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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7-02 15:31
새 시대를 위한 변화(요 2:1-11)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725  
새 시대를 위한 변화(요 2:1-11)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된 사건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낡고 묵은 것을 대신할 새 질서 곧 유대교와 기독교의 비교이며, 기독교가 새 시대를 위한 새 질서임을 밝힌 첫 번째 표적입니다. 이 표적에 담긴 교훈을 찾아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것은 먼 옛날 모세가 물을 피로 변화시킨 것(출 7:14-24)에 비교되는 표적입니다. 바로 왕과 이집트인들에게 야훼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모세가 그 하나님이 보낸 히브리 민족의 선지자요 인도자란 사실을 입증해보인 첫 표적이 물을 피로 바꾼 기적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류에게 야훼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님은 죄의 억압과 현실의 고통에서 인류를 구원키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낸 메시아요 구원자란 사실을 입증해 보인 첫 번째 표적이 물을 포도주로 바꾼 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파괴적이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냈고, 예수님은 건설적이고 남에게 유익을 끼치는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냈습니다. 여기에 모세와 예수님의 삶의 방식의 차이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7절에 보면,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은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을 소개하기에 앞서 이 말씀을 먼저 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히브리 민족에게 시내산에서 율법을 선포하였습니다. 옛 시대의 상징인 율법은 지키기가 어렵고 억압적이며 비판적이고 파괴적입니다. 부정적이고 수동적이며 폐쇄적입니다. 율법은 사람들에게 불안과 스트레스를 주고 무거운 멍에를 지웁니다. 그것은 마치 모세가 물을 피로 바꾼 재앙을 내린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산에서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마 5-7장). 새 시대의 상징인 복음은 지키기가 쉽고 자유로우며 실질적이고 포용적이며 건설적입니다. 또 복음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개방적입니다. 복음은 사람들에게 평안과 기쁨을 주고 멍에를 가볍게 해줍니다. 그것은 마치 예수님이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꿔 큰 기쁨을 선사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도 물을 피로 바꾸듯이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을 포도주로 바꾸듯이 이웃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을 피로 바꾸듯이 파괴적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물을 포도주로 바꾸듯이 창조적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삶의 방식에는 천국과 지옥의 차이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둘째,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표적은 요한복음 19장 34절에서 옆구리에 창 찔림을 받고 물과 피를 흘리시고 죽어 무덤에 갇히신 후에 부활하신 것에 비교됩니다. 물은 죽음을 상징하고 포도주는 부활을 상징합니다. 2장 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표적을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표적의 목적이 능력 행함에 있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임을 암시합니다. 요한복음은 전체가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한 때’와 ‘때가 이미 이른 후’로 나누어 맞춰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2장 1절에 보면, “사흘 되던 날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영광이 완성되는 부활의 때를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혼인잔치에서 만드신 포도주는 자신이 십자가 위에서 흘리실 피(19:34)를 상징하는 것이자 또한 부활의 상징이었습니다. 2장 4절에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때에 아주 민감하셨습니다. 고난을 받아야 할 때와 영광을 받아야 때에 민감하셨습니다. 떠나보내야 할 시대와 새로 맞이해야 할 시대에 민감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혼인잔치 이야기에서 물을 옛 시대나 율법시대 또는 겉은 회를 칠해서 깨끗해 보이지만 속은 시체가 썩어 냄새나는 무덤과 죽음을 상징했고, 포도주는 복음시대나 은혜시대 또는 죽었지만 다시 사는,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서는 새 생명과 부활을 상징하였습니다.
셋째, 모세로 상징되는 옛것은 인간에게 만족이나 기쁨이나 평안을 줄 수 없는 부족하고 무기력한 것이었지만, 예수님으로 상징되는 새것은 인간에게 만족과 기쁨과 평안을 줄 수 있는 넉넉하고 넘치는 능력이었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나타난 옛것의 상징은 ‘부족함’입니다. 요한복음 2장 3절의 “포도주가 모란다”는 말씀에서와 같이 혼인잔치가 끝나기도 전에 포도주가 다 떨어져버렸습니다. 또 유대인들이 식사전후에 손발을 씻는 종교의식에 필요한 물을 담았던 돌 항아리도 ‘부족함’을 상징하는 숫자 6(-1)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자연의 법칙에 지배되는 옛것과 세상 것에는 인간을 복되게 하거나 참 평안과 기쁨을 줄 수 없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모세와 율법으로 상징되는 옛것은 인간을 구원하기에는 참으로 부족합니다. 역부족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물을 가지고 포도주로 만든 사건에서 보여주는 상징은 기쁨과 넉넉함과 최상의 품질입니다. 예수님의 이 표적은 엘리야가 열왕기상 17장 8-16절에서 사르밧 과부에게 베푼 기적과 동일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집에 남은 한 움큼의 가루와 약간의 기름이 떨어지지 아니하고 없어지지 않도록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이 기적은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에게 베푼 첫 번째 기적이었으며, 열왕기상 17장 18절에서 여인이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한 말과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한 말씀이 거의 동일하다는 점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기적은 엘리야가 가루와 기름을 떨어지게 하지 아니하고 없어지지 않도록 한 기적과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또 가나의 혼인잔치는 마지막 때에 우리 성도들에게 있을 천국잔치를 상징적으로 보고 주고 있습니다. 우리 구세주이신 예수님은 포도주가 떨어져 축제의 분위기가 식어가는 상황에서 더 맛있는 포도주를 만들어 줌으로써 더욱 기쁜 축제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이야기는 마지막 때에 있을 천국잔치의 “때”가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새로운 질서 가운데서 이미 우리 가운데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쁨과 넉넉함을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서 잔치분위기의 천국생활을 시작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모자람이 없는 분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실 수 있고, 넉넉함을 주실 수 있고, 천국생활을 경험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철저히 의지하시고, 오고 있는 시대를 자기의 때로 만드는, 미래를 자기의 때로 만드는 성공적인 삶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옛것으로 상징되는 물은 무색 무미 무취하고 변화가 없지만, 새것으로 상징되는 포도주는 짙은 색깔과 향과 훌륭한 맛과 상품가치가 높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우리 안에서 새 삶을 시작하게 하실 뿐 아니라, 질까지도 변화시킵니다. 물처럼 흔한 인생, 가치 없는 인생도 일단 주님의 손에 붙잡히면 포도주처럼 색깔과 향이 짙고, 고급스런 맛과 품위 있는 인생으로 변모합니다. 귀한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변화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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