 지위를 일시에 버리고 일개 양치는 목자로 전락한 모세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갈등과 외로움은 그 누구도 쉽게 감내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련이 그에게 가져다 준 이익은 무엇이든 자신의 힘만으로 할 수 있다는 혈기방자한 자만심을 버리게 한 것이다. 자신의 힘만을 믿고 무작정 덤볐던 결과가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광야에 피신하여 모래바람과 친구삼아 살아가야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혈기 방자하여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40대 때보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모세에게는 오히려 더 완벽한 하나님의 일군이 되는 합격선에 도달하게 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런 것을 우리는 일컬어 믿음의 역설이라고 한다. 믿음의 역설이란, 약할 때 강함 주시고, 아무 것도 내 힘으로 할 수 없을 때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게 하시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들을 가능하게 이뤄주시는 것을 말한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믿을 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이뤄지는 것이다. 개척해서 목회를 시작하면 잘 해낼 것으로 생각했던 목회자의 자신감이 수년 이내에 무너져 내리는 모습들을 볼 때, 그 심정이 모세의 것과 동일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모세처럼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바뀌고, 하나님만을 철저하게 의뢰하는 믿음이 되살아난다면, 모세가 자신없어하고 앞장서기를 두려워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사역이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서 영광스럽게 성취된 것처럼, 목회도 그렇게 성취되는 것이라 믿는다.

모세의 미디안 광야에서의 40년은 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또 다른 40년의 노역과 신음과 고통의 시간이기도 했다.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은 멀기만 하고 침묵의 시간은 길게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이 위대한 것은 그들은 1878년간을 기다려 국가를 창립했고, 그 사이에 그들은 1200만 명이나 희생되었다. 그들은 일찍이 아브라함이 품었던 이스라엘 국가 창립의 비전을 애굽에서 머문 최소 215년에서 최고 430년의 오랜 시련과 애굽을 탈출해서 보낸 광야에서의 40년 연단을 통해서 비로소 이룰 수가 있었다. 그들은 애굽의 탈출을 일컬어 영광의 탈출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바다에서 건진 사건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홍해를 갈라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한 사건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독수리 날개에 업어 바다를 건너게 한 사건이라고 말한다.

유대인들은 또 자만심에 빠져 하나님을 멀리하고 오히려 우상을 가까이 하고 있을 주전 605년부터 주전 586년 사이에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완전히 망해버리고 모두가 바벨론으로 유배되었을 때 그들은 그곳에서 짧게는 70, 길게는 173, 더 길게는 아예 그곳에서 수백 년 또는 수천 년을 이어 살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그들은 깨달았다. 깨달았을 때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깊이 뉘우치며 회개운동을 펼쳤고, 메시아운동을 펼쳤다. 그들의 이 불굴의 믿음은 그들을 결국 고국에 돌아가 무너진 국가를 일으켜 세우게 하였고, 그들이 제일 먼저 일으켜 세운 것이 성전이었다.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는 시간의 문제이지 능력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그 사실을 안 유대인들은 몇 백 년이고 몇 천 년이고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릴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것이 바로 그들을 위대한 민족이 되게 한 힘이고, 모세와 이스라엘의 역전의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