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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9-21 17:33
창세기 051: 디나 사건이 갖는 의미(창 3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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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동호
 조회 : 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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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051: 디나 사건이 갖는 의미(창 34:1-31)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보면, 헬라인들은 혈통의 공유를 중시하고, 로마인들은 정신의 공유를 중시했다고 합니다. 혈통의 공유를 중시했던 헬라인들은 정신의 공유를 중시했던 로마인들에게 패권을 넘겨야 했고, 그들의 지배를 받아야 했지만, 정신의 공유를 중시했던 로마인들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예수님과 바울이 전한 복음의 공유는 정신의 공유란 차원을 훨씬 뛰어 넘는 것입니다. 전 세계인을 하나님의 동일한 자녀로 보기 때문에 민족간, 종족간의 형제애를 강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로마 건국 천년의 역사보다 배나 되는 2천년이 넘도록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야곱의 외동딸 디나가 세겜 성 추장에게 강간을 당한 것이나 하몰과 세겜 부족의 모든 남성들이 야곱의 아들들에게 도륙을 당한 것은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사건들입니다. 어떤 이유로든 용납될 수 없는 사건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이 성경에 기록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유대인들 또는 유대교의 관점에서 볼 때, 야훼 신앙의 순수성의 문제가 혈통의 순수성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고, 그것이 민족과 민족종교의 전통을 타민족과 타종교와 차별적으로 지켜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랍세계의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디나는 소녀로, 세겜은 소년 또는 젊은이로 나타나 있습니다. 세겜이 히위 족속 중 한 부족의 추장인 것을 보면, 적어도 20대 청년이었을 것이라 믿어집니다. 그러나 디나는 이제 겨우 혼인이 가능한 12-15세였을 것으로 봅니다. 당대에는 이 정도의 나이에 여자아이가 결혼을 했습니다. 또 세겜이 청혼한 것을 보면, 디나가 결혼적령기였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이 어린 디나가 시집도 가기 전에 강간을 당한 사건이 갖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첫째, 이 사건이 갖는 의미는 부족간의 전쟁이라는 면보다는 혈통의 순수성과 신앙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혈통이 무너지면 신앙의 혼합이란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랍인들의 신앙문제는 혈통이나 국경을 초월하는 것임을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근동세계의 종교간 또는 종파간 전쟁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슬람의 순니파와 시아파간의 파벌싸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들은 심지어 같은 민족 같은 종교인들을 파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폭탄테러와 같은 잔인한 방법으로 상대방 죽이기를 서슴지 않습니다.
셋째, 1963년 8월 28일에 워싱턴 DC에 있는 링컨 기념관 계단에 서서 행한 그 유명한 마르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연설문, “I Have a Dream!“에서도 잘 드러나 있듯이, 인류는 누구나, 흑인이나 백인이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개신교인이나, 천주교인이나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녀이며, 동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사실이 예수님의 가르침이요, 기독교의 기본적인 사상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의 가르침 곧 기독교의 가르침은 이스라엘 민족의 민족주의와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인간은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윤리적일 수 있고, 도덕적일 수 있습니다. 동생이 강간을 당했다고 해서, 작다고는 하나 일개 성민의 모든 남성들을 죽이고, 아녀자들을 종으로 삼고 재산을 탈취한다는 것은 기독교 정신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디나’ (30:21)는 야곱이 레아를 통해 얻은 외동딸로서 그 이름의 뜻이 ‘공의’ 또는 ‘판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디나를 강간한 세겜과 그의 성민 중 남성들은 도륙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고대 근동지방에서는 여자가 12세 정도 되면 결혼할 나이로 보았으므로, 이때 디나의 나이는 12세에서 15세 사이였을 것입니다. 나이 어린 디나에게 지을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된 것은 고대 가나안 사회의 도덕 수준이 매우 낮았다는 점을 말해주며, 젊고 혈기왕성한 세겜이 추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권력을 남용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 일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선민(選民)의 순수성을 잃을 뻔 했습니다. 강간 당한 디나를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시집보내어 통혼의 길을 열었다면, 선민의 순수성은 영영 잃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디나 자신에게도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선민으로써 이스라엘의 명예와 자부심에도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이 일을 듣고서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치 못할 일을”(7절) 행했다고 하며 근심하고 심히 격분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방인과의 통혼이나 잡혼에 대해서 혈통의 순수성이란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신앙의 순수성이란 문제로 접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과 결혼함으로 인해 선민의 순수성이 훼손되는 잡혼(雜婚)을 싫어하신 이유가 혈통이 섞이는 것을 막는데 있지 아니하고, 신앙의 혼합을 막는데 있었습니다. 통혼은 혼합종교로 가는 가장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노아시대에 인류가 타락한 것도 통혼 때문이었고(6:1-4), 솔로몬이 타락한 것도 종교가 다른 많은 외국인 신부들과 정략결혼을 함으로써 젊고 예쁜 그들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타락한 그들의 종교의식에 불려 다녔기 때문이었습니다.
족장들은 자녀들의 혼인에 매우 신경을 썼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내로 리브가를 멀리 하란에서 데려왔고, 야곱도 그곳에서 부인들을 얻었습니다. 율법에서 통혼을 금한 이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이방인 종교의 타락성 때문입니다. 향락에 맛을 들이면 빠져나오기 어렵듯이 이스라엘의 야훼신앙을 제외한 인근 세계의 이방종교들은 예배가 성적인 타락을 부추기는 음행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다나는 열두 명이나 되는 남자형제들 사이에 낀 유일한 딸이었고,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인근 부족의 여자 아이들과 동무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본문 1절은 디나가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더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디나의 이런 행동은 매우 부주의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들과 동무를 함으로써 디나는 감각적이고 현란한 이방문화에 동화(同化)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디나는 이미 그들의 문화에 깊이 동화되어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디나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면, 첫째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가져야지 세속적인 일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의하면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더니”(1절)라고 했습니다. 본문에 자세한 내용은 없지만, 아마도 세겜 성에 무슨 축제가 있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사교 모임에 가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세겜 여자들의 특별한 차림과 그들의 춤도 보고, 또 어쩌면 잘생긴 남성들의 눈에 띄기를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디나는 젊고 혈기왕성한 추장 세겜의 눈에 띄었고, 강제로 끌려가 강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디나의 잘못된 호기심이, 아담의 아내 하와가 잘못된 호기심으로 인해서 무너지고 말았듯이, 불미스런 사건을 만들어내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세속적인 호기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또 다른 교훈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그에 걸맞은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송사는 송사를 부르고, 피는 피를 부릅니다. 하몰의 집안에서 통혼을 요청했을 때, 거절하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숫자가 많고, 야곱은 그들과 힘으로 겨룰 만큼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디나의 소식을 듣고서도 아들들이 들에서 돌아올 때까지 분을 삭이고 있었고, 야곱의 아들들은 속임수로 그들의 뜻대로 할 테니 남성들은 할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디나를 연모했던 세겜은 성민 중 남성들을 설득하여 자기를 포함한 모든 남성이 할례를 받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은 할례로 인한 고통이 가장 극심한 때를 골라 복수의 칼을 뽑아들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살육을 자행한 일은 그 목적이 아무리 선했다 해도 그 방법이 공의롭지 못했습니다. 첫째로 정중한 예를 갖추고 나오는 하몰에게 할례를 전제로 통혼(通婚)을 허용하겠다는 거짓 약속을 하였고, 둘째로 육신의 죄와 더러운 것을 제거함을 상징하는 할례의 의미를 설명하지 않고 보복의 수단으로만 삼았으며, 셋째로 복수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에 속하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구해야했습니다. 넷째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분노는 죄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았고, 다섯째로 할례로 인한 염증과 발열로 고통이 최악의 상태에 이른 시점을 기해 복수를 감행했으며, 이것은 상대의 약점을 이용한 비열한 처사로 공명정대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아들들이 행한 복수는 하나님의 백성의 행위로 볼 때 전반적으로 부적절했고, 야곱도 이 불미스런 일에 대해서 아들들을 책망했으며, 하나님이 결코 기뻐할 수 없는 악한 일이었습니다. 혈통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한계점을 우리는 여기서 명백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성도에 걸맞은 신약성서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분노를 발하면 실수합니다. 욕망대로 하면 넘어집니다. 그러나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했습니다. 기독교 복음신앙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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