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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3-20 08:45
창세기009: 최고 또는 최악의 걸작, 인간(창 4:1-26)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782  
창세기009: 최고 또는 최악의 걸작, 인간(창 4:1-26)

하나님이 만드신 것 가운데 최고의 걸작은 사람입니다. 물론 관점에 따라서는 최악의 작품일수도 있습니다. 인면수심이란 말이 있듯이, 어쩌면 사람은 머리는 한 개뿐이지만, 얼굴은 두 개를 가지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한쪽 면은 천사의 모습이고, 다른 쪽 면은 마귀인 양면의 얼굴을 가지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최후의 만찬」을 그린 레오나르드 다빈치가 예수님을 그릴 때 모델로 삼았던 청년을 몇 년 후 가룟 유다를 그릴 때에도 모델로 삼았다는 일화는 우리의 가슴을 섬뜩하게 합니다. 동일인이 환경이나 교양에 따라서는 예수님처럼 될 수도 있고, 가룟 유다처럼도 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어쩌면 두 개의 얼굴보다 더 많은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에스겔서 1장에 보면, 머리는 하나이지만, 얼굴이 네 개씩인 네 생물이 나옵니다. 이들은 각각 사람의 얼굴, 사자의 얼굴, 소의 얼굴, 그리고 독수리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그룹 곧 천사들이지만, 인간에게도 인격자다운 면이 있는가하면 짐승과 같은 면도 있습니다. 사자처럼 포악하고 군림하려는 정치와 군사적인 면이 있고, 소처럼 미련하리만치 근면한 노동과 생산적인 면이 있으며, 독수리처럼 간사하고 야비한 사기와 폭력적인 면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모든 면 때문에 사람은 최고 또는 최악의 걸작이 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사람을 최고 또는 최악의 걸작으로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요? 그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 받고 인성과 영성 곧 지성과 감성과 의지와 관계성 그리고 신성한 영성을 갖는데서 사람은 최고 또는 최악의 걸작이 될 수 있습니다. 천사를 제외한 다른 피조물에게는 이런 특성들이 없습니다. 오직 하늘의 천사와 사람에게만 이런 특성들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높은 이성과 지성이 있고, 감성과 감정이 있고, 의지와 결단력이 있고, 관계를 맺고 살 수 있는 사회성이 있고, 신성한 영성이 있다는 점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되게 하는 동시에 가장 잔인한 동물이 되게도 합니다. 또 완전하지 못한 인간이 스스로의 결정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싫든 좋든 간에 계약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고 시시각각 부딪쳐 오는 문제들에 대해서 옳고 그른 것을 결정해야한다는 점이 인간을 최고 또는 최악의 걸작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둘째, 사람에게는 특별한 호기심이 있습니다. 이 호기심이 사람을 최고 또는 최악의 걸작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호기심은 선악을 알기 이전부터 있었던 사람의 타고난 특성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동물에게도 호기심은 있지만, 그들은 그들의 호기심을 인간처럼 무한한 발전으로 승화시키거나 무언가를 철저하게 망가뜨릴 만큼의 지능이 없습니다. 이브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게 만든 것은 호기심이었습니다. 그녀의 호기심은 하나님과의 계약조차도 깨뜨릴 수 있을 만큼 강한 마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인간의 호기심을 크게 다루고 있습니다. '판도라'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인데요, 판도라는 제우스로부터 에피메테우스와 살도록 인간세계에 보내어진 여인이었습니다. 판도라는 ‘모두의 선물’이란 뜻입니다. 제우스는 정말 모두의 선물이 될 만큼 멋진 여인을 에피메테우스에게 선물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행복하였습니다. 하루하루가 새로웠습니다. 그런데 판도라는 제우스한테 선물로 받은 상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절대로 그 상자를 열어보아서는 안 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상자를 열어 보는 순간에 모든 행복은 끝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나 판도라는 아무래도 그 상자 속이 궁금하였습니다. “그 속에 무엇이 있을까? 왜 열어 보아서는 안 될까? 살짝만 열어본다면 별 탈이 없겠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판도라는 무심결에 상자의 뚜껑을 열고 말았습니다. 아뿔싸, 판도라가 상자의 뚜껑을 열자마자, 상자 속에 있던 괴상한 형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순식간에 밖으로 나오고 말았습니다. 놀란 판도라가 엉겁결에 뚜껑을 닫았을 때에는 한 가지만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나머지는 다 날아가 버리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상자 속에서 날아 나온 것들은 온갖 질병과 죄악들, 전쟁과 재해, 폭력과 살인 등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상자 속에 남은 것은 오직 한 가지 희망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때부터 불행에 몸을 맡기고 희망에 의지해서 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셋째, 사람에게는 강한 본능이 있습니다. 비록 이 본능이 아담과 이브의 타락이후부터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선보다는 악한 쪽으로 많이 기우러져 있긴 하지만, 이 본능을 어떻게 통제하고 조절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을 최고 또는 최악의 걸작이 되게 합니다. 물론 다른 동식물에도 본능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본능은 이성과 교육 그리고 수양을 통해서 상당부분 통제와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동식물과 다르고, 선악을 구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식물과 다릅니다. 동식물의 본능은 생존과 종족번식의 중립적 틀에서만 이해될 수 있지만, 인간의 본능은 생존과 종족번식의 동물적인 요소뿐 아니라, 선악을 구별하고 천사처럼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하면, 마귀처럼 악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동식물과 다릅니다. 또한 인간에게는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이외에도 심리적 욕구 그리고 강한 자아실현욕구까지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을 최고 또는 최악의 걸작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6절은 선악과를 묘사하기를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런” 열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관심을 끌고, 호기심과 본능을 자극하며 유혹하기에 충분한 열매였던 것입니다. 이 열매는 세 가지 유혹거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의 유혹; 둘째, 눈으로 보는 것들의 유혹; 셋째, 머리로 생각하는 것들의 유혹이 그것들입니다.
“먹음직도 하고”라는 말씀은 먹거리 종류의 유혹을 말하는 것입니다. 의식주와 같이 인간의 기본적이고 생리적인 욕구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보암직도 하고”란 말씀은 볼거리 종류를 통한 유혹을 말합니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문화적이고 심리적인 욕구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는 말씀은 두뇌를 통해서 나오는 유혹거리를 말합니다. 부와 명예와 권세를 추구하는 자아실현 또는 성취욕구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남을 짓밟고 일어서기 위한 사악한 두뇌플레이가 여기에 속할 것입니다. 이런 유혹에 아담과 이브가 무너졌습니다. 가인이 무너졌고, 이스라엘 민족이 무너졌습니다. 때때로 아니 매우 자주 우리 자신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생리적인 욕구 곧 타고난 욕구들이 있습니다. 배고픔, 목마름, 성욕, 고통회피, 수면 등이 그런 욕구들입니다. “먹음직도 하고”란 표현이 바로 그런 욕구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매슬로우(Maslow)는 욕구를 단계별로 설명하였는데요, 그는 식욕, 성욕 등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어야 다음 욕구인 안전욕구에로 한 계단 발전한다고 했습니다. 먹고 사는 게 만족되어야 비로소 몸의 안전을 돌볼 수 있게 되고, 이게 또 만족되어야 소속감과 사랑욕구의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소속감이나 사랑욕구보다 더 상위에 있는 욕구가 자존심의 욕구이고요, 최 상위의 욕구는 자아실현 또는 성취욕구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생리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지 합니다. 심지어는 자식까지 잡아먹습니다. 단테의 󰡔신곡󰡕에서 아들, 손자와 함께 탑에 갇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혈육의 육신을 몽땅 뜯어먹었던 우골리노 백작이 어떤 “고뇌에도 지지 않던 나도 배고픔에는 지고 말았다”(‘신곡’)고 처절하게 절규하고 있는 것처럼, 또 1970년 페루여객기가 안데스 산맥에 추락했을 때에 생존자들이 죽어 얼어붙은 승객의 시체를 먹었던 것처럼, 또 박해를 받았던 성도들이 매 맞고 주리를 틀리고 감옥에 갇히는 것도 참을 수 있었지만, 배고픔만을 참을 수 없었다고 말한 것처럼, 또 전쟁 중에 굶주린 군인들이 빵이나 물이 있는 곳이라면 지뢰밭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말은 인간의 생리적인 욕구가 얼마가 강하고 무서운 것인가를 알게 해줍니다. 이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인간은 위대한 업적을 이뤄내기도 하고, 엄청난 참극을 만들기도 합니다.
사람에게는 타고난 욕구 이외에도 심리적인 욕구들이 있습니다. “보암직도 하고”란 표현이 바로 그런 욕구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호기심입니다. 호기심은 어떤 보상을 기대하고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람직하고 인류에 공헌적인 호기심에는 부와 영예가 따르고 개인과 사회, 인류의 발전이 이뤄집니다. 호기심 때문에 발명가가 있고 학자가 있으며 탐험가가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오늘의 기술문명을 이루게 된 데에는 이런 호기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 반대로 바람직하지 못한 호기심에는 망신과 고통과 파멸이 뒤따르게 됩니다. 사람들의 술과 담배, 약물과 이성(異姓)에 대한 호기심이 그렇고, 또 몰래카메라행위들이 그렇습니다. 아마도 인류 최악의 호기심은 희망만을 남겨놓고 온갖 불행이 쏟아져 나온 판도라의 상자일 것입니다. 호기심은 학습이란 배움의 과정을 통해서 발전하게 되고, 인간의 자아실현 곧 성취욕구를 충족시켜줍니다. 이처럼 호기심은 선악의 양면성을 갖고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게 된 것은 바로 이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자아실현 또는 성취욕구들이 있습니다. 장애를 극복하고 어려운 일을 달성함으로써 높은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구를 말합니다. 이 욕구가 1등을 하려는 학생, 신기록을 세우려는 운동선수, 남보다 월등한 매출실적을 올리려는 세일즈맨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도달함으로써 얻는 만족감 때문에 맡은 일에서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호기심과 성취욕구도 적당하고 적절할 때 효과가 크게 나타납니다. 지나친 것은 모자라는 것만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여기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자아를 실현한 사람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였습니다. 각자에게 해당사항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1. 효율적인 현실 판단을 하며 불확실성과 모호성을 잘 수용한다.
2. 자기나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3. 자발적으로 행동한다.
4. 문제중심으로 사고하며 중요한 목표가 있다.
5. 사생활을 중시하며 혼자 있는 것도 꺼려하지 않는다.
6. 환경에 의존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행동한다.
7. 반복되는 경험조차도 새롭게 평가한다.
8. 가끔은 황홀한 느낌에 빠진다.
9. 공동체의식이 있다.
10. 몇 사람과 깊은 대인관계를 갖는다.
11. 고정관념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12. 수단과 목표를 구별한다.
13. 유머가 있다.
14. 창의성이 있다.
15. 특정 문화에 집착하지 않는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이나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방랑자가 된 것은 인간의 특성인 호기심과 본능을 영성과 이성으로 통제하지 못하고 감정에 치우쳐 잘못된 결정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너무나 치명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성경은 잘 표현해놓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받고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아니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아벨을 편애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벨에게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겸허한 삶의 태도, 인간이 이성을 지녔다고는 하지만 그 한계성을 뼛속 깊이 인식한 성숙함, 그래서 모든 판단을 자신의 감정보다는 이성, 이성보다는 영성에 의존하려는 믿음의 태도가 충만했기 때문이며, 가인에게는 그와 같은 태도가 없었거나 매우 부족했기 때문에 빚어진 일입니다. 가인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된 태도와 선택을 반성하고 뉘우치기보다는 끝까지 자신의 감정에 따라서 행동하였습니다. 성경은 가인이 하나님께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였다”(4:5)고 하였습니다. 그런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4:7)고 하셨습니다. 가인의 살인행위는 가인에서 끝나지 않고 그의 후손에게로 이어져 내려갔습니다. 자기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뉘우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의 불행은 끝없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이 만드신 최고의 걸작이 될 수도 있고, 최악의 걸작이 될 수도 있는 양면성을 가진 존재란 사실을 기억하면서 교훈을 얻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