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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7-02 16:00
가문의 영광(요 1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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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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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영광(요 13:1-33)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13:31-32).
최근 나온 코믹물 가운데 ‘가문의 영광’이란 영화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호남 주먹세계의 대부인 쓰리제이 집안에 학력 좋은 사윗감을 들여서 가문을 빛내보려고 집안사람들이 펼치는 코믹물인 듯싶습니다. 몇 년 전에 영어를 잘하는 한 방송인이 국빈의 통역을 맡고난 다음에 방송에서 그 일을 두고 ‘가문의 영광’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이렇듯 ‘가문의 영광’이란 집안의 명성을 높여줄 무슨 큰일을 성취했을 때 쓸 수 있는 표현인 듯싶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모두가 다 부끄럽게 여기는 극형인 십자가의 죽음을 ‘영광’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13장 31절의 말씀은 예수님의 죽음을 하나님 집안의 영광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높은 가치를 둔 매우 역설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전체 21장 가운데 12장까지는 전반부에 해당되고, 13장부터는 후반부에 해당됩니다. 전반부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에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2:4)고 말씀하신 그대로 때가 이르기 이전시기의 내용들이고, 또 영광을 받으시기 이전의 일들을 기록한 내용들입니다. 여기서 ‘때’와 ‘영광’이란 말은 매우 역설적인 표현으로써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를 말합니다.
후반부 13장부터는 때가 이른 단계에서 이루어진 내용들, 곧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과 고별설교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7장 1절에서 예수께서 눈을 들어 하늘을 보시며 기도하시기를,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인지, 무엇이 하나님 가문의 영광을 빛내는 것인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예수님은 바로 파악하신 듯싶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고귀한 가치판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죽어 많은 열매를 맺는 일(12:24), 죽어 많은 사람의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일(마 26:28), 죽어 많은 사람에게 빛과 생명을 주는 일, 이 일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며, 하나님 집안을 빛내는 일임을 아시고 죽는 일을 영광 받으시는 일과 동일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명예나 권세를 얻어 누리는 일에 가치를 두지 않았습니다.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 일에 영광이란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19:17) 자기를 부인하며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에 고귀한 가치를 두셨습니다. 그 일이야말로 가문의 영광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자기를 이 땅에 보내신 뜻이라고 파악하였습니다.
전도서 7장 4절에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서 전체를 통해서 보면, 예수님의 마음은 언제나 초상집, 곧 골고다 언덕 위에 선 십자가에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제자들의 마음은 황실 보좌 좌우편에 앉게 될 높은 지위들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고뇌와 번민을 깨닫지 못했고, 왜 왕이신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셨어야 했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2천년 전 예수님의 열두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꿈을 꾸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마음이 초상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잔칫집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여부를 떠나서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 13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어 이루시려고 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묵상하고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은 제자들의 이 잘못된 몽상을 깨우치려하신 것일 것입니다. 섬김을 받고자하는 제자들, 이제 곧 예수님께서 황실 보좌에 오르게 될 것이고, 자신들은 높은 벼슬자리들을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들뜬 잔칫집 분위기에 젖어있는 제자들에게 죽음을 목전에 두고 고뇌와 번민 속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13:13-14)고 교훈하셨습니다.
12장에서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고귀한 가치를 알았는지 주의 죽으심을 위해서 노동자 일년치 품삯에 해당하는 값비싼 나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씻었습니다. 반면에 13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친히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주신 말씀이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13:34-35).
이 말씀은 높은 벼슬자리에 혈안이 되어 이반현상을 보이든 제자들에게 친히 섬김의 본을 보이심으로써 자신을 낮추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치를 지배에 두지 않고 섬김에 두셨습니다. 높은 벼슬자리에 두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자신을 낮춰 순종하시고 인류를 죄에서 속하시려는 하나님의 고귀한 뜻을 이루는 데에 높은 가치를 두셨습니다.
아침기도
김남조
목마른 긴 밤과
미명의 새벽길을 지나며
싹이 트는 씨앗에게 인사합니다.
사랑이 눈물 흐르게 하듯이
생명들도 그러하기에
일일이 인사합니다.
주님,
아직도 제게 주실
허락이 남았다면
주님께 한 여자가 해드렸듯이
눈물과 향유와 미끈거리는 검은 모발로써
저도 한 사람의 발을
말없이 오래오래
닦아주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엔
이 한 가지 소원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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