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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7-02 16:03
보혜사 성령(요 14: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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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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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혜사 성령(요 14:16-18)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6-18).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전에 제자들을 위로하시며 주신 약속들 가운데 한 가지가 당신의 부재함을 대신할 보혜사를 보내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기록한 곳이 바로 요한복음 14장 16-18절과 26절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내용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 약속의 성령님은 임재의 하나님 또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본문 그대로 성령님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을 하나님, 우리와 함께 거하실 하나님, 우리 속에 계실 하나님,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실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을 내주(內住) 동거(同居)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와 함께 사시는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였습니다. 또 마태복음 28장 20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약속이 성령님을 통해서 이뤄졌음을 봅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세상 끝날까지 곧 재림하실 그날까지 우리 성도들과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의 임재를 뜻합니다. 이 용어는 이사야서에 두 번 나옵니다(사 7:14; 8:8). 이 하나님의 임재는 요엘이나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의 글에도 예언되어진 약속입니다(욜 2:28-29; 겔 36:26-27; 겔 37:14).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주후 30년 5월 28일 오순절 날에 있었던 성령강림사건 속에서 지키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공동체로 택하시고 지도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신은 모든 백성에게 임재하지 않았고, 오직 기름부음 받은 자들에게 사역기간동안만 임재하였습니다. 그리고 여기 말하는 하나님의 신은 대체로 하나님께서 부으시는 은사 또는 능력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친히 성령님을 통해서 성도들 각 사람의 마음속에 임재하시는 것에는 크게 미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곧 임마누엘은 신약시대의 선민공동체를 구성하는 성도들 각 사람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총이요 선물입니다. 임마누엘은 은사나 능력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이신 성령님의 임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주시는 분의 성격에서 볼 때, 임마누엘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사나 능력은 성령님의 선물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님과 성령님의 은사를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성령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이 능히 받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분이시라 하였습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은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분을 임마누엘의 하나님이라 부릅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주동거하시면서 하시는 일 가운데 한 가지가 진리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일입니다.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령님께 하신 일 가운데 가장 큰 일은 신약성경을 쓰게 하신 일입니다. 신약성경은 성령님께서 사도들과 선지자들 또는 당대의 교사들은 진리로 인도하셨던 말씀들입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에 바탕을 둔 말씀들입니다. 성령님께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말씀하신 내용들을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당대의 교사들로 하여금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올바로 해석하게 하신 말씀들을 모운 기독교의 경전입니다.
오늘날에도 진리의 성령님께서는 진실하고 신실한 자들의 마음속에 성경의 말씀들을 깨닫게 하시고 올바로 해석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미혹의 영을 받아 성경말씀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는”(벧후 3:16) 자들이 많습니다. 이런 자들을 성경에서는 ‘적그리스도,’ 또는 ‘거짓선지자’ 또는 ‘거짓 교사’로 부릅니다.
셋째, 성령님은 도움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도움의 신이신 성령님께서 하신 일 가운데 가장 큰 일은 교회를 창립하게 하신 일입니다.
교회를 세우신 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사도들이 보혜사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오순절 날 성전 뜰 솔로몬행각에서 주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보혜사”의 “다른”의 의미는 예수님과 같은 또 다른 한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인성(人性)을 가지셨듯이 성령도 인성을 가지신 인격신이십니다. 우리가 여호와증인들을 이단자로 보는 이유는 그들이 성령님을 인격신으로 보지 않고 능력이나 힘(에너지)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보혜사”는 ‘곁에’란 접두어와 ‘부름’이란 말이 결합된 단어로써 그 뜻은 ‘다른 사람 곁으로 불려온 사람’이 됩니다. 변호사 또는 의사 또는 상담자와 비슷한 의미로 보시면 됩니다. 보혜사란 변호사나 의사 또는 상담자가 인격체인 것처럼 성령님도 인격체이심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누군가를 곁으로 청하는 이유는 도움을 받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초청에 응한 사람은 도움을 주려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돕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십니다. 심지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롬 8:26)까지 하십니다. 이런 성령님을 소멸하거나(살전 5:19) “근심하게 하지 말라”(엡 4:30)고 하셨습니다.
넷째, 성령님은 증표의 하나님이십니다. 바울 사도는 구원을 하나의 약정(約定)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22절에서 “저가[하나님이]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 하셨고, 에베소서 1장 13-14절에서는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성령님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체결된 구원약정서에 찍힌 인감도장과 보증금으로 언급하셨습니다. 바꿔 말씀드리면, 성령님은 우리 구원이 얼마나 확실하고 분명한가를 보여주는 증표로써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님을 선물로 받지 못했다면, 그 사람에게는 구원의 증표가 없는 것이요, 그렇다면 짐승의 표(계 14:11)를 받은 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침례를 받아 매주 성만찬에 참여하는 성도님들께서는 구원의 증표이신 보혜사 성령님을 선물로 받았고 그분이 동행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분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아 천국생활을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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